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조광(朝光)》지에 발표된 주요섭(1902~1972년)의 단편소설「사랑손님과 어머니」는 과부인 어머니와 사랑방에 하숙을 든 아저씨의 미묘한 연정을 여섯 살 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서술한 서정성 짙은 작품입니다.
당시의 보수적인 시대 의식을 반영하듯 소설의 마지막에 아저씨는 기차를 타고 떠나버리고 어머니는 다시 풍금을 굳게 닫아버리며 끝이 납니다. 그로부터 82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시선은 어떠할까요. 이동하 박성원 조현 정한아 조해진 등 다섯 작가가 어머니와 아저씨의 그 후 이야기를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보았습니다.
주요섭 소설의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 「사랑손님과 어머니」 줄거리 -

올해 여섯 살인 나(박옥희)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어머니와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 이렇게 셋이서 살고 있어요. 우리 어머니는 스물 네 살이고요, 과부라는데, 과부가 뭔지는 몰라도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그런 줄로 알고 있지요. 우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셔서, 나는 아버지 얼굴도 못 뵈었지만 사진으로 본 아버지는 참 훌륭한 얼굴임에는 틀림없어요.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옛 친구였다는 한 아저씨가 큰외삼촌의 소개로 우리집에 하숙을 들게 되었어요. 나는 아버지가 쓰시던 사랑방에서 지내게 된 이 아저씨가 첫날부터 꼭 마음에 들었어요. 아저씨가 나처럼 삶은 달걀을 좋아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실컷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아저씨와 함께 뒷동산으로 놀러갈 수 있어서 좋았거든요. 아저씨랑 함께 노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아저씨가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제는 어머니께 심한 장난을 친 것이 미안해서 유치원에 있던 꽃을 몰래 가져와서는 그만 아저씨가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그 꽃보다 더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꽃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타이르셨어요.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그 꽃을 버리지 않고 예쁘게 말려 찬송가 갈피에 곱게 끼워 두었지요. 그리고 그날 밤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뚜껑조차 한 번도 열지 않았다던 풍금을 타시며 노래를 불렀어요.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에겐 나 하나면 그뿐이라고 말씀하셨죠.
하루는 아저씨가 어머니께 드리라고 하얀 봉투 하나를 주었어요. 그 봉투를 어머니께 드리니 어머니는 얼굴이 파래지더니 어쩔 줄을 몰라 하셨어요. 내가 밥값이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입술에 약간 웃음을 띠었다가 다시 봉투 안에서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보고는 종이를 든 손을 와들와들 떨었어요. 그렇게 어머니는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지요. 그 날 밤 자다 깨보니 어머니가 장롱에서 아버지가 입던 옷가지를 꺼내어 매만지면서 기도 같은 걸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잠자리에 들면서 기도할 때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더듬거리기만 하였죠. 어느 날 어머니가 아저씨에게 손수건을 갖다 드리라고 하였어요. 그 속에 무슨 종이가 들어 있었는데, 아저씨는 그걸 받고는 웬일인지 이전처럼 웃지도 않고 얼굴이 파래졌어요. 그리고 그날 밤이 늦도록 어머니는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로 풍금을 타셨어요.
그 뒤로 여러 날 동안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던 아저씨는 어느 날 오후 짐을 챙기시더니 떠날 준비를 하였어요. 언제 또 오느냐는 나의 물음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죠. 어머니한테 아저씨가 갔다가 또 오는지 물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내게 집에 달걀이 몇 알 남았는지 물으시곤 남아있는 달걀을 모두 삶아서 아저씨에게 드리라고 하셨지요. 그날 오후 아저씨가 떠나간 다음, 어머니와 함께 뒷동산에 올라가 저 멀리 아저씨가 탄 기차가 산모퉁이 뒤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어요. 뒷동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어머니는 이때까지 늘 열어 두셨던 풍금 뚜껑을 닫고 쇠를 채우셨어요. 그리고 찬송가 갈피에서 빼빼 마른 꽃송이를 집어내시고 내다 버리라고 하셨어요. 매일 오던 달걀 장수 할머니가 들어오니, “인젠 우리 달걀 안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라며 맥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말하셨어요. 나는 어머니 말씀에 놀라서 떼를 쓰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새파래진 얼굴을 보니 그럴 수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