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서령_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2학년, 제9회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수상. 1991년생
제빵사는 밀가루를 반죽 한 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빵틀에 쏟아 부었다. 오븐을 예열하는 손 끝 여기저기에 반죽이 묻어있다. 제빵사는 빵이 구워지는 것을 보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시인은 종이를 펼치고 하늘을 옮겨 담았다. 손 끝에서 쏟아지는 문장들이 백지 위에서 화폭을 이루었다. 시인은 꿈틀대는 싯구들을 보며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빵의 종류나 이름을 종종 내게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나는 빵을 좋아했다. 나와 짝이 된 친구들은 살이 쪄서 돌아간다, 라는 농담이 우습지 않을 정도로 학창시절에 열심히 빵을 갖고 다녔던 것 같다. 아마, 중학교 때부터였을 것이다. 아침을 챙겨주기 바쁘셨던 부모님이 사온 샌드위치에 입맛이 길들여지면서 밥 보다는 빵 위주의 식단이 더 반가웠다.
그렇게 빵을 먹기 위해 밥을 챙겨먹으면서 대학교에 올라온 나는 습관 하나가 생겼다. 글을 쓰기 전에 항상 빵집에 찾아가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이상하게 달콤한 것이 옆에 있으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 빵을 사는 게 아닌 호기심 같은 거였다. 오랫동안 빵집을 드나들면서 나는 그 속에서 문학과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들렸다. 어제의 이름을 지우고 ‘세 묶음에 천원’으로 판매되는 빵들은 주로 소보루나 단팥빵, 슈크림빵 같은 노란색 빵들이 많았다. 하나로 묶여있어 비슷비슷해 보였으나 맛은 모두 다르다. ‘나무’라는 하나의 주제로 쓰인 푸른색 시들이 얼핏 보면 비슷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그 안의 맛과 향이 모두 제각각이듯이 말이다.
가판대를 지나쳐 빵집에 들어가면 중앙에는 항상 피자빵과 같은 자극적인 빵들이 조명 앞에서 반짝였다. 붉은색과 초록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져 시각을 자극했다. 서로 다른 재료들을 빵이라는 큰 틀에 묶어 한 맛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이 빵들 속에는 강약(强弱) 의 조절이 있다. 임팩트 있는 한 문장을 위해 서로의 무게를 조절하는 시구들처럼 피자빵은 짭쪼름한 맛과 새콤한 맛을 조율해가며 우리의 혀끝을 더욱 자극시킨다. 요즘엔 불고기를 넣은 빵이 새로 출시되었다.
동양과 서양의 조합이 썩 어울리진 않았지만 꽤 많은 빵집의 메인 메뉴로 걸려있다. 서구적인 표현들을 이용해 불고기 같은 서정성을 담는 시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 역시 이 오묘한 조합 때문일 것이다.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폭신폭신한 바게트처럼 시는 또한 반전의 미학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팍팍한 느낌 때문에 때때로 우리는 생크림이나 잼과 같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을 곁들이고 싶어 하기도 한다. 호두가 들어간 유기농 호밀 빵이나 메론 같은 푸른색 과일 혹은 야채들로 만들어진 빵들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가게에 화려하고 장식이 잘 된 빵들이 진부하다고 느껴질 때면 점점 담백하고 신선한 것들에 눈이 가게 되는 법이니까,
빵과 문학은 이렇듯 모두 데칼코마니 같은 면을 가지고 있다. 글의 결론과 서론을 중간에서 접으면 서로 대칭을 이루며 일치하듯이 빵 역시 가운데를 잘라 보면 양면이 모두 같은 구조다. 이 두 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질 때 우리는 혀를 굴려가며 새로운 맛을 음미하게 된다. ‘맛있다’, ‘새롭다’의 일차원적인 개념을 넘어 ‘어떤 반죽일까?’, ‘어떤 재료를 넣었을까?’ 상상의 폭을 넓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폭을 넓힌 빵의 이름을 미래파라고 붙일 수도 있겠다. 핀트가 약간 어긋나 있는 이 빵들은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다른 맛이 난다. 이러한 공간의 폭을 넓힌 빵의 이름을 미래파라고 붙일 수도 있겠다. 핀트가 약간 어긋나 있는 이 빵들은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다른 맛이 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찾게 된다.
어느새 가판대 위의 빵들은 새롭게 바뀌어 있다. 경쟁이 붙은 빵집들이 이벤트 팻말을 걸어두고 시각과 후각을 이용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빵집을 나와 집으로 가며 나는 비대칭 빵에 대해 상상해본다. 오늘 나의 타자기 옆에 달콤한 빵이 아닌 앞과 뒤가 다른 비대칭의 빵을 놓아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