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2030년 - 포스트코로나 시대 읽기 ①환란일지 ②2030년 서울, 그리고 레이턴시 ③바이러스와 함께 돌아보기 ④마스크에 관한 학교괴담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이 일본에서 그린 특이한 형식의 그림
①완성의 속도 ②코로나 여름, ‘국뽕 아재’의 기원 ③적막과 고요와 침묵
아무일 일어나지 않는 40호 남짓 시골마을, 그 사람들과 정서
①일상과 일상 너머를 아우르는 탄력있는 상상력 ②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문학의 흐름과 성취는?
“일본 동북사투리가 너무 어려웠어요. 게다가 한국역사도…”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대산세계문학총서
2020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제28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선정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 소월시 100년, 한국시 100년
기획특집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지금 필드워크 중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딜 갈 때마다 출입 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게 너무 번거롭다’고 하셨죠. 저는 선생님보다 조금은 늦게 태어나서인지 익숙합니다. 대학 때부터 열 명이 넘게 모이는 자리에서는 꼭 방문자 코드를 입력했으니까요. 하마터면 대면인사 한 번 못 드리고 졸업하나, 마음을 졸이던 신입생 때가 생각나네요. 인사는 이쯤 드리고, 선생님이 전에 물어보신 저의 연구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서울의 초등학교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연구원 신분증이 없었다면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게 정말 어려웠을 거예요. 아이들이 격일, 격주 등교를 하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보다 구술자와의 심리적 유대를 쌓기가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학교괴담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김종대 선생님 때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 제가 이번 연구 주제로 잡은 것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학교괴담의 변화 양상입니다.
1980년대, 그러니까 50여 년 전만 해도 학교 한 반에는 50명이 넘게 아이들이 들어차 있었다고 하셨죠. 화장실은 학교 건물 외부에 있는 곳도 허다했고요. 그래서 학교 화장실이 방범의 취약지대가 되기도 했고, 화장실에 여럿이 함께 가는 것을 권했다고요. 화장실에 ‘혼자’ 가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학교괴담이 있었다고 하셨고요.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로 운을 떼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어떻게 화장실을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 가냐고 합니다. 선생님이 절대 허락 안 해 준다고요. 저만 해도 학교 화장실에 가려면 서넛이 어울려 가곤 했는데, 이 아이들은 한 명씩 시간차를 두고 간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학교 화장실은 ‘어둠’과 ‘공포’의 공간이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 시대의 괴담은 모두가 화장실에 같이 가는 게 권장되었기 때문에, 혼자 화장실에 가면 목격하는 게 대다수였죠. 그런 괴담들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혼자 갔을 때 들린 울음소리가 같이 갔을 때는 들리지 않았다’면 ‘나만 다른 것을 듣는다’는 고립감이 공포로 이어지고, ‘혼자 갔을 때 들린 울음소리가 같이 갔을 때도 들렸다’고 하면 ‘증명’이 되기 때문에 모두의 공포가 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같이 화장실을 가지 않는, 혼자 화장실을 이용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괴담이 낯선 것 같습니다. 일본 괴담인 ‘화장실의 하나코’를 들려줬을 때 흥미를 느끼는 아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어둡지도 않고 환한 화장실에 누군가 울고 있다고 해도 그게 뭐 무섭냐, 선생님을 불러 오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홀로 우는 아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요.
반면에 새로운 괴담이 나타났습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눈을 감고 30초를 세지 않으면 귀신이 나와서 손 세정제를 빨간색으로 바꿔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괴담이라는 것이 애초에 ‘-하면 안 된다’는 금제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입니다. 10초 만에 눈을 뜨면 빨간색, 20초 만에 눈을 뜨면 파란색으로 변한다는 변형본도 있는데, 아마 2020년 초기에 유행한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손 세정제’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요즘도 아이들에게 ‘손 씻는 것’을 ‘놀이’로 인식하게 하는 색 변화 세정제가 더러 있지만 파랑이나 빨강 같은 강렬한 색보다는 분홍, 노랑, 연두 등의 부드러운 색을 쓴다고 합니다.
손 세정제 괴담은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색깔 괴담처럼 널리 퍼져있지는 않고, 몇몇 학교에만 있는 이야기입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의 개인 손 세정제를 감춰버렸더니 그 다음날부터 그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고, 따돌림을 주동한 아이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마다 뒤에서 속삭인다는 괴담입니다. ‘내 세정제 돌려줘.’ 이렇게 아이들이 적은데도 집단 따돌림이라는 게 아직도 실존한다는 게 참 씁쓸합니다. 더 슬픈 것은, 좁은 지역에서만 퍼진 괴담인데도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의 겉모습이 이민자, 혼혈, 저소득층 아이 등 소수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관성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소수자가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는 건 너무나 유구한 전통이어서 변하지도 않네요.
사실 제가 가장 조사하고 싶었던 것은 ‘빨간 마스크 괴담의 변형 사례’였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빨간 마스크를 썼다’는 것만으로 ‘기괴함’의 상징이 되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 마스크를 쓰고, 색깔도 무늬도 다양하다 보니 ‘마스크를 썼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기괴함을 획득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 괴담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2005년 김종대 선생님의 논문도 ‘빨간 마스크’의 변이와 속성에 대해 다루고 있었죠. 제가 한국민속학 중 도시전설에 푹 빠지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서울 시내 20여 개 초등학교, 4학년 이상 400명가량의 학생을 표본으로 조사할 때 저는 꽤 들떠 있었습니다. 간단한 서면 조사에서 많은 학생들이 ‘마스크에 관련된 괴담을 안다’고 응답했거든요. 과연 이 세대도 빨간 마스크를 아는가, 그렇다면 1990년대에도 있던 괴담이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흥분이 감돌았습니다. 홍콩할매귀신 같은 경우는 20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죠.
‘마스크 관련 괴담을 안다’고 응답한 학생들과 심층 면담을 했습니다. 면담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리 연구자라고 해도, 서울 시내를 누비느라 동선이 어지러운 사람과 대면조사를 하는 것은 보호자와 학생 모두가 꺼리는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죠.
빨간 마스크 괴담의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 가까이 다가가면 마스크를 벗는다, 입이 쭉 째져 있다, 질문을 한다. ‘낮선 사람과 함부로 대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라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추측하는 자료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죠. 마스크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물건이었고, ‘마스크를 쓴 사람이 따라오는 괴담’도 여럿 존재하던 시대입니다.
저도 어릴 때는 ‘마스크 쓴 사람’이 따라오면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얼굴을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코로나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나자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이 따라오는 게 더 무서워졌습니다. 방역의 문제도 있죠.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제 아이들은 가족이나 친구와 놀러 간 그림을 그릴 때도 마스크를 쓴 사람 그림을 그립니다.
다른 연구자들과 토론을 할 때, 우리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느끼는 충격은 ‘코로나 이전 시대라면 상의나 하의 중 하나를 안 입은 사람을 보는 충격과 비슷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옷에 가까운 생활의 일부가 된 셈이죠. 저에게도요. 아동복 매장에도 아이들 패션 마스크가 진열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요즘의 마스크 괴담은 사뭇 다릅니다. 구술이라고 해도 될까요? 음성으로 저와 이야기를 나눈 아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포를 더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배경음을 들리게 한다거나, 이상한 춤을 추는 동영상 클립을 보낸다거나. 솔직히 두어 번은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어두운 밤길에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이 얘야, 얘야 하고 부릅니다. 물론 부른다고 함부로 가면 안 된다는 건 아이들도 압니다. ‘어른은 아이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어른이 무언가 도와달라고 하면 주위 어른을 데려와라’라고 교육을 받죠. 이 금기를 어기고 가까이 간 아이에게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합니다. 아이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면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가까이 갔더니, 그 사람은 하얀 마스크를 쓴 게 아니라 입술까지 하얗게 칠한 사람이었고, 입을 쩍 벌리자 빨간 입에 누런 이빨이 드러납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는 엄청난 입 냄새가 나고 그 냄새에 아이가 꼼짝 못하고 얼어붙으면 그 순간 아이의 코에다 침을 뱉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왜 무섭냐’고 묻는 게 그다음 순서였습니다. 공포의 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알아야 했거든요. 그래서 물었더니, 다섯 명 중 네 명 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더럽다’라고요. 더러우니 무섭다. 어려운 말입니다. 대화를 통해 ‘불결한 것은 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병에 걸리면 아프니까 더러운 것이 무섭다’라는 논리적인 구조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악취, 닦지 않은 이빨, 비말은 확실히 불결한 것이긴 합니다. 그런 게 공포가 되더군요.
굳이 연구 중간에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은 어제 저녁에 본 일 때문입니다. 입술이 파리한 노인이 골목길로 폐지 리어카를 끌고 가는데, 마스크는 턱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아이 목소리로 ‘살색 입술이다!’라는 외침이 들렸어요. 많이 답답했습니다. 노인이 되면 자주 숨이 차고, 종종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아직 모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턱에 걸쳐진 마스크를 보고도 ‘살색 입술’, 즉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한 이유는 아마 그 노인의 겉모습 때문일 겁니다. 낡은 운동화에 검게 탄 얼굴, 아마 좋은 냄새가 나지는 않을 듯한 지저분한 옷. 학교괴담에 관한 연구는 결국은 혐오에 대한 연구입니다. 어떤 것을 우리 아이들이 혐오하고, 어떻게 그것이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는지를 연구하는 데 ‘괴담’이 밑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는, 아직도, 노인의 모습을 한 홍콩할매귀신과 입이 찢어진 빨간 마스크를 두려워하던 20세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외모’로 괴담의 주인공을 정합니다. 저 역시 그 노인을 피해 길을 가면서, 착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도 아직 괴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당신의 못난 제자 드림.
④마스크에 관한 학교괴담
전삼혜
소설가, 1987년생
장편소설 『날짜변경선』, 소설집 『소년소녀 진화론』 『내일의 무게』(공저) 『어쩌다 보니 왕따』(공저) 『조용한 식탁』(공저) 등
기획특집04
마스크에 관한 학교괴담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지금 필드워크 중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딜 갈 때마다 출입 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게 너무 번거롭다’고 하셨죠. 저는 선생님보다 조금은 늦게 태어나서인지 익숙합니다. 대학 때부터 열 명이 넘게 모이는 자리에서는 꼭 방문자 코드를 입력했으니까요. 하마터면 대면인사 한 번 못 드리고 졸업하나, 마음을 졸이던 신입생 때가 생각나네요. 인사는 이쯤 드리고, 선생님이 전에 물어보신 저의 연구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서울의 초등학교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연구원 신분증이 없었다면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게 정말 어려웠을 거예요. 아이들이 격일, 격주 등교를 하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보다 구술자와의 심리적 유대를 쌓기가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학교괴담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김종대 선생님 때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 제가 이번 연구 주제로 잡은 것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학교괴담의 변화 양상입니다.
1980년대, 그러니까 50여 년 전만 해도 학교 한 반에는 50명이 넘게 아이들이 들어차 있었다고 하셨죠. 화장실은 학교 건물 외부에 있는 곳도 허다했고요. 그래서 학교 화장실이 방범의 취약지대가 되기도 했고, 화장실에 여럿이 함께 가는 것을 권했다고요. 화장실에 ‘혼자’ 가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학교괴담이 있었다고 하셨고요.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로 운을 떼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어떻게 화장실을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 가냐고 합니다. 선생님이 절대 허락 안 해 준다고요. 저만 해도 학교 화장실에 가려면 서넛이 어울려 가곤 했는데, 이 아이들은 한 명씩 시간차를 두고 간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학교 화장실은 ‘어둠’과 ‘공포’의 공간이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 시대의 괴담은 모두가 화장실에 같이 가는 게 권장되었기 때문에, 혼자 화장실에 가면 목격하는 게 대다수였죠. 그런 괴담들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혼자 갔을 때 들린 울음소리가 같이 갔을 때는 들리지 않았다’면 ‘나만 다른 것을 듣는다’는 고립감이 공포로 이어지고, ‘혼자 갔을 때 들린 울음소리가 같이 갔을 때도 들렸다’고 하면 ‘증명’이 되기 때문에 모두의 공포가 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같이 화장실을 가지 않는, 혼자 화장실을 이용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괴담이 낯선 것 같습니다. 일본 괴담인 ‘화장실의 하나코’를 들려줬을 때 흥미를 느끼는 아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어둡지도 않고 환한 화장실에 누군가 울고 있다고 해도 그게 뭐 무섭냐, 선생님을 불러 오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홀로 우는 아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요.
반면에 새로운 괴담이 나타났습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눈을 감고 30초를 세지 않으면 귀신이 나와서 손 세정제를 빨간색으로 바꿔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괴담이라는 것이 애초에 ‘-하면 안 된다’는 금제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입니다. 10초 만에 눈을 뜨면 빨간색, 20초 만에 눈을 뜨면 파란색으로 변한다는 변형본도 있는데, 아마 2020년 초기에 유행한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손 세정제’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요즘도 아이들에게 ‘손 씻는 것’을 ‘놀이’로 인식하게 하는 색 변화 세정제가 더러 있지만 파랑이나 빨강 같은 강렬한 색보다는 분홍, 노랑, 연두 등의 부드러운 색을 쓴다고 합니다.
손 세정제 괴담은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색깔 괴담처럼 널리 퍼져있지는 않고, 몇몇 학교에만 있는 이야기입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의 개인 손 세정제를 감춰버렸더니 그 다음날부터 그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고, 따돌림을 주동한 아이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마다 뒤에서 속삭인다는 괴담입니다. ‘내 세정제 돌려줘.’ 이렇게 아이들이 적은데도 집단 따돌림이라는 게 아직도 실존한다는 게 참 씁쓸합니다. 더 슬픈 것은, 좁은 지역에서만 퍼진 괴담인데도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의 겉모습이 이민자, 혼혈, 저소득층 아이 등 소수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관성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소수자가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는 건 너무나 유구한 전통이어서 변하지도 않네요.
사실 제가 가장 조사하고 싶었던 것은 ‘빨간 마스크 괴담의 변형 사례’였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빨간 마스크를 썼다’는 것만으로 ‘기괴함’의 상징이 되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 마스크를 쓰고, 색깔도 무늬도 다양하다 보니 ‘마스크를 썼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기괴함을 획득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 괴담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2005년 김종대 선생님의 논문도 ‘빨간 마스크’의 변이와 속성에 대해 다루고 있었죠. 제가 한국민속학 중 도시전설에 푹 빠지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서울 시내 20여 개 초등학교, 4학년 이상 400명가량의 학생을 표본으로 조사할 때 저는 꽤 들떠 있었습니다. 간단한 서면 조사에서 많은 학생들이 ‘마스크에 관련된 괴담을 안다’고 응답했거든요. 과연 이 세대도 빨간 마스크를 아는가, 그렇다면 1990년대에도 있던 괴담이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흥분이 감돌았습니다. 홍콩할매귀신 같은 경우는 20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죠.
‘마스크 관련 괴담을 안다’고 응답한 학생들과 심층 면담을 했습니다. 면담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리 연구자라고 해도, 서울 시내를 누비느라 동선이 어지러운 사람과 대면조사를 하는 것은 보호자와 학생 모두가 꺼리는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죠.
빨간 마스크 괴담의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 가까이 다가가면 마스크를 벗는다, 입이 쭉 째져 있다, 질문을 한다. ‘낮선 사람과 함부로 대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라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추측하는 자료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죠. 마스크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물건이었고, ‘마스크를 쓴 사람이 따라오는 괴담’도 여럿 존재하던 시대입니다.
저도 어릴 때는 ‘마스크 쓴 사람’이 따라오면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얼굴을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코로나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나자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이 따라오는 게 더 무서워졌습니다. 방역의 문제도 있죠.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제 아이들은 가족이나 친구와 놀러 간 그림을 그릴 때도 마스크를 쓴 사람 그림을 그립니다.
다른 연구자들과 토론을 할 때, 우리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느끼는 충격은 ‘코로나 이전 시대라면 상의나 하의 중 하나를 안 입은 사람을 보는 충격과 비슷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옷에 가까운 생활의 일부가 된 셈이죠. 저에게도요. 아동복 매장에도 아이들 패션 마스크가 진열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요즘의 마스크 괴담은 사뭇 다릅니다. 구술이라고 해도 될까요? 음성으로 저와 이야기를 나눈 아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포를 더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배경음을 들리게 한다거나, 이상한 춤을 추는 동영상 클립을 보낸다거나. 솔직히 두어 번은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어두운 밤길에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이 얘야, 얘야 하고 부릅니다. 물론 부른다고 함부로 가면 안 된다는 건 아이들도 압니다. ‘어른은 아이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어른이 무언가 도와달라고 하면 주위 어른을 데려와라’라고 교육을 받죠. 이 금기를 어기고 가까이 간 아이에게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합니다. 아이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면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가까이 갔더니, 그 사람은 하얀 마스크를 쓴 게 아니라 입술까지 하얗게 칠한 사람이었고, 입을 쩍 벌리자 빨간 입에 누런 이빨이 드러납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는 엄청난 입 냄새가 나고 그 냄새에 아이가 꼼짝 못하고 얼어붙으면 그 순간 아이의 코에다 침을 뱉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왜 무섭냐’고 묻는 게 그다음 순서였습니다. 공포의 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알아야 했거든요. 그래서 물었더니, 다섯 명 중 네 명 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더럽다’라고요. 더러우니 무섭다. 어려운 말입니다. 대화를 통해 ‘불결한 것은 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병에 걸리면 아프니까 더러운 것이 무섭다’라는 논리적인 구조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악취, 닦지 않은 이빨, 비말은 확실히 불결한 것이긴 합니다. 그런 게 공포가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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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스와 메르스를 겪었고 코로나도 겪었지만, ‘침을 뱉는다’ ‘악취가 난다’는 게 그 자체로 공포가 되는 어린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선생님도 마찬가지시겠죠. 행색이 지저분하고 침을 아무 데나 뱉는 사람을 두려워한 건 ‘저 사람은 사회 질서를 위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고, 나에게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지 가까이 가면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공포는 없었거든요. 저까지만 해도 만 4세가 되기 전의, 충치 저항이 생기지 않은 아이에게 어른들이 애정의 표시로 음식을 씹어서 주고 뽀뽀를 하던 세대였으니 그런 걸까요. 아이들과 아주 멀리 떨어진 시대를 사는 기분이 듭니다.
사실, 이상한 사람이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에서 마스크 괴담이라 불렸으니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포가 성립하는 이야기를 마스크 괴담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 제 연구가 ‘마스크 괴담’과 관련된 연구로는 끝자락에 위치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이 괴담을 ‘살색 입술’이라고 부릅니다. 입술까지 살색으로 칠했다는 의미에서요. ‘살색 입술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부분은 지금 자료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공통된 답변이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괴담 향유자들이 서로 만나 소곤댈 기회가 적어진 것도 분명 이유 중 하나겠지요.굳이 연구 중간에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은 어제 저녁에 본 일 때문입니다. 입술이 파리한 노인이 골목길로 폐지 리어카를 끌고 가는데, 마스크는 턱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아이 목소리로 ‘살색 입술이다!’라는 외침이 들렸어요. 많이 답답했습니다. 노인이 되면 자주 숨이 차고, 종종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아직 모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턱에 걸쳐진 마스크를 보고도 ‘살색 입술’, 즉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한 이유는 아마 그 노인의 겉모습 때문일 겁니다. 낡은 운동화에 검게 탄 얼굴, 아마 좋은 냄새가 나지는 않을 듯한 지저분한 옷. 학교괴담에 관한 연구는 결국은 혐오에 대한 연구입니다. 어떤 것을 우리 아이들이 혐오하고, 어떻게 그것이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는지를 연구하는 데 ‘괴담’이 밑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는, 아직도, 노인의 모습을 한 홍콩할매귀신과 입이 찢어진 빨간 마스크를 두려워하던 20세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외모’로 괴담의 주인공을 정합니다. 저 역시 그 노인을 피해 길을 가면서, 착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도 아직 괴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당신의 못난 제자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