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이어쓰기 「봄·봄」이어쓰기 1 ｜봄·봄하다 「봄·봄」이어쓰기 2｜봉필영감 제 꾀에 넘어갔네 「봄·봄」이어쓰기 3｜봄밤 「봄·봄」 이어쓰기 4 ｜ 발산 「봄·봄」이어쓰기 5｜하지 지나 백로
일산, 오래된 누옥의 시간과 젊고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정화된 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첫 번째｜연애소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네 번째｜딴짓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1｜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2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 루카와의 만남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3 ｜선을 그으며 따라간 장면의 파편들
쟤네 또 싸운다
글 황수현 ㅣ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1980년생
저서 『작은 집, 다른 삶』 등
쟤네 또 싸운다
- 《악스트》 듀나 인터뷰 사태를 지켜보며
지난 해 창간한 문학잡지 《악스트》가 SNS 상에서 새삼 화제다. ‘기존의 문예지와 좀 다른’ 잡지를 주창하며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시작한 악스트는 1호 인터뷰이로 천명관, 2호 박민규, 3호공지영 작가의 인터뷰를 연달아 실었다. 야심 차 보이는 라인업의 후속 주자는 누구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도착한 악스트 1-2월호 표지에는 사람 얼굴 대신 토끼 가면이 있었다. 얼굴 없는 작가 듀나였다.
화제의 골자는 분노였다. 인터뷰어는 악스트 편집위원인 소설가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 세 사람이었는데 이중 백가흠 씨가 듀나에게 던진 질문이 질타의 대상이었다. 그는 듀나에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왜 익명을 쓰는지,결혼은 했는지, 혹시 자신을 알지 않는지 등 신상과 관련한 질문을 쏟아냈다. 당신이 익명이라는 게 당신 작품보다 유명하다라든가, 익명이 이제 좀 식상하다는 말도 했다.
인터뷰를 보고 든 생각은 ‘질문자가 혹시 고급함에 알레르기가 있나’하는 것이었다.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게 너무 간지럽고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인터뷰이의 손을 잡고 시궁창으로 뛰어들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려다가 상대방의 거부로 혼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이 질문이 ‘순문학 작가가 SF 작가를 무시했다’로 환원되는 속도였다. 장르문학 작가 혹은 독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백가흠 씨의 질문이 ‘문학권력에 절여진 꼰대’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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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문예지와 좀 다른’ 잡지를 주창하며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시작한 악스트는 1호 인터뷰이로 천명관, 2호 박민규, 3호 공지영 작가의 인터뷰를 연달아 실었다. 야심 차 보이는 라인업의 후속 주자는 누구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도착한 악스트 1-2월호 표지에는 사람 얼굴 대신 토끼 가면이 있었다. 얼굴 없는 작가 듀나였다.
# 순문학이 또! 장르문학이 또?
필승의 프레임을 짜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참관자들은 백가흠 씨가 중년의 남성이고 듀나는 (아마도) 젊은 여성이라는 것, 악스트의 편집위원인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 씨가 문단에서 몇 차례의 상을 받은, 한 마디로 문단 작가이고 듀나는 SF 작가라는 것을 들어 단숨에 대결 구도를 만들어냈다. 한쪽은 권력의 중심, 남성, 순문학, 연장자. 다른 한 쪽은 권력의 변방, 여성, 장르문학, 연소자. 이상하지만 익숙한 대결 구도다. 늘 성공하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장르문학으로 피해자 노릇이 부족하면 여성을 내보내면 되고 그래도 부족하면 변방을 들이대면 된다. SNS 상에서 악스트는 이미 문학 권력의 중심으로 등극해있었다.
여기에 1인 SF웹진 《알트SF》가 참전하면서 악스트는 정말로 악의 축이 되었다. 알트SF는 악스트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가져와 문단 별로 조목조목 비난했다. 이른바 ‘번역’인데,“나 알지 않냐”는 질문에 얼마나 저열한 의도가 깔려 있는지를 추정하는 식이다. 은행나무측은 이에 명예훼손이 아닌 저작권 침해로 대응, 법적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고 알트SF는 그만 휴간하고 만다(!).인기 SF 작가를 모욕한 데다가 힘없는 1인 웹진을 휴간까지 시킨 악스트에 장르문학뿐 아니라 순문학 진영 작가들도 불쾌함을 표했다. 글에는 글로 대응해야지 저작권 침해로 걸고 넘어지는 건 치졸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비난 일색의 상황에서 장강명 작가가 기명글을 올렸다. 그는 악스트의 인터뷰가 무례하고 예습이 덜 됐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순문학 작가들이 SF 작가를 (또 다시) 무시했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뿌리가 장르문학 쪽에 있음을 재확인시키며(그는 문학동네, 민음사 등에서 책을 내기 전 SF 소설을 쓰고 SF 웹진도 운영했다) 말했다.
“알트SF 기사를 보면서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악스트의 인터뷰가 문단의수준과 태도를 드러냈다고 주장합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알트SF 기사는 한국 SF 독자들의 수준과 태도를 드러낸 셈이 됩니다.”
# 얼어붙은 문학판을 깰 도끼? 아무나 빨리요
양 진영의 불균형이 심각할 땐 공격의 합당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합당하지 않기도 하다.지금 한국 남자 전체를 증오하는 여성들의 거친 언행이 한 예다. 그 폭력의 수위가 부당하게 느껴지다가도 무죄였던 단어가 단기간에 유죄로 바뀌는 걸 보며, 중립에도 시기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악스트 공격자들의 분노는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해 돌진한다.일련의 상황을 칼럼 형식으로 쓴 기사엔 “지난한 세월 동안 줘 패놓고 소위 ‘순수문학’의 비판에 쿨하게 대응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갑질” 등의 댓글을 위시해 원한과 증오의 글들이 매달렸다. 악스트와 은행나무가 문학판에 진입한 세월이 별로 지난하지 않다는 사실 따윈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약자가 견딘 오욕의 세월을 되갚아주는 것. 은행나무에 문학동네를 대입하고 창비를 투영하는 오류도 중요치 않다. 약자의 폭력엔 늘 면죄부가 준비돼 있다.
악스트 창간 즈음 순문학 진영의 회의적인 반응을 기억한다. “다 돈 벌려고 하는 것”이라는 원로 평론가의 말에 ‘그럼 기성 문학 출판사들이 하려는 건 뭔가’ 고민한 적이 있다. 한쪽에선 장사치, 다른 쪽에선 문학권력이라는 비판, 그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는 악스트뿐 아니라 차후 ‘다른 것’을 해보려고 나온 모든 이들의 숙명일지 모르겠다. 악스트는 문단의 짜여진 판을 깰 유일한 도끼가 아니다. 도끼 자루는 언제든 썩을 수 있고, 악스트가 제 역할을 못하면 그보다 더 똑똑하고 더 매력적인 잡지가 등장해 그 일을 대신하면 된다. 최근 몇몇 젊은 작가들이 만든 수상한 집단이나 매체는 이 오래되고 지루한 판에 드리워진 일말의 희망이다. 그러나 달라져 보겠다고 나온 잡지가 반 년도 안 돼 낡아 빠진 프레임에 매여 목을 졸리는 꼴이라니. 문학의 겨울이 너무 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