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萬里城 만리성

소설에 새긴 이름, 영원의 장소들

수필은 삶의 모습을 그대로 남긴다

서울,2030년 - 포스트코로나 시대 읽기 ①환란일지 ②2030년 서울, 그리고 레이턴시 ③바이러스와 함께 돌아보기 ④마스크에 관한 학교괴담

군함도가 울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을 기억하는 이유

유머는 엄숙함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늘 지루하고 딱딱한 아버지의 설교

소설가 상허 씨의 일일

찬탄과 논란의 굴곡, 미녀 뽑기 90여 년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2001년 봄, 젊은 시조시인들

당산대형의 꿈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이 일본에서 그린 특이한 형식의 그림

①울릉도,초생활 ②미의,저쪽은 모른다

①그분이 오신다 ②기미

화내지 마세요!

①완성의 속도 ②코로나 여름, ‘국뽕 아재’의 기원 ③적막과 고요와 침묵

아무일 일어나지 않는 40호 남짓 시골마을, 그 사람들과 정서

진퇴양난의 그해 겨울 막바지에 쓴 시

7월은 가장 잔인한 달

①일상과 일상 너머를 아우르는 탄력있는 상상력 ②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문학의 흐름과 성취는?

한반도, “지리의 포로”에서 “지리의 힘”으로

인간의 눈, 개의 마음

첫 책, 『자연사박물관』 그 예측을 넘어

어떤 가족의 우스꽝스러운 비극

“일본 동북사투리가 너무 어려웠어요. 게다가 한국역사도…”

새로운 창작품을 읽는 느낌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대산세계문학총서

2020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제28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선정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 소월시 100년, 한국시 100년

단편소설

②기미

박서련
소설가, 1989년생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소설집 『서로의 나라에서』(공저) 등

기미





언니. 일어나.
원희는 새벽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매번 그것이 자기 모친의 음성이라는 것을 잊은 채로 깨어난다.
그 인간이 또 왔어. 무서워 죽겠어.
“어디.”
저기 있잖아. 저기. 빨리 내쫓아.
원희는 몸을 뒤집어 바닥을 짚는다. 등을 대고 있던 자리에 식은땀이 배어 서늘하다.
양팔을 뻗은 채로 엄마가 가리키는 허공을 향해 걷는다. 엄마는 계속 뇌까린다. 아아 무서워, 무서워 죽겠네. 고와이요. 고와이데스요. 원희는 팔을 휘휘 내젓는다.
“나가. 나가.”
갔다 갔어. 아이 다행이다.
이렇게 끝나는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어떤 날은 빗자루를 휘둘러도 소금을 뿌려도 소용이 없다.
엄마는 다시 잠든다. 가래 섞인 숨소리가 높낮이를 달리하며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끊어진다. 가래가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넘어간 가래를 밥 먹다 말고 툭 떨어뜨릴 때도 있다. 가래가 알아서 나오는 건 좋은 일이다. 엄마는 숨을 몰아쉬고 볼 근육에 힘을 주어 가래를 뱉을 힘이 없고, 가래가 잘못 넘어가면 기도를 막을 수도 있다. 원희는 한쪽 무릎을 세워 윗몸을 기댄 채 엄마의 잠을 살핀다. 한껏 부풀어 올랐다 푹 꺼지는 이불 위에 새벽 기운이 푸른 띠처럼 도사린다. 조금 전 엄마가 가리켰던 방향에는 오래된 텔레비전의 반질반질한 화면이 있다.
일과가 그렇게 시작된다.
텔레비전을 켜 두고 부엌으로 가 새로 미음을 쑨다. 텔레비전 화면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면 이내 엄마의 잠이 얕아진다. 처음에는 음소거 상태로 해 두었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소리를 점점 키워 자연스럽게 깨도록 하는 것이다.
이 요령을 터득하는 데에 반년이 걸렸다.
엄마가 깨어나면 요강에 앉혀 아침 소변을 누게 하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틈틈이 따로 일을 보게 해 주기는 하지만 원체 방광이 약하고 밤사이 물똥을 지릴 때가 더러 있어 평소에도 기저귀를 채워두어야 한다. 요강을 비운 다음 아침상을 차린다. 지은 지 하루가 넘은 미음을 상에 올리면 엄마는 냄새가 난다며 고개를 돌린다. 갓 쑤어낸 새 미음에 잘게 자른 젓갈을 올려주어야 받아먹는다.
여기에 독을 탔지?
엄마는 그릇에 고개를 처박을 듯 수그린 채로 묻는다. 이런 질문도 처음이 아니다.
“안 탔어.”
독을 탔어. 날 죽이려고.
“안 탔어.”
언니 이 개 같은 년아.
엄마는 반쯤 고꾸라진 자세 그대로 얼굴만 쳐들고 원희를 노려본다. 원희는 엄마 앞에 놓인 그릇을 제 앞으로 끌어온다.
“멀쩡한 밥에 독을 타긴 왜 타.”
엄마는 연거푸 숟갈을 입으로 가져가는 원희를 보다가 주먹으로 상을 내리친다.
내놔. 내놔. 내 거야.
원희는 그릇을 도로 엄마 앞으로 밀어준다. 엄마는 숟가락을 쥐고 물끄러미 보는 듯하더니 그릇과 함께 내동댕이친다.
후게츠.
후게츠.
원희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지만 그 말은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다. 상을 닦고 새로 미음을 한 사발 떠 다시 엄마 앞에 둔다. 모친은 배가 고파서인지 제풀에 지쳐서인지 더는 타박하지 않고 미음을 먹는다.
밥상을 걷은 뒤에는 텔레비전을 켠다. 세상이 좋아져서 여섯시가 되기 전부터도 텔레비전에 사람이 나온다. 엄마는 아래턱을 떨어뜨린 채로 젊은 남자 연예인이 진행하는 요리 쇼 프로그램 재방송 분을 보고, 원희는 그러는 엄마의 뒤통수를 보다가 나와서 방문을 닫는다. 문에는 손잡이가 없고 뻥 뚫린 손목 두께 구멍 두 뼘 위에 자물쇠 걸이가 달려있다. 맹꽁이자물쇠를 걸어 꾹 누르고 원희는 집을 나선다. 현관문은 신호음을 내며 자동으로 잠긴다.
안개가 짙다. 원희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전자키 버튼을 누른다. 빌라 앞 공터에 서 있던 승합차가 짧은 경적소리로 화답한다. 안개가 짙어도 차는 노랗다.
하루의 첫 승객은 새벽 운동을 하는 태권도장 아이들이다. 새벽반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등록할 수 있다. 새벽반 일곱 명 중에 세 명은 군인 아파트에 살고, 군인 아파트에서 차에 타는 아이들은 전부 초등학생이다. 군인 아파트는 시내에서 십여 분 떨어진 공터에 문득 솟아있는 오래된 건물이다. 원희가 사는 소읍 전체를 통틀어 십 층이 넘어가는 건물은 군인 아파트뿐이다.
군인 아파트에 살지 않는 아이들 중 두 명은 중학생, 두 명은 고등학생이다. 새벽반 아이들은 다들 한 해 넘게 새벽반으로 도장을 다녀서 서로 잘 안다. 오가는 길에 각자 모은 사진과 동영상을 서로 바꾸어 가며 본다. 새벽반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남자애들이다. 때문에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전부 헐벗고 있다는 것쯤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숨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원희는 자주 라디오 소리를 높인다.
새벽반 아이들을 돌려보낸 다음에는 학원 근처 함바집에 간다. 주머니에서 식권 뭉치를 찾아 한 조각 뜯어 카운터 위에 둔다. 집에서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서 밥을 못 먹는다. 하루 종일 입으로 적신 이불과 찔끔찔끔 대소변을 지린 요에서 풍기는 냄새. 식당은 한산하다. 음식은 짜고 맵다. 원희는 숟가락을 놓는다. 자판기에서 나오는 공짜 프림 커피를 들고 차에 탄다.
유치원 등원 시간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다 해도 집까지는 차로 십분 거리가 안 되지만 원희는 차 안에서 쉰다. 안전벨트를 풀고 등받이를 뒤로 젖힌다. 사월이지만 아직 아침은 쌀쌀하다. 원희는 양손을 교차해 겨드랑이에 찔러 넣었다가 사타구니로 옮긴다. 손바닥으로 가랑이를 쓸어 마찰열을 내다가 두덩뼈를 건드린다. 한두 번은 스쳤다고 할 만하지만 계속 손이 가니 이제 우연도 아니다. 두덩살 가운데를 엄지손가락 마디뼈 하나로 꾹 누른 채 원희는 다리를 꼬아 오므린다.
몇 번인가 그렇게 힘을 주다가 손을 아예 빼버린다. 등받이를 바로 세우고 시동도 켜지 않은 차의 운전대를 양손으로 꽉 잡는다. 할일도 없고 만날 만한 사람도 없다. 이 시간에는 더욱 그렇다. 집으로는 가지 않는다. 꾸벅 졸기라도 했다가는 유치원 등원 시간을 놓칠 수 있다. 벌써 반년 전 이야기지만 전임자가 해고된 것도 그래서였다.
원희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차를 출발시킨다. 소읍을 반쯤 감싸며 흐르는 천변 도로로 차를 몬다. 몇 바퀴 돌고 출발하면 그럭저럭 시간이 맞는다. 유치원 등원 시간 원희의 역할은 제일 먼 동네에 사는 어린애들을 태워 데려오는 것이다. 시내 지역 애들을 한 번에 거의 스무 명씩 데려다 놓는 15인승 차량을 유치원에서는 ‘큰차’라고 부르고 원희가 모는 9인승 보조차량은 ‘작은차’라고 부른다. 큰 차는 시내를 두 번 돌고 작은 차는 외곽으로 한 번 돈다. 외곽 지역은 집과 집 사이가 워낙 멀어 큰 차 두 바퀴, 작은 차 한 바퀴 도는 시간이 거의 비슷하다.
하원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집에 갈 수밖에 없다. 이 뜨는 시간에 집 말고 달리 갈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원희는 자주 생각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원희가 단순한 사람이어서도 그렇고 이 고장이 단순한 소읍이어서도 그렇다. 원희는 등받이를 바로 세우고 시동을 건다. 갈까. 집. 차는 공회전 상태로 오래 그 자리에 머문다.

*

먼저 온 것은 뇌졸중이었다. 갑작스러웠다. 노인성 질환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그 질병의 이름을 알고 또한 자기가 늙었다는 것을 알지만, 두 가지 사실을 연결지어 생각할 일은 별로 없고, 생각한다고 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니까. 하지만 징조는 있었다. 엄마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기 이십분쯤 전 불량이 나서 라인이 멈췄다. 원희에게도 원희가 속한 라인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라인을 멈추고 긴급 검품을 해 보니 연달아 열 개가 넘는 것이 불량이었다.
그렇게 많은 불량이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은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덕분에 쉬는 시간 아닌 쉬는 시간이 생겼고 그래서 원래라면 바로 받을 수 없었을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그래서 원희는 그날 라인 불량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원희와 나이 터울이 제법 나는 오빠 부부는 이미 엄마를 돌보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오빠의 아이들은 각각 다른 지방에 살았다. 선택권이 없었지만, 선택했다. 적어도 원희는 그렇게 믿었다.
경기 북부의 종합병원은 원희가 사는 곳과도 엄마가 사는 곳과도 가깝지 않았다. 원희는 이십대부터 쭉 공장 기숙사나 그 주변에 살았고 원희의 고향에는 종합병원이 없었다. 엄마는 소읍의 가정의원에서 뇌졸중 소견을 듣고 차로 한 시간 걸리는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반신이 마비된 엄마는 뒤늦게 도착한 원희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똑바로 누워있는데 눈물이 짝짝이로 흘렀다. 아깝다 아까워. 엄마는 미안해했다. 나 때문에 네 인생 아까워서 어떡해. 얼굴 절반이 마비된 탓으로 엄마는 된소리 발음을 제대로 못했다. 원희는 생색을 낼 생각이 없었다. 아까울 게 있어야 아까워하지. 나이라면 나도 이미 먹을 대로 먹었는데. 그럴 때 엄마는 기품 있는 시체 같았다. 다 큰 딸에게 아랫도리 시중을 맡기는 게 민망해서 늘 눈을 꼭 감고 있던 엄마는. 힘주어 눈감은 엄마의 얼굴은 매번 다르게 비대칭으로 일그러졌다.
반년이 못되어 치매가 왔다.
상태가 나아져 자리에 앉아 밥을 스스로 떠먹을 수 있게 되었을 즈음이었다. 엄마는 밥그릇을 던지면서 욕을 했다.
팔 힘이 없어서 원희나 원희 뒤 벽을 겨누어 던졌을 밥그릇은 상 테두리에서 떨어져 원희의 발 앞에서 굴렀다. 빌어먹을 년. 도둑년. 더러운 년. 언니! 언니! 언니 이 씨발년아. 개흘레를 붙을 년아. 이게 엄마의 본심일까. 몸만 상하고 정신은 멀쩡했을 때가 위선의 시절이었던 걸까. 한 달쯤 지나 엄마는 또다시 뇌졸중 발작을 일으켰다. 1차 발작 때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 훨씬 더 적어졌다. 기왕이면 얼굴이 다 마비되었어야 하는데. 적어도 혀가 마비되었어야 하는데. 그래야 욕을 못할 텐데.
엄마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냥 지쳐서, 원희는 이런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듣는 욕설이라고 상처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욕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자기를 미워하는 가죽자루 같은 것이 여전히 원희의 엄마였기 때문에,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리어 상처를 받았다. 똥기저귀를 치우고 주에 한두 번 꼴로 이불빨래를 하고 엄마를 뒤집어 욕창에서 흘러나온 진물을 닦고, 그런 것들은 오히려 별일이 아니었다. 그 모든 일을, 뱉을 수도 없는 침을 모아 흘리며 원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위해 해야 한다는 것이 정작 문제였다.
얼마간 모은 돈도 있고 퇴직금도 있어 당장은 버틸 만했지만, 얼마나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면서 수입을 아예 끊어버릴 순 없었다.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일 때 다시 취직을 해야 했다. 다만 고향 소읍에는 우선 일자리가 별로 없었고, 몇 안 되는 일자리 가운데 원희가 할 만한 일은 더욱 없는 듯이 보였다. 원희는 공장 일이 제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돈으로 환산된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직종. 단순 반복 작업이 잘 맞는 편이고 공장을 오래 다닌 이력 덕에 길이 들어 있기도 했다. 엄마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장은 차로 30분쯤 가면 나오는 닭고기 가공공장이었다. 늘 모집 중이었기에 연락을 넣고 어렵지 않게 면접을 봤다. 공장의 면접이란 부적격자를 떨어뜨리려고 치르는 것이 아니고 일터가 어디인지, 언제부터 출퇴근을 하면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운 법이다. 수기로 쓴 이력서를 지참하고 공장에 간 원희는 다음 주부터 출근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원희가 공장 일의 장점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엄마를 돌보는 것과 관련해서는 모두 단점이 되었다.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것, 잔업이 많은 것, 만근을 권하는 것. 포장 라인이 돌아가는 동안에 엄마가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명절 앞두고 물량을 맞추느라 잔업으로 야근을 할 때, 주말 특근을 하고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차로는 삼십 분이지만 통근 셔틀버스로 다닌다 치면 왕복 두 시간인 출퇴근길에 그 일이 일어난다면. 공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록 놔둔다는 의미였다. 첫 발작이 일어난 이후 원희는 항상 일종의 각오를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었지만, 자기가 어떤 일을 일부러 해서, 또는 하지 않아서 엄마가 어떻게 되는 상황은 그리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

“그럼 분유를 타 드려. 분유에 영양분 얼마나 많아.”
성미는 곡명을 짐작도 할 수 없는 클래식 음악을 틀고 자리에 앉는다. 원희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한 시 반 초등 저학년 태권도 수강생들을 데려다 놓고 피아노 학원 응접실에 앉아 성미와 커피를 마시는 시간. 엄마가 또 새벽부터 미음그릇을 엎어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한 참이다. 원희는 성미가 프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을 깎아 금색 도료로 장식한 찻잔에 옮겨 담는 것을 유심히 본다. 마침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인지 프림의 질감이 분유와 비슷해 보인다.
“해봤어. 달아서 그런가 잘 드시지도 않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똥냄새가 더 역해지더라. 원희는 그 말을 하지 않는다. 성미는 혀를 차며 전기포트를 기울인다.
화제 때문인지 오늘따라 커피는 똥색이고 증기는 갓 싼 똥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느껴진다. 원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뜨거운 커피를 입에 머금는다. 원희의 심상을 알 리 없는 성미도 우아하게 커피 잔을 들어 쥔다.
성미는 원희가 아는 사람 가운데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다. 성미는 3층 피아노 학원에서, 성미의 남편은 2층 태권도장에서, 성미의 큰딸은 1층 유치원에서 선생 노릇을 한다. 읍내에서 차로 오분 남짓 떨어진 사 층 건물이 성미 일가의 것이다.
틈틈이 집으로 돌아가 엄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학원차 운전 일을 시작한 것은 친구 성미의 배려 덕이었다. 면허를 한참 전에 딴 데다 갱신을 해야 하는 줄도 몰랐던지라 다시 운전학원에 한 달 정도 다녀야 했는데 성미는 그것도 기다려주었다. 운전을 원래 하지 않던 사람이어서 적응하는 게 걱정이었는데 차가 적은 시골길 운전이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급여를 현금으로 처리하는 것이 괜찮았다. 성미에게도 원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수입이 없는 셈이어서 원희는 엄마 이름으로 수급자 신청을 넣을 수 있었다. 엄마는 다른 건 잘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면서 본인 이름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이 있다는 것만큼은 금세 알아차렸다. 언니 네 이 도둑년아. 엄마는 그 돈만으로 엄마의 생명을 유지할 수는 없고 원희가 세금을 떼지 않고 벌어오는 돈이 그보다 많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고생을 시키실까? 네가 언제 속을 썩이기나 했어야 이제 와서 죄받는다고 하지, 너처럼 얌전한 애가 없었는데.”
성미의 나쁜 버릇은 엄마를 원희의 벌처럼 말하는 것이다. 원희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엄마의 병은 원희의 업보가 아니었다. 때문에 의미 없는 원망은 하지 않는다.
“엄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게 답답해. 다른 게 힘든 게 아니고.”
“애인이 없어서 그래. 애인 하나 만들어 볼래?”
화장실 청소 솔을 새것으로 바꾸라는 투로 성미는 말한다. 커피를 보며 엄마가 갈긴 똥을 떠올리고도 아무렇지 않던 원희는 놀라서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크게 삼킨다. 앗 뜨거.
“무슨 애인, 이 나이에?”
“애인 사귀는 데 나이가 따로 있니? 우리만 늙고 남자는 안 늙니? 늙은 남자 젊은 여자 만나는 거, 도시에서나 그렇지. 시골 살면 우리 또래 남자들 다 또래 찾아. 사람이 없으니까.”
아침저녁으로 들르는 함바집에서 가끔 자기 몸에 머무는 시선을 의식한 적이 있기에 원희는 성미의 말을 금세 이해한다. 이따금 학원차 안에서 가랑이 사이에 손을 꽂고 있는 습관도 잠깐 떠오른다.
“애인 하나 안 사귀고 시골 살기 얼마나 심심하니?”
“너도 있어? 애인.”
원희는 성미의 남편을 떠올린다. 나이 치고 탄탄한 몸이지만 술 담배로 배에만 살이 두둑하게 오른 남자. 얼굴만 봐도 나 성격 있소, 쓰여 있는 남자. 성미는 웃는다. 원희는 성미의 웃음을 긍정으로 이해한다. 성미는 자기 얘기를 건너뛰고 남편 욕을 늘어놓는다.
“그 인간은 뭐 바람 안 피우는 줄 아니. 걸린 것만 몇 건인데. 나 다 안다고, 돌려 말하면 알아듣지를 못해. 아예 대놓고 학부형하고는 그러지 말라고 하고부터 좀 자제를 하지, 네가 그 인간 군인 마누라 건드리고 개망신 당한 꼴을 봤어야 되는데.”
그런 일이 있었구나. 다들 쉬쉬하겠지만 당시에는 이 심심한 동네에서 큰 구경거리가 났겠다. 원희는 그 일을 목격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다행이라 여기는지 헷갈려 하면서 멋쩍게 웃는다.

*

언니.
언니 남자 생겼니?
원희는 뒤를 돌아보는 대신 거울에 비친 엄마의 얼굴을 본다. 엄마는 잘 움직이지 않는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웃고 있다. 뭔가에 씐 것처럼 어린 여자애 말투로 원희를 부르는 엄마가 새삼 징그럽게 느껴진다. 차라리 욕을 하지.
지랄을 하지, 평소처럼. 원희가 하는 생각에는 원망도 타박도 섞여있지 않다. 다만 기저귀를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안다. 방광이 비어 편해져서일까, 엄마는 오줌을 쌀 때마다 저런 표정을 짓는다.
기저귀를 싸서 버리고 돌아온 원희는 다시 좌식 화장대 앞에 앉는다. 화장품 몇 가지는 원희가 원래 쓰던 것이고 또 몇 가지는 예전에 엄마에게 선물한 것이고, 나머지 몇 가지는 엄마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다. 화장품 특유의 인공적인 냄새에 엄마의 침과 오물 냄새가 섞여 찌르듯 고약한 향이 난다. 못해도 삼사 년은 묵은 립스틱의 질감과 냄새는 유치원생들이 쓰는 향기 나는 크레파스 같다. 종일 해를 쬐며 운전을 하느라 그을고 군데군데 거뭇거뭇한 얼룩 따위가 생기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손으로 쓸면 느껴지는 요철이 있는 얼굴은 질이 영 떨어지는 종이 같다. 때문에 화장은 자꾸 원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되지 않고, 어린애의 색칠공부 책처럼 어딘지 괴기스러운 모양이 된다.
공장 기숙사에 살 때 원희는 멋쟁이 선배로 통했다. 숙식에 돈이 많이 들지 않아서 버는 대로 고스란히 돈이 모였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없어서 용돈은 주로 옷값, 화장품값에 썼다. 같이 일하는 공장 사람들은 애인도 없는 원희가 멋을 부리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한편 통이 큰 원희를 좋아했다. 옷이나 화장품을 아낌없이 빌려주고는 망가뜨려도 물어내라 하지 않는 원희. 제 물건을 그리 아까워하지도 않는 원희가 그래도 멋을 부리고 다닌 까닭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원희는 공장에 다니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공장을 좋아했지만 사람들이 공순이를 어떻게 보는지는 신경을 썼다. 멋을 내고 외출하면 원희보다 한참 어린 남자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은근한 보람이 있었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원희는 한동안 생각도 않고 지냈다.
원희는 카세트테이프 조립 공장에서 고데기를 만드는 공장으로, 고데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휴대용 포토 프린터를 만드는 공장으로 이직했다. 원희가 나 그거 만들어요, 하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원희가 공장에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제품의 개발부서쯤 되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원희는 점차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만 갖게 되어갔다. 더는 아무와도 만나지 않게 된 지도 여러 해가 된 참이었다.
앞으로의 관계에는 그런 일이 없을까.
주말이어서 학원차를 몰 필요도 없고, 학원차를 몰 때야말로 화장할 필요가 없어 항상 맨얼굴이던 원희가 오랜만에 화장대 앞에 앉은 것은 성미가 산악회에 원희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성미는 나이트니 카바레니 다 소용없고 이게 최고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다 늙은 인간들이 서로 등 떠밀어주고 헉헉대면서 산 타는 게 뭐 그렇게 신통한 일이라고 그럴까. 원희는 화장을 다 하고도 뭔가 빠뜨린 듯한 기분에 한참 거울 앞에 그대로 앉아 있다가 나와서 방문을 걸어 잠근다. 자기 차를 몰고 집 앞까지 마중을 온 성미가 경적을 울린다.
“데리러 올 것까진 없는데.”
“데리러 안 오면 뭐, 학원차 끌고 나오려고 했어?”
성미의 핀잔에 원희는 배시시 웃는다. 어쩐지 화장을 할 때부터 속이 근질근질했는데 이제야 웃음이 난다. 어렸을 때는 새 옷을 입을 적마다 이렇게 속이 간지러웠는데, 그러고 보면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할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됐다. 집에서는 영 나지 않던 웃음이 성미의 차 안에서야 터져서는 잘 그치지 않는다.
성미가 원희를 데려간 곳은 고향 소읍에서 차로 삼십 분쯤 떨어진 산이다. 소읍 사람들은 별로 찾지 않지만 오히려 산 타기 좋아하는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더 이름이 난 산. 주차장도 널찍하고 올라가는 길에 절도 있고 쌍쌍이 앉아있기 좋은 장소도 곳곳에 있다고 성미가 귀띔을 준다.
“마음에 드는 남자 있으면 무조건 들이대. 알겠지?”
“애인이나 부인 있다고 하면 어떡해?”
“알 게 뭐야, 이런 데에서 만나서 오래가는 남자도 없어.”
원희가 간과한 것은 또래 남자를 만나는 일도 오랜만이지만 등산을 안한 지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며 돌보느라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던 체력이 산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헐떡이며 일행 뒤로 처지고 처지는 원희를 성미는 챙겨주지 않는다. 산악회에서 만난 남자와 저만치 앞서나간다.
“많이 힘드세요?”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원희는 흘끗 그를 돌아보고는 그가 자기 몫으로 남겨진 짝이겠거니 짐작한다.
원희가 제때 대답을 않자 남자는 끙차, 하고 헛힘 쓰는 소리를 내며 원희 허리를 받쳐 민다.
“하지 마세요.”
원희는 당황하여 그를 만류하지만 남자는 끙차, 끙차 소리를 되풀이해서 내며 원희를 밀어 올린다. 혹시 내 말이 애교나 아양으로 들렸나. 원희는 그런 생각으로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가 곧 힘을 풀고 몸을 맡긴다. 그러고 보면 양손으로 등허리를 다 감쌀 만큼 큰 손이 제 몸에 닿은 감각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불현듯 아랫도리가 뿌듯해진다.
산에서 내려온 다음에 원희는 큰 고민도 없이 그와 정사를 나눈다.
아끼기에는 늙은 몸이야. 원희는 군데군데 희끗한 털이 솟은 남자의 가슴팍을 손끝으로 쓸면서 생각한다. 하나도 아깝지 않다. 원희에게는 아까운 것이 하나도 없다.

“가 봐야 해요.”

일어나 브래지어 후크를 다시 채우는 원희에게 남자는 다 안다는 투로 말한다.
“남편 때문에?”
“남편 없어요.”
“나도 혼자예요. 자고 가지 그래요.”
남자는 나이에 맞지 않게 응석을 부리듯 원희를 부른다. 돌아보니 남자는 손을 내밀고 있다. 원희는 피식 웃는다. 데려다준다는 말을 거절하고 모텔을 나와 걸어서 집까지 간다. 서울로 통하는 국도변에 자리한 모텔에서부터 원희의 집까지는 걸어서 사십 분이 걸린다.
자물쇠를 따고 들어간 안방의 어둠 속에서 원희는 잠시 머뭇거린다.
소리가 안 들린다.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 숨을 놓아버린 걸까, 엄마는.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언제 숨을 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엄마는. 하필이면 원희가 남자와 몸을 섞는 사이에 엄마는. 불을 켜야 하는데 스위치가 잘 짚이지 않는다. 원희는 귀와 손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면서 벽을 더듬는다.
언니야.
불쑥 엄마의 목소리가 나타나 원희의 발목을 잡는다. 언니야, 라고 한 걸까 원희야, 라고 한 걸까. 엄마의 맑은 정신은 아주 드물게 돌아오곤 한다. 엄마의 정신이 분명해지는 순간은 원희가 엄마를 돌보는 고생을 모두 헛것이 되지 않게 하는 아주 작고 뚜렷한 위로인 동시에, 나머지 모든 순간의 죄책감을 서너 배로 부풀리는 것이다. 그제야 손끝에 형광등 스위치가 닿는다. 원희는 숨을 한껏 들이쉬어 머금은 채로 방 불을 켠다.
엄마는 자고 있다.
소리 없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엄마의 윗몸을 원희는 한참 보다가 주저앉는다.
제발 그만하면 안 될까. 엄마.
숨을 그만 쉬면 안 될까. 원희는 아무런 원망도 품지 않은 마음으로 되뇐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숨 쉬는 공기를 아까워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소스라친다.

*

남자는 군인 아파트에 산다. 자기도, 또는 자기야말로 혼자라는 남자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원희는 단 한 번 나갔던 산악회에 더는 나가지 않고, 학원차 운행 시간이 뜨면 남자의 집에 들른다. 산악회 모임에 나가지 않는 것은 남자도 마찬가지다. 쉽게 만났지만 진심이라는 의미에서. 원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남자는 그날 모임에서 원희가 아닌 누군가를 만났을 것이고 누구를 만났어도 정성을 다했을 것이다. 원희는 그 점에 아무런 감흥이 없다. 바로 그래서 이 관계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남자가 아니라 이런 얘기를 하고 가끔 몸을 나눌 만한 낯선 사람이었으니까.
“한번은 엄마가 없어졌었어요.”
남자는 원희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 발작 있고 치매기 생길 무렵이었는데, 멀리도 갔더라고요. 시외버스터미널 가는 길에서 찾았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원희는 남자의 눈빛이 어쩐지 부담스러워 자기가 붙들고 있는 그의 손목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잇는다.
“어디로 가고 싶었던 걸까요? 엄마가 길 줄만 알지 걸을 줄도 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래서 방 문고리를 빼 놨어요. 원희는 고민하다 그 말을 삼킨다. 엄마가 예전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엄마를 가둬놓은 것에는 죄책감을 느낀다. 엄마를 잃어버리면 엄마를 제대로 모시지 않은 것이 되는데,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둬두면 학대가 된다. 엄마가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억지로 뭔가를 먹여 살려 놓는 것도 학대고 아무것도 먹이지 못해 엄마를 굶기는 것 또한 학대. 엄마와 관련된 일마다 빠짐없는 모순이 있다.
엄마를 사람으로 대하기 위해 하는 일이 엄마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일이 되는 모순. 보다 근본적인 모순이 아마 있으리라는 짐작이 불쑥불쑥 원희의 속을 뚫고 나온다. 엄마가 아직도 사람일까 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대체 사람일까 하는,
“가끔은 집에 불이 나는 꿈을 꿔요.”
“불나는 꿈은 좋은 꿈이라던데. 불도 나오고 피도 나오면 더 좋고. 복권 사지 그래요.”
“꿈이 반대라고도 하고 간절히 바라는 게 꿈에 나온다고도 하잖아요. 꿈에서는 내가 집에 없을 때 불이 나요. 엄마는 몸을 못 일으키는데.”
그리고 엄마의 방은 맹꽁이자물쇠로 잠겨있는데.
“집에 불이 났으면 좋겠어요?”
원희는 머뭇거리다 적절한 대답의 때를 놓친다.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집안 곳곳에 깊숙이 밴 노인성 질환의 냄새를 지우느라 촛불을 켰다 끄곤 하니까. 어느 날 원희는 외출 전 촛불을 끄는 일을 깜빡할 수 있다.
엄마는 버르적거리다가 초를 쓰러뜨릴 수 있다. 촛농을 먹은 요가 불타고, 장롱도, 텔레비전도, 엄마의 몸도, 엄마의 마음도, 불에 휩쓸려 사라져버릴 수 있다. 원희가 가끔 꾸는 꿈의 집요하고 구체적인 내용대로.
관계 후 침대에서 남자는 좋은 수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반찬은 젓갈이나 절인 채소밖에 안 먹는다고 했지요?”
“네.”
“젓갈을 하루 이틀 밖에다 뒀다가 주세요. 일부러 상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럼 탈이 날 거란 말이죠. 몸이 그렇게 약한 상태면 조금 탈이 나도 어떻겠어요? 치명적이겠지요.”
남자는 칭찬을 바라듯 원희의 턱과 어깨 사이에 얼굴을 파묻는다. 이런 남자와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는 사실에 원희는 문득 기가 막힌다. 원희가 알고 싶은 건 독을 먹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엄마를 죽일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아니다. 음식에 정말로 독을 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원희는 남자를 밀어내고 일어나 옷을 주워 입는다.
“자고 가요.”
원희는 돌아보지 않는다. 앞으로도 원희가 남자의 아파트에서 자고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고 가기는커녕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엄마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엄마를 어떻게 죽이면 좋을지 묻는 것으로 착각하는 남자와는 다시는 자지 않는다.
발정이 나서 개흘레를 붙을 년아.
엄마가 내뱉은 욕설이 원희의 등에 예언처럼 돌아와 박힌다. 전혀 아깝지 않아,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원희는 아무 소음도 없는 길 위를 귀를 막고 걷 는다.

*

얼렁뚱땅 만났던 남자와 얼렁뚱땅 관계를 끊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도리어 성미가 어쩔 줄 몰라한다. 원희는 왜 그 남자의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 커피잔만 만지작거린다. 그냥 그렇게 됐어, 그렇게. 성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유를 연신 묻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잘 됐지 뭐니. 안 그래도 왜 학원차 기사가 군인 아파트에 드나드느냐고 항의가 들어와서.”
“항의?”
“요새 학부모들 좀 유난이니? 우리 유치원 차 왜 주차장에 있냐고, 왜 아줌마가 우리 아파트에서 나오냐고 애들이 물어본다잖아. 교육상 안 좋다고 글쎄. 내참 그렇게 교육이 신경 쓰이면 왜 여기 살아? 서울로나 갈 것이지.”
성미는 별 얘기 아니라는 투로 말한다.
“그게 왜 교육에 안 좋대?”
원희의 물음에 성미는 원희를 물끄러미 보다가 픽 웃는다.
“몰라서 묻니? 뭐 네가 나서서 사과할 일까지는 아니지만, 네 잘못은 맞잖아. 어디 그런 데에 학원차를 끌고 가? 그렇게 네 자가용처럼 쓰라고 차 키 맡긴 거 아니다, 너.”
그 말에 도리어 원희는 딱 한 번만 더 그 남자를 만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남자의 온몸을 쥐어뜯으면서 정사를 나누고 싶어진다. 온몸이 피와 멍으로 얼룩지고 뼈 마디마디가 울릴 때까지 서로 몸을 부딪친 후에 아파트 복도로 뛰어나와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것 봐. 보라고.
나는 살아있어.
살아있단 말이야. 살아있으니까 하는 일이야. 이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이것밖에는 증거가 없어.
원희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기 안의 소란을 가누지 못해 잠깐 휘청거 린다.
“벌써 가려고?”
미심쩍어하는 성미에게 집에 뭘 두고 온 것 같다고 변명하며, 원희는 밖으로 나온다. 남자에게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지 않기 위해서. 원희가 전자키를 누르자 노란 승합차는 짧은 경적을 울린다.
원희는 천변 도로로 차를 몬다. 손톱 밑이 하얘지도록 힘주어 핸들을 쥐고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속도로 천변을 달린다. 창문을 내리고 소리를 지른다.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인지 원희는 모른다.
몇 바퀴나 돌았는지도 모를 만큼 미친 듯이 차를 몰던 원희는 그마저도 지긋지긋해져 방향을 돌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차는 시 경계선에 닿는다. ‘안녕히 가십시오’ 표지 아래 차를 세우고 시동은 끄지 않은 채로 원희는 기다린다.
무엇인지 모를, 그러나 오고 있을,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길 없는, 원희는 길게 경적을 울린다. 경적 소리에 묻혀 원희가 지르는 비명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곧 피아노 학원 등원 시간이 된다.

*

언니. 일어나.
일어나. 그 인간이 왔어. 그 인간이.
원희가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본 것은 언제나처럼 허공을 가리키는 엄마의 손가락이다. 엄마가 두려워하는, 또는 기다리는, 그 인간은 대체 누구일까. 언젠가 실제로 엄마를 해코지한 적이 있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면 엄마의 정신이 흐려진 다음 생겨난 나쁜 환상일까, 원희는 해답 없는 일에 골몰하는 대신 미음을 끓이러 나간다.
독을 탔지? 여기에 독을 탔지?
언제나와 같은 비난이 쏟아진다. 원희는 잠자코 엄마의 밥그릇이 엎어지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엄마는 원희가 미음에 독을 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짓거리를 그만두고 싶은 건지도. 그렇지만 엄마. 이게 정말 독이라면 차라리 내가 먹고 싶어.
오늘 엄마는 밥그릇을 엎지 않는다. 대신에 원희를 한참 노려보다가 고개를 숙인다. 숟가락을 밥그릇에 기대고 고개를 꺾은 채 핥듯이, 빨아올리듯이 미음을 먹는다. 마치 개처럼…… 작은 젓갈 조각을 더 잘게 자르며 원희는 줄곧 개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지만 개는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지는 않잖아…… 아닌가? 개를 길러본 적이 없는 원희는 아무 죄의식 없이 엄마를 개와 비교할 수 있다. 엄마가 고개를 확 들고 역정을 낸다.
너부터 먹어봐, 그거.
원희는 가위를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어든다. 날벌레만큼이나 잘게 자른 젓갈은 두세 점이 한 번에 집힌다. 오늘따라 젓갈의 냄새가 비리다 못해 씁쓸하다. 원희는 망설이다가 입을 벌린다. 아주 천천히 젓갈을 입으로 가져간다. 젓갈이 혀에 닿기 전,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났는지, 엄마가 원희의 손목을 탁 잡는다. 원희는 손을 멈추고 입을 다문다. 문득 눈이 마주친 엄마는 방금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
“엄마?”
원희는 저도 모르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다. 그 말이 입에서 나오고서야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알아차린다. 엄마는 대답 대신 입을 벌리고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던 원희의 손목을 끌어 자기 입으로 옮긴다. 뜻밖의 손아귀 힘에 원희는 미처 손의 힘을 풀지 못한다. 힘을 더 주어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지도, 젓가락을 아예 놓아 젓갈을 떨어뜨리지도 못한다.
오이시이네.
엄마는 그제야 원희의 손목을 놓고 헤 웃는다. 잠깐 엄마의 얼굴에서 보였던 맑은 기운이 온데간데없어지고, 엄마는 벌린 입 밖으로 침 섞인 미음을 줄줄 흘린다. 원희는 엄마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웃을 때마다 엄마가 오줌을 지리곤 한다는 사실을 원희는 한참만에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