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이어쓰기 「봄·봄」이어쓰기 1 ｜봄·봄하다 「봄·봄」이어쓰기 2｜봉필영감 제 꾀에 넘어갔네 「봄·봄」이어쓰기 3｜봄밤 「봄·봄」 이어쓰기 4 ｜ 발산 「봄·봄」이어쓰기 5｜하지 지나 백로
일산, 오래된 누옥의 시간과 젊고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정화된 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첫 번째｜연애소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네 번째｜딴짓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1｜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2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 루카와의 만남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3 ｜선을 그으며 따라간 장면의 파편들
도마 위의 잠 등
이민하 ㅣ 시인. 1967년생
시집 『환상수족』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모조 숲』 『세상의 모든 비밀』 등
천사의 입김이 필요해서 천사 이야기를 썼었다. 아픈 녀석들이 눈에 밟혀서 고양이 이야기도 썼었다. 천사와 고양이를 빙판길로 내보내기 싫어서 시를 새로 썼다.겨울이 아직 이빨처럼 박혀 있어서. 내가 흘린 것들을 덮어 줄 모래 한 줌을 구하고 싶어서.봄볕이 내리면 그르렁그르렁 함께 잠들고 싶어서.
도마 위의 잠
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출렁이는 커튼 뒤로 떠내려간 눈들과
무인도에 갇혀 버린 전화기 속의 이야기들
바닷바람이 부는 창가에
두 손을 끌러 놓고
바닥에 누워 눈으로 건져 올리는 건 몇 컷의 장면
오리고 맞추고 겨우 꿰매는 하룻밤의 조각이불
그 아래 흐르는 밑불은 어디서 온 것일까
누군가 두고 간 체온 같고
간밤의 일들은 아침에 상영된다
영사기가 뿜어대는 어둠의 재가 날리면
천 마리의 새가 머리에 부딪히듯
기절하는 날이 있고
발아래 떨어진 새를 줍다가 하루가 끝나기도 하는데
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주소가 비어 있는 낡은 편지와
날짜가 아직 마르지 않은 유서 한 장
먼 길을 주저하는 책상 위에
두 손을 끌러 놓고
새벽에 물을 마시러 그림자 혼자 불을 켠다
벽에서 벽으로 떠다니다가
플라스틱 상자로 돌아와 물처럼 담기고
멀리서 해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데
하얗게 굳은 방 하나가 잘게 토막 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 손자국이 있고
누군가 베란다를 서성인 발자국이 있고
누구나 답이 없는 빈칸에 누워 백일몽을 지우는 두부의 잠
누구나 죽은 듯 다리를 뻗고
밤에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아침의 도마 위로 첫 칼이 스칠 때까지
거꾸로마을 이야기
거꾸로 가는 마차를 탔지. 거꾸로새를 따라갔지. 구름이 깔린 풀밭에 누워 노인들은 거꾸로책을 읽었지. 바닥에서 눈높이를 맞추는 우정에 대하여. 마지막 장면에 펼쳐지는 일생에 대하여. 뎅그렁 뎅그렁 주문을 외는 예배당의 종소리. 종탑에 목을 맨 사람들이 허공에 닿을 때까지. 연인들이 축구공처럼 뒹구는 풀밭에 서서 아이들은 거꾸로체조를 배웠지. 바닥까지 심장을 쏟는 연애에 대하여. 정수리가 땅속에 박히는 열병에 대하여. 쿵쿵 쾅쾅 낮잠을 쪼는 대장간의 망치 소리. 두개골을 물고 가는 달빛이 아이스크림처럼 뚝뚝 흘러내릴때까지. 피가 야위는 날들을 지나 거꾸로숲에 닿았지. 네 발을 웅크리고 달리면 한 꺼풀씩 몸에서 벗겨져 날아가는 나비들. 알몸이 되어 물속에 누우면 몸에서 잘게 떨어져나가는 물방울들. 강변까지 따라온 길잡이 나무들이 발자국들을 물속에 쓸어 담았지. 벌어진 시간이 아물 때마다 거꾸로비가 솟구치는 마을. 마주 보는 눈에서 강물이 새어나오는 날이면, 가만히 틈새를 들여다보았지. 검은 동공 속으로 거꾸로새를 따라갔지. 거꾸로책을 펼쳤지. 거꾸로체조를 익혔지. 끝난 후에 시작되는 이야기에 대하여. 죽은 후에 반복되는 당신에 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