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이어쓰기 「봄·봄」이어쓰기 1 ｜봄·봄하다 「봄·봄」이어쓰기 2｜봉필영감 제 꾀에 넘어갔네 「봄·봄」이어쓰기 3｜봄밤 「봄·봄」 이어쓰기 4 ｜ 발산 「봄·봄」이어쓰기 5｜하지 지나 백로
일산, 오래된 누옥의 시간과 젊고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정화된 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첫 번째｜연애소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네 번째｜딴짓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1｜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2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 루카와의 만남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3 ｜선을 그으며 따라간 장면의 파편들
대산칼럼
선거의 계절이다 보니 마치 귀를 울리는 듯이 요란한 시각적 자극들이 많아지고 있다. 출마를 앞둔 이들이 걸어둔 홍보물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정치의 전부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는 틀림없이 목소리를 경쟁적으로 높여가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는 결과로 과정을 대체하는 구호들이나 어휘들을 선점하려는 각축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내용보다 규모나 위치 면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출근길이나 퇴근길의 요지에 걸린 정치 홍보 현수막이다. 전문가들의 계산에 의한 것이겠지만, 진행상 절묘하게 시선이 가닿을 수밖에 없는 곳에 보란 듯이 내걸린 문구들을 매번 무심히 지나치기는 어려운 일이다.
최근에는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된 현수막이 화제가 되었다. 집권당에서 “교육감님,정부에서 보내준 누리과정 예산 어디에 쓰셨나요?”라는 현수막을 걸자 야당들이 그 위 아래로 “0~5세 보육, 국가완전책임은 박근혜 대통령공약 제2호입니다”, “대통령님 약속하신 누리과정 예산 안 줬다 전해라~”라는 댓글 형식의 현수막을 걸었다. 무엇이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정책 홍보 차원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촌철살인 격의 반론을 제시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여기에 ‘사이다 댓글’이라는 찬사를 붙이기도 했지만, 실은 이런 현수막조차 누군가에게는 정향된 시선을 고정시키고 강화하는 데 일조할 뿐일 것이다.
동네 ‘요충지’마다 현란하게 전시된 현수막들이 겉보기에는 정책 토론의 성격을 띠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 설득 대신 확신에 기여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우리의 경험칙은 알려주고 있다. 설령 그것이 내용상 정책의 왜곡과 보정의 문제라고 해도 댓글을 거리로 옮겨놓는 것은 정치를 삶의 구체적 변곡점들과 관련된 중요한 대화와 결정 과정이라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시시비비에 부치게 하는 자동기계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진지한 토론 과정보다 홍보가 더 중요해지는 정치 과정 역시 피로를 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피로’란 말은 비유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의 눈과 귀를 기존의 역치값을 넘어서는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정책의 구체적 효용과 타당성 문제를 데시빌과 시각적 각인의 문제로 치환시키면서 매번 승리하는 것은 현실의 보전이다. 실질보다 포장에 치중하는 행태를 관습으로 승인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역치값의 상승이다. 자극으로 인해 둔감해진 눈과 귀가 합리적 판단 능력을 위한 준비를 갖추기까지의 예열 기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최근 불가사의하게 유행하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요청이 합당한 까닭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인문학 융성은 최근 등재된 ‘마지막 어휘’ 중 하나이다. 리처드 로티의 말마따나 ‘마지막 어휘’란 목적으로 과정을 대신하면서 과정을 완주한 것처럼 간주하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으로 기능한다. 이미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어휘들을 정치권에 볼모로 잡힌 바 있다. “녹색”이, “소통”이, “창조”가 대표적인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에 속한다. 인문학 융성을 위해 인문학 구조조정을 반드시 감행해야 한다는 아리송한 주장이 흉 없이 통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그간, 이와 같이 전시된'마지막 어휘’들을 통해 논리적 역치값이 상승해온 내력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응용의 효용에 대한 소문과는 달리 인문학은 실은 감각과 논리의 역치값을 재조정하는 기관이다.
시인 김수영은 한 산문에서 “마루의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의 조용한 물 끓는 소리”, “갓난아기의 숨소리보다도 약한 이 노랫소리”가 “거수(巨獸) 같은 현대의 제악(諸惡)을 거꾸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지만, 못 거꾸러뜨린다고 장담하기도 힘들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논리 이전에, 시계(視界)와 소리의 음역에 있어서 역치값을 재조정하는 것과 관계 깊다. 갓난아기의 숨소리보다 약한 소리와 반딧불의 빛보다 여린 빛을 헤아리는 기관이 우리를 보다 단단히 삶에 밀착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가 개시되어야 한다면 바로 거기로부터가 아닐 수 없다.
인문학과 감각의 역치값
글 조강석 ㅣ 평론가,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교수,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69년생 평론집 『이미지 모티폴로지』 『경험주의자의 시계』 『아포리아의 별자리들』『비화해적 가상의 두 양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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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된 현수막이 화제가 되었다. 집권당에서 “교육감님,정부에서 보내준 누리과정 예산 어디에 쓰셨나요?”라는 현수막을 걸자 야당들이 그 위 아래로 “0~5세 보육, 국가완전책임은 박근혜 대통령공약 제2호입니다”, “대통령님 약속하신 누리과정 예산 안 줬다 전해라~”라는 댓글 형식의 현수막을 걸었다. 무엇이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정책 홍보 차원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촌철살인 격의 반론을 제시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여기에 ‘사이다 댓글’이라는 찬사를 붙이기도 했지만, 실은 이런 현수막조차 누군가에게는 정향된 시선을 고정시키고 강화하는 데 일조할 뿐일 것이다.
동네 ‘요충지’마다 현란하게 전시된 현수막들이 겉보기에는 정책 토론의 성격을 띠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 설득 대신 확신에 기여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우리의 경험칙은 알려주고 있다. 설령 그것이 내용상 정책의 왜곡과 보정의 문제라고 해도 댓글을 거리로 옮겨놓는 것은 정치를 삶의 구체적 변곡점들과 관련된 중요한 대화와 결정 과정이라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시시비비에 부치게 하는 자동기계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진지한 토론 과정보다 홍보가 더 중요해지는 정치 과정 역시 피로를 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피로’란 말은 비유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의 눈과 귀를 기존의 역치값을 넘어서는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정책의 구체적 효용과 타당성 문제를 데시빌과 시각적 각인의 문제로 치환시키면서 매번 승리하는 것은 현실의 보전이다. 실질보다 포장에 치중하는 행태를 관습으로 승인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역치값의 상승이다. 자극으로 인해 둔감해진 눈과 귀가 합리적 판단 능력을 위한 준비를 갖추기까지의 예열 기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최근 불가사의하게 유행하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요청이 합당한 까닭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인문학 융성은 최근 등재된 ‘마지막 어휘’ 중 하나이다. 리처드 로티의 말마따나 ‘마지막 어휘’란 목적으로 과정을 대신하면서 과정을 완주한 것처럼 간주하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으로 기능한다. 이미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어휘들을 정치권에 볼모로 잡힌 바 있다. “녹색”이, “소통”이, “창조”가 대표적인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에 속한다. 인문학 융성을 위해 인문학 구조조정을 반드시 감행해야 한다는 아리송한 주장이 흉 없이 통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그간, 이와 같이 전시된'마지막 어휘’들을 통해 논리적 역치값이 상승해온 내력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응용의 효용에 대한 소문과는 달리 인문학은 실은 감각과 논리의 역치값을 재조정하는 기관이다.
시인 김수영은 한 산문에서 “마루의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의 조용한 물 끓는 소리”, “갓난아기의 숨소리보다도 약한 이 노랫소리”가 “거수(巨獸) 같은 현대의 제악(諸惡)을 거꾸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지만, 못 거꾸러뜨린다고 장담하기도 힘들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논리 이전에, 시계(視界)와 소리의 음역에 있어서 역치값을 재조정하는 것과 관계 깊다. 갓난아기의 숨소리보다 약한 소리와 반딧불의 빛보다 여린 빛을 헤아리는 기관이 우리를 보다 단단히 삶에 밀착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가 개시되어야 한다면 바로 거기로부터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