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표현의 자유와 비둘기 발

정신분석은 삶의 허약함과 불완전성에 대한 성찰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논평자들의 세계

직접경험의 소멸과 한국문학의 행로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정 지 된 시 간 의 발 견

인도로 가는 길

바다를 닮은 소설가 한창훈

붕당을 넘어서서 임진왜란과 그 인물들을 증언하다

매일 태어나는 신화들의 강남

연기자 겸 해설가이자 무대감독, 무성영화 시대 변사

비슷하다고 같은 것은 아니다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시 1 시 2

매일 건강과 시 리처드 스콧 씨에게

앞으로도 궁금한 개구리들

하프를 잃어버린 시인들 카프카의 가르마 이것은 김밥이 아니다 기이한 나무를 찾아가는 길

기획특집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글 조경희 ㅣ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1973년생
공저서 『‘전후’의 탄생: 일본, 그리고 조선이라는 경계』『귀환 혹은 순환『『아시아의 접촉지대』,공역서 『학교 밖의 조선 여성들』 등

탈경계 시대,우리 안의 경계들 3

▲ 조경희 © 운영자

경계를 간직하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무수한 경계선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누구도 거기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 성별, 연령, 계급, 국적 등의 수많은 범주와 속성을 통해 우리는 사회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떠올리기 쉬운 경계는 국경선이다. 국경선의 이편과 저편은 법과 정치, 사회와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구분되며, 첨예한 다툼의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경계선 자체를 무조건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눈앞에 있는 ‘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경우엔 더 폭력적일 수도 있다. 혹은 ‘경계 넘기’라는 매혹적인 단어가 그 경계의 의미를 가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안의 경계선을 간직하면서 경계의 저편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는 과정이다.
‘같음’과 ‘다름’, 평등과 차이, 보편과 특수의 양립가능성은 시민권(citizenship)과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말하는 인권담론에서 항상 문제가 되어왔던 오래된 과제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존재의 경우 그 어려움은 더욱 두드러진다. 예컨대 온전한 국민도, 완전한 외국인도 아닌 재외동포들의 경우는 어떤가. 이 글에서는 재외동포 중에서특히 재일조선인1)들의 위치에서 경계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일본에서 살아온 재일조선인들은 근현대 과정에서 한국사회를 강력히 규정해온 친일, 반일, 반공과 같은 이데올로기가 쉽게투영된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에게 대표적인 ‘내부의 타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들은 한국으로의 이동 혹은 한국인들과의 만남의 과정에서 물리적인 국경선만이 아닌 복합적인 경계에 직면하게 된다. 조선/한국/일본으로 구분되는 국적 차이와 한국어 구사능력의 차이는 제도적, 문화적으로 ‘한국인’의 외연과 내포를 끊임없이 정의한다. 또한 ‘조총련’과 연관된 요소들은 항상 이데올로기적 자기검열의 기제를 작동시킨다. 이 복합적인 경계의 선들은 강요된 역사의 흔적이면서도 동시에 그들 스스로의 존재와 위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선이기도 하다.
이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경계선을 끌어안으면서 재일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타협이나 회피, 대항과 활용 등의 방식으로 한국사회와 교섭한다.

‘민족’과 ‘다문화’ 사이
모든 재일조선인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경계선은 우선 언어와 문화에 관련된 것이다. ‘동포’를 바라볼 때 한국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작동되는 이념이자 심성은 다름 아닌 민족주의다.민족주의는 항상 새로운 맥락에 맞게 갱신되면서 누가 민족의 성원인지를 판별한다. 한편에서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주의 이념 또한 확산하였다. 여러 말들도 많지만, ‘다문화'는 이미 한국사회의 현실이자 나아갈 방향으로 공유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야할 점은 ‘다문화’의 구성원은 어디까지나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를 비롯한외국인들이며 여기에 ‘동포’들의 존재가 포함되지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문화적 이질성을 지녔다고 해도 재외동포들에게 부여되는 가치는 ‘다문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족’이다. 실지로 이사회는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환영하는 한편에서 모국 문화에 대한 애착과 적응력이 부족한 동포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냉정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문화주의 이념이 단일민족국가 환상에 대한 반성과 함께 발전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다문화주의와 민족주의의 불편한 조합을 어떻게 봐야 할 것 인가?
이와 관련해서 윤인진이 주도한 한국인들의 의식조사는 흥미로운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인들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55.4%가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한편 단일민족국가에 대한 자부심 또한 62.9%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2). 즉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주의와 단일민족주의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가치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를 분단국가가 가지는 현실적 한계라 할 것인가? 문제는 이러한 다문화주의와 단일민족주의의 이중적 잣대가 내부화(민족)와 외부화(다문화)의 형태로 지극히 자의적으로 적용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시각은 내국인/외국인, 동포/타자의 이분법을 흔들지는 않는다.경우에 따라 어느 한쪽을 선택할 뿐이다.
최근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해 온 젊은 재일조선인들의 경우를 들어보자. 대부분 3, 4세가되는 그들은 아무리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서툴러도 행정기관에 언어 지원을 요청할 자격이 없다. 현행법에서 다문화지원의 대상은 국적이 다른 이른바 ‘국제결혼 가정’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혼이민자와 비슷한처지에 있음을 호소하지만 한국의 국적과 이름을 가진 그들에게 행정직원들은 “국민은 해당자가 아님”을 통보할 뿐이다. 혹은 일본에서 한국국적을 지켜온 그들에게 “일본으로 귀화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반쪽발이’와 같은 노골적인 비칭이 오고간 과거에 비하면 한국사회는 혈통주의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한국인’ 이미지는 여전히 고정적이며 협소하다. 그러나 700만 재외동포들이 실질적으로다문화/다언어 집단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 역사적 배경에는 한국정부의 민족교육에 대한 무관심도 한몫했다. 이제 와서 재외동포들을 단일민족집단으로 회수하고자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언어와 문화뿐인가?

국적, 소속, 그리고...
한국인과 재일조선인 사이의 경계를 작동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는 국적과 소속, 그리고 반공주의다.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하자.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가장 이름을 알린 재일조선인 중의 한사람은 축구선수 정대세 일 것이다. 정대세 선수는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3세로 2007년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대표선수가 된 경력을 가진다. 재 한국의 수원삼성에서 활약 중이다. 한국에서 ‘인민루니’로 불리던 그는 축구 실력 이외도 독특한 외모와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능력, 재치 있는 입담 등으로 한국사회에 그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동안 돌아다니는 글들을 추적해보면 그에 대한 관심이 국적과 소속을 둘러싼 의문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언론과 시민들은 그를 불확실하고 정체불명의 존재로 보는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2010년 월드컵예선에서 남북전이 진행되던 다음 날, 신문에 “정대세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정대세는 한국적의 아버지와 조선적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아버지의 국적을 물려받아 한국적자가 되었다. 한국 국적의 북한 대표선수라는 경력을 가진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복잡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또 현재는 한국 팀에서 활약한다고 하니 그의 ‘정체’에 의문을 품을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에는 보수논객 변희재가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황당한일까지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무혐의로 끝이 났지만 이 해프닝은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지금도 경계를 간직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식의 폭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결국 사람들이 정대세 선수의 국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한국국적자가 북한선수로 뛰어?” 라는 의문에 집약된다. 관심의 강도는 달라도 비슷한 이 물음은다른 수많은 재일조선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어떻게 남한 출신인데 ‘조총련’으로 가?” “어떻게한국 국적인데 조선학교를 다녀?”
과연 이때 ‘한국 국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국민 국가 그 자체가 인위적인 산물이라는 것은말할 것도 없다. 제국주의와 냉전의 시대를 거쳐 우리는 국경선으로 구분된 국민 국가의 주권을보편적인 원리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개인의 국적(nationality) 또한 자명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계 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속을 정의하는 국적은 늘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다. 재일조선인들의 경우 성장 과정에서 국적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한반도남북과 일본 모두에 걸친 삶 속에서, 가족 사이에서도 국적이 다르거나 제도적 지위 또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말하면 국적이나 소속을 묻고 따지는 것 자체가 제도적 지위가 안정적인 사람들의 특권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대세는 한국 국적자”라고 할 때, 그것은 일본의 외국인 등록상 ‘한국’으로 기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개인의 국적을 정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국적법이며, 타국의 외국인등록법이아니다. 재외동포들이 남북 두 정부의 국적법 적용을 받는다고 본다면3), 잠재적인 이중 국적자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 한반도 분단 상황은 재외동포들의 국적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정대세 선수의 경우, 일본 외국인등록상 ‘한국’이었지만 한국의 국민등록도, 정식 여권발급 절차도 밟지 않았다. 그가 먼저 손에 쥔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려권’이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6년간 총련계 조선학교를 다닌 그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4).
한편 그가 축구선수로서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려고 하는 것 또한 당연한선택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자신의 경계적인 위치와 복잡한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히고 활동해 왔다. 이에 대해 흑백논리를 내세워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체가 불확실한 재외동포들을 분단 체제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이 수없이 반복해온 수법이다. 현재 조선학교를 졸업한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걸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이 문제는 과거에 형성된 한국 정부와 재일동포들의 불편한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 대부분 남쪽 출신의 재일동포 자녀들이 총련계 조선학교에 다니게 되었는가? 왜 그 동안 재일동포들과 한국사회는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는가? 우리의 관계회복은 이 오래된 경계선의 의미를 묻고 따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북/일본의 경계위에서 어느 한쪽으로의 소속을 해야만 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생각할 때 정대세 선수의 행보는 자신 안의 경계선을 다시 설정하거나 상대화하는 실천이다. 그러나 이 분단 체제에서의 경계 넘기는 낭만적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정대세보다 먼저 북한 대표 선수가 된 안영학이 K리그에 합류하면서 ‘이중간첩’의 누명을 쓴 것처럼 탈영역화된 존재는 체제를 벗어나는 위험성으로 표출된다. 혹은 일본으로 귀화하고 일본 대표선수가 된 이충성이 ‘민족 반역자’로 매도된 것처럼 민족주의의 화살은 바다를 건너 동포들을 향한다.
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국민 국가와 분단 체제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 여전히 가혹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디아스포라들의 국적, 소속, 생활문화의 복합성은 한반도가 근현대 과정에서 경험한 식민지와 분단, 이산, 그리고 다문화의 문제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얽혀있음을 말하고 있다. 민족 / 다문화 혹은 동포 / 타자는 상반되는 범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 ‘동포’ 그 자체가 수많은 경계선을 내포한 다문화적이며 혼종적인 실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날 경계를 내포한 동포들의 존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거꾸로 묻고있는 것이다.

※ 이 연구는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습니다(NRF-2007-361-AM0005).

1) 여기서는 국적에 상관없이 일본 식민지 지배의 영향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 전체를 ‘재일조선인’으로 부른다.
2) 윤인진 외, 『한국인의 이주노동자와 다문화사회에 대한 인식』, 이담, 2010, 113-114쪽．조사는 2008년12월에 전국 만 20세 이상의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3) 대한민국 국적법(1948)은 대한민국 국민의 요건을 “출생한 당시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로 정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법(1963)은 전체 재외동포들을 ‘해외공민’으로 인정하고 거주지에 상관없이 정치적, 법적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였다. 재일조선인들의 국적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조경희, 「이동하는 ‘귀환자’들: ‘탈냉전’기 재일조선인의 한국 이동과 경계의 재구성」, 신현준 엮음, 『귀환 혹은 순환: 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 (그린비, 2013), 참조

4) 물론 그가 북한 대표선수가 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들이 있었다. 그 경위에 대해서는 신무광 지음, 리명옥 번역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 (왓북, 201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