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이어쓰기 「봄·봄」이어쓰기 1 ｜봄·봄하다 「봄·봄」이어쓰기 2｜봉필영감 제 꾀에 넘어갔네 「봄·봄」이어쓰기 3｜봄밤 「봄·봄」 이어쓰기 4 ｜ 발산 「봄·봄」이어쓰기 5｜하지 지나 백로
일산, 오래된 누옥의 시간과 젊고 화려한 불빛 사이에서
정화된 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첫 번째｜연애소설 두 번째｜토지문화관이 만들어낸 시공간 세 번째｜ 도구에서 연장이 되는 순간 네 번째｜딴짓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1｜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선정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2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 루카와의 만남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3 ｜선을 그으며 따라간 장면의 파편들
단편소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à invisibili, 1972)의 초고가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비롯한 파피루스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단행본으로 출간된『보이지 않는 도시들』(읽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요약하자면)에서,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베네치아 출신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이런 저런 도시들을 다녀본 이야기를 해준다. 도시들은 다 어딘가 이상하다. 황제는 가만히 궁궐에 앉아서 그 희한한 얘기를 들으며 무료함을 달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끝이 없는 이야기이다. 시작하지 않았으니 끝도 없다. 황제와 마르코가 실제로 대화를 했는지, 아니면 침묵 속에 둘이 피워대는 곰방대 담배연기만 서로 뒤섞였는지, 확실치 않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연결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끈들은 파피루스 초고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파피루스의 원료, 이집트 나일강가에서 넘실대는 파피루스 풀잎들이 가로세로로 얽혀있는 그 사이에서만. 파피루스는 보존이 쉽지 않은 재료이다.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초고도 습기를 먹어 지워지거나 벌레들의 먹이가 된 부분이 적지 않다. 초고에서 그렇게 사라진 대목들이 출간된 단행본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아직 남아있는 초고의 찌꺼기들을 긁어모아 아래와 같이 우리말로 옮겼다.
귀가 달린 도시
천하를 호령하시는 위대하신 쿠빌라이 칸이시여, 저 마르코가 ‘보다피’에서 겪은 곤란을 일일이
열거하다보면 아마 이번 주 내내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날도 저물어 가고 어제 드신 고량주 냄새가 아직도 진동하는 것을 보니 오늘은 일찍 끝내고 해장술이나 한잔 더 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그럼 간략히 요점만 전하지요.
북부 도시 ‘보다피’에서는 말이 죽었습니다. 제가 몇 마디 말을 걸었을 때 ‘보다피’의 남녀노소,민관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주민들이 내게 보낸 그 경멸에 찬 눈빛은 아, 지금도 가끔 꿈에 다시 나타난답니다. 그때마다 치를 떨며 잠에서 깨어나곤 하지요.
‘보다피’에서의 모든 대화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자판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
하고도. 심지어 두 손을 잡고 막 키스를 하려는 연인들도, 얼른 손을 놓고 핸드폰으로 서로 의사
를 급히 확인한 후에야 쭉쭉 상대방의 입술을 빨더군요.
물론 말소리가 전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만, 언어가 장기인 인간 존재의 소통을 돕는 기능은 전적으로 말없는 전자문자의 몫이 된 것이지요. 사람 소리 중 몇 가지는 허용되는 것 같긴 했습니다. 코 푸는 소리나 고통스런 신음소리, 기침소리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이 같은 음색과 음역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게다가 끙, 낑, 히잉, 썅, 쓩 같은 말들이 이따금 들리곤 하는데, 대개 핸드폰이 망가졌거나 핸드폰을 잃었거나 핸드폰 배터리가 죽었거나 할 때 사용자들이 내뱉는-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보다피’를 등지고 낙타 두 마리에 ‘보다피’ 특산품 핸드폰을 가득 싣고 고개를 넘어 떠날 때, 제귀에 묻어나는 이 도시의 소리는, 핸드폰 대화를 배우지 못한 개들이 짖는 ‘멍멍’ 소리, 핸드폰이
망가져서 개처럼 짖어대는 ‘낑’과 ‘썅,’ 외마디 비명소리뿐이었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말기 폐암환자의 신음소리처럼 듣는 제 가슴속에 음산한 먼지를 덧씌웠지요.
그 생각을 하니 또 목이 칼칼해지는군요. 칸 형님, 어디 가서 시원한 맥주나 한잔?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도시와 순환
‘엠빌리아’는 사실 제 여정에는 없던 도시였습니다만, 하도 경제신문들이, 오로지 건축부문의 강철 같은 의지력으로 도시의 저성장 장기불황을 극복한 모범사례라며, 부추기는 통에, 도쿄에서베이징으로 오는 길에 딱 1박2일 일정으로 들를 작정으로 비행기 표를 다시 끊었지요.
하지만 참으로 희한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
비행기야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공항이 바뀌었던 것이지요.
[---! -----? -----!]
전날까지 멀쩡하게 네 발로 서 있던 공항이 갑자기 반신불구가 되어버린 거예요.
[---?]
활주로는 그나마 아직 파헤치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대합실의 거북이 등처럼 늘어진 돔의 반쪽
은 이미 앙상한 잔뼈를 드러내고 있었고, 뜯겨진 지붕 밑에서 때마침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피하느라 여행객들은 남아있는 천정 끝에 펭귄 떼처럼 몰려 서 있었습니다.
[---? ---?]
전쟁도 아니고 테러도 아니었지요. 그저 일상적인 비즈니스라는 거예요.
‘엠빌리아’의 새로 제정된 법에 의하면, 모든 건물은 세워진 즉시 반드시 철거 후 재건축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파트나 사무실, 상가에 적용하던 이 법률은 처음에는 공항 같은 공공건물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뒀었지만, 경기부양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제가 도착예정이던 바로 그 전날부로 그 예외조항도 제거되어 버렸답니다. 그 결과, 포클레인 부대가 대거 ‘엠빌리아’ 국제공항에 몰려든것이라더군요.
[----!]
역시 폐하의 안목을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부분, 건축폐기물 재활용에 있어서‘엠빌리아’는 탁월한 신개념을 도입했기에 그러한 성장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지요.
[----?]
그러니까, 제가 결국엔 그 공항에 내리질 못했으니까 나중에 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한 것입니다만, 제가 탄 비행기가 네 번째 착륙을 시도할 때, 성질 고약한 포클레인 한 놈이 활주로 끝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거예요. 비행기는 결국 공중으로 되돌아가서 남은 연료를 아끼고 또 아껴서 겨우 도쿄 하네다로 돌아갔거든요.
[----! ----! ----!]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저씨.
[----! ----! ----! ----!]
오늘은 그만 해 그럼.
[----! ----?]
싫다면.
[---?]
알았어, 그럼.
암튼, 건축폐기물을 어찌 했는가 하면, 이런 식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신축 즉시 재건축’
법에 의해 해체한 건물이 토해내는 찌꺼기들, 쪼개놓은 콘크리트, 흉하게 비틀어놓은 철근과 철
제빔, 갈기갈기 찢겨진 내장재료 등은 철거한 건물 바로 옆에 그대로 쌓아둡니다. 그렇게 쌓아둔 쓰레기더미는 엄밀히 따지면 ‘신축’에 해당되지 않기에 바로 헐고 재건축을 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
네, 바로 법의 그런 맹점을 이용해서 사람들은 폐기물을 얼기설기 엮은 사이에서, 먹고, 자고, 놀고, 싸고, 일하고, 울고, 웃고, 돈 벌고, 돈 날리고, 서로 헐뜯고, 서로 아부하고, 서로 등쳐먹고, 열 받고, 이웃의 아내와 남편을 탐하는, 완벽한 인생살이들을 한다고 합니다.
[----!]
맞습니다. 바로 ‘해체주의 리빙스페이스’라는 미래형 주거 공간이 ‘엠빌리아’에서는 이미 일상적
인 건축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
아마도 그렇겠지요. 건설부문이 경제를 주도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철거산업이 가장 번성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 유력한 소식통에 의하면, ‘엠빌리아’의 최고 부유층과 고위 관료와 심지어
인기 연예인들도 대개 철거산업과 관련되어 있거나 그쪽 집안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후략)
*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2016년 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
윤혜준 ㅣ 소설가, 시인, 번역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1962년생
소설 『우르비노의 비너스』 『비발디풍 어머니』, 연작시집 『청담동의 페트라르카』, 역서 『올리버 트위스트』 『로빈슨 크루소』 『주석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등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초고1)
암튼, 건축폐기물을 어찌 했는가 하면, 이런 식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신축 즉시 재건축’ 법에 의해 해체한 건물이 토해내는 찌꺼기들, 쪼개놓은 콘크리트, 흉하게 비틀어놓은 철근과 철제빔, 갈기갈기 찢겨진 내장재료 등은 철거한 건물 바로 옆에 그대로 쌓아둡니다.그렇게 쌓아둔 쓰레기더미는 엄밀히 따지면 ‘신축’에 해당되지 않기에 바로 헐고 재건축을 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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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à invisibili, 1972)의 초고가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비롯한 파피루스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단행본으로 출간된『보이지 않는 도시들』(읽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요약하자면)에서,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베네치아 출신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이런 저런 도시들을 다녀본 이야기를 해준다. 도시들은 다 어딘가 이상하다. 황제는 가만히 궁궐에 앉아서 그 희한한 얘기를 들으며 무료함을 달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끝이 없는 이야기이다. 시작하지 않았으니 끝도 없다. 황제와 마르코가 실제로 대화를 했는지, 아니면 침묵 속에 둘이 피워대는 곰방대 담배연기만 서로 뒤섞였는지, 확실치 않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연결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보이지 않는 끈들은 파피루스 초고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파피루스의 원료, 이집트 나일강가에서 넘실대는 파피루스 풀잎들이 가로세로로 얽혀있는 그 사이에서만. 파피루스는 보존이 쉽지 않은 재료이다.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초고도 습기를 먹어 지워지거나 벌레들의 먹이가 된 부분이 적지 않다. 초고에서 그렇게 사라진 대목들이 출간된 단행본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아직 남아있는 초고의 찌꺼기들을 긁어모아 아래와 같이 우리말로 옮겼다.
귀가 달린 도시
천하를 호령하시는 위대하신 쿠빌라이 칸이시여, 저 마르코가 ‘보다피’에서 겪은 곤란을 일일이
열거하다보면 아마 이번 주 내내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날도 저물어 가고 어제 드신 고량주 냄새가 아직도 진동하는 것을 보니 오늘은 일찍 끝내고 해장술이나 한잔 더 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그럼 간략히 요점만 전하지요.
북부 도시 ‘보다피’에서는 말이 죽었습니다. 제가 몇 마디 말을 걸었을 때 ‘보다피’의 남녀노소,민관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주민들이 내게 보낸 그 경멸에 찬 눈빛은 아, 지금도 가끔 꿈에 다시 나타난답니다. 그때마다 치를 떨며 잠에서 깨어나곤 하지요.
‘보다피’에서의 모든 대화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자판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
하고도. 심지어 두 손을 잡고 막 키스를 하려는 연인들도, 얼른 손을 놓고 핸드폰으로 서로 의사
를 급히 확인한 후에야 쭉쭉 상대방의 입술을 빨더군요.
물론 말소리가 전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만, 언어가 장기인 인간 존재의 소통을 돕는 기능은 전적으로 말없는 전자문자의 몫이 된 것이지요. 사람 소리 중 몇 가지는 허용되는 것 같긴 했습니다. 코 푸는 소리나 고통스런 신음소리, 기침소리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이 같은 음색과 음역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게다가 끙, 낑, 히잉, 썅, 쓩 같은 말들이 이따금 들리곤 하는데, 대개 핸드폰이 망가졌거나 핸드폰을 잃었거나 핸드폰 배터리가 죽었거나 할 때 사용자들이 내뱉는-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보다피’를 등지고 낙타 두 마리에 ‘보다피’ 특산품 핸드폰을 가득 싣고 고개를 넘어 떠날 때, 제귀에 묻어나는 이 도시의 소리는, 핸드폰 대화를 배우지 못한 개들이 짖는 ‘멍멍’ 소리, 핸드폰이
망가져서 개처럼 짖어대는 ‘낑’과 ‘썅,’ 외마디 비명소리뿐이었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말기 폐암환자의 신음소리처럼 듣는 제 가슴속에 음산한 먼지를 덧씌웠지요.
그 생각을 하니 또 목이 칼칼해지는군요. 칸 형님, 어디 가서 시원한 맥주나 한잔?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도시와 순환
‘엠빌리아’는 사실 제 여정에는 없던 도시였습니다만, 하도 경제신문들이, 오로지 건축부문의 강철 같은 의지력으로 도시의 저성장 장기불황을 극복한 모범사례라며, 부추기는 통에, 도쿄에서베이징으로 오는 길에 딱 1박2일 일정으로 들를 작정으로 비행기 표를 다시 끊었지요.
하지만 참으로 희한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
비행기야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공항이 바뀌었던 것이지요.
[---! -----? -----!]
전날까지 멀쩡하게 네 발로 서 있던 공항이 갑자기 반신불구가 되어버린 거예요.
[---?]
활주로는 그나마 아직 파헤치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대합실의 거북이 등처럼 늘어진 돔의 반쪽
은 이미 앙상한 잔뼈를 드러내고 있었고, 뜯겨진 지붕 밑에서 때마침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피하느라 여행객들은 남아있는 천정 끝에 펭귄 떼처럼 몰려 서 있었습니다.
[---? ---?]
전쟁도 아니고 테러도 아니었지요. 그저 일상적인 비즈니스라는 거예요.
‘엠빌리아’의 새로 제정된 법에 의하면, 모든 건물은 세워진 즉시 반드시 철거 후 재건축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파트나 사무실, 상가에 적용하던 이 법률은 처음에는 공항 같은 공공건물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뒀었지만, 경기부양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제가 도착예정이던 바로 그 전날부로 그 예외조항도 제거되어 버렸답니다. 그 결과, 포클레인 부대가 대거 ‘엠빌리아’ 국제공항에 몰려든것이라더군요.
[----!]
역시 폐하의 안목을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부분, 건축폐기물 재활용에 있어서‘엠빌리아’는 탁월한 신개념을 도입했기에 그러한 성장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지요.
[----?]
그러니까, 제가 결국엔 그 공항에 내리질 못했으니까 나중에 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한 것입니다만, 제가 탄 비행기가 네 번째 착륙을 시도할 때, 성질 고약한 포클레인 한 놈이 활주로 끝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거예요. 비행기는 결국 공중으로 되돌아가서 남은 연료를 아끼고 또 아껴서 겨우 도쿄 하네다로 돌아갔거든요.
[----! ----! ----!]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저씨.
[----! ----! ----! ----!]
오늘은 그만 해 그럼.
[----! ----?]
싫다면.
[---?]
알았어, 그럼.
암튼, 건축폐기물을 어찌 했는가 하면, 이런 식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신축 즉시 재건축’
법에 의해 해체한 건물이 토해내는 찌꺼기들, 쪼개놓은 콘크리트, 흉하게 비틀어놓은 철근과 철
제빔, 갈기갈기 찢겨진 내장재료 등은 철거한 건물 바로 옆에 그대로 쌓아둡니다. 그렇게 쌓아둔 쓰레기더미는 엄밀히 따지면 ‘신축’에 해당되지 않기에 바로 헐고 재건축을 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
네, 바로 법의 그런 맹점을 이용해서 사람들은 폐기물을 얼기설기 엮은 사이에서, 먹고, 자고, 놀고, 싸고, 일하고, 울고, 웃고, 돈 벌고, 돈 날리고, 서로 헐뜯고, 서로 아부하고, 서로 등쳐먹고, 열 받고, 이웃의 아내와 남편을 탐하는, 완벽한 인생살이들을 한다고 합니다.
[----!]
맞습니다. 바로 ‘해체주의 리빙스페이스’라는 미래형 주거 공간이 ‘엠빌리아’에서는 이미 일상적
인 건축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
아마도 그렇겠지요. 건설부문이 경제를 주도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철거산업이 가장 번성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 유력한 소식통에 의하면, ‘엠빌리아’의 최고 부유층과 고위 관료와 심지어
인기 연예인들도 대개 철거산업과 관련되어 있거나 그쪽 집안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후략)
*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2016년 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