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입니다. 열세 살 소년은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않는 아이입니다. 새벽 내내 『삼국지』만 읽는 아이입니다. 소년은 이불 속에 틀어박힌 채, <위> <촉> <오> 세 나라의 전쟁을 시뮬레이션 합니다. 빈 노트에 도표를 그려, 각 나라 장수들의 피지컬을 측정하고, 책사들의 능력치를 매깁니다. 여포와 하후돈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가상 싸움을 붙입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포의 아슬아슬한 승리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며 소년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히죽거립니다. 외롭지만 신나는 겨울이에요. 소년은 흰 스케치북을 찢어 제갈량의 부채를 만들기도 했고. 조자룡이 죽는 장면을 읽다 울컥해, 이불에다 뜨거운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를 완독하자, 소년은 쓰고 싶다고 말합니다. 문장이라는 것을. 그래서 소년은 ‘조자룡’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텅 빈 벌판 위에. 모래 먼지가 날리고. 늙은 말이 울고. 끝내 조자룡이 칼로 자결해버리는. 유치하지만 비극적인 결말의 시를 썼습니다. 소년은 그 시를 엄마에게 보여줬습니다. 엄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역사, 대륙, 봉인, 따위의 단어를 쓰는 소년이 징그럽다고 했습니다. 어린애가 무슨 그런 단어를 쓰니. 저녁은 안 먹니? 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하후돈의 한 쪽 눈알이 왜 없냐면요. 청룡언월도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칼인 이유는요. 그러니까, 제갈량은 아인슈타인보다 천재거든요. 엄마는 한숨을 쉬며 커튼을 쳤습니다. 방 안으로 흰 빛이 들어오는데. 소년은 눈을 감고 책 속으로 숨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침대에 누워. 부모가 죽어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삼국지라는 세계가 있다면, 현실 같은 거는 필요 없겠다, 괜찮겠다, 생각했습니다.

커튼을 닫고
생각을 시작합니다

소년이 왕국을 세웠습니다.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짧은 걸 쓰자. 짧고 쉬운 걸 쓰자. 소년에 관해 이야기하자. 소녀에 대해 이야기하자. 동시가 아니라, 어른의 시가 아니라, 우리의 시를 쓰자. 소년은 생각을 멈추지 않습니다. 바보 같은 남자들이 ‘생각’을 멈춰서 전쟁이 나는 거란다. 엄마가 충고를 합니다. 그래서 소년은 멈추지 않고 더 생각을 합니다. 이 왕국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 왕국의 주인은 학교에 나가지 않는 소년과 소녀들입니다. 소년은 방문을 열고 엄마에게 벌컥 화를 냅니다. 어른들의 말 중 공감을 일으키는 건, 밥 짓는 법에 대한 얘기뿐이야.
소년은 졸업장도 없습니다. 교복도 없습니다. 그래도 왕국의 왕입니다. ‘문장’을 학교라 생각하고, ‘화자’를 선생이라 여기니까요. 자신의 왕국을 끝까지 지킬 겁니다. 방 안에 처박혀 있는 소년 소녀들이, 문을 열고 놀러오라고. 너희들에게 달콤한 팬케이크를 해주겠다고. 시라는 고독한 왕국에서, 영영 어른이 되지 않기로, 약속하고, 다짐하면서,

커튼을 치면
문장이 있습니다 흰 빛이 있습니다

소년은 외투를 걸칩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섭니다. 오늘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시를 써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