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대산문학상의 2018년도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이 확정되었다. 매년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을 선정, 시상해 온 국내 최대 규모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은 제26회 수상작 선정을 위해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간 시·소설 부문의 예심을 진행하였다. 보다 심도 깊은 독회와 심사를 위해 심사 기간을 소폭 확대하여 시행한 이번 예심 결과, 최종적으로 시 부문 10작품, 소설 부문 8작품이 본심작으로 선정되었다(오른쪽 표 참조).

예심위원으로 시 부문에 이장욱(시인, 동국대 교수), 진은영(시인, 한국상담대학원대 교수), 최현식(평론가, 인하대 교수), 소설 부문에 김경수(평론가, 서강대 교수), 김태용(소설가, 서울예대 교수), 서영인(평론가), 조경란(소설가) 씨 등이 참여하여 2017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지난 1년간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하였다.

시 부문 심사위원들은 ‘본심 대상작으로 10권의 시집을 가려내는 일은 그야말로 “전쟁이거나 곡예이거나” 수준의 작업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몇 차례의 모임에는 쉬이 본 의견의 일치도 있었지만 엇갈린 주장에 잠시 침묵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1년간 발표된 시집들을 요모조모 살피며‘시인 공화국’의 위상을 실감하는 동시에 한국 시의 탁월함과 소통 가능성, 의욕과 모험의 용기를 확인하고 공감하였다. 심사를 마무리하며 심사위원들은 ‘이곳으로부터 한국시의 새로운 지형과 언어 목록이 조곤조곤 또 담뿍담뿍 빚어지기’를 희망했다.

소설 부문 심사위원들은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심사에서 소설의 ‘이야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의에까지 이른 진지함 속에 심사위원 전원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을 일치시키기는 못했지만 고른 지지 속에 8편의 작품을 본심 대상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서사의 다변화, 장르문학의 성장을 확인시켜준 장편소설의 성찬이었음은 분명하였고, 그 속에서 우리 ‘작가들의 의욕과 실험정신, 전형적 서사의 방식을 돌파하려는 개인적 시도들’을 높이 평가했다.

제26회 대산문학상의 최종 수상작을 선정할 본심은 단심제로 운영되는 평론·번역 부문을 포함해 9월부터 두 달 간 진행된다. 수상작은 11월 초에 발표되며, 시상식은 오는 11월 27일(화) 프레스센터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제26회 대산문학상 예심
심사평

시부문

심사하는 날들은 유난히도 심사장 바깥은 폭염이 더욱 심했고, 안은 냉방이 더욱 차가웠다. 심사장 안과 밖 운운했지만, 그것은 대상 시집들을 들고 요모조모의 장처와 단처를 따져 묻던 세 예심위원들의 눈빛과 심정의 안팎이었다. 성실하고 뜨거운 독자로 만나는 일이라면 몰라도, 그렇게 읽던 시집을 어떤 성취에 대한 엄정한 기준과 앞으로의 언어의 가능성을 근거로 가려 뽑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우리의 일이 대학입시처럼 상대방을 누르기 위한 순위 매김이 아님을, 그보다는 자기 언어의 탁월함과 소통 가능성을 확인하여 가난한 시대의 서정시에 더욱 심취하고 나날이 진작하라는 의미로 주어지는 대산문학상의 기초적 윤곽을 그리는 작업임을 자꾸 알아갔다는 사실이었다.

세 명의 예심위원은 7〜8월 얼마간의 기간을 두고 세 차례 모임을 가졌다. 처음 모인 날,지난 1년간 출간된 시집들을 훑어보며 이른바 ‘시인 공화국’의 위상을 재차 확인한 후, 예심의 선별 기준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신예 선발이 아니라 자신의 미학과 이념을 어느 정도 확립한 시집을 가려내는 작업이므로, 자기 언어와 감각의 음영이 뚜렷한 시집, 그러면서도 자기 음역의 확장과 심화를 위해 여전히 실험과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시집, 그럼으로써 일반 독자와의 대화와 소통을 더욱 넓혀나가는 시집 들을 눈여겨보기로 했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첫 모임에서 선별한 40여 권 시집을—이것 전부를 몇 주 안에 에누리 없이 독파하느라 여름 ‘한증(汗蒸)’이 겨울 ‘한증(寒症)’으로 돌변했다는 풍문이 떠돌았다—15여 권 정도로 다시 가려냈다. 최소한 세, 네 권 이상의 시집을 냈고 그만큼 독자에게 호소할 바 충분했던 시인들의 새 시집이었던 만큼, 되도록 장점을 먼저 꼽아본 후 그래도 마땅치 않으면 우리가 소망하는 바를 짚어 보았다. 그릇 빚는 솜씨는 일품이나 그 모양새 변화가 너무나 조용한 시집, 전언의 강렬함에 비해 그것을 효과적인 형식에 담아내기를 머뭇거리는 시집, 시적 세계와 정서의 진폭이 지나치게 좁아 존재의 비밀 탐구와 그 폭로가 여유롭지 못한 시집 들이 어느덧 차례차례 우리의 손을 비껴나가기 시작했다.

예심에 배정된 후보작 10권의 시집을 가려내는 일은 그야말로 “전쟁이거나 곡예이거나” 수준의 작업이었다. 2차 선정 시 이미 그럴 것이라 예감한 바지만, 다시 그것들을 읽고 돌아와, 손쉽게 의견 일치를 본 몇 권을 제외하고, 각자의 판단 기준과 감응 정도를 정밀하게 구성하여 나머지 시집을 골라내는 시간은 서로의 ‘주장’ 못지않게 서로마다의 ‘침묵’도 길었다. 결국 최후의 판단은 첫 모임에서 합의한 선정 기준들을 다시 곱씹으면서, ‘묵묵한 안정’의 무게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먹먹한 변화’의 예리함을 살려보자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문학사란 그 숱한 별들 가운데 개성적인 성좌를 구성하는 일이므로 그 변화들 가운데 더욱 쨍쨍하거나 은은한 별빛이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심 평을 쓰는 아침, 매일 켜대던 에어컨을 꺼두어도 좋을 만큼, 갑자기 평년의 기온이 되돌아왔다. 선정 목록의 10권 시집도 이제는 땀을 거두면서 본심의 더욱 뜨겁고 차가운 눈빛에 놓일 순서를 조만간 맞이할 것이다. 그 이름 하나하나에는 오늘날 한국시의 1년을, 시인들의 시간으로 치면, 몇 년을, 또 시적 삶 전부를 지탱하고 이끌어온 심미의 의욕과 모험의 용기가 가득하다. 아마도, 어쩌면, 이곳으로부터 한국시의 새로운 지형과 언어 목록이 조곤조곤 또 담뿍담뿍 빚어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길 바란다, 이곳 10권을 포함한 모든 시집들이 과거의 성취를 넘는 미래의 가능성으로 날마다 환호작약하기를……. 하여 다시 한 번 우리들 눈에 와 박혔던 모든 예외적 언어와 불온한 영혼들께 감사와 경의의 마음을 정중하게 올린다.

- 이장욱, 진은영, 최현식

소설부문

지난 6월 1일 금요일에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예심 심사를 시작했고 7월 18일과 8월 14일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심사를 진행했다. 첫 심사 때에는 2017년 8월~2018년 5월 말일까지 출간된 장편소설들 중에서 총 열일곱 편을 선택하여 한 달여에 걸쳐 검토, 그 사이 새로 나온 작품들 중 다섯 편 목록을 추가하였다. 그렇게 해서 7월의 2차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한 작품들, 의견이 엇갈린 경우 실시한 투표에서 두 표 이상 받은 여섯 편의 작품들을 선정했다. 선정 작품은 대상작 목록의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 김금희 『경애의 마음』, 김혜진 『딸에 대하여』, 정용준 『프롬 토니오』, 최은미 『아홉번째 파도』,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8월 마지막 3차 투표를 앞두고 7월 31일까지 출간된 소설 중에서 다섯 편을 더 추천하게 되었다. 지속되는 폭염 속에서도 한 편 한 편 공들여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품들이 갖고 있는 개성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추진력 같은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올해 26회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를 하기 위해 약 삼십여 권의 장편을 그 어느 때보다 꼼꼼히 읽고 8월 14일에 마지막 3차 심사를 진행했다.

이 3차 심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토론이 길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논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듯 했다. 장편소설에서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부터 시작해 장편소설은 단편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개인적 판타지를 어떻게 소설의 형식으로 끌어올 것인가 하는, 거의 ‘소설이란 무엇인가’하는 근본적인 논의까지 이어졌다. 그만큼 1년 동안 출간된 작품들의 개성, 주제, 세대적 경험에 큰 차이, 혹은 다양성이 있었고 심사위원들끼리도 작품들 선택하는 기준을 일치시키기 어려운 면이 있기도 했다. 또한 경장편의 형식으로 출간되는 작품들도 많아 ‘장편소설’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은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단지 분량 때문에 작품을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킨 경우는 없었다.

숙고 끝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심사위원들은 대산문학상이 갖고 있는 의의와 취지 그리고 심사기준에 주목하였다. 대산문학상은 우선 국내 문학의 발전과 세계화에 기여하는 데 그 뜻을 두고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상을 지향하고 있다. 심사 기준은 크게 세 가지인데 작가의 개성적 시각이 담긴 작품, 번역을 통해 해외에 소개할 의의가 있는 작품, 우리 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끌어올릴 수 있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이 그것이다. 덧붙이자면 시대정신과 보편성, 작가의 독창성이 작품 선택의 우선순위가 되는 셈이다. 심사위원에게는 세대나 경향에 치우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중요한 유의사항도 있었다.

그렇게 하여 2차 때 선정된 여섯 편의 후보작 외에 마지막 심사 때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골고루 받은 작품이 송시우의 『검은 개가 온다』, 염승숙의 『여기에 없도록 하자』, 이렇게 두 편이었다. 총 3차 회의까지 논의에 논의를 거쳐 올해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예심에는 총 여덟 편의 빛나고 개성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였다.

조직에서 일어나는 갑과 을의 문제, 청년 실업 문제, 재난의 서사 등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게 많았으며 그러한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려 하는 작가들의 의욕과 실험정신, 전형적 서사의 방식을 돌파하려는 개인적 시도들이 돋보였다. 역사, 과거와 기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소설들, 안정적 서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려는 작품도 여러 편이었다. 환상을 통해 인간의 진짜 영혼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소설, 특정 공간에서 펼쳐지는 개인과 집단의 처절한 욕망을 보여준 소설, 청년 노동의 문제에 대해 무섭도록 생각하게 만들었던 작품도 있었다. 수준 높은 장르문학의 발견도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유례없던 폭염 속에서도 이런 다채로운 국내 장편소설의 성찬 속에 올해 26회 대산문학상 예심 심사를 마쳤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고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로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에 관해 깊은 생각을 다시금 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부디 많은 독자들에게도 이 작품들이 뜨겁고 의미 있게 가 닿기를 바란다.

- 김경수, 김태용, 서영인, 조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