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 동안의 문학 소 식을 전하기에 앞서 먼저 개인적 신상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해야겠다. 2011년 문학 담당 기자를 떠나 7년 만에 다시 문학을 담당하게 됐다. 익숙함과 낯 섦이 교차했던 3개월의 기간 동안 문학계에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한국문학의 거목과도 같았던 분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난 일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3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네 사람의 부고 기사를 써야했다. 소설가 최인훈 선생에 이어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세상을 떠났고, 먼 독일에서 허수경 시인의 부고가 전해졌다.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지난 10월 25일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눈을 감았다. 7년 만에 다시 문학 담당으로 돌아와 채 적응하지 못한 나만 갑작스런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국문학의 큰 산이었던 이들의 죽음이 남긴 슬픔과 빈자리는 크다. 많은 문학인과 독자들이 슬픔과 상실감에 젖었 다. 하지만 일생을 문학에 바쳐온 이들이 남긴 문학과 열정은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위안 삼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문학에 당대의 아픔과 고민을 녹여내고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평했듯이, 지금도 현재의 고민과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부지런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또한 위안 삼아야 한다. 지금은 지금의 문학이 필요한 법이니까. 페미니즘과 퀴어. 이 두 가지가 지금 한국 문학계의 키워드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 같다. ‘페미니즘 열풍’의 상징과도 같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100만부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여성 서사를 다룬 소설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조남주의 『그녀 이름은』과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 람』이 출간되어 수만 부씩 판매되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데 이어 하반기에도 이어 박민정 의 『미스 플라이트』, 신중선의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등이 출간됐다. 『미스 플라이트』는 군인 아버지 아래 억압적 성장기를 겪었던 여성의 성장 서사를 다뤘고,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가족관계에 내재된 폭력과 부조리함을 그렸다. 해외 소설도 눈길을 끌었는데 개브리얼 제빈의 『비바, 제인』은 유명 정치인과 인턴의 불륜 이 후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2차 가해와 인터넷상의 사이버불링 문제를 다뤘다. 한국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며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소설이었다. 평론의 영역에서는 그동안 주변적으로 여겨졌던 페미니즘 비평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작업이 이뤄졌다. 지난해 성황을 이뤘던 강의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다시 읽는 한국문학사’를 정리해 펴 낸 책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이 출간됐다. 근대문학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문학사의 주요 장면들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다시 썼다. 문예지 《릿터》에서는 아예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이상의 「날개」 등을 다시 쓰는 작업을 했는데, 여러 방면에서 한국 문학을 여성주의적 관점 에서 다시 바라보려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거칠게 말해 페미니즘이 성차별을 없애려는 움직임라면, 퀴어는 이성애중심주의에 질문을 던 지는 것이다. 이 둘이 한 흐름을 이루는 건 자연스럽다. 그동안 퀴어문학이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 주로 소비되거나 기성 작가들이 타자를 이해하려는 윤리적 태도에 기반해 다뤄졌다면 최근 에는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들이 자기 서사로서의 퀴어문학을 창작해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먼저 김봉곤이 『여름, 스피드』를 출간하며 ‘커밍아웃한 작가’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어 박상영 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펴냈다.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 큐큐는 김 봉곤과 박상영을 비롯, 김금희, 강화길 등의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퀴어소설 단편선 『사랑을 멈 추지 말아요』를 펴내며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을 퀴어 서사로 다시 쓰는 작업을 했다. 기성 작가들이 퀴어적 서사를 쓰는 작업도 이어지고 있는데 최은영은 『쇼코의 미소』에 이어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기준영은 장편소설 『우리가 통과한 밤』에서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 뤘다. 이 시기 동안 반가운 장편소설 소식도 있었다. 김사과는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뉴』를 펴냈 다. 전작 『천국에서』에서 몰락하는 중산층의 풍경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상층부와 하층부만 남 은 세계에서 최상층부의 삶의 모습을 극단으로 몰아붙여 보여줬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천착해 온 김숨은 『한 명』에 이어 『흐르는 편지』를 새로 내놓았 고, 곧이어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군인이 천사 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를 펴냈다. 직장인과 청년층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낸 작품들도 연이어 나왔다. 창비신인상을 수상한 장 류진 작가는 당선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SNS를 중심으로 폭발적 반 응을 일으킨 소설은 판교 테크노밸리 직장인들의 애환을 현실적이면서도 발랄하게 그려냈다. 소설이 동시대의 코드와 접속할 때 여전히 ‘핫’한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밖에 ‘건물주가 신이 된 시대’에 취업난을 겪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최민우의 『점선의 영역』, 이케아와 다이소로 상징되는 현대의 삶과 소비 양식을 그린 김의경의 『쇼룸』도 눈길을 끌 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