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예로부터 존재하긴 했으나, 발견은 어린이보다 늦다. 그래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아동문학(어린이문학)은 일찌감치 발흥하여 저만의 고유 영역을 인정받았으나 청소년문학은 최근에야 독자성을 인정받았다. 이 점은 미국이나 독일 등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쪽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청소년문학을 아동문학에 포함시키거나, 일반문학(성인문학)의 한 부분으로 취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문학으로서의 성장소설이 처음 나온 때는 필자의 『봄바람』이 출간된 1997년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성장소설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존재한 성장소설은 일반문학으로서의 성장소설이다. 즉 자라고 있는 청소년의 현재 상황에 맞춘 성장담이 아니었다. 이미 어른이 된 작가가 자신의 청소년 시기를 돌아보며, 이러저런 아픔과 굴곡이 있음에도 이겨내고 작가가 되었노라고 회고하는 예술가 소설로서의 성장소설이었다. 이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독일의 교양소설 격인 ‘성장소설’이라는 장르명에 붙들리기만 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을 계속 하고 있는 청소년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필자가 청소년문학으로서의 성장소설 『봄바람』을 발표하기 전에도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은 있었다. 6·25 전쟁이 아직 다 끝나지 않은 1952년에 김내성은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발표했는데 나중에 만화와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어 1954년엔 조흔파의 『얄개전』이 나왔는데, 이 소설도 나중에 영화가 몇 차례 되는 등 당시로선 상당히 인기가 높았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이나 『얄개전』에 청소년이 등장인물로 나오긴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청소년을 독자로 상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쌍무지개 뜨는 언덕』은 표지에 ‘순정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고, 『얄개전』은 ‘명랑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이때의 청소년은 당연히 일반문학의 독자였는데 ‘순정소설’이나 ‘명랑소설’을 특히 즐겨 읽는 독자층이었다. 이런 전통은 나중까지도 이어진다. 청소년은 1970~1980년대까지도 하이틴 로맨스나 명랑소설을 즐겨 읽었다. 최근에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필자를 부른 어느 고등학교 국어교사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무지 많이 읽었노라고 털어놓으며, 주인공 이름만 살짝 바꿔 써 보기도 했단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청소년을 독자층으로 한 소설은 ‘순정소설’과 ‘명랑소설’에만 머무르지 않고 분화를 한다. 이른바 ‘과학소설’이라는 게 등장하는데, 지금 보면 판타지 소설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황혼의 타임머신(강민)’ 같은 소설인데, 아쉬운 점은 순수 창작물이 아니고 번안물이라는 것이다. 이때의 과학, 추리, 무협 소설은 번안물이 많았다. 이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광운의 ‘우주함대의 최후’같은 판타지 형 공상과학소설이 나왔다. 이러한 공상과학소설이 청소년소설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청소년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책을 읽히려는 어른들의 ‘자상하기 그지없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그러한 배려의 연장으로 머리 쓰기에 안성맞춤인 추리소설이 읽히기도 했다. 추리작가 김성종의 『죽음을 부르는 소녀』는 제목부터 ‘추리적’인 느낌을 주는데, 작가는 애초에 청소년 독자를 의식하고 썼다고 한다.
1960~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 가운데에 국내의 공상과학소설이나 추리소설에 만족을 못하는 독자들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나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같은 번역 작품을 읽었다. 물론 이들 작품도 해당 국가에서 청소년소설로 읽히는 작품이 아니었다. 작가도 애초에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발표한 작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청소년문학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이는 일반 소설에서 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면 청소년소설로 분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리 된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출판사 차원에서나 추천도서 목록을 만드는 단체에서나 이들 책을 청소년 필독서로 지정하여 유통시켰다.
이처럼 일반 소설 가운데 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청소년용 소설로 자리 매김을 하자 우리나라에서도 황순원의 「소나기」, 최인훈의 『광장』,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등이 청소년이 읽어야 하는 소설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청소년 추천서 내지는 권장도서가 되었다. 이 작품들이 청소년들에게 계속 읽힌 것은 교과서에 수록 된 까닭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교과서에 수록 되었기에 청소년 권장 도서 자리를 오래 차지하면서 청소년문학의 정전 역할을 하기도 했으리라.
다른 나라와 견주어 볼 때 우리나라 독서계에 있는 독특한 현상 하나는 우화 내지는 우화 비슷한 글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우화는 동식물을 인격화해 그들의 행위나 말을 통해 풍자를 하고 교훈을 얻는 글이다. 우화는 태생 상 어쩔 수 없이 계몽성을 띨 수밖에 없는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동화이지만 오랫동안 청소년의 필독서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작품이 지니고 있는 우화적 성격 탓이 컸으리라.
청소년은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다. 하지만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존재하기에 늘 무시해도 좋은 존재였다. 그러나 청소년의 성격은 독특해서 단순히 어린이와 어른을 적당히 절충한 존재가 아니다. 청소년은 청소년일 뿐이다. 다른 무엇으로 규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만의 문학이 필요하다.
1950년대에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순정소설로, 『얄개전』을 명랑소설로 작가 스스로 규정한 건 바로 청소년의 바탕이 되는 기질을 어느 정도 감지한 탓일 것이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도 청소년의 바탕이 되는 기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박범신의 『깨소금과 옥떨메』 같은 작품이 청소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며, 순정 만화 같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 청소년들의 각광을 받았을 것이다.
1980년대에 동화작가 정채봉이 성장소설 『초승달과 밤배』를 발표했으며, 소설가 송영은 『꼬마 야등이의 세상 보기』를 펴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처음부터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이미 작가가 된 어른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청소년 성장소설로 보기는 어렵다.
1990년대에 이르자 청소년들의 감수성이 변하기 시작했다. 청소년은 더 이상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어정쩡한 존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정치 환경의 변화와 대학 입시의 중압감, 각종 영상매체의 발전과 인터넷, 휴대전화 같은 통신 수단의 변화, 이주 노동자와 이주 결혼 등 사회적으로도 변화 요소가 많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독서 시장도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청소년을 외면하고선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소설가 최시한이 펴낸 연작소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 독서계의 호평을 받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처음엔 청소년 독자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청소년 권장 도서가 되면서 이후 청소년문학으로 편입되었다.
필자는 시로 문단에 나왔지만 내 안에 함께 하고 있는, 어른이 된 뒤에도 완전히 이별하지 못한 내 안의 청소년이 늘 의식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현재의 청소년’도 눈 안에 들어왔다. 그래서 청소년소설을 몇 편 써서 인연 있는 출판사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감을 잡지 못했다. 한두 해 그러고 있는 사이에 사계절출판사의 편집자가 무릎을 탁 쳤다. 그렇게 해서 청소년문학의 원조 격인 <사계절 1318문고>가 탄생했다. 이에 필자는 청소년 소설 『봄바람』으로 본격적인 청소년문학의 물꼬를 트고,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 등을 잇따라 펴내며 청소년문학의 물길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추어 청소년소설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사계절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사계절 문학상을 통해 세상에 첫발을 호기 있게 내민 작품은 『푸른 사다리』(이옥수), 『몽구스 크루』(신여랑), 『열일곱 살의 털』(김해원), 『합체』(박지리), 『내 청춘, 시속 370km』(이송현) 등이다. 사계절 문학상의 특징은 청소년문학 역시 문학적 바탕을 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계절 출판사가 문학상을 통해 청소년소설 신인 작가를 발굴하자 다른 출판사들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지금은 창비, 시공사, 비룡소, 문학동네, 세계일보, 자음과 모음 등이 청소년문학상을 제정하거나 청소년문고를 펴냄으로써 적극적으로 청소년소설 작가를 발굴해내고 있다. 특히 창비 청소년문학상은 사계절문학상과 더불어 청소년작가 발굴에 공헌을 많이 했다.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완득이』(김려령)는 소설 자체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그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기도 했다. 『완득이』는 등장인물들의 발칙함에 곁들여 장애인, 이주결혼 등의 문제도 건드리며 요즘 청소년들의 ‘쿨한’ 정서를 경쾌하게 담아내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도 여타의 청소년소설에서 미처 시도하지 못한 일상의 탈주를 과감히 드러냄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완득이』는 다양하게 건든 소재에도 불구하고 명랑소설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으며, 『위저드 베이커리』는 뒤틀린 욕망 등을 보여주고 있지만 공포와 판타지를 곁들인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어쨌든 청소년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만하다. 사계절의 청소년문고가 순수 문학을 지향한다면 창비의 청소년문고는 추리, 공포,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에까지 문이 폭 넓게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언어로 세계를 구성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자신이 아는 어휘를 동원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거나 설명하는 것이다. 청소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 수준이 어쩌면 그가 사는 세계의 너비와 깊이인지도 모른다.
문학은 다른 어떤 학문이나 예술 갈래보다도 언어를 중요시 한다. 오로지 언어를 통해 세계를 구축하고 설명한다. 언어가 표현 도구인 것이다. 문학이 인간에게 중요한 건 바로 이 점이다. 언어로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에게는 늘 문학이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에겐 더욱 그러하다. 어린아이는 아직 자아와 세계가 통합 되어 있어 별다른 갈등을 겪지 않는다. 이에 비해 청소년은 자아와 세계 사이에 틈이 생겨나기 시작해 점차 균열이 심해지는 시기를 사는 나이 대이다. 그러한 때 흔들리는 자아와 세계 사이에서 어떻게 자아를 붙들고 세계를 구성할지 망설여진다. 어린아이보다도, 어른보다도 청소년에게 문학이 더 필요한 이유이다.
청소년문학이라 그러면 아직은 소설을 이른다. 시에서 청소년시를 표방한 『난 빨강』(박성우)이라는 시집이 나오긴 했지만 아직은 첫 걸음을 뗀 수준이다. 희곡에서도 청소년희곡을 표방한 「UFO를 타다」(배봉기)가 나왔다. 그러나 청소년희곡 역시 걸음마 수준이다. 장르 불균형에 대해 청소년문학 내부에서의 논의가 필요하고, 청소년소설도 정전을 구성해가는 문제가 곧 대두 되리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