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어쩌면 자기 고발적 글쓰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다시금 종종 듣게 되고 하게 되는 저 말에 관한 것이다. “요즘 어디 가서 그 런 얘기 하면 큰일 납니다.”
이 말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묘한 발화이다. 일단, 이 말은 “요즘” 이라고 적시된 일련의 정황이 발화 당사자와 수신자에게 공유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정황은 때에 따라, 정치적 힘의 향배 에 따라, 윤리적 우위를 자신하는 마음들의 기세에 따라 달라져 왔 을 것이다. ‘막걸리 보안법’ 시절에 저 말은 무의식적 두려움과 경계의 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효과는 부자유로 인해 발생하 는 엄중한 상황에 대한 주지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발화를 통해 다 시 의식 수위에서 재각인되는 것이었을 터이다. 1980년대에도 비슷 한 용례로 사용되었음직한 이 발화는 한때 은밀한 고발에서 오는 쾌 감을 발화자와 수신자 사이에 퍼뜨리기도 했을 것이다. “요즘”의 경우 에 따라 그것은 계면쩍음을 피해 적절히 희석된 동료애를 나누는 암 구호와도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의 정황은 어떤가?
“어디 가서”라는 말도 간단치 않다. 그야말로 대체 “어디 가서”일까? 저 “어디”의 범위도 “요즘”의 정황에 따라, 또는 뒤에 따라오는 “큰일”의 ‘스케일’에 따라 그 반경이 조율 되기 마련이다. 저 “어디”, 그러니까 지금 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의 논리적·정치적·윤리적 바 깥이 시민의 영역과는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공공의 영역이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백일하에 힘 과 치부를 동시에 드러낸 ‘외설적’ 국가 기관들이 관장하는 영역으로 ‘아이러니’하게 협소화된 시절도 있었 을 것이다. 공론은 어려워도 공유된 쾌감은 만연하던 어떤 “요즘”에 이 말은 제법 안전하게 ‘투쟁’하는 하나 의 방편이 되어주기도 했다. 이때 저 “어디”는 특정된 장소는 아니어도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런데 “요즘” 그 장소는 “어디”란 말일까?
“그런 얘기”가 무슨 얘긴지는 귀신도 모를 일이다. 글의 서두에 “요즘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면 큰일 납 니다”라는 말을 적어는 놓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이 “그런”에서 어떤 내용을 상기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민지 시대의 몇몇 소설에서도 비슷한 구문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봐 서 이 “얘기”에는 제법 유서 깊은 내력이 담긴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나 여하튼 이 문장의 핵심 메시지는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구문론적 일관성과 지시대상의 미확정성에도 불구하 고 “그런”의 내력 자체가 현란한 변천사를 겪어 왔음직하다는 것은 역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 이다. “그런 얘기”는 언제나 “요즘”이 지난 뒤에야 속 시원히 발설되고는 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큰일”도 모호하다. 정치적 불이익, 구체적인 신체적 위해, 윤리적 파산 선고, 사회적 지위나 체면에 손상 이 가는 망신 등을 두루뭉술하게 지시하는 이 “큰일”은 대번 고전적인 정신분석의 명제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금기 없이 욕망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또한 비극을 보는 이유가 자신은 그런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 는 안도감을 즐기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설명 역시 이 “큰일”과 관련하여 떠올려 봄직한 것이다. “요즘 어디 가서 그런 얘기하면 큰일 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어떤 “큰일”도 당하 고 있지 않다는 게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문장이, 이 말을 발신하고 수신할 수 있는 둘레에 앉은 이들을 ‘내부자’로 호명하는 주술과도 같이 기능하는 한, 발설자의 ‘안전’을 서로 보장하고 있다는 은 근히 공유되는 쾌감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참 큰일이다.
최근 들어 이 말을 듣게 되고, 그리고 하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구체성도 지 니지 않은 이 말이 다시금 회자되는 데에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요즘”의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한 것은 무 엇보다도 저 “어디”의 방위와 범위에 대한 합의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합의를 이미 공유 된 윤리적 약속으로 간주하는 저돌성도, 진지한 물음 없이 수군거리는 쾌락 속에 조용히 머무는 안일도 모두 저 말을 필요로 한다. 저 말 속에, 회의 없는 근본주의도 안일한 자기검열도 모두 오붓하게 살고는 있 다. 그러나 말이 어찌 말 속에 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