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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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가상인터뷰
함돈균(이하 함) ㅣ 오늘은 신학기 개학·개강을 맞아서 한국에 막 입국하신 귀한 손님을 공항 현장에서 간단히 인터뷰합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자크 라캉 선생님이십니다. 듣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주어진 시간이 극히 제한되어 있기에 오늘 인터뷰는 한국사회의 인문학 열풍이라는 시의성과 관련하여 ‘인문학으로서의 정신분석’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간단히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런 대화 초점은 일반인들에게는 언뜻 보면 심리학(psychology)과 구별되지 않는 정신분석(psychoanalysis) 또는 정신분석학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에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자크 라캉(이하 라캉) 좋은 생각입니다. 생각 닿는 대로 성의 있게 대답하겠습니다.
함 ㅣ 우선 선생님께 임의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드리면, 전 선생님이 프로이트로부터 기원하고 있는 정신분석을 이중적 차원에서 ‘인문학’으로서 재탄생시켰다고 봅니다. 첫째 심리학이 추구하는 에고심리학(ego-psychology) 경향으로부터 일탈이 그 한 측면이고, 다른 측면은 특정 분과학문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학문으로서 카테고리의 수준을 확실하게 확장시켰다고 보기 때문이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 캉ㅣ ‘인문학으로서 정신분석’이라… 재미있는 설명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얘기를 위해서는 제가 젊었을 때 프랑스에서 정신분석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배경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선 정신분석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가 미국에 가서 받은 인상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1909년에 프로이트는 미국의 클라크대학에 가서 그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깜짝 놀라게 됩니다. 당시 유럽 대학에서 조롱받거나 냉소받던 정신분석을 미국의 교수들은 놀랄 만큼 개방적으로 받아들였던 거죠. 미국 방문 몇 년 후에야 프로이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 태도는 개방적이라기보다는 ‘너무 쉽게’ 정신분석을 수용하는 방식이었으며, 여기에는 미국사회가 지닌 ‘실용주의적’ 측면이 가미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프로이트는 비슷한 시기 정신분석 수용에 대한 가장 큰 반발이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현상은 미국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의 정신분석 이해에 대한 격렬한 저항 방식이며, 프로이트는 자기가 정립한 정신분석 이론에 무언가 심각한 훼손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그래서더 확신하게 되지요. 그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는 프로이트 자신에 의해서도 당시에는 즉각적으로 정확히 이해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유럽지성계의 핵심인 프랑스에서 프로이트는 상당 시간 한 천재적인 ‘독일인의 영감’정도로 치부되며 망각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은 2차 대전 직후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유행한 ‘실존주의’에 대한 프랑스식 반발과 학문적 비판으로부터 왔습니다. 헤겔의 말대로 철학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적 산물이지요. 실존주의는 세계대전을 겪으며 제기된 ‘상황 속에서의 개인의 선택과 결단과 책임’의 문제를 제기하는 철학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상학이면서 윤리학이었으며, 심리학이기도 했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실존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이론의 핵심인 ‘자아(ego)’의 문제에 대해 그것이 데카르트적 유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는 실존주의가 선택의 행위자를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그려냄으로써 자아에 대한 고정성, 절대성에 대한 신비화·과장에 기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프로이트가 미국에 가서 느꼈던 그들의 수상한 수용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미국인들 특유의 실용주의는 이 자아를 유럽에서보다 훨씬 더쉽게 사회와 화해하게 하고 적응하게 하는 ‘착한 인간’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에고심리학’이라는 그 부분이죠.
저는 이 부분을 중요한 이론적 저항의 지점으로 채택했으며, 그것은 제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Return to Freud)’고 얘기했던 근거가 됩니다. 프로이트야말로 이성과 의지가 가 닿지 못하는‘무의식’과 ‘성(性)’을 발견하고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인문학이 사회 적응성을 기민하게 갖춘 사회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떠한 근원적 인간성찰과 세계의 실재를 인식하게 하는 학문이란 뜻이라면 정신분석을 ‘인문학’이라 해도 좋겠네요.
함 ㅣ 제가 ‘인문학’이라고 할 때, 분과학문보다 포괄적인 범주의 보편학문으로서 정신분석 운동의 성격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그건 어떤가요.
라 캉 ㅣ 충분히 가능한 얘기입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세계대전이 끝나고 1960년대를 경유하면서 주변에 많은 탁월한 친구 및 후배들과 교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언어학의 대가였던 로만 야콥슨과 교유하면서 그의 언어이론을 접하고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라 할 소쉬르를 소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파리에서 열었던 정신분석 세미나에는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줄리아 크리스테바, 철학자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등이 참여하고 있었고, 이러한 교류 중에는 고등사범학교 철학교수였던 루이 알튀세르 같은 걸출한 마르크시스트도 있었습니다. 한편 저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와도 교류했지요. 제 이론에는 이들과의 교류가 상당한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과의 협업 속에서 제 정신분석이론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프로이트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했던 것은 프로이트는 독일 지역의 지적 풍토에서 고립되어 있었으나, 저는 프랑스의 이 유례없이 특별한 시기에서 그 지적 자장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죠. 정신분석이 특정 분과 학문을 넘어서 인간과 세계의 심층을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보편적인 ‘학문의 학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함 ㅣ 친구를 잘 만나신 덕도 상당히 크시군요(웃음). 그런 지적 교유가 선생님의 이론에 준 영향의 실례를 한두 가지 들어주실 수 있는지요.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프로이트는 몰랐던 사실들일 수도 있는데요, 선생님은 그런 새로운 지적 트렌드들을 자기 이론으로 흡수하면서도 늘 이 모든 것을 ‘프로이트로의 귀환’으로 돌리지 않으셨나요.
라 캉 ㅣ어떤 사람들은 프로이트와 저 사이에 실제로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즐겨 사용하는 수학소 같은 설명방법론이라든가 제 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주의언어학 같은 것이 프로이트에게는 없다는 이유에서죠. 그러나 그건 프로이트에 대한 정확한 읽기도, 저에 대한 충분한 읽기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죠. 예컨대 저는 에고가 아니라 무의식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늘 프로이트가 강조했던 것이죠. 저는 무의식을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은 유사성에 의한‘선택’과 인접성에 의한 ‘결합’에 관한 소쉬르의 언어이론과, 야콥슨의 ‘은유’와 ‘환유’에 관한 실어증 이론을 공부하면서 그것들을 차용한 것이지요. 저는 이들 이론을 바탕으로 ‘증상’을 수직적이고 포개짐의 무의식 운동으로서 은유로,‘욕망’을 무의식의 수평적인 이동과 대체 운동으로서 환유라고 설명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실은 프로이트가 일찍이 ‘압축(Verdichtung)’과 ‘전치(Verschiebung)’라는 말로 다 설명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소쉬르를 알지 못했고, 제 친구들처럼 ‘구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늘 말실수나 농담에서 비롯되는 언어와 무의식의 상관성을 마치 구조주의언어학을 알고 있는 것처럼 직관하고 있습니다. 다만 프로이트에게는 그의 학문적 토대였던 과학주의, 특히 생물학주의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저는 제 시대의 학문적 토대를 통해 설명하고 발전시키려 했던 것뿐입니다.
함 ㅣ 얘기가 나온 김에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같은 예를 들어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라 캉 ㅣ좋은 지적입니다. 그건 프로이트와 저의 핵심개념 간 상동성과 차이를 방법론에서 잘 드러낼 수 있는 예입니다. 프로이트에게서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도덕, 양심(죄의식), 법, 그리고 모든 형태의 권위의 출발점이죠. 엄마와 아빠와 나를 둘러싼 근친상간의 유혹과 금지를 둘러싼 히스토리는 가족서사에서 출발하여 문화의 규범과 무의식을 이루는 문명서사의 거대한 메타포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프로이트에게 이 문제는 상당 정도 생물학적 방법론과 심리적 요소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아빠 없이자란 아이는 누가 근친상간 금지를 명하느냐는 식의 단순한 질문도 나오지요.
저는 레비-스트로스와 언어학 등을 공부하면서 이 문제를 보다 구조인류학적이고 언어학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저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라는 말보다는 상상계 (l'imaginaire), 상징계(le symbolique), 실재계(le réel)라는 말을 씁니다. 이것은 데카르트적에고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후 실존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주체’에 관한 제 가장 중요한 이론이지요. 상상계는 ‘거울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 데, 핵심은 우리가 아기 때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되는 최초 단계의 순간에 개입되는 ‘오인(méconnaissance)’에 관한 문제의식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인식에 내재한 근원적 나르시시즘에 관한 탐구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자기인식의 문제, 즉 ‘주체’의 문제에는 늘 ‘타자’ 또는 타자의 시선이 개입되는 상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죠. 거울에서 자기에 관한 이미지를 보며 그에 매료되는 것은 마주한 타자에 관한 매료이며, 타자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오인을 통해 자기에 관한 ‘상상적’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동일시하는 타자는 나에게 절대적인 이미지로 등장하기 때문에 나는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며, 나는 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지요. 그래서 ‘모든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명제를 낳는 것입니다.
함 ㅣ 그 유명한 이론은 어린아이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죠?
라 캉 ㅣ그렇습니다. 이러한 단계는 어린아이의 경우 생후 18개월 정도까지의 시기이지만, 제가진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심리구조가 일생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내재화되어 유지된다는사실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사람이든 물건이든 매혹에 빠지는 그 순간은 타자와의 동일시가 형성되면서 거울단계에 다시 서는 순간이지요. 그때 나와 타자는 분리되지 않으며 이미지의 과잉이 생겨납니다. 타자도 커지고 나도 커지는 거죠. 제가 ‘욕망(désir)’이라고 부르는 것이 출현하는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욕망이 탄생하는 이 순간은 동시에 욕망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순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욕망의 구조를 그래서 수평적 이동과 전치의 관점을 개입시켜 ‘환유’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이동은 생리적 욕구(besoin)와는 달리 욕망이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기에 발생합니다. 이미지에 대한 상상적 매료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결핍의 운동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것이 제가 ‘상징계’라고 부르는 문화의 세계입니다.
여기에서 아이/우리는 상상적 타자와의 완벽한 충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만 늘 합일의 대상을 찾아 떠돌게 됩니다. 이 상징계에서는 주체는 세계와 계약을 맺습니다. 말의 질서로 대표되는 엄격한 문화의 질서를 받아들임으로써, 잃어버린 욕망의 대상에 관한 우회적인 동일시와 후일의 합일을 기약하는 불가피한 타협을 하게 되죠. 나는 이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를 ‘분열된 주체’라고 부릅니다. 이 ‘분열’의 의미는 주체란 선험적인 것도 아니며, 오인의 산물이자, 욕망의 충족을 원하지만 그것을 달성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함 ㅣ 선생님, 시간이 많지 않아 긴 얘기를 나눌 수는 없는 것이 너무 아쉽네요. 그럼 이러한 정신분석 이론이 ‘인문학’과 관련하여 갖는 실천적 함의는 무엇입니까.
라 캉 ㅣ언뜻 보면 사변적인 얘기인 것 같지만, 정신분석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회분석이나 여러 예술 텍스트 분석에도 매우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할 때가 많습니다. 극단적 사회갈등과 정치적 혐오주의, 예컨대 유럽의 나치즘이나 인종주의, 최근 한국의 일베나 여성혐오현상 같은 것을 설명하는 데에도 의미심장한 통찰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주체에 관한 이 이론이 우리 안에 내재한 불완전성, 가변성, 허약함을 돌아보게 한다는 데에 있을 겁니다. 정신분석은 주체라는 것 자체가 허약성에 기반해 있기에 그것을 오히려 인간의 ‘정상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며, 이를 잘살펴야 한다고 얘기하죠. 우리 안에 내재한 타자와의 긴밀한 상호성 역시 잘 성찰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이 성찰에 따르면 주체는 타자와 늘 공속합니다. 동시에정신분석은 세계에 내재한 허약함과 불완전성에 대한 각성을 암시합니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세계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세계는 욕망의 허위성에 기초해 운동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주체를 억압하는 장소죠. 우리는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원적 허약함에 대한 성찰능력 이야말로 바로 인문학의 본질이나 필요와도 통하는 게 아닐까요.
함 ㅣ 선생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나눌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정신분석에 대한 이얘기는 교양주의로서의 ‘인문학’을 넘어서서 그 안에 내재한 불온성과 전복성을 회복하는 인문정신이 우리시대에 필요하다는 우회적인 얘기로도 해석할 수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라캉 선생님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정신분석은 삶의 허약함과 불완전성에 대한 성찰
글 함돈균 ㅣ 평론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1973년생
저서 『사물의 철학』 『예외들』 『얼굴 없는 노래』 『시는 아무 것도 모른다』 등
자크 라캉(Jacques Lacan) ㅣ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1901~1981년
저서 『에크리』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정신분석의 윤리』 『욕망 이론』 등
- 자크 라캉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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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이하 라캉) 좋은 생각입니다. 생각 닿는 대로 성의 있게 대답하겠습니다.
함 ㅣ 우선 선생님께 임의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드리면, 전 선생님이 프로이트로부터 기원하고 있는 정신분석을 이중적 차원에서 ‘인문학’으로서 재탄생시켰다고 봅니다. 첫째 심리학이 추구하는 에고심리학(ego-psychology) 경향으로부터 일탈이 그 한 측면이고, 다른 측면은 특정 분과학문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학문으로서 카테고리의 수준을 확실하게 확장시켰다고 보기 때문이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 캉ㅣ ‘인문학으로서 정신분석’이라… 재미있는 설명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얘기를 위해서는 제가 젊었을 때 프랑스에서 정신분석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배경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선 정신분석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가 미국에 가서 받은 인상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1909년에 프로이트는 미국의 클라크대학에 가서 그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깜짝 놀라게 됩니다. 당시 유럽 대학에서 조롱받거나 냉소받던 정신분석을 미국의 교수들은 놀랄 만큼 개방적으로 받아들였던 거죠. 미국 방문 몇 년 후에야 프로이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 태도는 개방적이라기보다는 ‘너무 쉽게’ 정신분석을 수용하는 방식이었으며, 여기에는 미국사회가 지닌 ‘실용주의적’ 측면이 가미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프로이트는 비슷한 시기 정신분석 수용에 대한 가장 큰 반발이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현상은 미국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의 정신분석 이해에 대한 격렬한 저항 방식이며, 프로이트는 자기가 정립한 정신분석 이론에 무언가 심각한 훼손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그래서더 확신하게 되지요. 그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는 프로이트 자신에 의해서도 당시에는 즉각적으로 정확히 이해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유럽지성계의 핵심인 프랑스에서 프로이트는 상당 시간 한 천재적인 ‘독일인의 영감’정도로 치부되며 망각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은 2차 대전 직후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유행한 ‘실존주의’에 대한 프랑스식 반발과 학문적 비판으로부터 왔습니다. 헤겔의 말대로 철학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적 산물이지요. 실존주의는 세계대전을 겪으며 제기된 ‘상황 속에서의 개인의 선택과 결단과 책임’의 문제를 제기하는 철학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상학이면서 윤리학이었으며, 심리학이기도 했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실존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이론의 핵심인 ‘자아(ego)’의 문제에 대해 그것이 데카르트적 유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는 실존주의가 선택의 행위자를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그려냄으로써 자아에 대한 고정성, 절대성에 대한 신비화·과장에 기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프로이트가 미국에 가서 느꼈던 그들의 수상한 수용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미국인들 특유의 실용주의는 이 자아를 유럽에서보다 훨씬 더쉽게 사회와 화해하게 하고 적응하게 하는 ‘착한 인간’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에고심리학’이라는 그 부분이죠.
저는 이 부분을 중요한 이론적 저항의 지점으로 채택했으며, 그것은 제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Return to Freud)’고 얘기했던 근거가 됩니다. 프로이트야말로 이성과 의지가 가 닿지 못하는‘무의식’과 ‘성(性)’을 발견하고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인문학이 사회 적응성을 기민하게 갖춘 사회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떠한 근원적 인간성찰과 세계의 실재를 인식하게 하는 학문이란 뜻이라면 정신분석을 ‘인문학’이라 해도 좋겠네요.
함 ㅣ 제가 ‘인문학’이라고 할 때, 분과학문보다 포괄적인 범주의 보편학문으로서 정신분석 운동의 성격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그건 어떤가요.
라 캉 ㅣ 충분히 가능한 얘기입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세계대전이 끝나고 1960년대를 경유하면서 주변에 많은 탁월한 친구 및 후배들과 교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언어학의 대가였던 로만 야콥슨과 교유하면서 그의 언어이론을 접하고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라 할 소쉬르를 소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파리에서 열었던 정신분석 세미나에는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줄리아 크리스테바, 철학자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등이 참여하고 있었고, 이러한 교류 중에는 고등사범학교 철학교수였던 루이 알튀세르 같은 걸출한 마르크시스트도 있었습니다. 한편 저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와도 교류했지요. 제 이론에는 이들과의 교류가 상당한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과의 협업 속에서 제 정신분석이론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프로이트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했던 것은 프로이트는 독일 지역의 지적 풍토에서 고립되어 있었으나, 저는 프랑스의 이 유례없이 특별한 시기에서 그 지적 자장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죠. 정신분석이 특정 분과 학문을 넘어서 인간과 세계의 심층을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보편적인 ‘학문의 학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함 ㅣ 친구를 잘 만나신 덕도 상당히 크시군요(웃음). 그런 지적 교유가 선생님의 이론에 준 영향의 실례를 한두 가지 들어주실 수 있는지요.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프로이트는 몰랐던 사실들일 수도 있는데요, 선생님은 그런 새로운 지적 트렌드들을 자기 이론으로 흡수하면서도 늘 이 모든 것을 ‘프로이트로의 귀환’으로 돌리지 않으셨나요.
라 캉 ㅣ어떤 사람들은 프로이트와 저 사이에 실제로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즐겨 사용하는 수학소 같은 설명방법론이라든가 제 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주의언어학 같은 것이 프로이트에게는 없다는 이유에서죠. 그러나 그건 프로이트에 대한 정확한 읽기도, 저에 대한 충분한 읽기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죠. 예컨대 저는 에고가 아니라 무의식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늘 프로이트가 강조했던 것이죠. 저는 무의식을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은 유사성에 의한‘선택’과 인접성에 의한 ‘결합’에 관한 소쉬르의 언어이론과, 야콥슨의 ‘은유’와 ‘환유’에 관한 실어증 이론을 공부하면서 그것들을 차용한 것이지요. 저는 이들 이론을 바탕으로 ‘증상’을 수직적이고 포개짐의 무의식 운동으로서 은유로,‘욕망’을 무의식의 수평적인 이동과 대체 운동으로서 환유라고 설명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실은 프로이트가 일찍이 ‘압축(Verdichtung)’과 ‘전치(Verschiebung)’라는 말로 다 설명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소쉬르를 알지 못했고, 제 친구들처럼 ‘구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늘 말실수나 농담에서 비롯되는 언어와 무의식의 상관성을 마치 구조주의언어학을 알고 있는 것처럼 직관하고 있습니다. 다만 프로이트에게는 그의 학문적 토대였던 과학주의, 특히 생물학주의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저는 제 시대의 학문적 토대를 통해 설명하고 발전시키려 했던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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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캉 ㅣ좋은 지적입니다. 그건 프로이트와 저의 핵심개념 간 상동성과 차이를 방법론에서 잘 드러낼 수 있는 예입니다. 프로이트에게서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도덕, 양심(죄의식), 법, 그리고 모든 형태의 권위의 출발점이죠. 엄마와 아빠와 나를 둘러싼 근친상간의 유혹과 금지를 둘러싼 히스토리는 가족서사에서 출발하여 문화의 규범과 무의식을 이루는 문명서사의 거대한 메타포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프로이트에게 이 문제는 상당 정도 생물학적 방법론과 심리적 요소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아빠 없이자란 아이는 누가 근친상간 금지를 명하느냐는 식의 단순한 질문도 나오지요.
저는 레비-스트로스와 언어학 등을 공부하면서 이 문제를 보다 구조인류학적이고 언어학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저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라는 말보다는 상상계 (l'imaginaire), 상징계(le symbolique), 실재계(le réel)라는 말을 씁니다. 이것은 데카르트적에고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후 실존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주체’에 관한 제 가장 중요한 이론이지요. 상상계는 ‘거울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 데, 핵심은 우리가 아기 때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되는 최초 단계의 순간에 개입되는 ‘오인(méconnaissance)’에 관한 문제의식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인식에 내재한 근원적 나르시시즘에 관한 탐구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자기인식의 문제, 즉 ‘주체’의 문제에는 늘 ‘타자’ 또는 타자의 시선이 개입되는 상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죠. 거울에서 자기에 관한 이미지를 보며 그에 매료되는 것은 마주한 타자에 관한 매료이며, 타자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오인을 통해 자기에 관한 ‘상상적’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동일시하는 타자는 나에게 절대적인 이미지로 등장하기 때문에 나는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며, 나는 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지요. 그래서 ‘모든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명제를 낳는 것입니다.
함 ㅣ 그 유명한 이론은 어린아이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죠?
라 캉 ㅣ그렇습니다. 이러한 단계는 어린아이의 경우 생후 18개월 정도까지의 시기이지만, 제가진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심리구조가 일생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내재화되어 유지된다는사실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사람이든 물건이든 매혹에 빠지는 그 순간은 타자와의 동일시가 형성되면서 거울단계에 다시 서는 순간이지요. 그때 나와 타자는 분리되지 않으며 이미지의 과잉이 생겨납니다. 타자도 커지고 나도 커지는 거죠. 제가 ‘욕망(désir)’이라고 부르는 것이 출현하는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욕망이 탄생하는 이 순간은 동시에 욕망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순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욕망의 구조를 그래서 수평적 이동과 전치의 관점을 개입시켜 ‘환유’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이동은 생리적 욕구(besoin)와는 달리 욕망이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기에 발생합니다. 이미지에 대한 상상적 매료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결핍의 운동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것이 제가 ‘상징계’라고 부르는 문화의 세계입니다.
여기에서 아이/우리는 상상적 타자와의 완벽한 충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만 늘 합일의 대상을 찾아 떠돌게 됩니다. 이 상징계에서는 주체는 세계와 계약을 맺습니다. 말의 질서로 대표되는 엄격한 문화의 질서를 받아들임으로써, 잃어버린 욕망의 대상에 관한 우회적인 동일시와 후일의 합일을 기약하는 불가피한 타협을 하게 되죠. 나는 이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를 ‘분열된 주체’라고 부릅니다. 이 ‘분열’의 의미는 주체란 선험적인 것도 아니며, 오인의 산물이자, 욕망의 충족을 원하지만 그것을 달성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함 ㅣ 선생님, 시간이 많지 않아 긴 얘기를 나눌 수는 없는 것이 너무 아쉽네요. 그럼 이러한 정신분석 이론이 ‘인문학’과 관련하여 갖는 실천적 함의는 무엇입니까.
라 캉 ㅣ언뜻 보면 사변적인 얘기인 것 같지만, 정신분석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회분석이나 여러 예술 텍스트 분석에도 매우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할 때가 많습니다. 극단적 사회갈등과 정치적 혐오주의, 예컨대 유럽의 나치즘이나 인종주의, 최근 한국의 일베나 여성혐오현상 같은 것을 설명하는 데에도 의미심장한 통찰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주체에 관한 이 이론이 우리 안에 내재한 불완전성, 가변성, 허약함을 돌아보게 한다는 데에 있을 겁니다. 정신분석은 주체라는 것 자체가 허약성에 기반해 있기에 그것을 오히려 인간의 ‘정상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며, 이를 잘살펴야 한다고 얘기하죠. 우리 안에 내재한 타자와의 긴밀한 상호성 역시 잘 성찰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이 성찰에 따르면 주체는 타자와 늘 공속합니다. 동시에정신분석은 세계에 내재한 허약함과 불완전성에 대한 각성을 암시합니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세계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세계는 욕망의 허위성에 기초해 운동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주체를 억압하는 장소죠. 우리는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원적 허약함에 대한 성찰능력 이야말로 바로 인문학의 본질이나 필요와도 통하는 게 아닐까요.
함 ㅣ 선생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나눌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정신분석에 대한 이얘기는 교양주의로서의 ‘인문학’을 넘어서서 그 안에 내재한 불온성과 전복성을 회복하는 인문정신이 우리시대에 필요하다는 우회적인 얘기로도 해석할 수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라캉 선생님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