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萬里城 만리성

소설에 새긴 이름, 영원의 장소들

수필은 삶의 모습을 그대로 남긴다

서울,2030년 - 포스트코로나 시대 읽기 ①환란일지 ②2030년 서울, 그리고 레이턴시 ③바이러스와 함께 돌아보기 ④마스크에 관한 학교괴담

군함도가 울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을 기억하는 이유

유머는 엄숙함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늘 지루하고 딱딱한 아버지의 설교

소설가 상허 씨의 일일

찬탄과 논란의 굴곡, 미녀 뽑기 90여 년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2001년 봄, 젊은 시조시인들

당산대형의 꿈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이 일본에서 그린 특이한 형식의 그림

①울릉도,초생활 ②미의,저쪽은 모른다

①그분이 오신다 ②기미

화내지 마세요!

①완성의 속도 ②코로나 여름, ‘국뽕 아재’의 기원 ③적막과 고요와 침묵

아무일 일어나지 않는 40호 남짓 시골마을, 그 사람들과 정서

진퇴양난의 그해 겨울 막바지에 쓴 시

7월은 가장 잔인한 달

①일상과 일상 너머를 아우르는 탄력있는 상상력 ②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문학의 흐름과 성취는?

한반도, “지리의 포로”에서 “지리의 힘”으로

인간의 눈, 개의 마음

첫 책, 『자연사박물관』 그 예측을 넘어

어떤 가족의 우스꽝스러운 비극

“일본 동북사투리가 너무 어려웠어요. 게다가 한국역사도…”

새로운 창작품을 읽는 느낌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대산세계문학총서

2020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제28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선정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 소월시 100년, 한국시 100년

단편소설

①그분이 오신다

김경욱
소설가, 1971년생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장편소설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등

그분이 오신다





“글이 죽어라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문화센터 창작워크숍이나 출간 기념 북토크 같은 자리에서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다. 처음 몇 번은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언제부턴가 나만의 모범답안이 생겼다.
“집을 바꾸세요.”
글자체를 바꿔보라는 말만큼이나 가볍게 툭 던져놓고 기다린다. 워크숍이니 토크니 도란도란한 단어가 무색하도록 잔잔하기만 하던 수면 아래 조용한 파문이 일기를. 이사를 해보세요, 라고 표현했다면 결코 일지 않았을 어떤 반응을.
그러다 조용히 번지는 호기심의 맨 바깥 동심원이 발목에 와 닿는 순간 릴을 감듯 본론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저는 2년마다 집을 바꿉니다.”
이쯤이면 졸음기에 겨워 희끄무레하던 눈빛마저 셀카를 찍을 때처럼 또렷해지고, 적대적 무관심으로 무장된 팔짱조차 비밀번호가 입력된 빗장처럼 스르르 풀리게 마련이다.
“전세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다른 집을 알아봅니다. 재계약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갑자기 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정말? 하는 표정들이 눈에 띄면 칠 부 능선에 오른 셈이다. 이사가 단골카페를 바꾸는 일은 아니니까.
“카페에 나가도 보고, 독서실까지 끊어 봐도 글 한 줄 안 써지는 거예요. 그렇게 두 해를 송두리째 날리고 다시 이사를 했는데 짐을 풀자마자 문장이 술술 나오는 거 있죠. 그간 지력이 다한 밭과 씨름이라도 했던 것처럼.”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몇 사람이나 고개를 끄덕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주변 공기의 밀도가 한결 높아졌다는 사실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은 여태 보지 못했다. 이사를 했는데도 여전히 죽어라 안 써진다고 항의해오는 사람 역시 없었다. 내 얘기가 사실이 아니면 또 어떠랴. 누구 말마따나 영감을 찾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고 프로페셔널은 그냥 책상 앞으로 가는 법. 내 경우엔 제대로 된 책상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부엌 식탁이든 무릎 위든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만 있으면 어떤 글이라도 쓸 수 있었다.
그런 내게 단 한 줄, 단 한 단어도 써지지 않는 때가 올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분이 오셨나 봐?”
자다 깬 아내가 화장실로 향하며 말했다.
“어. 그분께서 퇴근을 안 하시네.”
노트북 앞에서 넋을 놓고 있던 나는 손을 황급히 자판으로 가져갔다. 화면에서는 태양과 그것을 에워싼 행성들이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암흑을 가르며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을 저장까지 한 이유는 코스모스의 신비에 대한 경이로움도, 지구 위에 발붙인 티끌만한 존재의 허무 섞인 겸손도 아니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멈춰 서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두 해째 개점휴업 상태였다.
신년 탁상달력에 ‘마감’이라는 즐거운 비명을 써넣을 일이 없었을 때만 해도 간만에 한숨 돌릴 기회다 싶었다. 꿈속에서도 자판과 씨름해온 나날. 장기근속 휴가라도 받은 셈 쳤다. 뒤를 돌아보는 게 무리라면 곁이나마 흘긋 둘러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혼자만의 착각으로 밝혀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아쿠아리움에 놀러가자는 깜짝 제안에 아홉 살짜리 아들은 기뻐 팔짝팔짝 뛰기는커녕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빠, 소설가 잘린 거야?”
김 빼는 소리는 아내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행이나 갈까 물었더니 측은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어디 가서 며칠 바람 좀 쐬면서 소재라도 하나 건져와.”
탁상달력이 한 번 더 바뀌도록 마감은 없었다. 원고 달라는 기별이 폭죽은 못 돼도 성긴 별무리에 더해지는 또 하나의 별처럼 꾸역꾸역 이어진 지난 십여 년이었는데. 편집자들이 다 모여 안식년을 주기로 결의하지 않고서야.
어쩌면 청탁이 없어서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쉬고 있어서 청탁이 안 오는지도 몰랐다.
나는 노트북을 켰다. 프로페셔널답게 영감도 마감일도 없이. 갓 내린 커피를 입장권 삼아 현실 이편과 저편의 경계에서 커서의 깜박임에 집중하노라면 이내 탭댄스를 추고 있는 손끝이 느껴져야 했으나…… 자판 위의 열 손가락은 춤은커녕 꼼지락거릴 기미조차 없었다. 그나마 움직이는 건 슬그머니 휴대폰 위에 올라가 있는 검지 하나.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는 건 유튜브 알고리즘뿐이었으니. 검색한 적도 없는데 관심사인 줄 어떻게 알고 손수 집 짓는 사람들 동영상을 띄워놓았을까. 한 장 한 장 벽돌 올라가는 모습에 한눈 팔려 있노라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남극 빙하가 녹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그랬다. 나는 얼음대륙의 가장자리가 돌고래 울음소리를 내며 쪼개져 내리는 장면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보면 애당초 노트북을 왜 켰는지, 깜박하는 게 불가능한 목적조차 남극점처럼 아득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망각했던 본분이 소스라치듯 떠오르며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대로 영영 못 쓰게 되는 건 아닐까, 자연선택의 냉혹한 정글에서 도태되는 건 아닐까, 악몽에서도 접하지 못한 두려움이 생생한 현실로 덮쳐왔다. 하루 공칠 때마다 핏속에 흐르는 이야기 DNA가 한 줌씩 증발하는 것만 같았다.
응급지혈이라도 하듯 나는 개미지옥으로 유혹하는 붉은 아이콘을 삭제했다. 내친김에 인터넷 차단기가 설치된 독서실로 작업공간을 옮겼다. 입실 내내 휴대폰을 압수해 주는 곳이었다. 도망칠 구멍이 없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 때문인지 공기부터 풀을 먹인 듯 팽팽했다.
유튜브는 핑계에 불과했던 걸까. 온종일 빈 화면만 노려보다 노트북을 덮자면 쓰는 법을 깡그리 잊어버린 듯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내 소설 필사까지 시도해보았을까.
『올해의 젊은 작가 단편선』에 실린 초기작이자 비평적 조명을 받은 첫 작품이기도 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뜻도 없지 않았지만 내심 ‘젊은’이라는 관형어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내 나이 서른일곱에 쓴 대표작, 무언가에 들린 듯 쉼표 없이 휘몰아 쓰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지천명을 코앞에 둔 중년 작가라니. 『올해의 중년 작가 단편선』이 있대도 발표작이 없어서 명함조차 못 내밀 테지만.
“타자 속도는 빨라지겠죠.”
필사가 소설 습작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시큰둥하던 나였다. 가장 나답지 않은 방법이랄까, 일종의 극약처방조차 효과가 없었다. 누렇게 바랜 신국판 종이를 넘길 때마다 풀썩이는 먼지에 재채기만 터져 나왔다.
“쫌!”
칸막이 너머에서 씹어뱉듯 뇌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녀리고 앳된 목소리 깊숙이 서린 맹렬한 혐오의 기운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칸막이 아래 웅크린 모두가 살의에 가까운 적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가슴이 턱 막혀오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이것도 소설이냐. 베어진 나무만 불쌍하다.’ 내 소설집 아래 달린 인터넷서점 한 줄 평을 맞닥뜨렸을 때처럼.
독서실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플라타너스 밑동에 뭔가를 새기고 있었다. 내 이름 석 자였다.
다음날 나는 독서실 출근 대신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북미 원주민들은 사냥에 앞서 사냥감에게 양해를 구했다지. ‘사슴아, 사슴아, 내 가족이 굶어죽지 않으려면 너를 죽여야만 한다. 미안하다.’ 나무가 응답해주기를 간구하며 날마다 기도했다. 상수리나무야, 너도밤나무야, 편백나무야, 층층나무야, 자작나무야……아무리 나무를 붙들고 흔들어보아도 돌아오는 건 방향감각을 잃은 날벌레나 영역표시를 위해 달려드는 반려견이 컹컹대는 소리뿐이었다.

“어떡해? 흉사가 있었던 집이래.”
아내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새로 이사 갈 아파트 얘기구나, 직감하면서도 나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흉사?”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
“안 좋은 일?”
아내가 내뱉은 말을 나도 모르게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자세한 건 몰라.”
두려운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입에 올리는 사람의 거리낌이 수화기 너머로부터 고스란히 전해왔다.
“엘림 부동산에서 올수리 매물이 나왔다며 연락했더라고. 이미 계약했다니까 몇 동 몇 호인지 묻고서는 이상한 소리를 하지 뭐야. 거긴 꺼림칙해서 일부러 안 보여줬다나. 무슨 소린가 싶어 곧바로 뉴타운 부동산에 물어봤지. 잠깐만. 뉴타운에서 전화 온다.”
뉴타운 부동산은 우리가 계약한 곳이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엘림 부동산이었지만. 엘림과 뉴타운, 두 부동산은 아파트 단지 상가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애당초 집 구경은 내 관심 밖의 일이었다. 어떤 집이든 내겐 이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아파트야 거기서 거기 아닌가. 향을 따지고 층을 고른 쪽은 아내였다. “같은 남동향인데 두 배는 환한 것 같지 않아?” “그나마 어둑어둑한 부엌방이 서재로는 딱이다.” 아내가 새 서식지를 물색하는 동안 내 눈길을 끈 대상은 집이 아니었다. 거실 한 면 가득 벽걸이 텔레비전처럼 걸려 있던 가족사진이었다. 부부가 중앙에 나란히 앉고 두 자녀가 날개처럼 양 배후에 선 구도부터 한껏 격식을 차린 옷차림까지 금빛 액자만큼이나 전형적인 스튜디오 사진. 외출하려던 참이었는지 안주인은 정장을 완벽히 갖춰 입은 채 소파 끄트머리에 손님처럼 앉아 있었다.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언가 맹렬히 궁금해지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궁금증을 못 이겨 거푸 전화를 걸었지만 아내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날 저녁 아내는 상기된 얼굴로 퇴근했다.
“무슨 일인데?”
“뉴타운 부동산 통해서 물어봤는데 천벌 받을 소리래. 거기 사는 동안 좋은 일만 생겼대. 남편 사업도 대박 나고, 애들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나. 새 아파트가 당첨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놓은 거래.”
분양 얘기는 얼핏 들은 것도 같았다.
“엘림 부동산에서 잘못 알았을 수도 있잖아.”
“당연히 다시 물어봤지. 집 주인이 펄쩍 뛴다는데 어찌 된 노릇이냐고. 더 말해 줄 수 없대. 모르는 게 약이라나.
그러면서 뭐라는지 알아? 어차피 공동묘지 터였대, 단지 자체가.”
“거 참.”
아파트 보러 간 사람을 앉혀두고 전원주택 예찬론일 때부터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다.
“아파트는 쭉 전세로 사시고 매입은 정원 있는 주택으로 하세요. 내가 살아보니 정원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해. 맨땅에서 쑥쑥 올라오는 초록이들 보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어. 에덴동산의 동산이 영어로 가든인 거 아시죠?”
애는 몇인지, 직장은 어디인지, 초면이 아니더라도 가려야 할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더니 묻지도 않은 자기 얘기까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다른 집 알아볼까?”
아내가 혼잣말인 듯 물었다.
“계약금은?”
아내의 연봉에 맞먹는 금액이자 내 책 40쇄는 족히 찍어야 쥘 수 있는 돈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그 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흉사’라는 단어가 일깨운 어두운 활기가 허망하게 사그라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쫓기듯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집 주인한테 당신이 직접 물어볼래?”
아내가 넌지시 물어왔다.
“펄쩍 뛰더라며? 사실대로 얘기해주겠어?”
내가 전화한 곳은 이사 갈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였다.
“확인해 줄 수 없습니다.”
휴대폰 저편의 사내는 내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잘라 말했다. 집 주인처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느냐고 따졌다면 덜 수상쩍었을까. 기계음처럼 들리는 말투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런 걸 어떻게 압니까? 경찰서도 아니고.”
계속 캐묻자 사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알면서 말 안 해주는 거 같은데.”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던 아내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경찰 친구 있지 않아?”
아내가 분을 삭이며 물었다. 물음표가 붙어 있었지만 내게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으로 들렸다. 경찰대학에 진학한 고등학교 동기가 하나 있기는 했다. 나도 깜박한 존재를 아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면식은커녕 지나가듯 언급한 게 전부라서 더 그랬다.
“번호가 안 바뀌었나 모르겠네.”
나는 연락처 검색창에 동기 이름을 입력하며 중얼거렸다. 송년 모임에나 나가야 보는 사이였으니 거의 4년만의 연락이었다. 부동산과 주식 일색이던 화제에 골프가 추가되면서 한 번 두 번 거르다보니 어느새 그리 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번호는 그대로였다. 쉬쉬하는 사람들 보란 듯 진상을 드러내고픈 마음이 큰 만큼, 상상의 여지를 계속 남겨두고픈 알 수 없는 열망도 작지 않았다. 동기는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신호음이 시작되기 무섭게 전화를 받았다. 밀린 인사를 나누며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야 상관없는데 애 엄마는 신경이 많이 쓰이나 봐. 지금처럼 찜찜한 상태보다는 차라리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아는 편이 낫다고, 불상사가 있었다면 거기 합당한 애도라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안방 문을 닫는 것도 모자라 나는 목소리까지 낮췄다.
“못 들었구나. 제주도 내려와서 키위 농사짓고 있어. 둘째 녀석 아토피가 너무 심해서.”
“미, 미안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그쯤에서 전화를 끊고 싶어졌지만 동기는 간만의 통화를 이어가고 싶은 눈치였다.
“계약 취소 소송이라도 걸까 봐 잡아떼나 보네. 끔찍한 일이면 소송도 가능하긴 한데.”
“끔찍한 일?”
“설마 그런 일은 아니겠지만, 왜 뉴스에 나온 사건 있잖아. 고독사한 노인이 반려견한테 얼굴을 반쯤 뜯어 먹혔다는.
그게 우리 관할이었거든.”
“아무리 굶주렸어도……”
“사료가 포대째 바닥에 쏟아져 있었는데 말이야. 몇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가 않아. 코가 있던 자리에 거무튀튀한 구멍만 남은 얼굴이. 구멍에서 구물구물 기어 나오던 구더기들이. 노인네가 한여름에 보일러를 틀어놨더라고.”
“냄새가 지독했겠네.”
“지금도 그 장면만 떠올리면 멀쩡한 콧구멍을 불로 지지고 싶어져.”
제주행의 이유가 둘째 아이 아토피만은 아닌 듯했다. 무슨 말이든 해줘야 할 것 같았지만 마땅한 얘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집에 이사 간 사람이 소송이라도 걸었다는 거냐고, 본론으로 돌아가 물을 수도 없었다.

“형사 사건이든 단순 사건 사고든 사망자 본인 주민번호 없이는 조회가 불가능하대.”
나는 거실로 돌아가 아내에게 동기의 말을 옮겼다.
“어디 더 알아볼 데 없을까? 나야 출근하면 그만이지만 당신은 종일 집에 있는 날이 많잖아.”
아내가 속내를 꺼내 보였다면 나도 솔직히 얘기할 수 있었을까. 이대로 작가경력이 끝장날까 두렵다고, 그 집에서 있었다는 흉사보다 그게 몇 배 더 무섭다고. 하지만 배려라는 라켓으로 공을 떠넘기는 아내 특유의 화법은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괜찮아, 난.”
아내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는 두려움을 남편이기 전 소설가로서 백 분 이해했지만, 어쩌면 그랬기에 외면하고 말았다. 미안하게도 아내 얼굴에서 두려움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다시 글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빛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정말 괜찮겠어? 밤늦도록 그 방에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아내는 또다시 자신의 두려움을 내게 떠넘겼다.
“무슨 일이었는지 몰라도 불행이 전염병은 아니잖아.”
계약서에 재차 날인이라도 하듯 나는 힘주어 대답했다. 왜 ‘그 방’이냐고, 부엌방의 주인을 불상사의 장본인으로 넘겨짚는 근거가 뭐냐고 되묻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방에 가두는 선택도 나쁘지 않았기에. 내가 아내였대도 안방이나 아이 방보다는 부엌방을 택했을 테니까.

이사 예정일보다 보름이나 빨리 문제의 아파트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건 집 주인이 짐을 미리 뺀 덕이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는 도배와 수리를 핑계로 부동산을 통해 넘겨받았다.
신축 단지 입주에 데드라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서둘러 나가야 했을까.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기에. 낯선 숫자 열을 입력하고 있자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폴리스라인이라도 몰래 넘어가는 기분이랄까.
“소설가는 프로파일러가 돼야 해요. 범죄자의 마음에 자신을 겹쳐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왜. 한 편의 소설 쓰기는 완전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순진한 작가 지망생들에게 팔아왔던 약을 직접 복용해볼 기회였다.
살림살이가 들어 차 있을 때보다 집은 오히려 좁아진 느낌이었다. 가족사진이 걸려 있던 자리에는 빛바랜 직사각형이 또렷했다. 역시나 한두 해 전 찍은 게 아니었다. 안주인의 옷차림이 내내 기억에 남았던 건 가족사진 속 차림새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짙은 남색의 H라인 치마정장에 목을 여러 번 둘러 묶은 듯한 하얀 리본타이. 이곳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났으리라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너무 클래식해서 현실감이 떨어졌달까. 그녀는 사진 속에서 나이를 먹다 집을 보여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액자 밖으로 걸어 나온 사람 같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아내에게는 말해봤자 불안만 더 키울 테고. 깊이 심호흡을 한 다음 나는 부엌방으로 향했다. 현장감식반처럼 최소한의 동선으로 구석구석 살폈다. 수상한 흔적은 없었다.
방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언가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다렸다.
무릎이 굳도록 정자세를 유지했는데도 그림은커녕 구도선 하나 그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문득 겨드랑이가 서늘해져왔다. 가부좌를 풀고 이번에는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전의 안방은 구경 왔을 때보다 훨씬 밝았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백팩에는 몇 주째 짊어지고만 다니는 묵직한 서류봉투도 있었다. 문중 종손 되는 어른이 난생처음 써보았다는 소설 원고. 집필에 방해된다고 어머니 맹장 수술도 안 알린 아버지였던 터라 “한번 읽어나 보라”며 떠안긴 물건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집에 서린 어떤 기운 때문이었을까. 카페나 독서실이었다면 백팩에서 꺼내지도 않았을 서류봉투를 뜯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은. 원고와 함께 흰 규격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반듯반듯 접힌 편지지를 펴니 손을 벨 듯 빳빳한 오만 원짜리 신권이 열 장이나 나왔다.
‘군사부일체라, 예로부터 스승을 새로 모시면 여염집 봉황인 씨암탉을 산 채로 금침 보자기에 싸가는 법이네만 변화된 시류를 외면할 수만은 없어 현대에 맞는 성의를 준비했네. 약소하다 섭섭해 말고 신사복이라도 한 벌 맞추시게.
모름지기 작가는 만인의 스승이니 의관을 정히 함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혹시 아는가. 금번 양복을 입고 노벨문학상을 받으러 가는 날이 오게 될는지.’
물론 편지의 마지막 몇 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얼마나 막역하게 자랐는지, 가문을 일으키려 동분서주하던 나날 ‘간질’처럼 찾아오던 창작욕 때문에 얼마나 고뇌했는지도 알게 되어야 했다.
뜨거운 인생.
스프링 제본 겉장에 큼지막한 궁서체로 인쇄된 제목이었다. 불현듯 서늘한 요의가 느껴졌다.
첫 문장은 안방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읽었다.
‘눈 내리는 기척에 눈을 뜨니 댓돌 위에 새하얀 호랑이가 한 마리 서 있 었다.’
호랑이에 대한 묘사는 다음 페이지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귀부터 꼬리까지 생김새뿐 아니라 눈이 녹으며 본래 모습을 드러낸 털 하나하나까지 공들여 그려내고 있었다. 눈이 다 녹은 뒤에도 여전히 백호였지만 얼룩 빛깔이 무지개색이었다. 무지개무늬 백호는 방을 빙빙 돌다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대들보에 매달린 메주를 집어삼켰다. 백호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 건 메주가 하나만 남았을 때였다. 백호는 댓돌로 내려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가 싶더니 눈발이 날리는 허공으로 훌쩍 솟구쳤다. 눈 내리는 밤하늘 위로 무지개가 섰다. 뜨거운 인생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꿈도 곤란한데 태몽으로 스타트라니. 문화센터 수업 과제물이었다면 한 글자도 더 읽지 않았겠지만, 한 점 의심도 주저도 없이 직진하는 문장들이 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 태어난 시간, 새벽 다섯 시 맞지?
아내가 보낸 카톡이었다. 우연치고는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 점집인데 빨리 답 줘.
자기 생시도 매번 장모에게 확인하는 아내가 점집이라니 별일이었다.
답문을 보내고 고개를 들다 문손잡이에 눈길이 멎었다. 흔한 레버형이었는데 옆에 당연히 있어야 할 잠금 핀이 보이지 않았다. 핀이 빠졌다면 남은 구멍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구멍 비슷한 흔적조차 없었다.
엉뚱하게도 잠금 핀은 바깥쪽 손잡이에 달려 있었다. 손잡이 안팎을 뒤바꿔 달았나 생각했지만, 실수는 아닌 게 안방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머지 방들은 또 정상적으로 안쪽 손잡이에 잠금 핀이 있었다. 안방문과 거기 딸린 화장실문만 밖에서 잠글 수 있도록 개조하지 않고서야……
얼마만이던가. 관자놀이가 간질간질한 게 신호가 오고 있었다. 글 샘의 수로를 꽉 틀어막고 있던 잠금장치가 풀리는 신호. 마음은 이미 새 문서창을 노트북 화면에 불러내고 있었다. 부리나케 뒤따라간 몸이 간만에 자판을 제대로 두드려 가래떡 같은 문장을 하나 뽑아냈다.
‘그 집 안방에 누군가 갇혀 있었다.’
보라.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 매끈하고 찰기 어린 자태를. 감탄 어린 쾌재도 잠시, 행여 영감이 달아날까 봐 머릿속 괄약근에 재차 힘을 모으는데 갑자기 화면이 나가버렸다. 아. 단말마의 외마디가 절로 터져 나왔다. 심장이 멎었대도 그토록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배터리 부족이라니. 백 퍼센트 충전 상태로 집을 나선 것 같은데. 확실한 건 백팩 무게를 줄이겠다며 전원 어댑터를 빼놓았다는 사실. 쓸데없이 두툼하기만 한 원고는 고이 모셔 오면서 말이다.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은 심정이었다.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문장을 이어가려 했지만 노트북이 꺼지는 순간 화들짝 둥지를 뜬 뮤즈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 짐을 싸네. 연화보살님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그러는 거야.”
점집에 다녀온 아내는 홀가분한 목소리였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눈썹 문신까지, 왠지 사짜 같아서 기대도 안 했는데 자세를 똑바로 하게 되더라고.”
연화보살 앞이기라도 하듯 아내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남편 역마살이 흉하게 놓여 액을 당하기 쉬운데 용케 천을귀인 배우자를 얻었네. 남편은 삼장법사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이야. 그냥 다 품어. 남편이 구름이라면 자기는 하늘이야.”
이 대목에서 아내는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동의라도 구하는 듯한, 아니 내 동의 같은 건 필요 없이 자기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내 팔자가 천방지축 원숭이라니. 연화보살, 이름부터 미심쩍은 이의 헛소리는 물론이고 그것을 녹음기처럼 전하는 아내의 태도에 거부감이 일었지만, 전세 계약금을 포기하더라도 그 집에는 못 들어간다 소리만 쏙 들어가면 어디냐 싶었다.
“구름 중에도 중음편운이라 구천을 떠도는 그분들이 사랑방인 양 꼬인대. 걱정 마. 내가 버티고 있어서 해코지는 못하니까. 때 되면 알아서 나갈 테니 문만 잠그지 말래.”
아내 얼굴에서 두려움의 그늘이 말끔히 걷혀서였을까. 내 입에서 앞뒤 없는 말이 튀어나온 것은.
“안방문이 밖에서 잠그게 돼 있더라고.”
“아파트가 오래돼서 손볼 데가 많을 거야. 안방 도배도 해야 하고. 업자를 알아봐야겠네.”
그런 뜻이 아니라고 정정할 겨를도 없이 아내는 휴대폰을 들고 안방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그 집으로 향하는 내 백팩에는 노트북 전원 어댑터에 보조배터리까지 들어 있었다. 어제는 양반다리를 하느라 무릎도 저리고 허리도 뻐근했는데 마침 동 앞에 듀오백의자와 접이식 티테이블이 버려져 있었다. 빨간색 경고문구가 적힌 A4용지가 붙은 채로.
‘CCTV 정밀 추적 중! 무단투기자는 자수하여 가출한 양심 찾으시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의자에 몸을 실어 보았다. 한쪽으로 쏠리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등판은 단단히 버텨주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창문, 방문 할 것 없이 활짝 열었다. 공기가 텁텁한 느낌이었다. 집필실은 안방으로 정했다. 이번만큼은 아내의 직감이 틀렸다. 비극의 무대는 부엌방이 아닌 안방. 무서운 어떤 일은 거기에서 벌어졌으리라. 안방 창가에 테이블을 폈다. 다리 한쪽이 짧은지 상판이 기우뚱했다. 문중 어른의 원고로 괴니 수평이 딱 맞았다. 첫 문장의 마법일까. 꽉 막힌 혈이 뚫린 듯 모든 일이 술술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노트북을 올려놓고 전원을 켰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인 빈 방은 이제껏 글을 써온 어떤 공간보다 영감을 자극했다.
‘그 집 안방에 누군가 갇혀 있었다.’
미처 저장하지 못하고 휘발된 어제의 문장부터 다시 불러왔다.
‘분명 가족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가족 중 한 사람인 것은 가족 말고 누구도 몰랐다.’ 다음 문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 머릿속에서 끄집어낸다기보다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쓰는 기분이었다. 목격자 진술처럼 생생한 목소리를 따라잡느라 손끝이 뜨거워졌다.
쾅.
천둥 같은 소리에 자판 위에서 춤추던 손길이 멈칫했다. 안방 문이 바람에 저절로 닫힌 것이었다. 문짝이 떨어져 나갔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굉음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은 꿈쩍도 안 했다. 두 손을 다 써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닫히는 서슬에 잠긴 모양이었다. 며칠 전 동기에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집 전체가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었어. 문틈, 창틈 한 군데 빠짐없이 포장용 테이프로 발라놨더라고. 시취가 새어나갈까 봐 그랬나. 아랫집 욕실 천장으로 구더기가 기어 나오지 않았다면 미라가 됐을 거야.”
창밖 햇살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높이인데도 몸이 으슬으슬했다. 나는 창문을 넘어 베란다로 나간 다음 거실을 돌아 안방 문 앞에 섰다. 짐작대로 잠금 핀이 저절로 눌려 있었다. 문손잡이를 쥐고 돌렸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어깨로, 온몸으로 밀어보아도 문틀에 꽉 낀 듯 문은 미동조차 없었다. 부엌방이었다면 꼼짝없이 갇힐 뻔했다. 꺼내달라고 어딘가로 전화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시끄럽게 119에 할 수도 없고, 아내에겐 뭐라고 변명해야 했을까?
그때였다. 문 너머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방에 갇힌 벨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음산한 느낌이었다. 나는 좀 전의 동선을 되짚어 안방으로 돌아갔다. 발신인은 아내였다.
“다른 집이래. 동을 착각했대.”
“무슨 소리야?”
“방금 엘림 부동산에서 전화 왔어. 흉사가 있었던 데는 다른 집이라고.”
“진짜?”
“별일이 다 있지?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녔나 봐. 아예 땅 사서 새집을 짓든가. 지금 좀 바빠서. 나중에 다시 통화해.”
모든 일이 일단락됐다고 여기는 건가. 아내는 마침표를 찍듯 전화를 뚝 끊었다.
아내는 몰라도 내 경우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끝은커녕 또 다른 시작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커서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억지로 새 문장을 잇대었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연결이 매끄럽지 않았다. 잃어버린 리듬을 되찾을까 싶어 맨 앞에서부터 찬찬히 읽어 봐도 남이 쓴 글처럼 어색했다.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불쑥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혼자 가만히 삭일 수 없는 종류의 분노였다. 나는 휴대폰 최근통화목록을 열고 맨 위 이름을 터치했다.
“어떻게 그런 걸 착각해?”
차분히 말하려고 했지만 끓어오르는 화를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마음고생 한 건 억울하지만 다행이지 뭐. 엘림 부동산도 어찌나 미안해하는지. 거기 동 배치가 별나다나. 이사 앞두고 액땜한 셈 치자. 길일을 받아놨으니 너무 걱정 말고.”
전화를 끊기 무섭게 지도 앱을 열었다. 현 위치와 그 주변이 자동으로 표시되었다. 아파트 단지 속 직사각형들은 남동향과 남서향이 지그재그 식으로 엇갈리며 늘어서 있었다. 엘림 부동산 얘기와 달리 특별히 이상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입장이 곤란해져 말을 바꾼 게 분명했다. 뉴타운한테 한소리 들었으리라. 동업자들끼리 지켜야 할 묵계를 무시할 수 없었겠지. 갈 곳 모르고 공회전하던 분노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혼자만의 안도도 잠시, 동 숫자가 기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3동 다음이 105동이었다. 113동 다음도 114동이 아니라 115동. 4로 끝나는 동이 아예 없었다. 절망적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흉사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나 빈 집에서 상상할 때조차 두려움은 내 것이 아니었건만.
이럴 수는 없다. 정말이지 나한테 이럴 순 없었다. 나는 무언가를 부정하듯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물론 베란다를 통해 안방부터 빠져나가야 했지만. 904호여야 할 옆집은 905호였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확인해보니 3층 위도 5층이었다. 4라는 숫자가 병적으로 금지된 단지라니. 엘림 부동산이 없는 얘기를 지어낸 건 아니었다.
칠흑 같은 터널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비쳐 든 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순간이었다. 현관문 상단에 열십자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엘림 교회.
십자가 귀퉁이마다 한 글자씩 새겨진 네 글자. 엘림 부동산, 엘림 교회. 소설가의 눈에 우연이란 없다. 부동산 상호치고 종교색이 짙다 싶더니. 할렐루야. 십자가가 반갑고 고마운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엘림 부동산 중개인은 이 집을 몇 동 몇 호 숫자가 아니라 신앙심으로, 신앙이 얽어준 인간관계로 아는 사이일 것이다. 세상에 없는 동 배열이래도 절대 착각할 수 없다. 심각한 사연이 숨어 있으리라. 다른 부동산은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집을 굳이 안 보여준 데도, 흉사의 내용을 끝까지 감춘 데도. 자기 구역이니 도어록 비밀번호로 봉인된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겠지. 자매의 연으로도 감싸줄 수 없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악마적인 무언가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니, 있어야만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위험에 이끌리듯 나는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동에 매겨진 숫자에 집중하느라 놓친 단지 전체의 윤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숫자는 곁가지, 주의를 분산시키는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십 년, 아니 평생을 눌러 산대도 눈치 챌 수 없는 은밀한 표지, 위에서 굽어보아야만 그려지는 무시무시한 형상이 거기 새겨져 있었다.
“코랑 볼 한 쪽 뜯겼을 뿐인데 전혀 사람 같지 않은 거야. 한순간이라도 누군가의 얼굴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얼굴이라기보다 그것은…… 그것이……”
독거노인이 자신의 죽음을 봉인하려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니, 봉헌이라고 해야 맞을까.
단지 자리가 본래 공동묘지였다지 않는가. 묘석 하나하나 모여 무언가의……
나는 노트북 앞으로 돌아가 기도하듯 두 손을 자판 위에 올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길 잃은 어린 양처럼 몸을 떨며 기다렸다. 그분이 오시기를. 어리석은 내 불신으로 자리를 잠시 비워야 했던 그분이 새벽처럼 돌아오시기를.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 나는 계시라도 받은 듯 첫 문장을 고치고 있었다. ‘누군가’를 ‘무언가’로.
‘그 집 안방에 무언가 갇혀 있었다.’
거듭난 첫 문장을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커서가 ‘무언가’ 속에서 검은 심장처럼 박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