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권 분량의 작품을 응모한 등단 10년 이하의 시인들의 작품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 시의 미래를 진단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올해 대산창작기금 시부문의 응모작은 164명 응모자들의 원고였다. 심사위원들은 배분 받은 작품들
중 1차로 3-4편씩을 선정하기로 하고 6월 30일까지 각자 작품을 선정한 후, 2차 심사대상작으로 선정된 9편의
작품을 숙독한 다음 7월 9일에 최종 심사를 가졌다.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시인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2차 심사에서 선정된 9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평가가 일정치 않은 작품도 있기는 했으나 모두 뛰어난 수준이어서 3편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응모작은 전반적으로 아직도 산문화 경향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반드시 형식의 문제만은
아니어서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과도한 언어유희도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진지하게 자기만의 문법을 모색하고 있는
시인들이 많았다.
「To oido」외 50편의 김성대는 미묘한 생의 비밀과 기미 같은 것을 탐지해내는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언어와 시상의 팽팽한 긴장감이 일품으로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것을 감각화, 언어화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전체
시의 수준이 놀랄 만큼 고르다는 것도 이 시인을 신뢰하게 한다.
「멈춤에 붐빈다」외 59편의 안숭범은 새로운 화법과 시각으로 무척 세련된 방식으로 언어를 다루고 있다. 진지한 성찰과
절제된 언어로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동안 수다하게 보아왔던 유사한 경향의 산문시와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안숭범은 시가 삶을 시보다 더 흥미롭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시조「카메라 옵스큐라」외 62편은 긴 시간 논의한 끝에 선정되었다. 유종인의 시조는 시조라는 근대성을 뛰어넘어 현대성을
담보한 무게감이 독자를 즐겁게 해준다. 아니 그 이상이다. 장르에 대해 인색하지 않던 현대시가 시조에 대해서만은 유독
인색했던 이유를 이 시집에서는 조금도 찾을 수 없다. 그동안 품어왔던 현대 시조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놓게 했다.
마지막까지 논의 되었던 작품 중 「토리노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파베세에게 묻지 못한 것들」은 정교하고 짜임새 있는
시편들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보기 드문 시들을 보여주었다. 「이팝나무 우체국」은 삶을 응시하는 따뜻한 힘으로
시적 상상력을 밀고 나가지만 그 이상을 뛰어넘으려는 모험이 조금 부족했다. 「웜홀」은 매끄럽지 않지만 예사롭지 않은
시적 사고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체의 수준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큰 단점이었다.
대산창작기금 소설 부문 응모자는 총 84명으로 예년보다 경쟁이 더 치열했다. 응모자의 상당수가 이미 문학적 기대를
모아 온 유능한 신예 작가들이었다. 이름을 지운 상태에서 원고를 넘겨받았기 때문에 선입관 없이 주요한 신예들의 작품을
읽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문학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신예 작가들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든든했다.
그러나 모든 응모작에서 심사위원들은 몇 가지 공통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먼저 서사의 취약을 가장 아쉬워했다. 단편은
물론 장편마저도 분량에 값하는 이야기를 담보한 작품이 드물었다. 다음으로 꼽은 아쉬움은 신예 작가다운 도전이나 대담한
실험 정신이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중견이 된 앞 세대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가 직면한 곤혹의
심층과 출구를 찾기 위한 치열한 모색을 보여주는 작품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 아쉬움은 지나치게 과민한 신경증이었다.
여러 작품이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듯했다. 실감이 너무 떨어지고, 현실을 다룬 작품도 리얼리티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2차 논의 대상으로 선정한 작품은 열두 편이었다. 이 열두 편 가운데 「천사의 몫」과 「마트에서」는
차분하고 진지하지만 전체적으로 평이하고, 「정오의 산책」과 「빈집을 두드리는 이유」는 무리한 상황 설정과 과도한 감정
노출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예인선」과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는 작품에 따라 완성도가 불균등하거나, 미숙한 실험이
지지를 어렵게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대상자는 단편소설들을 제출한 세 작가와 장편을 제출한 세 작가였다. 단편에서 「파이의 탄생」은 서사의
건강성과 아직 등단하지 않은 신인의 작품이라는 점을 주목했지만 힘이 부족하고, 「안녕 할리」는 가장 잘 읽히는 작품이라는
공감을 얻었지만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를 두루 가볍게 끌고나갔다는 반론을 넘지 못했다. 「이보나와 춤을 추었다」는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흠이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세계를 넓은 시선으로 조망하고 개성적인 성격을 창조하는 이
작가의 능력에 기대와 격려를 보내자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장편에서는 「나의 아름다운 마라톤」과 「노래는 누가 듣는가」가 마라톤과 노래를 통해 안정감 있는 보폭과 리듬으로 삶을
은유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진전하기보다 단순하게 변주되고 있다는 흠을 가리기 어려웠다.「좀비들」은 장르 문학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소재에 도전한 실험 정신을 높이 평가받았다. 좀 더딘 이야기의 보폭을 보다 재게 다듬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으로 소재와 설정이 가장 참신한 이 작가의 도전을 격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회를 얻은 두 작가와 이번에 기금 수혜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응모자 모두의 더 큰 활약을 기대한다.
올해는 17명의 작가가 지원하여 예년보다 지원자가 많아졌다. 반가운 일이다. 18회를 맞이하는 대산창작기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또한 지원 자격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등단 10년 이하의 작가들이 연극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응모작들은 전반적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장막극을 여러 편 창작하는 작업이 분명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지원자마다 개성있는 소재와 형식, 문제의식을 갖고 극작한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장막극을 안정되게 끌어갈만한
역량, 구조와 인물 구축, 주제 의식의 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판단되는 작가들을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3명의 작가를
본심에 올려 깊이 논의하였다.
주혁준의 「목마른 물고기」 외 출품작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상실을 다루는 무게감과 구어를 다루는 함축성 등 기량이
높고 언어가 유려한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다루고 있는 소재와 인물 구도 면에서 기성작가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아쉬움이
컸다.
김민정의 「해무」 외 출품작은 작가로서 안정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해무」와 「길삼봉뎐」에서처럼 사실주의극과
역사극 등 다양한 소재와 양식을 다루는 솜씨가 돋보였고 희곡의 문학성도 겸비하였다.
김은성의 「연변엄마」외 출품작은 작가의 개성과 역량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연변엄마」는 연변 출신 중년 여성의
시선과 여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폐부를 꿰뚫고 있다. 간결하고 인상적인 대사와 화법, 속도감 있는 극
전개, 세대별 인물의 특성과 욕망을 간명하게 포착하여 풀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다른 작품 「시동라사」
역시 신인답지 않게 자신의 극 창작 스타일을 뚜렷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김민정과 김은성, 두 작가를 놓고 고심하였다. 두 작가가 모두 현재 연극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김민정 씨가 지닌 안정감과 문학성을 높이 살 것인가, 김은성 씨가
지닌 개성적인 스타일과 동시대를 예리하게 통찰하는 주제의식을 높이 살 것인가. 심사위원들은 현실을 파고드는 통찰력을
지닌 김은성 씨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김민정 씨 역시 충분히 수상할 자격이 된다고 판단되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수상자에게는 도약의 기회가 되길 바라며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재도전과 성찰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올해의 대산창작기금 평론부문 투고작은 모두 8편이었다. 편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평문들이어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동시대의 문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이론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어우러진
젊은 비평가들의 비평문을 읽는 것은 심사의 과정이라기보다는 발견과 학습의 과정이었다. 이 비평문들 속에는 동시대 한국문학의
지형도가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실감으로 구체화되어 있었다.
특히 두드러진 것 중의 하나는 시장르에 대한 비평적 관심의 증대이다. 독서시장에서의 소설장르의 득세가 명백한 상황에서
시장르에 대한 비평적 관심은, 시장르를 좀 더 본격적이고 진지한 문학적 분석과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사실이다. 문학상품이 아닌, 문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시장르를 바라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지만, 대중의 감각과 전문가
비평의 소통의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동시대의 젊은 비평가들의 비평적 착안점이 되고 있는, 외국의 이론들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현장비평이 이론적 트렌드를 반영하는 이러한 경향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동시대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문제의식과 만나는
외국 이론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젊은 비평가들이 비슷한 테마와 이론에 경사될
경우에, 개별적인 비평가의 개성과 자립성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고, 여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더 기본적인 문제는 이론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텍스트를 어떻게 섬세하게 읽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빠져나가는 것들」, 「숭고의 에피파니와 정치학」, 「측위의 감각」, 「신소설사」, 「수런거리는 시,
분기하는 비평들」등은 모두 훌륭한 비평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우열의 차를 논한다는 것이
거의 무의미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텍스트에 대한 독해력과 논리의 안정성 등을 고려했다. 그 결과 소설 장르 비평에
관해서는 「신소설사」와, 시 장르를 중심으로 한 「수런거리는 시, 분기하는 비평들」을 선택했고, 논의 끝에 「수런거리는
시, 분기하는 비평들」로 결정되었다. 선정된 비평문은 오늘의 한국시단에 보여주는 새로운 미학적 변화를 차분하게 성찰하고
있다. 어떤 강력한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미학적 변화의 의미를 원론적으로 추적하면서 비평계의 양상을 정리하고, 균형감
있는 분석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선정된 비평가에게 축하를 보내며, 훌륭한 비평문을 보내준 모든 투고자들의
건필을 기원한다.
올해 아동문학 부문 응모작은 동시, 동화 모두 수준이 고르게 높은 편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어느 작품을 골라도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일정한 수준을 갖추었으나, 한편으로는 월등히 빼어난 작품도 눈에 띄지 않아 동화의 경우 심사위원들의
고심이 적지 않았다.
심사방법은 전체 작품을 3명의 심사위원이 균등하게 나누어 예심을 하고, 여기서 통과된 11편을 심사위원 전원이 윤독하였다.
최종심에서 각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여 동시 1편, 동화 1편을 선정하였다.
동시 부문에는 「눈길」外, 「꽃잠나비잠」外, 「딱보면 알지」外, 「궁전으로 출근하는 아빠」外, 「호랑이 뉴스」外,
「아빠 코털」外 등 6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이들 작품은 자유자재한 언어 구사력이 돋보였으나, 한편으론 언어유희에
머무르거나 시적 새로움이 부족한 점 등이 각각 지적되어 네 편이 먼저 제외되었다. 「궁전으로 출근하는 아빠」外와 「아빠
코털」外 가 최종 논의되었는데, 전자는 시적 대상을 보는 시선의 참신함이 돋보인 반면 작품 각 편의 수준차가 큰 점이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아빠 코털」外는 생활세계에서 포착한 동심이 자연스럽게 형상화되었고, 시적 상상력을 통해 사실성을 참신하게
구현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작품 전편의 질이 고르게 우수하여, 기본이 튼실한
신인으로 믿음을 주었기에 쉽게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동화는 『먼 길』, 『방구리』, 『안녕, 그림자』, 『엄마의 팬클럽』 네 편의 장편과 단편모음 「빚」外 등 다섯 편이
최종심에 논의되었다. 『먼 길』과 『방구리』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으나, 소재나 형상화 방법의 양면 모두에 새로움이
없었다. 『안녕, 그림자』는 성추행과 왕따라는 어린이 현실 문제를 다루었고 술술 잘 읽히는 것이 장점이었으나, 문학적
밀도가 다소 허술하여 소재주의에 그친 아쉬움이 있었다. 『엄마의 팬클럽』은 작가의 필력이 탁월하나 뒷부분의 작위성이
지적되었고, 전반적으로 어른의 욕망이 이야기를 견인하는 점도 우려되었다.
「빚」外는 현대적 긴장이 다소 부족한 면이 있으나, 동심의 내재적 환상성과 생활 감각을 순하고 자연스럽게 구현하였고,
동화 문장으로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주었기에 신인다운 가능성을 크게 보고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자들에게 축하를 보내고, 다른 응모자들도 더 간절한 열망으로 문학의 길에 정진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