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을 좀 만나보라는 말에 민혁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새끼가 뭐에 씌어도 단단히 씌었다니까. 오상수의 말이었다. 모임에서 발을 끊은 지가 3년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어쩌란건지.
형, 제가 요즘 조금 바빠서요. 그러거나 말거나 오상수는 막무가내였다. 네가 모임에 빚이 있으니 그런 식으로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걔가 엇나가면 너라고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확실히 서동욱이 엇나가는 일은 민혁의 입장에서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일단 만나면 술은 한잔해야 했고, 그러면 돈도 돈이었고, 시간도 시간이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민혁은 소파에 앉은 자세 그대로 상반신을 옆으로 누이며 옆에 앉아있던 아내의 허벅지에 머리를 갖다 대었다. 좀 조용히 좀 살자. 씨팔. 나직한 읊조림에 아내가 민혁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욕을 하고 그래. 무슨 일 있어? 민혁은 눈을 감았다. 소화가 되는지 아내의 뱃속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상수 형이 맞았다네. 동욱이한테. 어머. 무슨 일인데. 잘 모르겠어. 상수 형이 만나서 얘기 좀 해보라는데. 만나 봐. 동욱 씨도 복잡하겠지. 장애인인데. 평소처럼 중요한 때에 어디를 가느냐며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선선한 승낙의 말이 돌아왔다. 앞으로 며칠간은 아내의 가임기였다. 1년 전부터 노력해왔지만 좀처럼 임신은 되지 않았고, 그녀는 그럴수록 조금씩 민감해져갔다. 다시 몸을 일으켜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차를 들겠다고 위아래로 흔들지만 않았어도 서동욱이 지금처럼 다리를 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야 하나. 먼저 씻어. 아내가 말했다. 민혁은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거나 중요한 시기였다.
점심시간을 30분 남겨두고 오상수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회사 앞이니 식사 시간에 맞춰내려오라는 내용이었다. 민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 점심 먹자. 어제 얘기도 마저 하고, 혼자 먹기 심심하잖아. 혼자 먹기 심심하다는 말에는 주어가 없어 마치 민혁을 배려해준다는 식으로 들리기도 했다. 오상수 특유의 화법이었다. 또다시 휘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로비에 서 있는 오상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변에서나 입을 법한 형광색 반바지 차림에 흔히 라이방이라고 부르는 알이 큰 선글라스를 낀 채였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그렇지 어디 해수욕장에서 튜브나 파라솔 따위를 빌려주는 상인이라고 해도 수긍할만한 모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