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우주, DNA, 장자(莊子)…
글 권택명 ㅣ 시인, 번역가. 1950년생
시집 『예루살렘의 노을』 『첼로를 들으며』, 역서 『한국의 율리시즈 김광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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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역 고형렬 시집 『유리체를 통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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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지혜서라고 일컬어지는 『탈무드』에 굴뚝 청소를 하러 들어간 두 소년에 대한 예화가 있다. 청소를 하고 나와 보니 한 사람은 얼굴에 검댕이 묻었고 다른 한 사람은 묻지 않았다면 누가 먼저 얼굴을 씻겠는가? 서로 자신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판단하게 되므로, 묻지않은 쪽이 먼저 씻게 될 것이라고 한다. 결론은 두 사람이 함께 청소를 했으니 같이 검댕이 묻게 될 것이어서, 어느 한 쪽만 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약간 난센스적인 랍비의 반전으로 끝나지만, 인간은 거울이 없으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예화에서는 두 소년이 서로에게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상대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알게 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 역시 타자(他者)가 있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이처럼 소중한 타자를 간접적으로라도 인식·경험할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문학은 다양한 타자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다듬어감과 동시에, 타자와 더불어 공존하면서 상호 이해·작용을 통한 바람직한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어쭙잖은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수년 간 일본에 산 것을 인연으로, 30여년 한·일, 일·한 문학 그 중에서도 특히 양국 현대 시 번역과 시인들의 교류를 위해 노력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2천 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 붐이 시작되었지만, 문학 쪽은 오히려 소설을 중심으로 한 ‘일류’가 자리 잡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순수’와 ‘대중’의 미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일본 소설의 특성이 한국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쉽게도 현대 시의 경우에는 양국 모두 대중문화나 소설에 비해 번역·출간 등 상호 간의 교류가 매우 적은 것이 사실이다. 시가 지니는 장르적 특성상 상업성을 지니기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불가피한 사정일 것이다.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나라로서 여전히 역사적·현실적 미해결의 여러 응어리와 과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상대의 정서를 제대로 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양 국민의 고고한 정서를 표현하는 정점으로서의 현대 시도, 상호간 번역과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한국 시의 탁월한 성취와 진경(進境)을 보여준 고형렬 시집의 번역·출판은 매우 뜻 있는 일이었다. 고형렬의 시집 『유리체를 통과하다』는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수록된 1백8편의 시가 표상하고 형상화해 내는 언어들은, 우주의 천문과 물리의 무한대에서부터, 디옥시리보핵산(DNA)의 눈에 보이지 않는 현미경적 존재(생명)에 이르기까지, 또한 최첨단이면서 어느 구석엔가는 치명적인 맹점을 지니고 있는 현대 도시문명에 대한 비평적 시각에서부터, 평화와 정일(靜逸) 그리고 무위(無爲)의 활달함이 있는 ‘장자적(莊子的)’ 자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事象)들이 포착·표현되어 있다. 시집에는 저자의 조어(造語) 등 난해한 부분도 적지 않으나, 저자 자신이 전작(全作)을 집필하듯이 수록 작품들을 써 내려갔다고 하는 사실에 수긍이 갈 정도로, 전체가 즉물적(即物的)으로 일거에 이해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해한다’는 말보다 향기를 맡듯이 작품 하나 하나를 ‘흡수한다’거나 ‘향수(享受)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작품들이기도 하다. 번역의 측면에서는, 잘 알려진 대로 한·일 양국어의 경우 한자문화권 안에 있고 문법도 유사하여, 서양어 번역에 비하면 그래도 원시(原詩)에 가까운 번역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번역을 ‘문자의 옮김─의미의 옮김─문화의 옮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미묘한 차이가 숱하게 존재하며, 오히려 유사하기 때문에 자칫 뜻하지 않은 오역을 할 위험성도 있게 된다. 같은 한자어라도 뉘앙스의 차이가 있고, 수동태 표현, 복합동사의 사용, 술어의 차이 등등 시의 맛을 내는 데는 창작 못지않게 여러 차례의 숙고(熟考)와 교정이 불가결한 것이다. 다만 이번 시집의 경우, 한국적 전통 정서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광물질적 용어와 문명비평적인 시각 등, 보편성·세계성을 얻기 쉬운 시어들이어서, 원시의 기품과 깊은 울림이 일본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될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런 성취가 가능하게 된 것은, 사전적인 의미가 아닌, 살아 있는 현대 일본어라는 관점에서 일본 독자들에게 다가갈수 있도록, 필자와 여러 차례 교신하며 꼼꼼히 감수를 해준 사가와 아키(佐川亞紀) 시인의 수고 덕택이다. 한·일 현대 시 교류를 통한 선린 우호의 증진에서, 필자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오랫동안 공역해준 사가와 시인의 노고와, 귀한 기회를 준 대산문화재단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서도 일본의 독자들에게 한국 현대 시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기를 기원한다.
※ 일역 『유리체를 통과하다』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필자와 사가와 아키 시인이 번역하여 일본 콜색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