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이어쓰기 「봄·봄」이어쓰기 1 ｜봄·봄하다 「봄·봄」이어쓰기 2｜봉필영감 제 꾀에 넘어갔네 「봄·봄」이어쓰기 3｜봄밤 「봄·봄」 이어쓰기 4 ｜ 발산 「봄·봄」이어쓰기 5｜하지 지나 백로
일산, 오래된 누옥의 시간과 젊고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정화된 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첫 번째｜연애소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네 번째｜딴짓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1｜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2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 루카와의 만남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3 ｜선을 그으며 따라간 장면의 파편들
글밭단상
2006년, 책 두 권을 연달아 내면서 어린이 문학 동네로 들어왔다. 하지만 새 책들과 함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느낌이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준비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희붐한 형체만 있었다. 나를 가장 난처하게 했던 건 어떤 펜을 어떤 강도로 써야 할지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마냥 기다리는 건 내 성질머리와 맞지 않았다. 맞든 틀리든 부딪쳐보는 게 나였다. 비록 멍투성이가 될지라도 말이다.
그해 가을, 나는 꾸역꾸역 원고를 썼다. 결과는 엉망진창이었다. 마침표를 찍은 원고가 허점투성이라는 걸 내 스스로도 알았다. 또 하나의 산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었다. 이대로 산에 오르길 포기하고, 또 다른 산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오를것인가. 나는 본격적인 원고 수정이라는 걸 해본 경험이 없었다.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장벽 앞에서 허둥댔다. 이 길이 혼자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외로운 여정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멈칫거리는 사이, 해가 바뀌어 버렸다.
그 막막한 길에서 ‘토지문화관’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알게 됐다. 이전의 내 공간은 집과 도서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7년 3월, 겨울의 끝자락에서 서성이던 토지문화관으로 들어갔다. 책 몇 권과 노트북, 갈아입을 옷 몇 가지, 짐은 단출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작은 포트에 든 로즈마리와 하우스에서 봉우리를 맺은 노란 장미 하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낯선 곳에서 길동무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그곳에서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밥을 먹고 나면 매지리 구석구석을 산책했다. 읽고 쓰고, 먹고 거닐기.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정성들여 닦은 유리창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는 수십 년을 이어오던 내 현실과 분리되는 경험을 했다. 로즈마리와 노란 장미를 돌보면서, 수정할지 포기할지 기로에 서 있는 원고를 꺼냈다.
내 원고는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새로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기초 작업부터 다시 시작했다. 막막한 그림은 세부사항이 살아 있는 그림으로 새로 태어났다. 원고 수정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산 하나를 넘은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고, 들고 간 노란 장미가 꽃봉오리를 열자 나는 수정된 원고와 함께 그곳을 나왔다.
그 이후, 나는 새 원고를 써야 할 때, 대대적인 수정을 해야 하는 원고가 있을 때, 토지문화관을 찾는다. 이른 봄의 토지와 한여름의 토지, 그리고 늦가을, 겨울 한복판의 토지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갈 때마다 머무는 방도 다르다. 햇살이 종일 들어오는 방이 있고,동향으로 난 방은 아침나절만 햇살이 가득하다. 어떤 방은 서쪽으로 창이 나 근사한 해질녘을 보여주기도 한다. 방마다 자기 나름의 색깔과 느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낯설고 새롭다. 새롭고 낯선 이야기에 목마른 내게 끊임없이 자극을 준다.
이제 또 새 계절을 기다린다. 더불어 새 이야기를 기다린다. 낯선 시공간에서 나는 또 어떤 이야기를 발견할지 마음이 설렌다. 이번에는 동쪽과 남쪽, 두 곳으로 창이 난 방에서 종일 햇살을 받아보리라. 종일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성장한 이야기는 어떤 색깔일지 사뭇 궁금하다. 꿈꾸고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역시 흥미롭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글 박효미 ㅣ 동화작가, 1960년생
동화 『일기 도서관』 『말풍선 거울』 『오메 돈 벌자고?』 『노란상자』 『학교가 문을 닫았어요』 『블랙아웃』 등
그곳에서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밥을 먹고 나면 매지리 구석구석을 산책했다. 읽고 쓰고, 먹고 거닐기.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정성들여 닦은 유리창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는 수십 년을 이어오던 내 현실과 분리되는 경험을 했다.새 원고를 시작할 때면, 나는 늘 새로운 환경을 찾는다. 낯선 공간으로 떠나거나 도무지 그럴 형편이 안 되면 집 근처라도 떠돈다. 이도저도 안 되면 책상의 위치라도 바꾼다. 동쪽 창을 보고 있던 책상을 북쪽으로 옮기고, 그 앞에 새로운 메모판이라도 달아야 한다. 그래야 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던 중 인연을 맺은 공간 중 하나가 토지문화관이다. 올해로 10년째이다.
2006년, 책 두 권을 연달아 내면서 어린이 문학 동네로 들어왔다. 하지만 새 책들과 함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느낌이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준비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희붐한 형체만 있었다. 나를 가장 난처하게 했던 건 어떤 펜을 어떤 강도로 써야 할지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마냥 기다리는 건 내 성질머리와 맞지 않았다. 맞든 틀리든 부딪쳐보는 게 나였다. 비록 멍투성이가 될지라도 말이다.
그해 가을, 나는 꾸역꾸역 원고를 썼다. 결과는 엉망진창이었다. 마침표를 찍은 원고가 허점투성이라는 걸 내 스스로도 알았다. 또 하나의 산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었다. 이대로 산에 오르길 포기하고, 또 다른 산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오를것인가. 나는 본격적인 원고 수정이라는 걸 해본 경험이 없었다.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장벽 앞에서 허둥댔다. 이 길이 혼자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외로운 여정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멈칫거리는 사이, 해가 바뀌어 버렸다.
그 막막한 길에서 ‘토지문화관’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알게 됐다. 이전의 내 공간은 집과 도서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7년 3월, 겨울의 끝자락에서 서성이던 토지문화관으로 들어갔다. 책 몇 권과 노트북, 갈아입을 옷 몇 가지, 짐은 단출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작은 포트에 든 로즈마리와 하우스에서 봉우리를 맺은 노란 장미 하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낯선 곳에서 길동무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그곳에서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밥을 먹고 나면 매지리 구석구석을 산책했다. 읽고 쓰고, 먹고 거닐기.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정성들여 닦은 유리창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는 수십 년을 이어오던 내 현실과 분리되는 경험을 했다. 로즈마리와 노란 장미를 돌보면서, 수정할지 포기할지 기로에 서 있는 원고를 꺼냈다.
내 원고는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새로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기초 작업부터 다시 시작했다. 막막한 그림은 세부사항이 살아 있는 그림으로 새로 태어났다. 원고 수정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산 하나를 넘은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고, 들고 간 노란 장미가 꽃봉오리를 열자 나는 수정된 원고와 함께 그곳을 나왔다.
그 이후, 나는 새 원고를 써야 할 때, 대대적인 수정을 해야 하는 원고가 있을 때, 토지문화관을 찾는다. 이른 봄의 토지와 한여름의 토지, 그리고 늦가을, 겨울 한복판의 토지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갈 때마다 머무는 방도 다르다. 햇살이 종일 들어오는 방이 있고,동향으로 난 방은 아침나절만 햇살이 가득하다. 어떤 방은 서쪽으로 창이 나 근사한 해질녘을 보여주기도 한다. 방마다 자기 나름의 색깔과 느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낯설고 새롭다. 새롭고 낯선 이야기에 목마른 내게 끊임없이 자극을 준다.
이제 또 새 계절을 기다린다. 더불어 새 이야기를 기다린다. 낯선 시공간에서 나는 또 어떤 이야기를 발견할지 마음이 설렌다. 이번에는 동쪽과 남쪽, 두 곳으로 창이 난 방에서 종일 햇살을 받아보리라. 종일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성장한 이야기는 어떤 색깔일지 사뭇 궁금하다. 꿈꾸고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역시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