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2030년 - 포스트코로나 시대 읽기 ①환란일지 ②2030년 서울, 그리고 레이턴시 ③바이러스와 함께 돌아보기 ④마스크에 관한 학교괴담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이 일본에서 그린 특이한 형식의 그림
①완성의 속도 ②코로나 여름, ‘국뽕 아재’의 기원 ③적막과 고요와 침묵
아무일 일어나지 않는 40호 남짓 시골마을, 그 사람들과 정서
①일상과 일상 너머를 아우르는 탄력있는 상상력 ②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문학의 흐름과 성취는?
“일본 동북사투리가 너무 어려웠어요. 게다가 한국역사도…”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대산세계문학총서
2020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제28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선정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 소월시 100년, 한국시 100년
②코로나 여름, ‘국뽕 아재’의 기원
서영채
평론가, 서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교수, 1961년생
저서 『풍경이 온다』 『죄의식과 부끄러움』 『인문학 개념정원』 『미메시스의 힘』『문학의 윤리』 『사랑의 문법』 『소설의 운명』 등
글밭단상②
코로나 여름, ‘국뽕 아재’의 기원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꾼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간다. 전 세계 사망자 수만 현재로 60만 명을 넘어섰다니 재난도 이런 재난이 없다.
세상이 이렇게 뒤집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아마도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이루는 카프카즈 산맥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혼자 가는 비행기 표를 사둔 것은 지난해 가을의 일이다. 어렵게 잡은 기회가 있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우습지만 의무감처럼 잡은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유럽으로 확산되자, 내 비행기 표는 일정이 저절로 몇 번씩 변경되더니 결국 비행 편 자체가 취소되었다. 항공사에서 날아오는 이메일을 보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비상시국의 엄중함을 실감하면서도, 억지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철없이 좋아했다.
그 무렵만 해도, 틀어박히기 좋아하는 나는 이런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불행은 크지 않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니 원고나 많이 써두자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머리는 멍해지고 손은 느려져, 필수적인 일을 때우는 것만도 힘에 벅찰 지경이 되었다. 지구를 불태워버릴 기세로 퍼져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세에 압도당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땀을 흘려 몸을 학대하는 것으로 탈출구를 만들면서, 이것이 코로나 우울증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지난여름부터 이어져온 국내외 정치 상황에 기울어져갔다. 워낙 ‘국뽕’ 기질이 있던 터에, 코로나 사태로 한껏 솟구친 ‘국격’으로 인해 ‘국뽕 아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눈으로 돌아보건대, 무엇보다도 꼴불견은 아베 정권의 일본이었다.
지난해 7월, 아베 정부가 수출 제한이라는 경제 공격을 시작했을 때 나는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꿈속을 사는 극우 정권이라 해도 저렇게 바보 같은 자해 공갈단이 있을까. 최대의 고객에게 물건을 팔지 않겠다니, 제 자식 주리를 틀면서 이웃집 부모에게, “괴롭지? 괴롭지?” 하는 꼴이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해 코로나 사태를 방치하고 데이터를 감추는 모습을 보면서는, 일본에 드디어 망조가 들었구나 했다. 정치가의 못난 자식들이 집안 내림으로 국회의원 되고 수상 되는 나라, 극우 세력에 장기 집권을 허용하는 시민들, 선거법을 방치하여 이런 구조를 용인하는 주권자들, 그러면서도 착하게 자기 일만 하는 사람들. 코로나 사태로 조금 깊이 들여다보게 된 일본은 이미 중세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본보다 더 목불인견이었던 것은 한국의 주요 언론들이었다. 공포와 위기를 조장하는 기사들이야 해묵은 고질이니 안 보면 그만이지 싶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벌어진 ‘조국 사태’에 직면하면서부터는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일간 신문 하나마저 정리해버렸다. 매일 아침, 직장 휴게실에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는 조간신문들 곁을 지나가면서도 차마 끔찍하여 열어볼 수가 없었다. 내 약한 비위를 탓하다가, 왜 부끄러움은 독자들 몫이 되어야 하는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순간들을 지나며 나에게 레거시 미디어는 경멸이 아니라 그 이하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난리 통에도,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멋지게 치러졌고 세상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친일파’라는 단어를 대체해버린 ‘토착왜구’라는 단어였다. ‘친일파’라는 단어에는 일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친미파’나 ‘친러파’ ‘친청파’ 역시 마찬가지다. 저 단어들이 외설스러운 것은, 외부의 위세에 대한 두려움이 그 밑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친-’이라는 접두어가 이웃과 친하게 지내자는 수준이라면 누가 마다할까. ‘토착왜구’라는 단어가 반가웠던 것은 그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경멸이다. 아, 21세기 식이로군! 20세기 한국사를 아는 사람으로서 따옴표 속의 저 비속어가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비상사태의 특별함은 현실을 뒤집어 진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그것이 현실로 굳어지면 새로운 세상이 된다. 코로나 비상사태로 한국이 최상위 국가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 덕에 나는 일벌레에서 ‘국뽕 아재’로 거듭났다. ‘국뽕’ 같은 것이야 아무렇든 무슨 상관이랴. 마음 맞는 사람과 맘 편하게 나누는 밥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코로나 여름이다.
바라건대 하루바삐, 백신의 은총이 햇살처럼 지구 위에 쏟아지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