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2030년 - 포스트코로나 시대 읽기 ①환란일지 ②2030년 서울, 그리고 레이턴시 ③바이러스와 함께 돌아보기 ④마스크에 관한 학교괴담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이 일본에서 그린 특이한 형식의 그림
①완성의 속도 ②코로나 여름, ‘국뽕 아재’의 기원 ③적막과 고요와 침묵
아무일 일어나지 않는 40호 남짓 시골마을, 그 사람들과 정서
①일상과 일상 너머를 아우르는 탄력있는 상상력 ②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문학의 흐름과 성취는?
“일본 동북사투리가 너무 어려웠어요. 게다가 한국역사도…”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대산세계문학총서
2020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제28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선정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 소월시 100년, 한국시 100년
기획특집
『일본서기』는 일본 고대사에 대해 기록해 놓은 가장 대표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14권에는 서기 463년에 일어난 사건이라면서 흔히 길비(吉備) 씨의 난이라고도 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일본의 궁중에 드나들며 왜국 왕과도 여러 가지 관계를 맺던 길비 씨 가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반란, 전투, 사건 사고 등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길비 씨는 백제와 가야를 이용해 세력을 키우면서 일본 정치판을 뒤엎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사건은 짧게 이야기하기에는 복잡하다. 마침 이 무렵은 광개토대왕의 등장과 그 정복 전쟁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던 시기에서 멀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일어난 격변과 분명히 관계가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일이 일본에서도 같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자잘한 사건들이 같이 엮여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길비 씨가 친구들에게 “천하의 미인들 중에서 내 아내만 한 사람이 없다. 빛나고 온화하여 너무나 아름다우니 화장도 필요 없고 향수를 바르지 않아도 된다. 넓은 세상에 견줄 만한 사람이 드물구나”라고 자랑한 일조차도 전쟁과 음모에 관계가 있는 사건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광개토대왕의 전쟁 이후 도대체 한반도와 일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백제, 신라,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 갔는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서 진상을 알아내려고 연구해 온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소설가로서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는 대목은 따로 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건의 도중에 보면 제군(弟君)이라는 사람이 무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려 했다는 기록이 잠깐 나온다. 이때, 제군 앞에 나라의 신이 노녀(老女), 즉 늙은 여자로 변해서 홀연히 나타나 길 앞에 섰다고 한다. 제군은 신에게 신라가 얼마나 먼지 가까운지를 물어보는데, 그러자 신은 다시 하루를 더 간 다음에야 도착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제군은 신라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도대체 제군은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정말로 무슨 신령스러운 현상을 본 것일까?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본 것뿐인데 전쟁터에 나가기 싫어서 대충 신이 가지 말라고 했다고 둘러댄 것일까? 나는 고대 일본 사람들 사이에 신라와 관련한 어떤 주술적이거나 종교적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짐작해 본다. 아닌 게 아니라 같은 자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시점인 서기 465년 음력 3월의 기록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왜국 왕이 신라를 직접 공격하려고 했다가 또 신이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나는 일본군에게 신라로 가지 말라고 하는 이 신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보았다. 예전에 이 내용을 소재로 짤막한 소설을 한 번 썼던 적도 있다. 서기 400년대의 일이면 신라에서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널리 퍼지기 이전이다. 그러니 이 신은 어쩌면 무당과 토속신앙에서 떠받들던 어떤 신령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신라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던 어느 할머니 무당이 있었는데 그 인기가 일본에까지 퍼지는 바람에 그 영향을 받아 이런 이야기가 생겼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또 다른 가능성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고대 일본인들이 느꼈던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기록 속의 신이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섬나라로 고립되어 있는 일본은 상대적으로 먼 곳에서 퍼져 오는 여러 가지 전염병에 안전한 편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만큼, 한 번 전염병이 제대로 퍼지면 별다른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걷잡을 수없이 빠르고 심하게 피해가 퍼져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대의 일본인들에게 한반도의 백제와 가야는 섬 바깥과 교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통로였다. 이 말은 일본의 문화가 발달하고 한반도와 교류가 늘어날수록, 대륙 지역으로부터 전염병이 들어와 퍼지는 무서운 난리가 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7세기가 지나고 8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에 천연두가 들어와 무섭게 퍼져 나갔다는 이야기는 일본에서 기록에 남아 있는 이야기다. 이때 일본을 휩쓴 천연두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일본 인구의 몇 분의 몇이 사라졌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 때문에 일본의 역사와 전통이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신라의 삼국통일 시점에서 멀지 않다. 그렇다 보니 어쩌면 삼국통일 시기에 멸망해 가는 백제를 돕기 위해 일본에서 건너 간 군사들이 신라 군사들과 싸우다가 천연두 바이러스를 일본으로 묻혀 갔기 때문에 일본에 이렇게 극심한 병이 갑자기 퍼진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퍼져 나가는 전염병을 고대 사람들은 무서운 신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마침,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서 “호구마마” 등의 이름으로 천연두를 퍼뜨리는 귀신을 할머니 형상으로 생각하는 풍습이 있었다. 혹시 고대의 일본인들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후에 사회에 퍼져 나간 전염병을 징벌을 내리는 신의 뜻으로 생각하면서 신라로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여신으로 상상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고대 일본인들은 천연두 바이러스를 신라의 수호신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천연두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단히 골치 아픈 질병이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천연두를 상징하는 귀신이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을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어린이가 한번 천연두에 걸리면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심을 다해 천연두 귀신에게 예를 다하기도 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두역유신변증설」 등을 보면 조선 말엽까지도 천연두 귀신에 대해 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엄한 예절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천연두가 생기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그야말로 운명에 달린 일이었다. 대단한 권세를 누리는 궁중 인사의 자식들이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 가문의 출생이더라도 어느 날 천연두에 걸려서 낫지 않아 생명을 잃으면 그것은 그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세상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것이 우리 역사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천연두가 왜 생기는지, 무엇이 천연두의 원인이고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이것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의 삶을 이끄는 데 대해 굉장히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전염병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을 하늘의 뜻으로 여기는 세상이 아니라 그 이유를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인생과 세계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방 접종을 무기로 세계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천연두 박멸 활동을 꾸준히 진행해 온 결과 지금은 긴 세월 그토록 무서운 신이라고 생각했던 천연두를 사람들은 아주 멸종시켜버렸다.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난 세대는 몸에 천연두 예방 주사 자국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한데, 이것은 다음 세대가 천연두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기 위해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워서 이겼다는 점을 증명하는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요즘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사회가 크게 변화한다는 데 대한 이야기로 어느 곳이든 떠들썩하다. 심지어 나조차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을 얻게 되었을 정도다. 비록 나는 옛 기록의 귀신과 괴물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소설을 쓰려고 궁리하는 작가에 불과하지만, 앞에 소개한 것과 같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돌아보면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결론으로 덧붙여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거에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질병들을 항상 겪으면서 살아왔다는 점이다. 천연두 이외에도 1821년 이후 한반도에 콜레라가 전염되면서 생겨난 피해도 매우 극심해서 전국에 수천, 수만의 사망자가 잠깐 사이에 생겨났고,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궁중을 출입하는 대신들 사이에도 사망자가 눈에 뜨일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그 외에도 말라리아나 홍역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도 오랜 세월 항상 큰 문제였다는 사실이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다가 19세기 이후가 되어서야 미생물학의 발전과 함께 전염병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그 병들을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다루게 된 것이다. 그러니 2030년 시점이면 이런 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나는 우리가 과거의 그 무서운 병들을 물리친 각오로 끈질기게 준비해 나간다면 2030년보다 앞선 시점에서 코로나19의 유행을 결국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연두나 콜레라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코로나19의 피해 때문에 사회가 영향을 받는 것 이상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 큰 생각의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을 위해서는 언제나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그에 대응하는 인력들에 대한 지원, 기술에 대한 투자와 그 기술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수단이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결국은 물질과 기술에 답이 있다. 마스크와 방호복을 만들려면 폴리프로필렌이 있어야 하고, 진단을 위해 유전물질을 뽑아내려면 페놀이나 클로로폼이 있어야 한다. 나는 자연이 내리는 천벌이나 사회와 인간의 원죄에 대해 막연히 떠드는 논객의 말이 아니라, 공장과 기계와 기술자와 의료진의 땀에 지불하는 월급이 결국 바이러스를 물리칠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이 커다란 충격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느끼는 만큼, 앞으로는 바로 그 시선으로 우리 사회와 그 과거를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임금이나 어떤 장군이 무슨 위업을 이루었고, 어떤 정치 세력이나 경제 계층이 몇 년에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법 배웠고 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대체 한반도에 천연두가 언제 들어와서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떻게 퍼졌는지, 콜레라는 어떤 병이면서 언제부터 어떻게 사람들을 괴롭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낯설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충격과 비교해 본다면 과거의 질병들이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에 끼친 영향은 어느 왕이나 영웅의 일 못지않게 컸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코로나19를 크게 느끼는 만큼, 사회와 그 역사를 다시 되돌아볼 때에도 영웅의 활약과 정치사건 대신에 사회 구성원들 각각의 몸이 겪는 변화를 중심에 놓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거를 보는 시선이 그렇게 바뀌는 것이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이후 이런 관점의 연구는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2030년 즈음의 세상이라면 사회 변화와 그 원동력을 따져 볼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변화, 자연의 변화, 문화의 변화를 보다 중요한 원인으로 놓고 한 번 다시 돌아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③바이러스와 함께 돌아보기
곽재식
소설가, 화학자. 1982년생
소설집 『토끼의 아리아』 『행성 대관람차』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장편소설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저서 『괴물 과학 안내서』 『한국 괴물 백과』 『로봇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등
기획특집03
바이러스와 함께 돌아보기
『일본서기』는 일본 고대사에 대해 기록해 놓은 가장 대표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14권에는 서기 463년에 일어난 사건이라면서 흔히 길비(吉備) 씨의 난이라고도 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일본의 궁중에 드나들며 왜국 왕과도 여러 가지 관계를 맺던 길비 씨 가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반란, 전투, 사건 사고 등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길비 씨는 백제와 가야를 이용해 세력을 키우면서 일본 정치판을 뒤엎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사건은 짧게 이야기하기에는 복잡하다. 마침 이 무렵은 광개토대왕의 등장과 그 정복 전쟁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던 시기에서 멀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일어난 격변과 분명히 관계가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일이 일본에서도 같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자잘한 사건들이 같이 엮여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길비 씨가 친구들에게 “천하의 미인들 중에서 내 아내만 한 사람이 없다. 빛나고 온화하여 너무나 아름다우니 화장도 필요 없고 향수를 바르지 않아도 된다. 넓은 세상에 견줄 만한 사람이 드물구나”라고 자랑한 일조차도 전쟁과 음모에 관계가 있는 사건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광개토대왕의 전쟁 이후 도대체 한반도와 일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백제, 신라, 가야와 일본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 갔는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서 진상을 알아내려고 연구해 온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소설가로서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는 대목은 따로 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건의 도중에 보면 제군(弟君)이라는 사람이 무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려 했다는 기록이 잠깐 나온다. 이때, 제군 앞에 나라의 신이 노녀(老女), 즉 늙은 여자로 변해서 홀연히 나타나 길 앞에 섰다고 한다. 제군은 신에게 신라가 얼마나 먼지 가까운지를 물어보는데, 그러자 신은 다시 하루를 더 간 다음에야 도착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제군은 신라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도대체 제군은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정말로 무슨 신령스러운 현상을 본 것일까?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본 것뿐인데 전쟁터에 나가기 싫어서 대충 신이 가지 말라고 했다고 둘러댄 것일까? 나는 고대 일본 사람들 사이에 신라와 관련한 어떤 주술적이거나 종교적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짐작해 본다. 아닌 게 아니라 같은 자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시점인 서기 465년 음력 3월의 기록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왜국 왕이 신라를 직접 공격하려고 했다가 또 신이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나는 일본군에게 신라로 가지 말라고 하는 이 신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보았다. 예전에 이 내용을 소재로 짤막한 소설을 한 번 썼던 적도 있다. 서기 400년대의 일이면 신라에서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널리 퍼지기 이전이다. 그러니 이 신은 어쩌면 무당과 토속신앙에서 떠받들던 어떤 신령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신라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던 어느 할머니 무당이 있었는데 그 인기가 일본에까지 퍼지는 바람에 그 영향을 받아 이런 이야기가 생겼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또 다른 가능성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고대 일본인들이 느꼈던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기록 속의 신이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섬나라로 고립되어 있는 일본은 상대적으로 먼 곳에서 퍼져 오는 여러 가지 전염병에 안전한 편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만큼, 한 번 전염병이 제대로 퍼지면 별다른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걷잡을 수없이 빠르고 심하게 피해가 퍼져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대의 일본인들에게 한반도의 백제와 가야는 섬 바깥과 교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통로였다. 이 말은 일본의 문화가 발달하고 한반도와 교류가 늘어날수록, 대륙 지역으로부터 전염병이 들어와 퍼지는 무서운 난리가 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7세기가 지나고 8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에 천연두가 들어와 무섭게 퍼져 나갔다는 이야기는 일본에서 기록에 남아 있는 이야기다. 이때 일본을 휩쓴 천연두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일본 인구의 몇 분의 몇이 사라졌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 때문에 일본의 역사와 전통이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신라의 삼국통일 시점에서 멀지 않다. 그렇다 보니 어쩌면 삼국통일 시기에 멸망해 가는 백제를 돕기 위해 일본에서 건너 간 군사들이 신라 군사들과 싸우다가 천연두 바이러스를 일본으로 묻혀 갔기 때문에 일본에 이렇게 극심한 병이 갑자기 퍼진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퍼져 나가는 전염병을 고대 사람들은 무서운 신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마침,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서 “호구마마” 등의 이름으로 천연두를 퍼뜨리는 귀신을 할머니 형상으로 생각하는 풍습이 있었다. 혹시 고대의 일본인들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후에 사회에 퍼져 나간 전염병을 징벌을 내리는 신의 뜻으로 생각하면서 신라로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여신으로 상상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고대 일본인들은 천연두 바이러스를 신라의 수호신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천연두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단히 골치 아픈 질병이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천연두를 상징하는 귀신이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을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어린이가 한번 천연두에 걸리면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심을 다해 천연두 귀신에게 예를 다하기도 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두역유신변증설」 등을 보면 조선 말엽까지도 천연두 귀신에 대해 말과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엄한 예절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천연두가 생기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그야말로 운명에 달린 일이었다. 대단한 권세를 누리는 궁중 인사의 자식들이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 가문의 출생이더라도 어느 날 천연두에 걸려서 낫지 않아 생명을 잃으면 그것은 그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세상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것이 우리 역사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천연두가 왜 생기는지, 무엇이 천연두의 원인이고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이것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의 삶을 이끄는 데 대해 굉장히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전염병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을 하늘의 뜻으로 여기는 세상이 아니라 그 이유를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인생과 세계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방 접종을 무기로 세계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천연두 박멸 활동을 꾸준히 진행해 온 결과 지금은 긴 세월 그토록 무서운 신이라고 생각했던 천연두를 사람들은 아주 멸종시켜버렸다.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난 세대는 몸에 천연두 예방 주사 자국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한데, 이것은 다음 세대가 천연두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기 위해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워서 이겼다는 점을 증명하는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요즘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사회가 크게 변화한다는 데 대한 이야기로 어느 곳이든 떠들썩하다. 심지어 나조차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을 얻게 되었을 정도다. 비록 나는 옛 기록의 귀신과 괴물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소설을 쓰려고 궁리하는 작가에 불과하지만, 앞에 소개한 것과 같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돌아보면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결론으로 덧붙여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거에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질병들을 항상 겪으면서 살아왔다는 점이다. 천연두 이외에도 1821년 이후 한반도에 콜레라가 전염되면서 생겨난 피해도 매우 극심해서 전국에 수천, 수만의 사망자가 잠깐 사이에 생겨났고,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궁중을 출입하는 대신들 사이에도 사망자가 눈에 뜨일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그 외에도 말라리아나 홍역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도 오랜 세월 항상 큰 문제였다는 사실이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다가 19세기 이후가 되어서야 미생물학의 발전과 함께 전염병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그 병들을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다루게 된 것이다. 그러니 2030년 시점이면 이런 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나는 우리가 과거의 그 무서운 병들을 물리친 각오로 끈질기게 준비해 나간다면 2030년보다 앞선 시점에서 코로나19의 유행을 결국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연두나 콜레라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코로나19의 피해 때문에 사회가 영향을 받는 것 이상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 큰 생각의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을 위해서는 언제나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그에 대응하는 인력들에 대한 지원, 기술에 대한 투자와 그 기술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수단이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결국은 물질과 기술에 답이 있다. 마스크와 방호복을 만들려면 폴리프로필렌이 있어야 하고, 진단을 위해 유전물질을 뽑아내려면 페놀이나 클로로폼이 있어야 한다. 나는 자연이 내리는 천벌이나 사회와 인간의 원죄에 대해 막연히 떠드는 논객의 말이 아니라, 공장과 기계와 기술자와 의료진의 땀에 지불하는 월급이 결국 바이러스를 물리칠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이 커다란 충격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느끼는 만큼, 앞으로는 바로 그 시선으로 우리 사회와 그 과거를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임금이나 어떤 장군이 무슨 위업을 이루었고, 어떤 정치 세력이나 경제 계층이 몇 년에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법 배웠고 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대체 한반도에 천연두가 언제 들어와서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떻게 퍼졌는지, 콜레라는 어떤 병이면서 언제부터 어떻게 사람들을 괴롭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낯설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충격과 비교해 본다면 과거의 질병들이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에 끼친 영향은 어느 왕이나 영웅의 일 못지않게 컸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코로나19를 크게 느끼는 만큼, 사회와 그 역사를 다시 되돌아볼 때에도 영웅의 활약과 정치사건 대신에 사회 구성원들 각각의 몸이 겪는 변화를 중심에 놓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거를 보는 시선이 그렇게 바뀌는 것이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이후 이런 관점의 연구는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2030년 즈음의 세상이라면 사회 변화와 그 원동력을 따져 볼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변화, 자연의 변화, 문화의 변화를 보다 중요한 원인으로 놓고 한 번 다시 돌아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