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주로 부정하는 말과 함께 쓰여 전혀 또는 도무지로 풀이된다. 이것을 할머니나 어머니는 ‘이으으으응’이라는 말로 썼다. 단음절로 옮기면 ‘읭’ 쯤이 되겠는데 ‘의’를 소리 내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이+으+ɳ’로 발음하면 된다. 이것을 표준말로는 적어볼 수가 없어 ‘이으으으응’으로 적었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이으으으응 모르겄네 할 때 그 둥글게 퍼지던 소리의 파동은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해서 무슨 주문을 외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을 어느 순간에 내가 쓰고 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 ‘이으으으응’ 이라고 말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 뭐랄까. 묘한 어떤 서글픔 같은 것을 느꼈다면 너무 예민하다고 할까. 아니면 촌스럽다고 할까.
등단작은 「절골」이었다. 절골은 절이 있던 마을이라서 이름이 절골이 되었다. 그걸 취해서 절골(寺洞)이라 제목을 붙였으니 마땅히 ‘절꼴’로 읽어야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절골’로 읽고 뜻도 ‘뼈가 부러짐(折骨)’으로 새겨서 좀 당황스럽던 적이 있다. 절골은 어릴 적 들은 고종남 씨 이야기를 나름대로 구비문학의 형식을 빌려 쓴 글이다. 아니 내가 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절골은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했던 이야기를 구비문학자들이 하는 대로 채록한 것이고 나는 이것을 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구어체를 사용했다. 잘 다듬어진 문어체보다는 거칠고 생생하게 담아내려면 구어체가 적당할 것 같아서다. 그리고 이야기가 긴만큼 읽기 쉽게 판소리의 리듬을 빌렸다. 못골 시편의 이야기들은 어릴 적 들은 이야기들과 내면의 풍경들을 굳이 만들려 하지 않고 말하기의 형식을 빌려 옮겼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다듬지 않고 거친 느낌 그대로를 살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구어체를 살리고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송진권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옥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조금 더 들어가면 내 태를 묻은 지탄(池灘)이란 마을이 나온다. 가까이에 금강이 있어서인지 삼 수(氵)가 마을이름 두 자에 다 들어간다. 강을 따라 오밀조밀하니 모인 마을들은 물과 관련된 이름이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처음 전기가 들어왔다. 아주 오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엄연히 경부선 기차가 지나가고 하루 한두 번 기차도 정차한다. 중학교 막 들어갔을 때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하루 한 번 정차하는 기차를 타고 읍내를 나가거나 아니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학교에 갔다 오면 소를 몰고 들로 나가서 쇠풀을 먹이러 다녔으며 쇠꼴을 베어서 짊어지고 왔다. 어릴 적부터 소를 먹였으니 소가 새끼를 낳는 것도 보았고 송아지를 팔았을 때 어미 소가 며칠을 먹지도 않고 울부짖는 것도 들었다. 그리고 갓 낳은 송아지가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 어미젖을 찾아가서 무는 것도 알고 있다. 키우던 송아지가 팔려 가면 이불 뒤집어쓰고 울던 소년과 그 소년의 마음을 품어주던 사람도 있었다. 그 소년의 마음쯤이 되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이제 너무 멀리 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시집에 소와 관련된 시가 몇 편 있다. 이 시들은 어릴 적 키우던 소에 대한 뒤늦은 조문쯤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딸레」는 정지용의 시를 변용해서 쓴 시다. 딸레가 인형이란 말도 있지만 나는 딸레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애틋함의 대상으로 썼다. 누구나 다 마음속에는 딸레가 있을 터이지만, 어디어디로 나갔다 돌아온 나는 어쩌면 다시는 딸레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고 방울이나 혼자 흔들다 울 것이다. 지용의 시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싶다.
시집을 보고 나이 지긋한 어른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표지에 실린 1970년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이런 시를 보겠느냐? 아니면 누가 요즘 세상에 어디서 이리 케케묵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을 꺼내놓느냐고 하는 이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새로운 시스템이 개발되고 급속도로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나는 느린 편이라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좀 천천히 갈 것이다. 해찰하며 딴청도 부리며 여기에서 앉았다가 저기로 가서 충그릴 것이다. 이 집에 살던 사람들과 그 집 고샅에 참나리 꽃이 곱더라는 이야기도 하며 걸어가고 싶다. 어디 있는지 모를 무엇을 찾아 또 천천히 가봐야겠다. 그게 어디 있는지 무엇인지는 ‘이으으으응’ 모르겠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