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대현_한국일보 논설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1959년생
저서『우리에게 시네마천국은 없다』『14세 소년, 극장에 가다』『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등
글(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세상은 세상을 사는 인간만이 바꿀 수 있다. 소설가 김훈은 글에는 길이 없으며, 길은 세상 속에 있다고 했다. 소설 『흑산』의 후기에서 그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까지 했다.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했으며, 자신은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긴 그렇다. 소설로 세상을, 그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악착스럽게 믿고 싶어 하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도 결국은 글의 허약함과 비루함에 대한 역설은 아닐지.
영화는 어떨까. 역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는 말 그대로 빛의 그림일 뿐이다. 빛이 권력이나 제도가 될 수는 없다. 잠깐 상상의 세상을 비추다 사라질 뿐이다. 그 상상이 미래를 그려볼 수는 있지만, 미래를 건설할 수는 없다. 생생한 현실을 담은 영화조차도 그것을 환상의 세계로 밀어내는 게 영화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 그대로의 날 것을 싫어한다. 어떻게든 익혀 환상의 세계로 떠밀어 버린다. 현실 역시 영화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은 문학이나 예술이 아닌 현실에 서 있을 때가 진실하다. 어차피 어느 영화 제목처럼 ‘영화는 영화다.’
그런데 이따금, 아주 이따금,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 바꾼 것이 아니라 움직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훈이 말하는 ‘정의의 다툼’이라고 할까. 호세 지오반니 감독의 1973년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단두대를 몰아냈고, 사형제도까지 폐지시켰다. 마지막 단두대로 끌려가는 주인공 지노(알랭 들롱)의 눈빛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아니 그 눈빛이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잔인하고 야만적인 세상을 바로잡은 것이다.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