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스승 오쇼 라즈니쉬는 시인에 대해서도 경청할 만한 말을 남기고 있다.
“시인이란 부나 권력의 세계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자들이 알 수 없는 다른 종류의 부를 알고 있다. 사랑이란 시인에게만 일어나며 진리는 시인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했던 강의를 모아놓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랑이 시인에게만 일어나고, 진리 또한 시인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니 여기까지만 보면 시인이란 대단한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라즈니쉬가 말하는 시인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지는 다음 대목부터가 중요하다.
“시적인 존재가 되라. 시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선 세상이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적인 존재가 되라고 해서 반드시 시를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이 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 아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다 해도 시인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천 편의 시를 썼다 해도 시인 아닌 사람이 있다. 시인이 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니 삶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며, 삶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시인이다.”
이쯤 되면 라즈니쉬가 말하는 시인이 어떤 존재를 일컫는 것인지 짐작이 간다. 마음속에 사랑이 있는 사람, 삶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 진실한 사람이 시인이며 그런 진실함 자체가 시라는 것이다. 문자로 된 한 편의 시도 쓴 적 없지만 시인인 사람이 있고, 수천 편의 시를 썼다 하더라도 시인 아닌 사람이 있다는 말씀,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라즈니쉬와 꼭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받아서는 안 되는 상(예컨대 친일 문학가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이나 문학적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 문학상)까지 받으며 시인인 듯 행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세상이니까.
그러고 보니 40년 넘도록 시를 써 오며 만난 사람 중에 삶 자체가 시라고 느껴지던 이는 문자로 된 시를 쓰는 사람들보다 그것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 중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글과 삶이 일치되는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라즈니쉬가 살던 인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가 그런 말을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보면 그럴듯한데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글과는 동떨어진 그들은 시적인 삶을 명예나 권위 같은 세속적 가치를 누리기 위한 처세 같은 것으로 착각하며 산다. 라즈니쉬의 말과는 다른 의미에서 ‘세상이 손가락질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작가의 입장에서 늘 미안한 것이 있다. 책이 잘 팔리면 잘 팔리는 대로, 팔리지 않으면 또 팔리지 않는 그것대로 미안하다. 세상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애꿎은 나무가 잘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맹률이 높은 인도 같은 나라의 경우, 나무 입장에서 보면 그 높은 문맹률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일 듯하다. 그 많은 인도 사람들이 다 글자를 깨쳐 책을 읽는다고 하면 지상의 나무가 남아있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라즈니쉬 식으로 말하자면, 참으로 시인인 사람은 나무를 자르게 하는 책을 펴내려 애쓰기보다 인생과 진실한 관계를 맺고, 세상에 사랑을 펴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책을 쓸 때마다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쓰는 이 책이 한 그루 나무의 생명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
어느새 봄이 다가오고 있다. 머지않아 꽃소식이 들릴 것이다. 혹한을 지나 들려오는 꽃소식이야말로 한 편의 시 아니겠는가. 나무를 베기는커녕 메마른 가지마다 생명을 싹 틔우는 봄이야말로 참으로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