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이어쓰기 「봄·봄」이어쓰기 1 ｜봄·봄하다 「봄·봄」이어쓰기 2｜봉필영감 제 꾀에 넘어갔네 「봄·봄」이어쓰기 3｜봄밤 「봄·봄」 이어쓰기 4 ｜ 발산 「봄·봄」이어쓰기 5｜하지 지나 백로
일산, 오래된 누옥의 시간과 젊고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정화된 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첫 번째｜연애소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네 번째｜딴짓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1｜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2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 루카와의 만남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3 ｜선을 그으며 따라간 장면의 파편들
글밭단상
‘도구’보다 ‘연장’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연장’에는 노동이 묻어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노동은 계속, 반복함으로써 단련된다. 단련은 닳는 것이다. 몸이든 실제 도구든, 연장은 노동 하는 만큼 닳는다. 단련되면서, 닳아가면서, 몸과 그 몸이 들었던 연장은 서로 닮아간다. 노동이 노동을 벗어나는 순간, 즉 어떤 계산법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이 탄생한다. 누구나 자신의 연장은 귀하게 다룬다. 미용사는 조금 과장하면 가위를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드라이어는 나눠 써도 가위는 나눠 쓰지 않는다. 가위에 대해 물었을 때, 마치 우주여행을 떠난 듯한 눈빛으로 좋은 가위 감별법을 알려주는 미용사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요리사는 자신이 쓰는 칼을 애지중지한다. 요리사의 칼과 칼날을 보면 주로 어떤 재료를 쓰는지, 어떤 요리를 좋은 요리라고 생각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미용사의 가위처럼, 요리사의 칼처럼, 글쟁이들은 쓰는 도구(편의상 그것을 총칭하여 펜이라고 부르자)에까다롭다. 물론 안 그런 글쟁이들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한다. 나는 펜을 구분해서 쓴다. 만년필은 주로 편지를 쓸 때 쓰고, 글을 쓸 때는 쓰지 않는다. 초고를 할 때는 특정한 브랜드의 특정한 펜을 사용한다. 그 펜은 별별 색이 다 있다. 별별 색 중에서 초고를 하는 펜은 대개 세 가지 색 정도이고 다른 색들은 어떤 표시를 할 때만 쓴다. 책을 읽을 때 메모용으로 쓰는 연필은 작고 납작한 지우개가 달린 것을 쓴다(이 브랜드는 심지어 이 지우개만 리필로 판매한다). 왜 이런 구분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느낌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쓰려는 글과 펜의 느낌이 맞아야 한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글쟁이가 되고부터 쓴 펜의 변화를 기록해본다면 세계관의 변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검정이나 파랑 사인펜으로 초고를 했는데 어느 날부터 사인펜보다 얇은 촉, 그리고 덜 부드러운 느낌의 펜을 원하게 되었다. 사인펜을 쓸 때는 큰 노트에 여백이 많게 썼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작은 노트에 빡빡하게 쓴다. 그즈음이 아마도 펜이 도구에서 연장으로 바뀐 시점일 것 같다. 물론 예전보다는 손 글씨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손으로 쓰는 방식을 선호한다. 어떤 글이든 노트에 손으로 쓰며 구상을 하는 편이다. 구상이 안 되면중얼중얼 낙서라도 한다. 손글씨와 키보드의 차이라면 키보드는 생물로 치자면 한 목소리 톤을가진 것 같고, 손으로 쓰면 여러 목소리 톤을 가졌다고 느껴진다. 그러므로 초고는 손으로, 퇴고는 키보드로 하는 구분을 갖게 되었다.
최근 들어 필사가 유행하면서 필기도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SNS 소통이 대세인 시대에 한쪽에서는 손글씨가 유행인 현상. ‘손의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다르다’에 방점이 있을 것이다. 손글씨는 다 다르다. 균질적인 것보다는 하나만 있는 것, 정확한 것보다는 생
생한 것, 수작업. 생각하는 손. 안상수 디자이너가 만든 타이포그라피학교 PaTI의 교육특징 중 하나다. 창의성에도 닿아 있지만 노동하는 손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손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나도 수업을 할 때 제일 자주 하는 얘기가 ‘손이 식지 않도록 하자’다. 노동하는 손 얘기였을 것이다. 생각하는 손. 식지 않는 손. 닳으면서 닮아가는 시간을 보고 싶은 것.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인간이라는 생물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것을 확인할 때 ‘내가 있다’고 느낀다.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글 이원 ㅣ 시인. 1968년생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등
물론 예전보다는 손 글씨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손으로 쓰는 방식을 선호한다. 어떤 글이든 노트에 손으로 쓰며 구상을 하는 편이다.구상이 안 되면 중얼중얼 낙서라도한다. 손글씨와 키보드의 차이라면 키보드는 생물로 치자면 한 목소리 톤을 가진 것 같고, 손으로 쓰면 여러 목소리 톤을 가졌다고 느껴진다. 그러므로 초고는 손으로, 퇴고는 키보드로 하는 구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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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사의 가위처럼, 요리사의 칼처럼, 글쟁이들은 쓰는 도구(편의상 그것을 총칭하여 펜이라고 부르자)에까다롭다. 물론 안 그런 글쟁이들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한다. 나는 펜을 구분해서 쓴다. 만년필은 주로 편지를 쓸 때 쓰고, 글을 쓸 때는 쓰지 않는다. 초고를 할 때는 특정한 브랜드의 특정한 펜을 사용한다. 그 펜은 별별 색이 다 있다. 별별 색 중에서 초고를 하는 펜은 대개 세 가지 색 정도이고 다른 색들은 어떤 표시를 할 때만 쓴다. 책을 읽을 때 메모용으로 쓰는 연필은 작고 납작한 지우개가 달린 것을 쓴다(이 브랜드는 심지어 이 지우개만 리필로 판매한다). 왜 이런 구분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느낌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쓰려는 글과 펜의 느낌이 맞아야 한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글쟁이가 되고부터 쓴 펜의 변화를 기록해본다면 세계관의 변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검정이나 파랑 사인펜으로 초고를 했는데 어느 날부터 사인펜보다 얇은 촉, 그리고 덜 부드러운 느낌의 펜을 원하게 되었다. 사인펜을 쓸 때는 큰 노트에 여백이 많게 썼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작은 노트에 빡빡하게 쓴다. 그즈음이 아마도 펜이 도구에서 연장으로 바뀐 시점일 것 같다. 물론 예전보다는 손 글씨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손으로 쓰는 방식을 선호한다. 어떤 글이든 노트에 손으로 쓰며 구상을 하는 편이다. 구상이 안 되면중얼중얼 낙서라도 한다. 손글씨와 키보드의 차이라면 키보드는 생물로 치자면 한 목소리 톤을가진 것 같고, 손으로 쓰면 여러 목소리 톤을 가졌다고 느껴진다. 그러므로 초고는 손으로, 퇴고는 키보드로 하는 구분을 갖게 되었다.
최근 들어 필사가 유행하면서 필기도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SNS 소통이 대세인 시대에 한쪽에서는 손글씨가 유행인 현상. ‘손의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다르다’에 방점이 있을 것이다. 손글씨는 다 다르다. 균질적인 것보다는 하나만 있는 것, 정확한 것보다는 생
생한 것, 수작업. 생각하는 손. 안상수 디자이너가 만든 타이포그라피학교 PaTI의 교육특징 중 하나다. 창의성에도 닿아 있지만 노동하는 손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손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나도 수업을 할 때 제일 자주 하는 얘기가 ‘손이 식지 않도록 하자’다. 노동하는 손 얘기였을 것이다. 생각하는 손. 식지 않는 손. 닳으면서 닮아가는 시간을 보고 싶은 것.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인간이라는 생물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것을 확인할 때 ‘내가 있다’고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