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활력 사라진 문단, 해외거장 작품과 외국 대중소설이 메워
글 권영미 ㅣ 뉴스1 문화부 기자. 1969년생
문단에 활력이 사라졌다. 올해 봄엔 유난히 국내 작가들, 특히 소설가들의 부진이 심각했다. 그 공백을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과 외국 대중소설이 메꿨다. 아니 선후가 바뀌어 (수 년 전부터)이들 거장과 초베스트셀러들이 몰려온 결과가 국내작가들의 부진일지도 모른다.
시 쪽에선 정현종의 『그림자에 불타다』, 김명인의『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문인수의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원구식의 『비』, 고형렬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등이 출간됐고 송승언,박해랑 등의 신예들의 시집도 발간됐다. 국내 소설로는 전성태의 『두 번의 자화상』, 김탁환의 『목격자들』, 함정임의 『저녁식사가 끝난 뒤』, 김근우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정길연의 『우연한 생』, 김홍신의 『단 한 번의 사랑』 등이 이번 봄에 발간됐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과학적 상상력’에 토대를 둔 원구식의 시는 놀랍도록 신선했다. 고형렬의 시는 서정시가 자주 빠지는 ‘신선놀음’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분노하고,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태도를 보여줘 인상적이다. 전성태의 『두 번의 자화상』은 허름한 인생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능청스런 사투리, 전설 같은 어린 시절 이야기가 소중하게 읽혔다. 하지만 탁월한 이들 몇 작품을 포함해 시든 소설이든 국내 작품들은 일반 독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반면 베스트셀러 순위가 문학적 가치의 척도라고도 할 수 없고 외국 거장들의 ‘이름값’과 외국 번역소설들의 마케팅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일 뿐 이라고도 치부할 수 있지만 이들 국내문학에 비해 외국 거장들과 외국 대중소설은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얻었다.
|
1994년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받고 그 후 반핵, 반전, 평화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의 2009년 작품 『익사』가 3월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오에는 지난해 일본에서 나온 『만년 양식집』(晩年樣式集, 국내 미출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소설가로서의 여정을 끝냈다고 선언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 속에 사회와 국가의 폭력성 등을 담아내는 오에는 『익사』에서도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소재지만 ‘전체주의’,‘천황주의’에 매몰돼 살았던 한 아버지, 여성차별주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았던 남성 주인공을 그려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창래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그의 첫 작품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이 5월 재출간됐다. 『영원한 이방인』은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의문제를 고민하는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현실과 맞물려 있지만 현실과는 다른 층위의 구조물인 ‘언어’의 문제와 결합해 풀어나가 패기와 독창성, 이중의 구조에서 오는 깊이감 등을 보여줬다.
4월 13일 독일에서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양철북』의 작가인 귄
터 그라스의 자서전과 자전소설도 나왔다.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는 양파를 벗기며 눈물흘리듯 나치 친위대로 복무했던, 그리고 그 사실을 숨겨왔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고통스럽게 털어놓았다. 자전소설 『암실 이야기』는 예술가로서의 삶에 치중하느라 가족, 특히 자식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자신의 회한을 담아냈다. 화자인 아버지가 여덟 명의 아이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각자에게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한다는 설정을 가졌다.
외국 대중소설의 맹공도 이어졌다. 최근 1~2년간 국내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쓴『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의 열기가 다소 식는가 싶더니 이번엔 호주 여성작가 리안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 미국 작가인 톰 페로타의 『레프트오버』,프랑스 작가인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행복만을 보았다』가 인기를 이어받았다. 아마존 1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등의 수식에 독자들이 혹했나 싶지만 이들 작품들은 ‘문학성’도 갖추고 있다. 『허즈번드 시크릿』은 추리물처럼 광고하고 있지만 실제론 여성들의 심리가 잘 묘사된 가족 소설이다. 『행복만을 보았다』는 자기고백적인 순문학작품으로 사랑의 결핍이 불러온 비극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개인적인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이들 외국 작품 중에선 『영원한 이방인』과 『행복만을 보았다』가 좋았다. 특히 『행복만을 보았다』는 몇 장 읽기도 전에 심장이 선득해지는 보기 드물게 강력한 작품이다.
외국소설의 약진, 국내 소설의 부진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엔 어떤 ‘임계점’을 넘어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이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타개할 방법을 찾는 것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시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외국 대중소설과 경쟁하려면 ‘재미’가,해외 거장들과 경쟁하려면 ‘깊이’가 있거나 해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한국문학이 미흡한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내 작가들에게 미국과 유럽 같은 세계 무대의 작가들과 경쟁하며, 수준 높고 재미있는 작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가혹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문학의 위축은 오랜 기간 동안 문단이 자초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들은 자화자찬하고 서로 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나갔던 것 아닌가? 평론가와 문학 기자들은 냉철한 분석이나 호된 비판을 내놓는 데 주저하지 않았는가? 특히 외국 대가들의 작품을 읽은 후엔 국내 대가들은 타성에 젖었었고, 국내 중견 작가의 작품들은 ‘소품’에 그쳤으며, 우리 나라의 읽고 쓰는 분야의 지적 토양이 척박했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외국 대중소설과 비교 해도 대체로 국내소설 쪽에 더 문학적 허세가 만연했으며, 그럴듯해 보이지만 죽은 비유가 넘쳤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므로 재미가 있어야 한다거나 일각에서 시도되는, 영화나 드라마로 변용이 가능한 이야기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반쪽의 처방일 수도 있다. 많은 국내문학이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깊이는 더 없었기 때문이다. 깊이를 가져라, 허세 없이 무섭도록 엄정한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라는 처방을 내린다면 이는 ‘재미’보다 더 어려운 요구일 것이다. 하지만 문학을 하기로 한 이상 이 본령에 다다르도록 노력하는 것은 작가의 운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