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비평과 독서
글 소영현 ㅣ 평론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1970년생
저서 『분열하는 감각들』 『프랑켄슈타인 프로젝트』『문학청년의 탄생』 『부랑청년 전성시대』『감정의 인문학』(공저) 등
비평을 업으로 삼은 이후로, 독서인으로서 큰 손실은 작품을 마냥 독자로서는 잘 읽지 못하게 된 점이다.작품에 대한 호오의 감정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지엽적 특질이나 그 효력에 매몰되기 쉬웠던 시절의 나는 비평가로서의 균형 감각과 종합적 판정 능력을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스스로를 마모시키면서도 정련하려 했던 듯하다. 여전히 균형이나 종합이라는 말이 환기하는 어떤 것들을 좋은 비평가의 덕목으로 지향하면서도, 어떤가 하면 온 몸으로 긴장된 독서를 하던 시절을 지나 모든 텍스트와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내게 여섯 번째 혹은 일곱 번째 감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를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호오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잘 드러나지 않는 미덕이나 흠을 짚어내고 판정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되묻는일이 작품을 대하는 나의 기본자세가 되어버렸음을 새삼 확인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고백컨대, 그런 순간에나를 휘감는 감정의 꽤 많은 부분은 두려움과 상실감이 채운다. 그런 때에 나의 사유는 ‘비평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 주변을 한참동안 맴돌곤 한다. ‘비평가가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분석을 위한 긴장 없이 작품에 마냥 빠져드는 독서경험을 잃어버리는 일이구나를 떠올리며, 비평은 무엇을 위한 일이며 과연 무엇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인가에 관해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비평가 각자가 서로 다른 계기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내게 ‘비평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역 설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는 비평적 거리를 의식하지 못한 채 마냥 빠져드는 독서체험이다. 그 체험을 통해 특별한 ‘기쁨’을 얻는다. 위반도 잉여도 아닌, ‘즐거움’이라는 말로 곧바로 대치될 수는 없는 어떤 것, 그것은 분명코 ‘균형 감각이나 종합적 판정 능력’이 짚는 곳과는 다른 층위에서 발생한다. 가령, 산동네 꼭대기에 이사 왔다 떠나간 새댁네를 다룬 권여선의 최근작 『토우의 집』(자음과모음, 2014)에서 새댁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 토끼띠인 어머니가 수영을 못하는 사연(“어머니는 수영도 잘하시지요?” (…) “아니, 못한다.” (…) “왜요?” / “토끼띠여서.” (…) “토끼띠가 왜요?” / “원래 토끼는 물만 닿으면 죽는단다.” (…) “그럼 어머니, 유명한 수영 선수 중에는 토끼띠가 없어요?” / “글쎄 그거야 가뭄에 콩 나듯…….”, 35~36쪽)이나 효자 효녀 이야기(“월남 고아라 친정도 친척도 없는 새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효자 효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새댁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효자 효녀의 부모는 병에 걸리기도 잘했고 죽기도 잘했다. (…) 그러나 은철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옛날 부모들이 무섭게 먹을 걸밝혔다는 점이었다.”, 138쪽)는 ‘균형 감각이나 종합적 판정 능력’이 발휘되면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갈 지엽적인 것들이다. 소설 쪽보다는 내게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들, 나에게 『토우의 집』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대목들, 그 지엽적인 것들이 내 독서체험의 ‘기쁨’의 원천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비평적 거리를 망각하게 하는 독서체험이 소중한 것은, 거기서 발생하는 ‘기쁨’ 자체라기보다 ‘기쁨’을 둘러싼 흥미로운 작동 때문이다. 그 독서체험은 ‘기쁨’을 대상화하거나 거리화 하려는 자동작용을 거부하는 기제를 작동시킨다. ‘기쁨’을 자체로 보존하려는내적 저항이야말로 나에게는 비평과 비평가에 대한 재사유를 추동하는 동력 비슷한 것이다. 보존된 ‘기쁨’의 실감은 그간 독서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양인들에게 그 소설들을 소개하는 일로 다소간 공유되고 유지될 수 있었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점점 줄어들다가 거의 없어진 요즘에 이르러서는 나눌 길 없이 고여 있다가 어느 순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음을 알게 될 뿐이다. 그 ‘기쁨’을 아는 이들과 그것의 질감을 ‘함께’ 확인하는 일이 또 다른 ‘기쁨’이라면, 그 ‘기쁨’을 모르는 이들과 나누는 일은 차원 다른 ‘기쁨’의 세계로 나가는 일이다. 혼잣말처럼 떠들어댈 수야 없으니, 누군가와 어떻게 그 ‘기쁨’을 나눌 것인가를 어제보다 더 오랫동안 고민하게 된다. 내가 비평의 존재론과 함께 비평가의 존재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연유다. ‘기쁨’을 나누고 싶은 작은 소망이 부른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