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중앙북스 본부장으로 계시던 한희덕 선배로부터 2년째 휴간 중인 《문예중앙》을 속간하는 일을 함께 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민음사 문학팀에서 일하며 한국문학 전문 계간지 《세계의문학》과 《포에티카》가 만들어지는 편집실의 한 귀 퉁이에 앉아 있기는 했었지만, 한국문학의 현장을 떠나 있던 8~9년 의 공백을 메우며, 나름의 역사를 가진 문학잡지의 편집장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머뭇거림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뛰어난 작가 들과 막 세상에 태어난 글들을 두고 무언의 대화를 깊게, 오래 나눈 편집자들에게서 우러나던 어떤 은은한 열기 같은 것, 그것을 다시 느 낄 수 있다면 한번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해 10월, 나는 중앙북스에 입사했고, 10개월가량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 9월 《문예중앙》 통권 123호를 속간호로 발행하는 일에 동참했다. 2013년 가을, 통권 135호를 펴낼 때까지 4년간 편집위원으로 애써주셨던 권혁웅, 조강석, 김영찬, 김미정, 허윤진, 백지은, 서희원 선생님, 그리고 같은 편집팀에서 날밤을 늘 함께 세웠던 박민주, 박성근 편집자와 함께 품고 나눴던 포부와 고민의 몇몇 장면을 잠시 돌아볼까 한다. 《문예중앙》은 1977년 중앙일보가 창간한 문학 계간지였다. 일간지를 펴내는 언론사가 발행한 문학 잡지는 지금까지 《문예중앙》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선친인 홍진기 회장이 문학에 쏟은 애정은 각별했다고 들었다. 《사상계》, 《다리》, 《현대문학》으로 시작하여 1970년 대 한국문단을 양분한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에 이르기까지 정통 문예지는 특정 사조나 세계관을 기반으로 문학담론을 형성하고 이끌어가는 ‘동인지’의 성격이 강했다. 동인지라는 특성에 따른 ‘편집 위원 중심의 운영 체제’는 문예지 태동기부터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했다. 이들과는 다르게 언론사에서 발행한 문학잡지였던 만큼 《문예중앙》은 ‘대중 문예지’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며 앞서 언급된 문예지들과는 차별되는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했다. 《문학과사회》의 김현, 김주연, 김병익 선생이나 《창작과비평》의 백낙청 선생처럼 하나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문학적 지향을 함께하는 평론가들이 모여 만드는 문학잡지들과 다른 강점을 표방하지 않고는 뾰족한 경쟁력이 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문예중앙》은 창간 초기부터 과감한 투자와 거리낌 없는 기획(1970~1980년대 발행된 초기 《문예중앙》의 편집은 놀랍도록 신선했다)으로 지명도를 높여가며 신경숙, 황지우, 유하, 문태준, 박상 우, 권혁웅, 이영광, 김민정, 황병승, 김경주, 조연호, 조강석, 함돈균 등, 유망한 작가들을 문단의 신예로 조명하고 배출했다. 속간호를 준비하며 중앙일보사 대표를 지낸 권영빈 전 문예중앙 편집인을 뵈었을 때, 《문예중앙》은 중앙일보사 출판국에서 발행될 당시부터 단행본 출간의 창구였고, 중앙일보가 한국문단의 핵심 문인들과 함께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며 중앙일보 가까이에 문학인 네트워크를 구 축해왔음을 확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내 문학 라인업이 강한 출판사들이 만드는 문학잡지의 기능 은 발행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평론가들이 유망한 소설가와 시인들을 발굴하고, 집중 관리하며 신작 원고를 묶어두는 일이다. 그것이 결국은 보다 많은 독자들을 출판사 주위에 모으는 일일 것이다. 저널리즘 성격을 조금 더 강조했다 하더라도 《문예중앙》의 발행 취지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문학계의 시의성 있는 주제, 역량 있는 작가들의 글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더 넓게 소통하며 매체의 힘을 키 워가는 것. 2009년 가을, 속간을 위한 편집위원회를 꾸리며 권혁웅, 조강석, 김영찬 선생과 정기회의 시간을 한참 넘기고, 밤이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거듭했던 문제 제기와 토론의 핵심 또한 《문예중 앙》이라는 잡지가 늘려가야 할 ‘매체의 힘’이란 게 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 였다. 발행 주체가 중앙일 보(1978~1997)에서 중앙M&B(1998~2004), 랜덤하우스중앙(2005~2006)을 거쳐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2008)로 바뀌는 동안 편집위원회의 구성에 따라 조금씩 색채를 달리하긴 했지만, 매너리즘과 정체를 거부하며 늘 새로운 안목과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창간 취지는 변함없이 이어졌고, 2005년 혁 신호의 ‘미래파’ 논쟁 등은 지금까지도 회자될 만큼 신선한 기획으로 평가받는다. 더불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단 3년 동안 44권이 간행되었던 <문예중앙시선>은 편집진의 탁월한 기획력과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명맥을 이어 속간호를 준비하던 때에도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세계의 문학》 등의 문예지 는 여전히 건재했고, 1990년대 후반 젊은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단 서클을 구축한 《문학동 네》는 15년 사이 가장 주목받는 문학잡지로 부상해 있었다. 문학 출판사들이 판매부수가 저조한 그 계간지들을 유지하는 이유는 문학도서가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 다. 2009년에도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공지영의 『도가니』, 황석영 의 『개밥바라기별』, 김별아의 『미실』, 김훈의 『공무도하』 등 문학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달했다. 특히 2008년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었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100만 부가 넘는 판매부수를 기 록하고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도 ‘엄마’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을 낳으며 문화계 전반에 ‘엄마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고, 계간지와 문학상 제도는 대형 작가 신작 입수를 둘러싼 출판사 간의 치열한 경 쟁에서 중요한 매개로 여전히 인정받고 있었다. 단기간에 굵직한 장편소설 원고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 《문학동네》는 원고료를 인상했고, 한참 후발주자였던 《자음과모음》은 계간지마다 보통 한 편에 그쳤 던 장편소설 연재를 3~5편까지 늘려 별책으로 편집하는가 하면, 계간지 가격을 파격적으로 인하하기도 했다. 그와 같은 각축장에서 발행되고 있던 문예지가 《현대문학》, 《문학사상》 등의 월간지를 비롯, 《작가세계》, 《문학의 문학》, 《현대시》 등 전국적으로 300개가 넘었다. 그렇게 많은 잡지들이 있었음에도 대부분은 천편일률적인 편집위원 체제의 폐쇄성과 권위주의, 연 고주의에 따른 수직적 필자 등용, 매너리즘에 빠진 형식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출발선상에 선 《문예중앙》의 편집진은 문단 내부용 정보 교환이나 상찬 혹은 반목의 평론을 지양하고 문학의 눈으로 관심을 확장해가야 할 분야들, 예컨대 시네마, 포토그래피, 사이언스 등의 영역과 소통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2012년 가을호부터 시작한 ‘크로스오버 인문학대담’은 그것의 한 결과였다. 시 인 함성호와 과학자 이정모의 대담 「건축의 우주론, 생물의 건축학」을 시작으로 물리학자 이기진과 포 토그래퍼 진동선, 천문학자 이명현과 소설가 김탁환, 수학자 최재경과 시인 김소연의 만남이 이어졌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병욱 프로듀서와 영화비평가 허문영 선생님의 「이 세상 모든 ‘하자’들을 위한 하이킥」은 소심함과 궁핍에 대한 두려움을 과시욕과 자존감 수업으로 때우는 우리 시대의 단면들에 대한 통찰을 선취한 대담으로, 지금 다시 읽어도 새롭다. 《문예중앙》도 한국문단이라는 지도 위에서 지평을 넓혀가야 했던 잡지로서 장편소설 연재, 단편소 설 수록, 신작시 20~30편 수록, 흔히 특집으로 분류되는 문학평론, 신인상, 소설상 등 문학상 공모, 주요 신간 리뷰 게재 등, 전형적인 문예지의 편집 구성을 완전히 탈피할 수는 없었다. 다만 ‘문학적인 것’의 경계를 바깥으로 확대하며 독자층을 넓히고, 미술/음악/건축 등 문화의 다른 영역에도 영감을 주는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하나라도 더 늘려보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 편집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칙은 ‘편집위원들의 솔선수범(?!)’이었다. 편집위원들이 부지런히 읽고, 누구보다 먼저 쓰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다. 한 계절 동안 각종 문예 지에 발표된 단편소설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선정해 서평을 남긴 ‘3/4 리뷰(1/4만큼 남겨둔 자리는 독자들이 채울 자유로운 비평 공간이라는 의미였다)’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외부 필진에게 리 뷰를 발주하지 않고, 편집진 모두가 매 계절 거의 모든 신작들을 읽고,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 직접 썼다. 시와 소설, 비평을 위한 기본 지면을 제외한 섹션들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방식으로, 뭐든 해보고자 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 고전적인 구성보다 먼저였다. 그에 걸맞은 편집을 위해 북디자 이너 오필민 선생을 6개월 동안 괴롭히며 얻어낸 대담한 디자인, 속간호의 문을 배명훈의 중편소설 『청 혼』과 이명현의 에세이 「오래된 유서」로 열었던 것 등은 기존의 계간지 편집방식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 기도 했다. 하다못해 어느 잡지에서나 하는 리뷰를 하더라도 문제를 포착해내는 색다른 포지션을 보 여주려 했다. ‘이 장면을 보라’와 ‘if문학사’, ‘리라이트 소설’, ‘모티톨로지’는 문학적 유산, 우리 문학에 어 떤 의미를 남긴 사유와 사건들을 돌아보는 흥미로운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기획들이었다. ‘한 글자 사 전’과 ‘루팡의 도서관’처럼 시, 소설, 평론을 넘어 ‘문학적 에세이’를 향유하고 싶어 할 독자들을 상상하 며 마련한 지면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정점은 내가 기억하는 한, 허문영 선생님의 ‘시네마노트’와 고 황현산 선생님의 ‘현대시 산고’였다. 문학의 언어로 사유하는 글의 경지와 그것을 읽는 설렘을 그때, 매 계절 두 편의 원고를 마감하며 배웠다. 《문예중앙》은 안타깝게도 지난해 다시 기약 없이 휴간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책장에서는 ‘또 다른 시작의 신호’처럼 꽂혀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