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성민엽_평론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과 교수. 1956년생
저서 『민중문학론』 『지성과 실천』 『문학의 빈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현대 중국문학의 이해』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 등
- 염무웅 평론집『문학과 시대현실』
현장비평의 당대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본다면(대부분의 심사에서는 이런 입장이 지배적이다), 염무웅 평론집 『문학과 시대현실』은 수상작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지난 평론집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이후 15년만의 평론집으로서 지난 15년간의 글들을 모았으므로 시간적으로 오래된 글들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겠지만, 최근의 글들도 문학판의 현장성을 꿰뚫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젊은 작가들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데서, 그리고 서문에서 저자 자신이 “제3부는 이시영, 이동순을 비롯하여 주로 젊은(인용자) 시인들의 세계를 살펴본 글을 모았고”라고 말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또, 글의 성격으로 볼 때 문학연구에 가까운 글이 많고 단평이 많다는 점이 약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사판에서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평론집이 오늘날의 문학판이라는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데에 필자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은 모두 동의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마침 근자에 1970년대 평론을 챙겨 읽으며 받은 강렬한 느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한 작품 읽기, 꼼꼼한 따지기, 정직한 자기 고백, 그리고 그런 것들로 인해 가능해지는 읽는 맛의 깊이 등등. 이러한 느낌을 되살려주며 이 평론집이 필자에게 호소한 것은 특히 다음 두 가지 측면이다.
‘문학과 시대현실’이라는 제목이 제기하는, 오래되어 진부하게까지 생각될 수도 있는, 이미 답을 알았고 더 이상 살펴볼 가치가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문제.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이 바로 지금 당장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는가를 필자는 이 평론집에서 보았다. 우선 저자가 서문에서 행하는 짤막한 논의에 그 요체가 잘 나타나고 있다. 약간의 인용이 필요하겠다.
“한편으로 그것은 문학의 내적 질서에 최대한 몰입하는 감성의 행위이면서, 다른 한편 작품이 발 딛고 있는 그 시대의 구체적인 현실에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이성의 작업이다. 어느 면에서 그것은 세속적 이해를 초월하는 정신의 집중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른 면에서는 물질적 현실의 심층에 대한 일종의 법칙적 투시를 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양면이 간단하게 이분법적 대립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내 비평적 사유의 단진자운동에 양축이 된 두 낱말”이라고 하며 ‘문학’과 ‘시대현실’의 관계를 단진자운동의 양축으로 설명했는데, 이렇게 보면 저자가 추구하는 비평은 단진자운동의 궤적의 총체가 될 것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그 둘을 두 개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싶은데, 이렇게 보면 비평은 두 개의 중심을 갖는 타원이 될 것이다. 이해 방식은 다르지만 이분법적 대립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겠다.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그것’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일의 필요성을 이 평론집은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그것도 이론적 논술보다 오히려 실제비평의 작품 읽기를 통해 그렇게 함으로써 설득력을 한층 키우고 있다.
다음으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저자가 ‘한국에서 서양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또 하나의 오래된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질문을 제기하는 저자의 신분은 한편으로는 독일문학 연구자이며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문학비평가이다. 그 두 개의 신분의 불가분성 속에서 저자의 질문은 근본적인 데까지 가닿는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어떤 선험적 이념의 지도에 매달”리는, 그러면서 작품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 부족한 비평(이런 경우 ‘비평’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겠지만)이 유행하는 것은 꼭 요즘 비평만의 문제는 아니겠고 실은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이지만, 그러한 유행에 맞서 이 평론집은 오래된 질문의 새로움을 강력하게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