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과 스웨터와.... 징검다리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서정시로 쓴 마음의 신화 - 시인 김명인 선생과의 만남
탈경계 시대, 우리 안의 경계들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연말정산과 피케티 동포로서의 타자,타자로서의 동포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송곳처럼 빛날 그날을 향한 출발 문화를 흔들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해외문학기행
대산칼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모든 말이 문법에 맞아야 할 필요도 없고 맞을 수도 없다. 언어 규범은 처방적이기보다는 기술적(記述的)인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비록 문법에 어긋나는 말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용례와 더불어 의미를 적실하게 전달하고 있다면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런데 유독 거슬리는 말이 하나 있다. ‘~처럼 보여진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심지어 이 문형은 때에 따라 ‘~라고 봐진다’로 변형되기도 한다. 피동형이 이중으로 사용되었다거나 외국어 번역 투의 문장이라는 이유로 거슬린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이 표현이 말을 하는 사람의 객관적 태도를 강조하는 용례로 사용되고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기억이 가 닿는 한, 개인적으로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어떤 구기 종목의 스포츠 중계에서였던 것 같다.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해설자가 특정 상황에서의 플레이나 전략을 설명하면서 설명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 표현이 문제의 ‘~라고 보여진다’, ‘봐진다’였다.
그것이 객관성을 전달하는 데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측량할 길이 없다. ‘~라고 생각한다'보다 저 문장이 더 객관성을 드러내는 것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제부턴가 이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는것이다.
최근에 이 말을 자주 접하게 된 것은 두 장소에서인데 하나는 식당이고 또 하나는 강의실에서이
다. 식당에서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부턴가 식당을 점유하고 있는 각종 보도 프로그램들에서라고 하는 게 옳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우리는 중요한 정책의 구체적 의미대신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지니는 시시콜콜한 의미까지 정치적으로 ‘보여지는’ 상황에 종종 이르게 되었다. 식당에서 조용히 밥 한 끼 먹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게 ‘봐진다’고 해야 할까?공공기관에서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에는 오히려 공공연한 의심에 부합하며 그 몸피를 키우는 주관적 말들이 종종 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확신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또 언제부턴가는 엄연히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사실들 위에 다시 새로 구성된 팩트들이 덧대어 지는 방식으로 말이 스스로를 구제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우리는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하고 있는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서도 주어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논평을 동시에 다각적으로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팩트가 말이 되고 모든 말이 팩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것이 변설에 의해 시시비비의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보여진다’ 혹은 ‘~로 봐진다’의 함정이 그것이다. 24시간 출몰하는 논평자들 덕분에 팩트는 구성자의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실에서 이 표현이 사용될 때마다 정색을 한다. 객관성을 강화하고 뒷받침하려는 것은 자료와 정보 수집, 그리고 설득의 차원에서 노력할 일이지만 판단에 대해서는 구성적 기술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논평자의 태도가 좋은 것은 모든 일이 사태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판단의 주체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정에 대한 설명과 판단의 방향을 묻는 말에 목적에 대한 의지로 답을 대신하는 정도의 의지 과잉만 아니라면 ‘~라고 보여진다’대신 ‘~라고 생각한다’가 더 책임 있는 태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평자의 태도가 아니라 언어 주체의 책임이 중요하다. 말은 책임지지 않는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논평자들의 세계
글 조강석 ㅣ 평론가, 인하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교수,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69년생. 비평집 『이미지 모티폴로지』『경험주의자의 시계』 『아포리아의 별자리들』,연구서 『비화해적 가상의 두 양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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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가 닿는 한, 개인적으로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어떤 구기 종목의 스포츠 중계에서였던 것 같다.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해설자가 특정 상황에서의 플레이나 전략을 설명하면서 설명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 표현이 문제의 ‘~라고 보여진다’, ‘봐진다’였다.
그것이 객관성을 전달하는 데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측량할 길이 없다. ‘~라고 생각한다'보다 저 문장이 더 객관성을 드러내는 것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제부턴가 이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는것이다.
최근에 이 말을 자주 접하게 된 것은 두 장소에서인데 하나는 식당이고 또 하나는 강의실에서이
다. 식당에서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부턴가 식당을 점유하고 있는 각종 보도 프로그램들에서라고 하는 게 옳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우리는 중요한 정책의 구체적 의미대신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지니는 시시콜콜한 의미까지 정치적으로 ‘보여지는’ 상황에 종종 이르게 되었다. 식당에서 조용히 밥 한 끼 먹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게 ‘봐진다’고 해야 할까?공공기관에서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에는 오히려 공공연한 의심에 부합하며 그 몸피를 키우는 주관적 말들이 종종 더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확신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또 언제부턴가는 엄연히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사실들 위에 다시 새로 구성된 팩트들이 덧대어 지는 방식으로 말이 스스로를 구제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우리는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하고 있는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서도 주어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논평을 동시에 다각적으로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팩트가 말이 되고 모든 말이 팩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것이 변설에 의해 시시비비의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보여진다’ 혹은 ‘~로 봐진다’의 함정이 그것이다. 24시간 출몰하는 논평자들 덕분에 팩트는 구성자의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실에서 이 표현이 사용될 때마다 정색을 한다. 객관성을 강화하고 뒷받침하려는 것은 자료와 정보 수집, 그리고 설득의 차원에서 노력할 일이지만 판단에 대해서는 구성적 기술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논평자의 태도가 좋은 것은 모든 일이 사태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판단의 주체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정에 대한 설명과 판단의 방향을 묻는 말에 목적에 대한 의지로 답을 대신하는 정도의 의지 과잉만 아니라면 ‘~라고 보여진다’대신 ‘~라고 생각한다’가 더 책임 있는 태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평자의 태도가 아니라 언어 주체의 책임이 중요하다. 말은 책임지지 않는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