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기획특집
문무자 이옥(1760~1813)은 영조~순조 연간의 문인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여성의 마음을 읊은 시를 많이 썼다. 특히 우리말을 한자로 번역하지 않고 발음 그대로 한자로 썼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을 비롯한 실학파 시인들도 높새바람을 高鳥風(고조풍)으로, 보릿고개를 麥嶺(맥령)으로 바꿔 표현하는 방식으로 우리말을 쓰려고 애를 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옥은 ‘ㅇ’을 異凝(이응)으로, 아가씨를 阿哥氏로, 가리마를 加里麻라고 바로썼다. 사나이의 경우 似羅海(사나해)라고 표기해 ‘모름지기 사나이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우리말을 그대로 쓰려 한 이유는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그는「삼난(三難)」이라는 글에서 청포(靑泡)가 묵을 가리키는 말인지 몰라 속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소개한다. 제사를 지낼 등유가 필요해진 어느 태수가 하인에게 법유(法油)를 사오라고 시키는 바람에 하인과 기름장수가 그 말을 몰라 등유를 구하지 못한 경우도 나온다. 이옥은 이런 예를 들면서 쉬운 우리말 사용과 어문일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글은 문체반정(文體反正)을 내세운 정조에 의해 배척됐고, 그는 한동안 과거 응시자격까지 박탈당했다. 당대 문인들도 시에 우리말 이름을 쓰는 것이 어지럽고 괴이하며 촌스럽다고 이옥을 비난했다. 소통을 지향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난 대상이 되는 불통의 환경에서 시인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문과 한자가 지배계층 어문생활의 도구였던 시대에 한글은 천시당하고 외면당했다. 대화와소통의 장에 한글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어기본법(2005년 1월 공포)에 밝힌 대로 ‘국어의사용을 촉진하고 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글의 시대인데도 소통이 어렵다.
세대와 계층 간 언어가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지역 간의 언어가 다른 것, 즉 사투리는소통에 장애는 되지만 없애고 배척하기보다 보호하고 전승해야 할 어문자산이다. 그런 사투리를쓰는 게 아닌데도 소통이 어려운 것은 젊은 계층에서 많이 쓰는 유행어 은어가 우리의 언어생활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 휴대폰을비롯한 SNS사회에서 외계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신조어가 끊임없이 양산돼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안여돼 같으면서 에바 그만 떨고 김천 가자.그런데 문상도 버카충 되니?” 이것은 요즘 아이들이 많이 쓰는 말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해서 만든 문장이다. 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풀어 말하면 “안경 쓴 돼지같이 생겼으면서 보기 흉한 애교 그만 떨고 김밥천국이나 가자. 그런데 문화상품권도 버스카드 충전 되니?”라는 뜻이다. 에바는 오버(over)를 변형해서만든 말이다.
요즘 아이들과 어른들의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은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방식 자체가 과거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일단 긴 말은 세 글자 정도로 줄이고 원래 세 글자 이상 되는 건 두 글자로 줄인다. 인터넷에는 ‘어른들이모르는 신조어’라는 게 떠다닌다. 누가 언제 어떻게 조사했는지 출전이 불분명한 자료다. 이 자료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어른들이 모르는 비율이높은 말일수록 원래 말을 세 글자 정도로 줄인것이라는 점이다.
모르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솔까말’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정줄놓’(정신줄을 놓았구나)이다. 그 다음 ‘흠좀무’는 얼른 알아맞히기 어렵다. ‘흠,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다. 끔찍한 뉴스나 섬뜩한 글을 보았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뭐병’도 많이쓰이는 줄임말이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인데, 뭐라 할 말이 없을 만큼 어이가 없는 상황에서사용하는 신조어다.
SNS의 댓글은 신조어의 온상이며 진앙이다. 우리나라처럼 댓글이 활발하고, 그래서 악플의 폐해가 심각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인권침해나 인격모독을 넘어 이른바 ‘신상 털기’를 통해 개인정보 유출은 물론 인격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철부지들이 많다. 그렇게 앞뒤 재지 않고 사실을확인하지 않은 채 글을 올렸다가 말썽이 되면 ‘자삭’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진삭제다.
일을 저질러 놓고 자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그 게시물에 일부러 답글을 달곤 한다. 네이버의 경우 답글을 달면 관리자가 아닌 한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걸 ‘자삭방지’라고 한다. 자기소개서를 ‘자소서’라고 부른지 오래고, 인터넷강의는 ‘인강’이라 하고 있으니 자삭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타에서 발생하는 신조어도 많다. 자판을 빠르게 치다 보면 ‘완전히’를 ‘오나전히’, ‘또 울었다’를 ‘똥루었다’, ‘사상과’는 ‘사사오가’로 치기 쉽다.이렇게 실수로 빚어진 말을 재미있다고 그냥 쓰는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의 생존법’이라고 소개된 작품에 『하악하악』이 있다. ‘하악하악’은 가쁜 숨소리를 형용하는 의성어인데 이걸 빨리 치다가 ‘항가항가’가 되자 요즘 젊은이들은 두 가지를 다 쓰고있다.
이런 것은 오타의 산물이 아니라 언어의 진화,어감의 강세화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그야말로 ‘헐!’이다(어떤 사람들은 ‘헉의 다른 말’이라는 헐에 한자가 있다면서 狘(월)이 바로 그글자, ‘놀라 달아날 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글자를 월이나 훨로 읽을 수는 있어도 헐은 아니다. 하기야 한자가 있다는 주장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본래 뜻에서 전이되거나 진화된 말은 그래도 의미를 짐작하기가 쉽다. ‘진상’은 원래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특산물을 윗사람에게 바치는 행위’, 즉 進上이었다. 그러다가 진상의 폐단이 부각되면서 허름하고 나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됐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진상’은 거기에 부정적 의미를 더해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진상 떨다’라는 말은 ‘유독 까탈스럽게 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고객은 왕이라지만 왕노릇 한답시고 진상을 떠는 손님들이 많다.
젊은이들이 볼 때 요즘 유행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다 ‘뉴비’다. 뉴비는 뭔가. 인터넷 게시판이나 커뮤니티 또는 어느 한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다른 비교대상에 비해 한 분야를 기준으로 지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뉴비다. 이런 말의 앞에는 흔히 ‘개’나 ‘캐’를 붙여서 강조한다. 재미있는 것도 개재미있고, 뉴비도 캐뉴비, 빠른 건 개빠르고, 깨끗해도 개깨끗하다고 하는 식이다. ‘드럽게 깨끗하다’는 말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이들은 뭔가 잘못을 저질러 아빠한테 혼나는 걸 ‘파덜어택’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father attack인데, 아버지가 자녀를 혼내는 게 공격이라니 그놈들 참! 엄마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는 건‘엄크’라고 한다. 엄마+이크일까? 어떻게 만들어진 말인지 유래를 잘 모르겠는데, 방에서 엄마몰래 무슨 짓을 하기에 이런 말까지 만들었을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이렇게 갈수록 늘어난다. 그리고 말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더 어렵게,더 짧게 진화한다.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새로운 유행어를 퍼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아니 거꾸로 말해 그렇게 유행하는 것이니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시키는 것이겠지.아이들은 ‘쩐다’는 말도 정말 많이 한다. 신기하다 멋지다 내가 졌다, 이런 뜻의 감탄사 대용어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두루 쓰이는 단어다. 최근 어느 지공거사(65세가 되어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 이 말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소금에 절여 둔 음식 너무 오래 잘못 보관하면 풍기는 냄새와 맛?’ 이렇게 답이 왔다. GGG=ㅎㅎㅎ.
요즘 젊은이들은 단축키를 눌러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듯 새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면서 기성세대가 모르는 새로운 삶을 살고있다. 기성세대에게는 그런 말들이 대부분 낯설고 이상하다. 너무 가볍고 천박해 보여 거부감이생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맨 먼저 할 일은 이런 말을 만들어 내는 세대의 마음과 환경을 이해하고 수용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여 새로운 언어 사용에 일정 부분 동참함으로써언어 단절의 경계를 허물고 소통의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그들의 언어로 내 생각을 알게 해 주어야 세대 간에 말이 통한다. 말이 안 통하면 소도 개도 닭도 다 안 통한다. 올해는 양의 해이지만 양도 안 통한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글 임철순 ㅣ 언론인,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1953년생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 등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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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자 이옥(1760~1813)은 영조~순조 연간의 문인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여성의 마음을 읊은 시를 많이 썼다. 특히 우리말을 한자로 번역하지 않고 발음 그대로 한자로 썼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을 비롯한 실학파 시인들도 높새바람을 高鳥風(고조풍)으로, 보릿고개를 麥嶺(맥령)으로 바꿔 표현하는 방식으로 우리말을 쓰려고 애를 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옥은 ‘ㅇ’을 異凝(이응)으로, 아가씨를 阿哥氏로, 가리마를 加里麻라고 바로썼다. 사나이의 경우 似羅海(사나해)라고 표기해 ‘모름지기 사나이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우리말을 그대로 쓰려 한 이유는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그는「삼난(三難)」이라는 글에서 청포(靑泡)가 묵을 가리키는 말인지 몰라 속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소개한다. 제사를 지낼 등유가 필요해진 어느 태수가 하인에게 법유(法油)를 사오라고 시키는 바람에 하인과 기름장수가 그 말을 몰라 등유를 구하지 못한 경우도 나온다. 이옥은 이런 예를 들면서 쉬운 우리말 사용과 어문일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글은 문체반정(文體反正)을 내세운 정조에 의해 배척됐고, 그는 한동안 과거 응시자격까지 박탈당했다. 당대 문인들도 시에 우리말 이름을 쓰는 것이 어지럽고 괴이하며 촌스럽다고 이옥을 비난했다. 소통을 지향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난 대상이 되는 불통의 환경에서 시인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문과 한자가 지배계층 어문생활의 도구였던 시대에 한글은 천시당하고 외면당했다. 대화와소통의 장에 한글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어기본법(2005년 1월 공포)에 밝힌 대로 ‘국어의사용을 촉진하고 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글의 시대인데도 소통이 어렵다.
세대와 계층 간 언어가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지역 간의 언어가 다른 것, 즉 사투리는소통에 장애는 되지만 없애고 배척하기보다 보호하고 전승해야 할 어문자산이다. 그런 사투리를쓰는 게 아닌데도 소통이 어려운 것은 젊은 계층에서 많이 쓰는 유행어 은어가 우리의 언어생활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 휴대폰을비롯한 SNS사회에서 외계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신조어가 끊임없이 양산돼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안여돼 같으면서 에바 그만 떨고 김천 가자.그런데 문상도 버카충 되니?” 이것은 요즘 아이들이 많이 쓰는 말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해서 만든 문장이다. 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풀어 말하면 “안경 쓴 돼지같이 생겼으면서 보기 흉한 애교 그만 떨고 김밥천국이나 가자. 그런데 문화상품권도 버스카드 충전 되니?”라는 뜻이다. 에바는 오버(over)를 변형해서만든 말이다.
요즘 아이들과 어른들의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은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방식 자체가 과거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일단 긴 말은 세 글자 정도로 줄이고 원래 세 글자 이상 되는 건 두 글자로 줄인다. 인터넷에는 ‘어른들이모르는 신조어’라는 게 떠다닌다. 누가 언제 어떻게 조사했는지 출전이 불분명한 자료다. 이 자료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어른들이 모르는 비율이높은 말일수록 원래 말을 세 글자 정도로 줄인것이라는 점이다.
모르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솔까말’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정줄놓’(정신줄을 놓았구나)이다. 그 다음 ‘흠좀무’는 얼른 알아맞히기 어렵다. ‘흠,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다. 끔찍한 뉴스나 섬뜩한 글을 보았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뭐병’도 많이쓰이는 줄임말이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인데, 뭐라 할 말이 없을 만큼 어이가 없는 상황에서사용하는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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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저질러 놓고 자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그 게시물에 일부러 답글을 달곤 한다. 네이버의 경우 답글을 달면 관리자가 아닌 한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걸 ‘자삭방지’라고 한다. 자기소개서를 ‘자소서’라고 부른지 오래고, 인터넷강의는 ‘인강’이라 하고 있으니 자삭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타에서 발생하는 신조어도 많다. 자판을 빠르게 치다 보면 ‘완전히’를 ‘오나전히’, ‘또 울었다’를 ‘똥루었다’, ‘사상과’는 ‘사사오가’로 치기 쉽다.이렇게 실수로 빚어진 말을 재미있다고 그냥 쓰는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의 생존법’이라고 소개된 작품에 『하악하악』이 있다. ‘하악하악’은 가쁜 숨소리를 형용하는 의성어인데 이걸 빨리 치다가 ‘항가항가’가 되자 요즘 젊은이들은 두 가지를 다 쓰고있다.
이런 것은 오타의 산물이 아니라 언어의 진화,어감의 강세화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그야말로 ‘헐!’이다(어떤 사람들은 ‘헉의 다른 말’이라는 헐에 한자가 있다면서 狘(월)이 바로 그글자, ‘놀라 달아날 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글자를 월이나 훨로 읽을 수는 있어도 헐은 아니다. 하기야 한자가 있다는 주장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본래 뜻에서 전이되거나 진화된 말은 그래도 의미를 짐작하기가 쉽다. ‘진상’은 원래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특산물을 윗사람에게 바치는 행위’, 즉 進上이었다. 그러다가 진상의 폐단이 부각되면서 허름하고 나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됐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진상’은 거기에 부정적 의미를 더해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진상 떨다’라는 말은 ‘유독 까탈스럽게 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고객은 왕이라지만 왕노릇 한답시고 진상을 떠는 손님들이 많다.
젊은이들이 볼 때 요즘 유행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다 ‘뉴비’다. 뉴비는 뭔가. 인터넷 게시판이나 커뮤니티 또는 어느 한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다른 비교대상에 비해 한 분야를 기준으로 지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뉴비다. 이런 말의 앞에는 흔히 ‘개’나 ‘캐’를 붙여서 강조한다. 재미있는 것도 개재미있고, 뉴비도 캐뉴비, 빠른 건 개빠르고, 깨끗해도 개깨끗하다고 하는 식이다. ‘드럽게 깨끗하다’는 말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이들은 뭔가 잘못을 저질러 아빠한테 혼나는 걸 ‘파덜어택’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father attack인데, 아버지가 자녀를 혼내는 게 공격이라니 그놈들 참! 엄마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는 건‘엄크’라고 한다. 엄마+이크일까? 어떻게 만들어진 말인지 유래를 잘 모르겠는데, 방에서 엄마몰래 무슨 짓을 하기에 이런 말까지 만들었을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이렇게 갈수록 늘어난다. 그리고 말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더 어렵게,더 짧게 진화한다.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새로운 유행어를 퍼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아니 거꾸로 말해 그렇게 유행하는 것이니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시키는 것이겠지.아이들은 ‘쩐다’는 말도 정말 많이 한다. 신기하다 멋지다 내가 졌다, 이런 뜻의 감탄사 대용어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두루 쓰이는 단어다. 최근 어느 지공거사(65세가 되어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 이 말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소금에 절여 둔 음식 너무 오래 잘못 보관하면 풍기는 냄새와 맛?’ 이렇게 답이 왔다. GGG=ㅎㅎㅎ.
요즘 젊은이들은 단축키를 눌러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듯 새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면서 기성세대가 모르는 새로운 삶을 살고있다. 기성세대에게는 그런 말들이 대부분 낯설고 이상하다. 너무 가볍고 천박해 보여 거부감이생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맨 먼저 할 일은 이런 말을 만들어 내는 세대의 마음과 환경을 이해하고 수용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여 새로운 언어 사용에 일정 부분 동참함으로써언어 단절의 경계를 허물고 소통의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그들의 언어로 내 생각을 알게 해 주어야 세대 간에 말이 통한다. 말이 안 통하면 소도 개도 닭도 다 안 통한다. 올해는 양의 해이지만 양도 안 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