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이어쓰기 「봄·봄」이어쓰기 1 ｜봄·봄하다 「봄·봄」이어쓰기 2｜봉필영감 제 꾀에 넘어갔네 「봄·봄」이어쓰기 3｜봄밤 「봄·봄」 이어쓰기 4 ｜ 발산 「봄·봄」이어쓰기 5｜하지 지나 백로
일산, 오래된 누옥의 시간과 젊고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정화된 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첫 번째｜연애소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네 번째｜딴짓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1｜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2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 루카와의 만남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3 ｜선을 그으며 따라간 장면의 파편들
글밭단상
글을 쓰다가 막히면 딴짓을 한다. 잠깐, 음악을 듣거나 잠깐, 책을 읽거나 잠깐, 산책하거나 잠깐, 애인에게 전화해서 오늘 구내식당 반찬은 뭐였느냐고 묻는다. 딴짓하다 보면 막혀 있던 글의 활로가 보이고 쓰인다. 그렇다고 믿는다. 믿다 보니까 종종 해야 할 일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그만, 딴짓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조금 전이 그랬다. ‘잔혹한 사랑’에 대한 칼럼을 쓰다 말고 사랑이 밥 먹여주나 보자는 심정으로 애인과 먹을 국을 끓여보기로했다. 무려 홍합콩나물국이었다. 언제 냉동실에 넣어두었는지 알 수 없는 홍합을 꺼내 찬물에 담가두고는 무농약 콩나물 한 봉지를 뜯어 물에 몇 번 헹구어냈다.
얼어 있는 파를 어슷하게 썰어두고 다진 마늘과 멸치액젓도 준비해 두었다. 다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재료가 모두 준비되어 있을 때. 그런데도 그만둘 수 없었다. 잘 씻은 홍합과 콩나물을 냄비에 담고 물을 부은 후에 뚜껑을 닫고 불 위에 올렸다. 끓기를 기다리며 이번에는 써야 할 글 대신에 홍합콩나물국이라는 제목으로 생활에 관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
이 밥 먹여주나 보자는 시였다. 딴짓의 맛이란 역시 그런 거다.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생기는 엉뚱한 맛. 떠올려보면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역시나 딴짓할 때였다. 학창시절 키도 작고 무게도 별로 나가지 않던 나는 매번 교실의 맨 앞자리, 그것도 교탁 바로 앞에 앉았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착실한 학생이라 생각했고 종종 선생님을 바라보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일로 나는 그 믿음에 신뢰감을 주었다. 물론, 그때 그 책상 그 교과서 아래에는 종종 다른 책이 깔려 있었다. 공공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수업시간에 몰래 읽는 책만큼 재미있는 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수업시간에 선생님만 보고 칠판만 보고 책상만 보고 교과서만 보았더라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아니 책을 읽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을 보는 척하며 짝꿍의 옆얼굴을 보았기에, 칠판을 보는 척하다가 창문 너머 흰 빛을 보았기에, 책상에서 일어나 쉬는 시간마다 매점으로 달려갔기에, 교과서 대신 『호텔 아프리카』와 《키노》와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보았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쓰지 못하는 인생은 잘모르겠지만, 읽지 못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불행했을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함, 또는 그런 행동을 가리키는 말 딴짓. 우리는 딴짓하지 말라는 훈육을 받으며 컸지만, 가끔은 딴짓이 어떤 엄격함을 이긴다. 잔혹한 사랑에 관해 쓰다 말고 끓인 국으로 나는 애인에게 칭찬을 들었고 그 홍합과 콩나물을 꼭꼭 씹어 먹고 시원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어쩐지 건강하고 안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사랑은 질병에 진다고 잔혹한 칼럼을 마침내 썼다. 해야 할 일에 몰두할 수도 있지만, 딴짓에 몰두할 수도 있다.
몇 개월 전에 문학 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같이 딴짓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백4명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낭독회를 한 달에 한 번씩 열기로 눈빛을 모았다. 하다 보니 열일곱 번째 낭독회가 되었고 이제는 제법 모두에게 딴짓 같지 않은 딴짓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딴짓이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어떤 딴짓은 한 나라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딴짓에도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이란 것이 있다. 그게 딴짓하기의 어려움이다.
네 번째｜딴짓
글 김현 ㅣ 시인, 1980년생
시집 『글로리홀』 등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함, 또는 그런 행동을 가리키는 말 딴짓. 우리는 딴짓하지 말라는 훈육을 받으며 컸지만, 가끔은 딴짓이 어떤 엄격함을 이긴다. 잔혹한 사랑에 관해 쓰다 말고 끓인 국으로 나는 애인에게 칭찬을 들었고 그 홍합과 콩나물을 꼭꼭 씹어 먹고 시원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어쩐지 건강하고 안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사랑은 질병에 진다고 잔혹한 칼럼을 마침내 썼다.
|
얼어 있는 파를 어슷하게 썰어두고 다진 마늘과 멸치액젓도 준비해 두었다. 다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재료가 모두 준비되어 있을 때. 그런데도 그만둘 수 없었다. 잘 씻은 홍합과 콩나물을 냄비에 담고 물을 부은 후에 뚜껑을 닫고 불 위에 올렸다. 끓기를 기다리며 이번에는 써야 할 글 대신에 홍합콩나물국이라는 제목으로 생활에 관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
이 밥 먹여주나 보자는 시였다. 딴짓의 맛이란 역시 그런 거다.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생기는 엉뚱한 맛. 떠올려보면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역시나 딴짓할 때였다. 학창시절 키도 작고 무게도 별로 나가지 않던 나는 매번 교실의 맨 앞자리, 그것도 교탁 바로 앞에 앉았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착실한 학생이라 생각했고 종종 선생님을 바라보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일로 나는 그 믿음에 신뢰감을 주었다. 물론, 그때 그 책상 그 교과서 아래에는 종종 다른 책이 깔려 있었다. 공공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수업시간에 몰래 읽는 책만큼 재미있는 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수업시간에 선생님만 보고 칠판만 보고 책상만 보고 교과서만 보았더라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아니 책을 읽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을 보는 척하며 짝꿍의 옆얼굴을 보았기에, 칠판을 보는 척하다가 창문 너머 흰 빛을 보았기에, 책상에서 일어나 쉬는 시간마다 매점으로 달려갔기에, 교과서 대신 『호텔 아프리카』와 《키노》와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보았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쓰지 못하는 인생은 잘모르겠지만, 읽지 못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불행했을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함, 또는 그런 행동을 가리키는 말 딴짓. 우리는 딴짓하지 말라는 훈육을 받으며 컸지만, 가끔은 딴짓이 어떤 엄격함을 이긴다. 잔혹한 사랑에 관해 쓰다 말고 끓인 국으로 나는 애인에게 칭찬을 들었고 그 홍합과 콩나물을 꼭꼭 씹어 먹고 시원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어쩐지 건강하고 안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사랑은 질병에 진다고 잔혹한 칼럼을 마침내 썼다. 해야 할 일에 몰두할 수도 있지만, 딴짓에 몰두할 수도 있다.
몇 개월 전에 문학 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같이 딴짓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백4명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낭독회를 한 달에 한 번씩 열기로 눈빛을 모았다. 하다 보니 열일곱 번째 낭독회가 되었고 이제는 제법 모두에게 딴짓 같지 않은 딴짓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딴짓이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어떤 딴짓은 한 나라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딴짓에도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이란 것이 있다. 그게 딴짓하기의 어려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