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이어쓰기 「봄·봄」이어쓰기 1 ｜봄·봄하다 「봄·봄」이어쓰기 2｜봉필영감 제 꾀에 넘어갔네 「봄·봄」이어쓰기 3｜봄밤 「봄·봄」 이어쓰기 4 ｜ 발산 「봄·봄」이어쓰기 5｜하지 지나 백로
일산, 오래된 누옥의 시간과 젊고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정화된 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첫 번째｜연애소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네 번째｜딴짓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1｜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2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 루카와의 만남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3 ｜선을 그으며 따라간 장면의 파편들
우리문학의 순간들
카자흐스탄의 망명 작곡가 정추(1923~2013)의 구술 자서전을 알마티 자택에서 녹취한 것은1990년 3월의 일이다. 광주 출신인 그는 일본대학 예술학부 작곡과에서 수학하고 1946년 나운영과 함께 민족음악연구소를 설립해 활동하던 중 월북, 모스크바국립음악원을 졸업한 후 카자흐스탄으로 망명한 디아스포라 작곡가이다. 일본-북한-소련-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진 그의 인생 역정의 한 대목에 상허 이태준과의 조우가 새겨져 있다.
그가 의주유학생강습소에 입교한 1951년 늦가을의 일이다. 그는 영화감독인 형 정준채가 체코슬로바키아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조·소친선의 노래’로 작품상을 수상하고 돌아와 다큐멘터리 ‘수풍발전소’ 촬영을 위해 신의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형을 찾아가던 중 의주세관 앞에서 시인 김상오(1917~1992)를 우연히 만난다. 김상오는 1948년 여름, 정추가 심장병치료를 위해 금강산정양소에 가 있을 때 알게 된 시인으로 당시 직책은 민주일보 주필이었다.
정추는 이렇게 회고했다.
준채 형과 동갑내기로 절친했던 김상오는 나를 만나자마자 ‘소설가 이태준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서 손을 이끌었다. 김상오와 함께 찾아간 이태준의 거처는 신의주 시내에 있었다. 이태준은 인텔리 풍의 말투에 얼굴이 멀쑥한 미남으로, 소설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출중한 외모를 드러냈다.그는 ‘얼마 전 북경에 갔다가 칠레의 민족시인 네루다를 만났다’면서 ‘중국어판 네루다 시집을 직접 건네받았는데 이 책을 번역했으면 좋겠다’면서 시집을 우리 앞에 내밀었다. 나는 김상오와 함께 시집을 들춰본 뒤 ‘시집이 번역되면 모스크바로 한 부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이태준과 헤어졌다.
녹취할 당시는 건성으로 넘어갔지만 이 장면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전후관계를 알기까지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때는 한국인 최초로 네루다를 만난 인물이 1904년 생 동갑내기인 이태준이라는 접촉사적 의미만을 새기고 있었으니 그건 내가 알고 있던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그러다 2004년 성신여대에서 열린 ‘상허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김재용 원광대 교수가 이태준의 월북 후 행적을 밝힌 논문 ‘한국 전쟁기의 이태준-『위대한 새 중국』을 중심으로’를 발표한다. 『위대한 새 중국』(북한 국립출판사, 1952)은 김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내 국내 학계에 처음 공개한 책으로, 이태준이 1951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건국 2주년 기념 아시아문학좌담회에 참석한 뒤 40일간 중국을 여행한 기록을 담은 100여 쪽 분량의 단행본이다. 당시 각국 대표들의 숙소인 북경반점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아시아 작가들뿐만 아니
라 옛 소련 작가 일리야 에렌부르크(1891~1967),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등도 합석했다.
이날 저녁 네루다 선생은 새 조선문학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고 자기는 발언하지 않았다. 그는 큰 키에 우람한 몸집과 깎지 않는다면 탐스러울 구레나룻의 얼굴이었다. 이 분은 미국 자본가들 밑에 피땀을 착취당하고 있는 칠레 광산노동자들 속에서 시를 써 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벌써 미국이 앞으로 파쇼의 길을 걸을 것을 예견하여 미국 청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많은 시를 썼으며 미제와 자기나라 반동정권의 갖은 박해 속에서 세계 평화를 위하여 싸워온 시인의 하나다. 네루다의 중요 시편들은 중국에서도 번역되었는데 이 좌담회가 있은 다음 날 네루다는 중국어판 자기 시집 한 권에 내 이름을 한문으로 그림 그리듯 써서 보내주었다(이태준, 『위대한 새 중국』, 국립출판사, 1952, 78쪽).
이로써 또 하나의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진 셈이다. 네루다는 이태준이라는 한자 이름을 그림 그리듯 써주었을 만큼 북한에서 온 이태준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당시 한국전쟁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중대한 관심사였고 네루다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시인이자 남미라는 주변부에서 온 문학인이었다. 네루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 좌담회에서 이태준의 관심사는 일관되게 ‘민주적 아시아의 건설’이었다.
중국은 새로운 국가를 건립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취가 고대 중국문명의 위업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만천하에 천명했는데 이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무장 항일투쟁을 통해 독립국가를 건설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비해 해방 후 미·소의 대립 속에서 진정한 독립을 성취하는 데 실패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있던 지식인 이태준의 소회는 말로 다할 수 없이 착잡했을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에서 북을 결정적으로 도운 것이 소련이 아니고 중국 지원군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태준은 새로운 중국의 위상에 주눅이 들 만하다”면서 “그럼에도 불구, 이태준은 그것에 짓눌려있지 않고 아시아 각국이 어떻게 자신의 독자성을 가지면서 민주적 아시아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에서 먼저 발명된 금속으로 주조한 활자는 다시 중국출판문화를 현대화시키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놀았던 것이다. 송자에서 물을 길은 고려자기는 세계 도자계의 여왕처럼 떠받들린다. 중국 판본인쇄물을 모방하여 발전시킨 조선의 금속 활자의 창안은 오늘 세계 문명의 보고를 풍부히 하고 있다. 과거 조중 문화의 교류는 이외에도 아름다운 결실이 많을 것이다(위와 같음. 33쪽).
북경의 고궁 안에서 열린 전람회를 돌아보며 쓴 이 대목 역시 중국과 조선의 수평적이고도 평화적인 연대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또 한 조각의 퍼즐이 남아 있었다. 그건 네루다가 어떤 경위를 거쳐 이 좌담회에 참석했는지에 대한 전말이다.
나머지 한 조각을 맞추게 된 것은 네루다 자신이 쓴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라』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2008년의 일이다. 이에 따르면 네루다는 당시 레닌평화상을 쑨원(孫文)의 미망인 쑹칭링(宋慶齡) 여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에렌부르크 등과 함께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거쳐 북경에 도착했다. 중국 국무원 부총리이자 작가인 궈모뤄(郭沫若)는 아라공과 함께 심사위원회 부원장이었는데 그의 추천으로 쑹칭링 여사가 레닌평화상을 받게 되었고 네루다는 안나 제거스, 영화인 알렉산드로프, 에렌부르크 등과 함께 심사위원을 맡았던 것이다. 네루다는 자서전에서 아시아문학좌담회나 이태준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네루다가 소련을 거쳐 중국에 당도한 여정에 앞서 이태준 역시 1946년 8월 10일 평양을 떠나 소련을 여행하고 10월 17일에 돌아왔다. 조소문화협회가 주관한 여행단은 인솔자 격인 소련군 장성 등을 포함해서 27명이었고 농민 대표를 위시하여 각계 각 층의 인물이 망라되어 있었다. 작가 이기영과 시인 이찬이 동행하였고 이태준의 『소련기행』은 1947년 5월에 간행되었다. 그리고 1949년 10월 이태준은 두 번째 소련기행을 간다.
그러나 이태준은 『소련기행』이나 『위대한 새 중국』에서 소련과 중국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있던 터라 냉전적 이분법의 시각을 드러냈다. 네루다 역시 칠레 공산당원으로 상원의원에까지 진출한 공산주의자였다. 우리에게 육감적인 연애시로 널리 알려진 네루다의 이미지는 공산주의라는 이미지와 충돌을 일으키는데 그 역시 공산주의적 이상에 경도된 나머지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통찰하지 못한 우를 범했다. 그러나 네루다에게 있어 공산주의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참혹한 현장에서 반파시즘 투쟁을 지탱해주는 정신적인 힘이었지 권력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이태준의 월북은 자의적인 것이 아닌 강제된 것이라는 후문을 남기고 있고, 결국 한국전쟁 이후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철저한 사회주의적 작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04년생 동갑내기인 네루다와 이태준의 조우는 냉전시대가 낳은 한국문학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자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태준과 파블로 네루다, 두 거장의 조우
글 정철훈 ㅣ 시인, 소설가, 문학저널리스트. 1959년생
시집 『빛나는 단도』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 소설 『인간의 악보』 『카인의 정원』 『소설 김알렉산드라』,산문집 『내가 만난 손창섭』 『뒤집어져야 문학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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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망명 작곡가 정추(1923~2013)의 구술 자서전을 알마티 자택에서 녹취한 것은1990년 3월의 일이다. 광주 출신인 그는 일본대학 예술학부 작곡과에서 수학하고 1946년 나운영과 함께 민족음악연구소를 설립해 활동하던 중 월북, 모스크바국립음악원을 졸업한 후 카자흐스탄으로 망명한 디아스포라 작곡가이다. 일본-북한-소련-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진 그의 인생 역정의 한 대목에 상허 이태준과의 조우가 새겨져 있다.
그가 의주유학생강습소에 입교한 1951년 늦가을의 일이다. 그는 영화감독인 형 정준채가 체코슬로바키아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조·소친선의 노래’로 작품상을 수상하고 돌아와 다큐멘터리 ‘수풍발전소’ 촬영을 위해 신의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형을 찾아가던 중 의주세관 앞에서 시인 김상오(1917~1992)를 우연히 만난다. 김상오는 1948년 여름, 정추가 심장병치료를 위해 금강산정양소에 가 있을 때 알게 된 시인으로 당시 직책은 민주일보 주필이었다.
정추는 이렇게 회고했다.
준채 형과 동갑내기로 절친했던 김상오는 나를 만나자마자 ‘소설가 이태준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서 손을 이끌었다. 김상오와 함께 찾아간 이태준의 거처는 신의주 시내에 있었다. 이태준은 인텔리 풍의 말투에 얼굴이 멀쑥한 미남으로, 소설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출중한 외모를 드러냈다.그는 ‘얼마 전 북경에 갔다가 칠레의 민족시인 네루다를 만났다’면서 ‘중국어판 네루다 시집을 직접 건네받았는데 이 책을 번역했으면 좋겠다’면서 시집을 우리 앞에 내밀었다. 나는 김상오와 함께 시집을 들춰본 뒤 ‘시집이 번역되면 모스크바로 한 부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이태준과 헤어졌다.
녹취할 당시는 건성으로 넘어갔지만 이 장면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전후관계를 알기까지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때는 한국인 최초로 네루다를 만난 인물이 1904년 생 동갑내기인 이태준이라는 접촉사적 의미만을 새기고 있었으니 그건 내가 알고 있던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그러다 2004년 성신여대에서 열린 ‘상허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김재용 원광대 교수가 이태준의 월북 후 행적을 밝힌 논문 ‘한국 전쟁기의 이태준-『위대한 새 중국』을 중심으로’를 발표한다. 『위대한 새 중국』(북한 국립출판사, 1952)은 김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내 국내 학계에 처음 공개한 책으로, 이태준이 1951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건국 2주년 기념 아시아문학좌담회에 참석한 뒤 40일간 중국을 여행한 기록을 담은 100여 쪽 분량의 단행본이다. 당시 각국 대표들의 숙소인 북경반점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아시아 작가들뿐만 아니
라 옛 소련 작가 일리야 에렌부르크(1891~1967),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등도 합석했다.
이날 저녁 네루다 선생은 새 조선문학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고 자기는 발언하지 않았다. 그는 큰 키에 우람한 몸집과 깎지 않는다면 탐스러울 구레나룻의 얼굴이었다. 이 분은 미국 자본가들 밑에 피땀을 착취당하고 있는 칠레 광산노동자들 속에서 시를 써 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벌써 미국이 앞으로 파쇼의 길을 걸을 것을 예견하여 미국 청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많은 시를 썼으며 미제와 자기나라 반동정권의 갖은 박해 속에서 세계 평화를 위하여 싸워온 시인의 하나다. 네루다의 중요 시편들은 중국에서도 번역되었는데 이 좌담회가 있은 다음 날 네루다는 중국어판 자기 시집 한 권에 내 이름을 한문으로 그림 그리듯 써서 보내주었다(이태준, 『위대한 새 중국』, 국립출판사, 1952, 78쪽).
이로써 또 하나의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진 셈이다. 네루다는 이태준이라는 한자 이름을 그림 그리듯 써주었을 만큼 북한에서 온 이태준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당시 한국전쟁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중대한 관심사였고 네루다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시인이자 남미라는 주변부에서 온 문학인이었다. 네루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 좌담회에서 이태준의 관심사는 일관되게 ‘민주적 아시아의 건설’이었다.
중국은 새로운 국가를 건립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취가 고대 중국문명의 위업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만천하에 천명했는데 이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무장 항일투쟁을 통해 독립국가를 건설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비해 해방 후 미·소의 대립 속에서 진정한 독립을 성취하는 데 실패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있던 지식인 이태준의 소회는 말로 다할 수 없이 착잡했을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에서 북을 결정적으로 도운 것이 소련이 아니고 중국 지원군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태준은 새로운 중국의 위상에 주눅이 들 만하다”면서 “그럼에도 불구, 이태준은 그것에 짓눌려있지 않고 아시아 각국이 어떻게 자신의 독자성을 가지면서 민주적 아시아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에서 먼저 발명된 금속으로 주조한 활자는 다시 중국출판문화를 현대화시키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놀았던 것이다. 송자에서 물을 길은 고려자기는 세계 도자계의 여왕처럼 떠받들린다. 중국 판본인쇄물을 모방하여 발전시킨 조선의 금속 활자의 창안은 오늘 세계 문명의 보고를 풍부히 하고 있다. 과거 조중 문화의 교류는 이외에도 아름다운 결실이 많을 것이다(위와 같음. 33쪽).
북경의 고궁 안에서 열린 전람회를 돌아보며 쓴 이 대목 역시 중국과 조선의 수평적이고도 평화적인 연대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또 한 조각의 퍼즐이 남아 있었다. 그건 네루다가 어떤 경위를 거쳐 이 좌담회에 참석했는지에 대한 전말이다.
나머지 한 조각을 맞추게 된 것은 네루다 자신이 쓴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라』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2008년의 일이다. 이에 따르면 네루다는 당시 레닌평화상을 쑨원(孫文)의 미망인 쑹칭링(宋慶齡) 여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에렌부르크 등과 함께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거쳐 북경에 도착했다. 중국 국무원 부총리이자 작가인 궈모뤄(郭沫若)는 아라공과 함께 심사위원회 부원장이었는데 그의 추천으로 쑹칭링 여사가 레닌평화상을 받게 되었고 네루다는 안나 제거스, 영화인 알렉산드로프, 에렌부르크 등과 함께 심사위원을 맡았던 것이다. 네루다는 자서전에서 아시아문학좌담회나 이태준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네루다가 소련을 거쳐 중국에 당도한 여정에 앞서 이태준 역시 1946년 8월 10일 평양을 떠나 소련을 여행하고 10월 17일에 돌아왔다. 조소문화협회가 주관한 여행단은 인솔자 격인 소련군 장성 등을 포함해서 27명이었고 농민 대표를 위시하여 각계 각 층의 인물이 망라되어 있었다. 작가 이기영과 시인 이찬이 동행하였고 이태준의 『소련기행』은 1947년 5월에 간행되었다. 그리고 1949년 10월 이태준은 두 번째 소련기행을 간다.
그러나 이태준은 『소련기행』이나 『위대한 새 중국』에서 소련과 중국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있던 터라 냉전적 이분법의 시각을 드러냈다. 네루다 역시 칠레 공산당원으로 상원의원에까지 진출한 공산주의자였다. 우리에게 육감적인 연애시로 널리 알려진 네루다의 이미지는 공산주의라는 이미지와 충돌을 일으키는데 그 역시 공산주의적 이상에 경도된 나머지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통찰하지 못한 우를 범했다. 그러나 네루다에게 있어 공산주의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참혹한 현장에서 반파시즘 투쟁을 지탱해주는 정신적인 힘이었지 권력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이태준의 월북은 자의적인 것이 아닌 강제된 것이라는 후문을 남기고 있고, 결국 한국전쟁 이후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철저한 사회주의적 작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04년생 동갑내기인 네루다와 이태준의 조우는 냉전시대가 낳은 한국문학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자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