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우리시대의 화제작
선정적인 제목이다. ‘맞아 죽을 각오’라니. 그저 일본인이 한국인을 비판했다는 것만으로 이런말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인인 나조차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비관과 절망을느끼는 순간이 더러 있으니 말이다. 사회 바깥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부에서는 미처 알수 없는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환기시켜주기 때문에 소중하다. 사회는 언제나 바깥에서 들려오는 말과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사회 성숙의 척도가 결정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한국사회의 ‘외부자’께서 맞아죽을 각오를 하셨단다.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하길 바라는 한사람으로서 책을 펼쳐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1999년 베스트셀러였다는 이 책을 16년이 지난 2015년에 다시 읽는다는 것, 그 시차를 통과한 외부자의 시선이 오늘날 어떻게 읽힐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잊힐 수밖에 없는 책이다. 실망했다.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외부자의 시선은 16년의 시차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애초에 핀트를 잘못 맞춘 거다. 이 책은 외부자의 시점에서 쓰인 한국사회 비판서가 아니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외부자는 아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한국인 비판』은 저자 이케하라 마모루가 26년간 일본 기업의 한국진출을 돕는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경험한 한국사회 인상비평집이다. 일본에 비해 혼잡스러운 교통질서, 대입 시험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부실공사, 치맛바람, 음주문화 등 저자는 한국사회의 여러 사실차원의 문제를 짚어내어 말하기는 하지만 그 수준은 인용하기에 낯 뜨거울 정도로 저질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운전 중 무단횡단을 하는 아이를 칠 뻔한 상황에서 아이의 잘못을 보지 않고 자신에게 욕을 퍼붓는 부모와의 일화라는 자기경험을 통해 한국 부모의 자녀 과잉보호가 자식의 미래를 망친다는 논조의 주장을 한다. 그리고 대입 시험 날 전국적인 수험생 배려를 이와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입시 날만 되면 추위가 맹렬하게 기승을 부린다. 1998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하늘이 한국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경고하기 위해 시련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니 고생좀 해보라는 뜻으로 말이다”(본문 28쪽). 자기 경험으로 시작하여 거시적인 시각의 주장을 개진하는 건 합리적인 글쓰기의 한 정도이긴 하지만 그 귀결이 천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케하라의 한국 생활과 그 경험에 입각한 관점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모든 것이 나의 불찰이다. 내가 이 책을 외부자적 시선에 입각한 비판서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굳이 외부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일본인이라는 저자의 아이덴티티를 섣불리 대입했다. 지하철 노약자석 언저리 혹은 택시나 버스기사 분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종류의 푸념일 따름이다. 한국사회를 환기시켜주는 외부자의 시선은커녕 사회 내부의 관성 자체인 지리멸렬한 자학의 시선과 다를 게 없다.
저자가 외부자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줄곧 드러내는 자신의 로비스트 활동 이력때문이다. 로비스트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한국사회, 특히 정제계의 문제를 비판하는 가운데 그의 입장은 로비스트로서 부여된 입장과 거리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의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매스컴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자신의 로비활동이 개입된 쓰레기 소각장을 옹호하는 정도는 일견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환경관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다음 인용문을 보고 각자 판단하시길. “더러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한국의 쓰레기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기도 한다. 심지어 나 자신과 일본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본의 쓰레기 소각 관련 기술과 장비를 한국에 소개하려고 뛰어다닌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굳이 돈을 모아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한국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일본 기업이 돈을 벌도록 돕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본문 176쪽).
미심쩍은 건 환경관에 그치지 않는다. 이케하라가 한국 비판이라는 명목으로 취하는 관점은 16년이 지난 현재 한국사회를 유의미하게 환기하기는커녕 케케묵은 내부자의 시선과 구분되지 않는다. 호·불황의 척도로 부동산 경기를 상정하여 은연 중 부동산 중심 경제와 토건 사업을 옹호하는 건 그렇다치자. 한국사회를 여성상위시대로 규정하며 사채업자 중 여성비율 따위를 운운하는 대목에선 절망할 수밖에 없다.
외부자적 비판을 자처하지만 실은 내부자의 자학일 따름인 착종된 시선은 마땅히 있어야 할 비판적 성찰을 참칭하여 우리 사회 내부 어딘가에 대한 배제로 귀결할 위험성이다. 외국인들이 대중을 상대로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에 대해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즐긴다. 한편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따위를 운운하며 한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부자들이 판친다. 양쪽 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을 빌미로 한국사회를 비판하며 내부의 변화를 요청한다. 이러한 변화가 요구된다고 믿는 가운데 소외되는 한국사회 내부의 어떤 이들 또한 버젓이 존재한다. 16년 전 이케하라 마모루는 한국과 한국인 일반을 상대로 ‘맞아죽을 각오’로 이 책을 썼다. 만약 16년이 지난 현재 그가 1999년과 동일한 입장과 논조로 ‘맞아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면 상대는 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의 경제관과 환경관 그리고 여성관에서 배제되어 있는, 한국사회 일반이라는 카테고리로 환원되지 않는 계층 말이다.
내·외부라는 시차(時差)
글 윤재민 ㅣ 평론가. 1985년생
제10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 1999년의 화제작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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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잊힐 수밖에 없는 책이다. 실망했다.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외부자의 시선은 16년의 시차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애초에 핀트를 잘못 맞춘 거다. 이 책은 외부자의 시점에서 쓰인 한국사회 비판서가 아니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외부자는 아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한국인 비판』은 저자 이케하라 마모루가 26년간 일본 기업의 한국진출을 돕는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경험한 한국사회 인상비평집이다. 일본에 비해 혼잡스러운 교통질서, 대입 시험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부실공사, 치맛바람, 음주문화 등 저자는 한국사회의 여러 사실차원의 문제를 짚어내어 말하기는 하지만 그 수준은 인용하기에 낯 뜨거울 정도로 저질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운전 중 무단횡단을 하는 아이를 칠 뻔한 상황에서 아이의 잘못을 보지 않고 자신에게 욕을 퍼붓는 부모와의 일화라는 자기경험을 통해 한국 부모의 자녀 과잉보호가 자식의 미래를 망친다는 논조의 주장을 한다. 그리고 대입 시험 날 전국적인 수험생 배려를 이와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입시 날만 되면 추위가 맹렬하게 기승을 부린다. 1998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하늘이 한국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경고하기 위해 시련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니 고생좀 해보라는 뜻으로 말이다”(본문 28쪽). 자기 경험으로 시작하여 거시적인 시각의 주장을 개진하는 건 합리적인 글쓰기의 한 정도이긴 하지만 그 귀결이 천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케하라의 한국 생활과 그 경험에 입각한 관점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모든 것이 나의 불찰이다. 내가 이 책을 외부자적 시선에 입각한 비판서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굳이 외부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일본인이라는 저자의 아이덴티티를 섣불리 대입했다. 지하철 노약자석 언저리 혹은 택시나 버스기사 분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종류의 푸념일 따름이다. 한국사회를 환기시켜주는 외부자의 시선은커녕 사회 내부의 관성 자체인 지리멸렬한 자학의 시선과 다를 게 없다.
저자가 외부자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줄곧 드러내는 자신의 로비스트 활동 이력때문이다. 로비스트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한국사회, 특히 정제계의 문제를 비판하는 가운데 그의 입장은 로비스트로서 부여된 입장과 거리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의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매스컴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자신의 로비활동이 개입된 쓰레기 소각장을 옹호하는 정도는 일견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환경관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다음 인용문을 보고 각자 판단하시길. “더러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한국의 쓰레기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기도 한다. 심지어 나 자신과 일본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본의 쓰레기 소각 관련 기술과 장비를 한국에 소개하려고 뛰어다닌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굳이 돈을 모아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한국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일본 기업이 돈을 벌도록 돕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본문 176쪽).
미심쩍은 건 환경관에 그치지 않는다. 이케하라가 한국 비판이라는 명목으로 취하는 관점은 16년이 지난 현재 한국사회를 유의미하게 환기하기는커녕 케케묵은 내부자의 시선과 구분되지 않는다. 호·불황의 척도로 부동산 경기를 상정하여 은연 중 부동산 중심 경제와 토건 사업을 옹호하는 건 그렇다치자. 한국사회를 여성상위시대로 규정하며 사채업자 중 여성비율 따위를 운운하는 대목에선 절망할 수밖에 없다.
외부자적 비판을 자처하지만 실은 내부자의 자학일 따름인 착종된 시선은 마땅히 있어야 할 비판적 성찰을 참칭하여 우리 사회 내부 어딘가에 대한 배제로 귀결할 위험성이다. 외국인들이 대중을 상대로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에 대해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즐긴다. 한편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따위를 운운하며 한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부자들이 판친다. 양쪽 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을 빌미로 한국사회를 비판하며 내부의 변화를 요청한다. 이러한 변화가 요구된다고 믿는 가운데 소외되는 한국사회 내부의 어떤 이들 또한 버젓이 존재한다. 16년 전 이케하라 마모루는 한국과 한국인 일반을 상대로 ‘맞아죽을 각오’로 이 책을 썼다. 만약 16년이 지난 현재 그가 1999년과 동일한 입장과 논조로 ‘맞아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면 상대는 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의 경제관과 환경관 그리고 여성관에서 배제되어 있는, 한국사회 일반이라는 카테고리로 환원되지 않는 계층 말이다.
1999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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