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되살아나는 근대문학의 거인들
글 김여란 ㅣ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1987년생
지난 겨울에는 어떤 서막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정부는 문학에 이념과 순수를 운운했고, 제 손으로 뽑은 우수 도서를 선정 취소했고, 전태일청소년문학상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상장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위태로운 중에서도 문학의 힘은 정치인과 정부가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이 계절의 문학은 오롯이 보여 주었다.
더 많은
통속소설을 바라며
-
임성한 작가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2월 출간된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을 읽고서야 우리의 속물근성을 정직하게 드러낸다는 게 어떤 말인지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상류층과 중산층 사이 어디쯤에서 다 채우지 못한 욕망에 허기진 고층 아파트 사람들과 그 밖에서 좌절하는 이들, 잠실을 소설의 공간으로 벼려낸 시선이 탁월하다. 30여년 전 『원미동 사람들』이 그랬듯 『잠실동 사람들』은 오늘날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아는 데 가장 쓸모있고 재미있는 책일 거라고 생각한다. 염상섭·채만식의 소설이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인간의 굴레에서』처럼 당대 통속을 세밀히 담은 작품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김도연·김인숙·김태용·김채원·박솔뫼·배수아·서유미·손아람을 모두 지난 겨울에 나온 책으로 처음 만났다. 그 중 12월에 출간된 소설 『도시의 시간』(박솔뫼)과 여행 에세이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배수아)을 읽고 받은 신선한 충격은 고마웠다. 청춘 이야기나 여행 에세이라고 하면 솔직히 일단 구미가 당기지 않았는데 두 책 덕택에 어리석은 선입견을 다시 털어낼 수 있었다. 『벌거숭이들』(김태용)은 다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우리 문단에서 이같은 실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이채로웠다. 2000년대 초반 학생운동사를 묘사한 『디 마이너스』(손아람), 일상 같은 전쟁과 폭격 상황에서 시작한 『맛집 폭격』(배명훈)은 꼭 그 작가들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런 소설들을 읽고 나면 정치·과학·경제·법 등 다양한 분야에 몸담은 이들이 문학에 뛰어든다면, 그럴 만큼 현재 문학의 위상이 높아진다면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부질없고 대상없는 시기다.
|
미국 소설 『스토너』(존 윌리엄스)도 묵직한 인상을 남겼다. 특별한 용기가 없고 극적인 실패나 성공을 겪지도 않은 무명 학자, 이처럼 따분하고 개성 없는 주인공은 보기 드물 것이다. 그러나 서투르지만 묵묵하게 한 길을 가는 인간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1월에는 김사인이 9년 만에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냈다. 국가 권력부터 아픈 한국사, 길거리 보통 사람들 삶의 갖가지를 품은 시집은 처연하게 말을 건다.
1월 말에는 한국 근현대 문학을 아우르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선』(전10권)도 나왔다. 황석영과 문학평론가 신수정이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단편소설 중 101편을 가려 뽑고 해설을 썼다. 염상섭으로 시작해 김애란으로 끝나는 선집은 훌륭한 우리의 풍속사이고 문화사다.
|
윤동주·박완서·서정주·이용악,
거인들을 기억하다
-
이 계절에 세상을 떠난 문인들의 흔적을 되짚는 작업이 도처에서 결실을 맺었다. 2월 16일 타계한 윤동주(1917~1945)의 70주기를 맞아 일본인들은 시인이 숨진 후쿠오카 형무소 부근에 시비를 세울 뜻을 모았다. 한국문학 연구자 등으로 이뤄진 ‘후쿠오카에 윤동주의 시비를 세우는 모임’은 윤동주 시비가 “후세의 사람들에게도 역사를 말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 여긴다. 윤동주를 일본 제국주의 과오의 상징으로 삼아 후대가 기억하길 바라는 것이다.
1월 22일에 돌아간 박완서(1931~2011) 4주기에 맞춰서는 생전에 그가 쓴 산문을 모은 산문집이 나왔다. 고인의 산문은 대부분 절판된 상태였는데, 문학동네가 기존 산문을 추려 『쑥스러운 고백』등 7권을 우선 냈다. 이 기회에 처음 읽어본 작가의 산문은 오래된 글인데도 낡은 느낌 없이 예리했다. 맏딸 호원숙씨 말처럼 하나같이 당대 삶과 사회문제에 밀착된 이야기로, 그렇기에 세월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았을 테다.
12월 24일 타계한 서정주(1915~2000)의 전집은 현재 시중에서 살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수익성 때문에 3년여 전 계약 종료로 절판됐고 전집을 낼 출판사를 찾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미당에 대한 한국인의 칭송에 비하면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다. 지난 해 출판사 은행나무와 계약이 돼 현재 30여권 분량으로 준비 중이며 시인 탄생일인 5월 전후에 시 전집이 우선 나온다고 한다. 그 기일은 알수 없지만 월북 시인 이용악(1914~1971)의 전모를 치밀하게 담아낸 『이용악 전집』도 2월에 나왔다. 이용악은 백석과 함께 1988년 해금 때 국내에 알려졌지만 백석에 비해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용악은 식민 치하 고통스러운 기층민들의 삶을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았다. 편자들의 말처럼 살기 괴로운 2015년 한국 사회에 이용악의 시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이용악 전집도 서정주처럼 절판된 상태였다고 한다. 친일 행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서정주, 월북해 북한 체제 선전을 위한 시를 썼던 이용악. 둘 다 견줄 데 없이 빼어난 시인이면서, 누군가에게는 비난받는 인물일 것이다. 평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다만 우리 역사와 문학사의 증거로서 두 시인이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