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인 시들이 펼쳐 보이는 우리 시의 미래
응모작들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만큼 심사위원들의 고민도 깊었다. 우리 시단의 가장 뾰족한, 활발한 맨 앞장을 보는 듯했다. 새로운 발상과 다른 감각을 선보인 시편들이 많았다. 시적 소재의 확장도 단연 눈에 띄었다. 이미지의 산란이 좀 가셨다는 평가도 있었다. 아홉 분의 응모작품들을 본심에 올려 최종적으로 논의를 한 후 세 분의 대산창작기금 수혜자를 선정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웃는다」 외 62편’은 매우 독특한 작품들이었다. 평범한 문장으로 일상의 환상을 그렸다. 온건한 언어로 일상 너머를 스케치했다. 일상은 일상이면서도 환상을 갖고 있었다. 일상을 환상으로 만드는 것은 문체일 것이다. 이 시인의 문체는 그만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좋은 시의 행로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시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동물의 부위와 식물의 부위로』(총 52편)’는 이질적인 것들을 시적인 진술을 통해 서로 엮어내는, 관계를 생산해내는 상상력의 방식에 주목을 하게 했다. 그리고 젠더 관점의 시편들도 특별했다. 대상에 대한 다면적 접근, 그리고 시행의 경쾌한 보법 등은 시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한 편의 시는 허밍과도 같은 노래의 느낌을 전해주었지만, 전체 시편들은 마치 공연이 펼쳐지는 입체적인 극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도로시 커버리지」 외 49편’은 탄력이 있는 상상력을 선보이면서도 그 근저에는 서정적인 자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가령 시 「벌」에서 “갓 벤 풀 냄새가 나면 우리는 무덤 위에 누워 있고”라는 시구에서 그러한 일면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이 시인의 시적 관심은 소소한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이 세계 전반을 향해 폭넓게 열려 있다는 점에 호감을 갖게 했다. 시상이 감각적이고 탄력적이되 가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앞으로의 시작(詩作)에 거는 기대가 컸다.
세 분의 대산창작기금 수혜자들께 축하를 드린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 글쓰기
2020년 대산창작기금 소설 부문에는 총 123건이 접수되었다. 심사자들은 이 중에서 2명의 최종 지원 대상자를 선정해야 했다. 3명의 심사자들은 무작위로 배당된 작품을 읽고 1차로 각자 2, 3편의 추천작을 선정했다. 2차 심사에서는 총 8편의 작품을 놓고 논의하여 2편의 최종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최종 지원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고려한 점이 있다면 가능하면 장편소설을 지원하자는 것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아직 작품집을 출간하지 않은 신인작가를 배려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두 가지 점보다 더 중요한 원칙은 뛰어난 작품성이었다.
장편소설 응모작품 중에서는 『인간 콤플렉스』, 『못』, 『아름다운 연인들』을 최종 후보 작품으로 논의했다. 세 편 다 집중력 있는 서술에 에너지도 있고 몰입하기 좋은 작품이었는데 뭔가 자연스러움이 부족했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소설적 정황 안에서는 흥미진진한데 우리가 사는 현실에 놓았을 때는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했다. 특히 『못』이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유적 사유가 다른 작품들보다 돋보이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장편소설 3편 다 최종 지원 대상 작품으로는 선정하지 못했다.
단편소설 응모작품 중에서는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외 9편’, ‘「스매싱의 완성」 외 5편’,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외 6편’, ‘「거짓말」 외 7편’, ‘「z활불러버s」 외 5편’을 최종 후보 작품으로 논의했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외 9편’은 문장이 정확하고 서사가 자연스러웠다. 특히 「오늘의 가족」과 「30분 속성 플라멩코」는 수작이었다. ‘「스매싱의 완성」 외 5편’은 일상적인 소재도, 비일상적인 소재도 흥미롭게 풀어내는 감각과 집중력이 좋았다.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외 6편’은 세련된 문장에 원숙한 서사 처리가 장점이었다. 다만 남녀관계를 약간 희화화하는 데서 오는 익숙함이 단점이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고른 편이었다.
사실상 거의 다 우수작이어서 어떤 작품을 최종 지원 대상작으로 선정해야 할지 심사자들의 고심이 컸다. 토론 끝에 최종 지원 대상작으로 ‘「z활불러버s」외 6편’과 ‘「거짓말」 외 7편’을 선정했다.
‘「z활불러버s」외 6편’은 화법이 활달하고 신선했다. 또 인간의 삶을 이루는 전방위에서 소설 소재를 가져오는데, 다소 산만해질 수 있는 디테일들이 단순한 정보 값에 그치지 않고 소설의 재미와 사유의 측면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어쩌면 소설을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었다. 다만 모두가 아는 정보라고 해도 작품 속에 들여올 때는 보다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거짓말」 외 7편’도 수작이었다. 시리아 난민 캠프 같은 다소 먼 소재에서부터 사회생활, 임신 같은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작가였다. 어쩌면 2020년 현재 글로벌한 차원에서의 차별이나 혐오 상황에 대해 가장 적절하고 생생한 톤으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시의성도 감수성도 동시에 빛나는 작품이었다. 두 분의 최종 지원 대상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도 작가들의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심사자들의 미흡함도 있을 수 있고,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다. 보다 나은 창작 환경에서 글쓰기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모두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