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ㅣ 소설가, 1975년생
장편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한국이 싫어서』,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
산문집 『5년 만에 신혼여행』 등
현수8구역은 일주일 사이에 소형 빌라가 3.3㎡당 1,000만 원 가까이 가격이 올랐다. 현수동 H공인 대표는 “한강 전망과 접근성이 뛰어난 점 등 입지 여건이 좋은 데다 재건축 사업 추진이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실제로 자신이 그런 행사를 눈으로 본 것인지, 아니면 TV로 본 것을 직접 봤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선녀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관제 야외행사가 많았다. 소련을 규탄하는 집회나
반공 웅변대회가 열리던 시절이었다. 소풍이나 학교 운동회가 아니라 시·도 규모 정도의 대회에는 가끔 운동장에 새끼돼지를 풀어놓고 아이들이 잡게 하는 놀이가 있었다. 국민학교 저학년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고학년들은 같은 대회에서 차전놀이를 하거나 에어로빅 시범을 보였다. 목에 붉은 리본을 두른 새끼돼지를 운동장에 풀어놓으면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간다. 새끼돼지들은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아이들과 돼지들은 달리는 속도가 비슷하다. 분홍빛 새끼돼지들은 달리다 엉뚱한 방향으로 몸을 돌려 아이들을 따돌리고, 아이들의 다리사이로 빠져나가고, 붙잡히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버둥거리며 도망칠 틈을 만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선녀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돼지를 잡는 게임이나 차전놀이, 에어로빅 시범에 참여하지 않는다. 몸이 아파서였을까? 그녀는 선생님들 사이에 앉아 저학년들이 돼지를 쫓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구, 어라,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돼지 쫓기를 지켜보던 한 교사가 게임이 끝나는 게 아쉬웠는지 다른 교사에게 묻는다. 저거 돼지로 하지 않고 토끼로 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 선생이 도시에서 자라서 뭘 모르는구먼. 토끼로 하면 안 돼. 왜요? 토끼들은 겁이 많거든. 우우하고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면 소리 지르는 반대 방향으로만 도망을 치지. 그러다 구석에 몰리면 그냥 주저앉아서 오들오들 떨기만 해요. 쫓는 맛이 없어. 그래서 토끼몰이라는 말이 생겼나 보네요. 그렇지. 선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이때의 기억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자신이 돼지잡기의 현장에 직접 가 있었는지 아니었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기억 속의 장면이 어린이와 돼지들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이미지인 걸로 봐서 야구장이나 축구장처럼 제대로 된 시설에서 벌어진 일 같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 그런 시설에 가본 적이 있던가? 선생님들과 함께? 높이 설치된 TV 카메라가 찍은 영상 아니었을까? 그런 돼지잡기 대회를 TV에서 중계했을까? ‘전국소년체전 개최’ 따위의 짧은 방송뉴스 화면을 교무실에서 함께 본 기억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게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아닐까? 혹시 도시철거민연합 집회에서 들은 얘기인건 아닌가? 우리는 구석에 몰리면 웅크려 주저앉는 토끼가 되지 말아야 한다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우리를 쫓아오는 자들을 향해 달려드는 돼지가 돼야 한다면서. ‘돼지가 돼야지! 돼지되자!’라고 껄껄 웃으며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