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인 ㅣ 시인, 1967년생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등
마곡을 어루만지고
사라지고 싶은 걸음이 일주문으로 들어설 때에도 국화와 모자와 국화와 스카프와 국화와 청바지는 부드러운 꽃밭으로 두릿두릿 걸음을 허공에 빠뜨리고 나비와 풍경소리를 따라가다 말고 물소리를 껴안다 말고 꿀꿀이바구미는 딱딱한 밤의 표정에도 심심한 목탁소리를 뚫어놓고 금당으로도 한 걸음씩 가려운 머리가 없는 마음을 어루만지고 엉덩이가 사라진 돌의 눈썹을 돌덩어리 위에 또 붙이고 잠옷을 입은 바위까지 가만히 그대로 있어보라는 카메라 이생의 메아리에 살이 붙어서 보리수 잎과 떨어지는 청바지와 스카프와 하얀 모자가 어울려 탑의 모자를 쓰고 해바라기의 뒷면처럼 궁금해지는 마곡(麻谷)의 허공을 데리고 늘이고 어서 모이라고 처음으로 소음으로
혼자인 걸 못 견디죠
고슴도치의 말은 고슴도치가 아니라고 뒤뚱거리고 물그릇은 금이 간 혓바닥을 조금이라도 읽어보라고 마르고 구기자나무에서 떨어지는 그늘은 고요를 남기듯이 흩어지고 구름의 테두리와 돋보기를 문지른 천은 혼자의 얼룩을 품고 너에게로 뛰어들어갈까, 너에게로 말하지 않은 나뭇가지들 고슴도치와 뭉툭한 그늘이 뿔을 세우고 함함히 뒤뚱거리고 오늘의 맨 처음으로 뾰족한 빛과 넙적한 어둠속으로 데리고 가버리는 익숙해지려는 혼자와 기어이 말라가는 흰 잎사귀의 장난 혼자서 본 하늘이 모르는 표정으로 네 발로 뛰어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