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올해의 노벨문학상도 우리가 소망한 바와는 달리,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우려한 예상대로, 우리나라를 외면하고 바로 이 문학상을 제정한 스웨덴의 시인에게 돌아갔다. 우리에게 전혀 익숙지 않은 이름에 대한 소개를 신문에서 대충 훑고 나서 나는 한가한 마음으로 ‘위키백과’에 들어가 역대 수상자들의 명단을 보며 내 흥미대로 이것저것 짚어보았다. 20세기의 첫해인 1901년에 첫 시행된 이후 올해 2011년까지 이 문학상 수상자는 모두 108명이었다. 세계대전이 있었던 1914년, 1918년과 1940-43년, 그 사이의 1935년에는 수상자가 없었고 대신 1904년, 1917년, 1966년, 1974년에는 2명의 공동 수상자를 냈다. 이 목록의 정리에 따르면 나라별로는 14명의 프랑스가 1위이고 2,3위가 10명의 미국, 9명의 영국과 독일이고 스웨덴과 이탈리아가 6명씩으로 그 뒤를 잇는데 단 1명을 낸 나라가 20개국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37개국뿐이어서 한국과 중국 등 한 사람도 아직 내지 못한 나라가 그 다섯 배를 넘는다. 언어별로는 27명의 영어와 14명의 프랑스어, 13명의 독일어, 11명의 스페인어이며 여기에 스웨덴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유럽계의 여러 언어를 포함하면 비서구어의 수상자는 대여섯 명밖에 안 된다. 그 수상자들도 서구어로 번역된 작품을 통해 심사되었을 것이다.

그 이름들을 다시 보니, 여성이 12명이고 철학자가 오이켄(1908), 베르그송(1927), 러셀(1950) 등 셋으로 형이상학적 글쓰기도 넓은 의미에서 ‘문학’으로 수용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더 어색한 것은 시상해야 한다면 마땅히 평화상감일 처칠이 그의 전쟁 회고록으로 문학상(1953)을 탄 일이다. 연도별로 살피면, 초기의 노벨문학상은 북구와 서구 및 그들의 언어권으로 집중되었고 1913년 인도의 타고르를 선정한 것은 예외적이었다. 한 세대가 지나서야 대서양을 넘어 싱클레어 루이스의 미국과, 동방으로 뛰어 부닌의 러시아로 확장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페루의 미스트랄로 남미에 미쳤으며 거기서 20년이 더 지난 1968년 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아시아권에 시선을 돌렸고 또 18년이 지난 1986년에 나이지리아의 소잉카에 상을 줌으로써 아프리카에까지 미치는 노벨상의 ‘세계화’가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명예와 상금에서 최고의 문학상인 노벨상은 당초 북구와 서구 지역의 상으로 시작되어 북과 남의 아메리카 대륙을 거쳐 아시아권과 아프리카권으로, 노벨문학상의 ‘탈지역화’가 이루어지기까지 80년 이상이 걸린 것이다. 이 같은 ‘국지적 한계’는 언어적 장벽과 문화적 상이성으로 당초부터 피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노벨상의 권위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보내기 어렵다는 사정을 부인해주는 것은 아니다.

상이란 것이 주관적인 평가의 객관적인 단순 집합임을 나도 심사회의에 더러 참석해보아 실감해왔고 그래서 우연성이 의외로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지만, 노벨상이 현대 세계 문학의 흐름을 바꾼 대가를 외면한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1910년에 작고한 톨스토이가 ‘19세기적 대작가’여서 ‘북구 지방의 상’에 불과하던 노벨상을 수여하기에는 좀 민망한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1920년대 전후의 세계 문학에 모더니즘의 새로운 판도를 일구어낸 프랑스의 프루스트와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가 그 업적에 합당한 수상자 이름으로 오르지 못한 점, 20세기 최고의 시인 반열에 오를 독일의 릴케와 프랑스의 발레리를 명단에 넣지 못한 점은 이 상의 제정이 ‘평화의 이상주의적 기여’를 중시하는 데 있다는 이유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변명해주기 쉽지 않다. 이 세계적 대가에게는 불운이지만 노벨문학상의 권위에 자주 회의를 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벨문학상 명단을 들여다보다가 내가 다시 찾은 것은 카뮈의 『작가 수첩』이었다. 내가 행간에 메모를 끼적거리는 ‘마지널리언’(그러니까 요즘 말로 쓰면 ‘댓글 쓰기’가 될 것이다)이 되어 김화영이 번역한 『알베르 카뮈 전집』을 차례로 읽으며 일기와 단상이 뒤섞인 제 9권에 이르렀을 때 문득 그가 노벨상 수상 통지를 받았을 때 어땠을까 하는 데 관심이 간 바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젊은 44세의 나이(수상자 전체에서 가장 젊은 작가는 42세의 영국 작가 키플링이었다)로 이 상을 수상한 그가 수상소식을 통지 받은 1957년의 날짜를 다시 찾아보니 거기 적힌 그의 일기는 참으로 짧고 의외였다: “10월 17일. 노벨상. 짓눌림과 우수가 함께 섞인 이상한 감정. 스무 살 때 가난하고 헐벗은 처지였을 적에 나는 진정한 영예를 체험했었다. 나의 어머니” (김화영 역, 『작가 수첩 III』, p.288).

무식하고 젊은 가정부로 과부의 일생을 괴롭고 외롭게 보내며 폐병쟁이 아들을 키워온 어머니를 이 수상의 영광 앞에서 끝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오히려 ‘가난하고 헐벗은 처지’였던, 그러니까 비록 초라한 집안의 자식이지만 지중해의 바다와 빛나는 태양 아래 행복해했던 젊은 때가 더욱 참된 시절이었다는 고백은 ‘정오의 사상’에 젖은 작가의 실존주의적 감수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받는 소감의 첫 마디가 ‘짓눌림과 우수’였다는 것은 뜻밖일 수밖에 없었다. 문득 큰 영광을 입었을 경우 그것을 실감하기에 앞서 우울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생각되고 그 상이 줄 거대한 영광에 ‘짓눌릴’ 수도 있음을 예상할 수 있지만, 그 모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노벨상. 짓눌림과 우수가 함께 섞인 이상한 감정”은 여전히 의외였다. 얼마나 많은 작가와 나라들이 이 상을 받기를 열망해왔는가. 카뮈가 자기보다 앞서 노벨상 수상자가 되어야 했다고 소감에서 밝힌 앙드레 말로가 그 후 알코올 중독이 된 것, 일본의 미시마 유키오가 극우적 행태를 보이며 할복자살한 것이 그들 생전에 노벨문학상 수상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란 추측이 날 정도로, 한없이 자부심 강한 문학인들도 노벨상의 영광 앞에서는 참으로 무력해지고 마는데, 이 40대 젊은이는 왜 ‘짓눌림과 우수’를 먼저 느껴야 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좀 더 찾아보았다. 김화영 역의 카뮈 전집 18권 『스웨덴 연설 ? 문학비평』의 수상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수상 통보를 받고 “당혹과 내면적인 혼란”(p.10)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직 마음속의 의혹과 여전히 습작 상태의 작품뿐이며 작업의 고독, 아니면 우정의 은신처에 파묻혀 있다가 (……) 별안간 세찬 조명의 한가운데로 불려나오게” 된 작가적 당혹감을 피력한 후, 그러나 그는 여기서 ‘어머니’를 찾는 대신, 좀 더 공적인 사회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소감을 토로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최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다른 작가들의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 이 시간에, 그리고 자신의 조국 땅이 끊임없는 불행을 겪고 있는 이때에 이런 영예를 입게 되었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pp. 9-10). 여기서 그가 손꼽는 ‘최대 거장’은 아마도 앙드레 말로일 것인데, 그가 강조하는, “조국 땅이 끊임없는 불행을 겪고 있다”는 지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처리가 진행된 지도 이미 10여 년이 지났기에 아직 고통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며 그가 태어난 알제리가 독립 운동으로 스산스러웠지만 그는 그 즈음 이 문제를 냉철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최근에 번역되어 읽게 된 로널드 애런슨의 『사르트르와 카뮈』(변광배 ? 김용석 옮김, 연암서가)는 거기에 붙인 ‘우정과 투쟁’의 부제답게 당대 프랑스 지식 사회의 두 우이(牛耳)를 잡은 사르트르와 카뮈의 사적, 공적인 관계의 분석에 집중하고 있는데, 카뮈가 『반항적 인간』을 출판하자 사르트르가 주재한 《현대》지의 서평란에서 사르트르의 후배인 장송이 혹평했고 여기서 전부터 두 사람 사이에 끼이기 시작한 불편한 관계가 폭발하여 두 캠프간의 논쟁이 벌어졌으며 카뮈는 사르트르에게 절교를 선언한 후 침묵을 지켜오고 있는 중이었다는 전말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카뮈는 파리 지식 사회의 좌장 노릇을 하는, 자기보다 8세 연상의 사르트르와 결별한 후 내면적으로 지적 라이벌들과의 논전을 피하고 싶었고 조용히 자신의 창작 세계로 돌아가 『전락』을 발표한 참이었다. 그러나 노벨상이 그런 그의 침잠에의 소망을 흔들어놓았을 것이다. 이 책이 많이 참조하고 있는 올리비에 토드의 평전 『카뮈』(김진식 옮김, 책세상, 2000)에는 카뮈가 스승 장 그르니에에게 “저의 세대의 텅 빈 공허함을 제가 가득 채웠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저는 그것을 채우려고 애쓸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이어 이 수상으로 “이제는 적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II권, p.1168). 젊은 카뮈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적 영광을 반가워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가해질 갖가지 험담에 마음 무거웠으리라. 실제로, 7년 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좌파만이 아니라 극우파도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난 그를 못마땅해 했다. 르바테는 “『페스트』의 알레고리 때부터 카뮈 스타일의 동맥경화증이 드러났다”고 비판했고 아에당스는 카뮈의 글에 대해 “이보다 더 비통하고 더 생기 없는 언어로 글을 쓸 수 있을까”라고 꼬집었다(p.1189). 토드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는 노벨상의 무게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카뮈는 그의 이름에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p.1191)고 전한다. 부조리한 세계에의 깊은 고뇌에 빠진 그가 세속의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런 상에 대해 반가워하기보다 부담스러워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에도 노벨상을 놓친 시인 고은 선생은 이태 전인가 그의 그림 전시회장에서 만났을 때 “그만 이 법석을 벗어났으면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 ‘법석’은 노벨문학상 때문에 비롯된 갖가지의 번거로움을 가리킨 것이었다. 카뮈의 고통은 상을 받고 난 후에 생겨날 갖가지 구설들에 대한 두려움이었지만, 고은의 그 ‘법석’은 그가 상을 받기를 바라며 그 발표를 받는 순간의 수상자의 말과 심경을 먼저 보도하려는 언론들의 치열한 경쟁에 갇혀버리고 마는 소란을 말하는 것이었다. 발표 즈음이 되면 안성 그의 집 주변을 기자들과 텔레비전 방송사들의 중계차들이 빙 둘러싸고 안팎을 들락거리며 갖가지 일들과 모습들을 체크하고 있어 어떻게 꼼짝을 못하겠다고 그는 한탄했다. 그 자신은 이제 노벨상을 받고 못 받고의 문제에서 초연해지고 있는데 언론계가 이처럼 소란을 떠니 견딜 수 없어 스톡홀름에서 발표할 날이 가까워지면 훌쩍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고 했다. 한국도 당연히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하고 받아야 하며 받을 수 있고 그 가장 유력한 분이 고은 시인이어서 언론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만큼 큰 괴로움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30년 전의 일이 회상된다. 1980년대 초, 한국이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하자 자신감이 넘쳐, 당시의 문화부 쪽에서는 계제에 노벨문학상도 탈 만하지 않겠는가 싶었던가 보았다. 스웨덴의 한국 대사관에 가능성을 확인해보도록 지시했는데 현지 문화관은 이리저리 탐색해보더니 도대체 한국에 문학이 있는지, 아니 고유의 언어나 문자가 있기나 한 것인지, 전혀 감감해 있더라는 것이다. 그 문화관은 우선 극동의 숨은 나라에도 독자적인 문자와 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라며 노벨상 수상 운동에 앞서 한국문학의 존재를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회신을 했다 한다. 그 연고로 소설가 이청준과 시인 정현종, 그리고 비평을 하는 나까지 셋이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스톡홀름대학과 헬싱키대학에서의 한국문학 포럼에 참석했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 당시의 장관이 우리에게 올림픽이 열릴 즈음 우리 작가도 노벨상을 탈 수 있을는지 물어왔다. 나는 이제부터 열심히 서구 여러 나라로 번역, 출판, 연구, 비평 등을 통해 학계와 언론계의 소개와 평가 작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더라도 20년 후로 보아야 할 것이라는 짐작을 말했다. 그의 기대가 너무 크기에 나는 그 예상을 좀 당겨준 것이지만 그래도 그의 실망은 매우 커보였다.

그러고서 내가 당초 예상했던 30년도 훌쩍 지났다. 정부가 뒷받침하고 한국문학번역원이 적극 활동하며 대산문화재단이 활발하게 지원해주고 있음에도, 그리 낙관하지 않은 나조차 실망스럽게, 그 영광의 상은 우리 앞으로 오지 않았다.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에서 두 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일본의 《문예춘추》에선가 그 소감을 물어왔기에 “이번에는 한반도에 착륙할 줄 알았는데 현해탄으로 건너가 버렸다”는 요지의 애석해하는 답을 보낼 정도였다. 바로 그 전 해에 박경리가 세계적인 대작으로 자부해도 좋을 『토지』를 완성했기에 내 기대도 그리 허황한 것은 아니었다. 그 섭섭함을 달래며 다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으레 지적하는 “좋은 번역이 없다”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고, 거기에 들여야 할 인적, 물적, 시간적 투자도 별로 없이 그 성과만을 초조하게 기다린 우리의 조급스러움이 문제였으며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충분히 구사하지 못한 채 마구 번역 출판만 되면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로 자랑하는 가벼움도 작지 않은 탓이 되었다. 못지않게 지적되어야 할 것은 우리 작품으로 해외에 소개될 적절한 작품이 의외로 적다는 점이었다. 내가 기대한 박경리의 『토지』나 지금 우리가 바라는 고은의 『만인보』 혹은 그보다 아래 세대로 유력한 후보가 될 황석영의 『장길산』 들은 분명 우리 문학이 자랑할 만한 대표작들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길고 방대한 작품을 외국 출판사들이 번역해서 간행해주리라는 기대는 너무 당찬 것이고 그들이 낱권짜리로 번역해서 좋은 평판을 얻을 만한 장편문학 작품은 의외로 꼽아보기 힘들었다. 올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을 비롯해 서구와 일본 등 근 10개국 언어로, 그곳 출판사들의 자발적인 열성으로 간행되었고 저자의 북투어를 통해 좋은 평을 받는 것을 보며 이제 우리 문학도 정부 지원 없는 상업 출판을 통해 비로소 세계 문학의 시장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반가움도 그래서 들게 된 것이다.

그러니, 노벨문학상이 완벽한 평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것이 오히려 작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 혹은 그 상에 대한 열망이 너무 뜨거워 역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갖가지 부정적 인식에 미치면, 노벨문학상에 대한 우리의 탐심을 그만 줄여도 좋지 않을까 싶어진다. 나는 30년 전 우리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묻던 문화부의 그 수장에게, 그 상이 정 그렇게 탐나면, 우리가 그런 상을 하나 새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는지 반문했다. 노벨상이 앞에서 본 것처럼 서구 중심주의로 편향된 때문에 우리가 가령 ‘제3세계 문학상’ 또는 ‘고립 언어 문학상’을 제정해서 비서구권의 독창적인 문학인에게 성대한 시상식과 많은 상금으로 시상하며 지속적으로 운영해 관록을 높여가는 동안에 가끔 한국 작가에게도 수상의 명예를 안긴다면 우리가 굳이 노벨상에 기대지 않아도, 아니 그것과 맞서, 새로운 국제적 명예를 끌어안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장관은 내 아이디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회고에 달라붙는 요즘의 내 생각은 우리 문단에 너무 많은 문학상이 있고 그 상금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3년 전 중국에서 열린 한중작가 회의에서 한국의 한 작가가 자신의 부족한 원고료 수입을 문학상 상금으로 채운다는 발언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중국 작가들이 여러 모로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보며 끔찍하게 생각되었는데, 한 작품에 몇 천만 원의 상금을 주는 문학상을 몇 개나 가진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 같고 상금으로 상의 권위를 올리려는 지자체와 문화재단의 경쟁 속에서 높은 상금의 많은 문학상이 오히려 문학상의 인플레를 몰아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문학상에 대해 내가 갖는 불만은 작품상만 있고 작가상이 없다는 점이다. 호암, 인촌 등의 종합상 외의 최고 7천 5백만 원에 이르는 우리의 문학상은 장단편의 소설이든 몇 편 혹은 한 권의 시집이든 모두 작품상이어서, 상금 액수는 빈약하지만 수상의 영예 덕분에 인세 수입이 크게 늘어나는 공쿠르나 아쿠타가와 등 외국의 문학상보다 훨씬 더 초라한 꼴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상은 한 해 동안의 일종의 작품 콘테스트에서 뽑히는 것이어서 당대적 시류에 젖은 평가에 의존하는 것인데다 수상집 출판으로 상금을 벌충하는 상업화에 크게 오염되고 있다. 물론 작품상도 필요하고 그 기여를 인정하지만 작가상은 노벨상처럼 평생에 걸친 창조적 업적을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한 생애 동안의 고결한 문학 정신을 기리는, 진정한 아우라로 감싸인 품격 높은 사회적 경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본격적인 종합 문학작품상의 효시가 되는 대산문학상의 제정으로부터 20년이 넘어, 지난 9월에 “올곧은 작가 정신을 지닌 고인을 기려 작품성, 인성, 사회기여도 등을 판단”하도록 새로 제정된 ‘박경리문학상’의 취지에 기대가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18년 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최인훈씨를 제1회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전업작가로 평생을 바쳐 쓴 많은 작품들로 오늘의 한국문학이 가능하도록 만든 창작의 큰 업적과 전업 작가로서 오로지 문학에만 헌신해온 올곧은 생애를 높이 평가한 때문일 것이다. 이 박경리문학상은 내년부터 외국으로도 개방해서 어쩌면 ‘제3세계 문학상’과 비슷한 성격의 국제적인 상을 바란 내 소망에도 맞추어줄 수도 있어 기대는 더 크다. 우리의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를 벗어나면서 그 문학상에 더 접근할 수 있는 우리의 당당한 태도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