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대산창작기금에는 시집 1권 분량의 편수를 원칙으로 모두 167명이 응모하였다. 세 명의 심사 위원이 1차 윤독한 후,
2차 심사 대상작을 대상으로 2차 윤독을 거쳐, 3차 최종 심사 대상작을 결정하였다. 처음에는 등단 10년 이하의 시인의 작품
세계를 한꺼번에 살필 수 있는 계기여서 공부도 할 겸 흐뭇한 마음으로 시작하였지만 막상 167권의 시집을 읽어 내려가자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경향성은 대체로 이러했다.
첫째, 서정에 기대어 가족, 고향, 자연, 사물 등에 가탁하는 존재론적 사유를 드러내는 시. 이 경우 지나치게 기억에 의존하여
현실의 생동감을 잃어버리는 약점이 있었으며 전언에 충실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미학성이 떨어지는 시가 많았다. 둘째, 존재론적
사유를 드러내지만 도시, 현재, 자아, 타자, 세계 등에 일정한 시선을 두고 새로운 서사로 읽어내려는 시. 비교적 안정적인 시적
형식과 내용을 갖추었지만 진지한 통찰을 의도적으로() 소거시킨 듯. 셋째, 주체, 현실, 대상의 균열 속에 아방가르드적인 미적
모더니티를 산포시키는 시. 무시간성, 이질적인 공간, 선험 부정에 대한 옹호, 반윤리, 키치 등이 앞을 향해 있고 황량하고 고독하여
미래에 거처를 두고 있는 경향. 세 명의 심사 위원은 역량 있는 신진 발굴과 양성에 역점을 둔다는 심사 기준에 의해 장래성 있는
작품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다.
「샴」외는 최근 시적 경향에 물줄기를 두고 있으면서도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지류를 이루려는 듯 경험적 사유를 감각적으로
풀어내고 있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 세대와는 구별 지으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이로 인해 주체의 목소리가 컸다.「과(果)를 새기다」외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서사를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가독성과 시의 본원적인 것을 되새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시는 솔직한 것이 전부는 아닐 터.「태양의 과녁」외는 미적 모더니티를 포합하면서 우리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적이었다. 이 밖에「정물」외, 「거웃」외 등도 오랫동안 심사위원들을 망설이게
했던 작품이었다. 시대도 바뀌고 세대도 바뀐다. 당연한 이치다. 시도 보다 새로운 방향으로 바뀔 때이다. 이런 의미에서 젊은 시를
읽고 난 후 느낌은 보람에 찬 것이었다. 이들의 시를 읽으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세대의 자리를 염려해서가 아니다. 나태가 일생을
망칠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축하와 위로를 보낸다.
집중적인 논의 대상이 된 작품들 가운데 두 작가의 작품만 장편소설이고 나머지 작가들은 단편소설 여러 편을 투고한 경우였다.
근년에 장편소설 창작이 본격화한 것에 비해 아직 질적인 성취가 상대적으로 다소 부족해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장편소설 가운데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은 의욕적인 착상과 전개에 비해 허술한 마무리가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장편소설로서의 통일성이 살아있지
않은 게 문제였다. 또 다른 장편소설인 「위험한 중독자들」은 정돈된 문장과 무난한 전개가 강점이다. 하지만 회상 부분에서 탄탄한
서사에 비해 현재 시점의 인물들이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독설」외의
단편소설을 투고한 작가는 독특한 발상이 흥미로운 「독설」에 비해 다른 작품의 힘이 처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매달려」외, 「실수하는
인간」외의 작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재의 기발함이 두드러지는 점이 독자의 공감과 보편성을 얻어내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벽 안에서」외의 작가는 교도소 같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룰 때에 강력한 서사의
힘을 느끼게 해준 반면, 소재나 공간의 힘이 떨어지는 작품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들 작가들은 조금
더 역량이 무르익은 뒤에 평균적으로 수준이 고른 좋은 작품을 산출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기다려 데릴라」외의 작가는 끈덕지고
힘이 있는 소설을 보여준다. 쓰고자 하는 바를 잘 알고 있으며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재료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끌어낸다. 때로
의욕이 넘쳐 요설로 흐를 가능성이 있긴 하나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름」외의 작가는 이미지를 잘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구성과 문장이 탄탄하며 안정감을 준다.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묘사를 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서사의 힘이 약해
보인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이후 작가 나름의 새로운 서사를 개척할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다.
6인 개성적인 극작가들의 쟁쟁한 경연장
희곡 부문의 응모작은 모두 16편이었다. 소극장을 통해 연극을 경험하고 배운 내력 때문인지 응모작 대부분이 일상적 감각의 재현에
치우쳐 다양한 무대 미학을 상상하기 어려웠고, 운명을 드잡이하는 드라마틱한 서사는 드물었다.
1심을 거쳐 다시 논의된 작품들 대부분은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것이었다. 그만큼 희곡은 무대라는 단련의 장소에서 나름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 아무래도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일까 선자들은 여섯 명의 작가들로 논의를 좁혔다.
주혁준은 기성작가의 자장이 강하게 느껴지고, 주제의 구축 보다는 연극적 유희에 치우친 점이 아쉬웠으며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편차가
있었다. 이시원은 지나치게 소극장에 국한된 이야기 규모와 만화, 일본 현대소설 등에서 발견되곤 하는 상상의 패턴이 선자들을 주춤하게
했다. 김재엽은 우리시대에 대한 발언, 내용과 형식의 일치 추구 면에서 성실감이 좋았으나 작가의 현실 비판의식이 다소 모범적인 틀에
갇힌 점, 이야깃감을 기성의 작품에서 구하거나 영향관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면이 아쉬웠다.
동이향은 독특한 어휘운용과 형식적 탐닉을 갖고 있지만 극 구조를 도울만한 캐릭터 창조 면에서 관심이 적거나 미흡하고, 수사를 위한
수사 등 주관적 상상력을 객관적인 극형식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모호함과 관념을 자주 드러냈다. 선자들의 확신을 끌어낼만한 결정적인
한 편을 더 응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김민정은 극장성을 의식하고 있는 서사적인 역량이 장점이다. 우리 시대와 사회, 공동체의
문제점을 체감하는 문제에서는 동년배의 작가들 중 발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연극적 형식 고안이 내용을 돕고 주제를 향한 것인지,
극적 기교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인 의견도 제기되었다. 그리고 작가가 이미 타 출판 지원을 수혜한 바가 있어, 재단 측에서
확인을 거친 결과 중복지원의 우려가 있어서 최종 배제했다.
최원종은 희곡 텍스트와 실제 무대화의 간극을 알고 쓴다. 희곡 작가로서의 귀한 덕목이다. 또한 청소년의 성장모험담을 비틀면서 한국사회의
폭력성의 서늘한 점묘 화풍을 개성적으로 선보인다. 그러나 일부 응모작의 경우 고립감에서 벗어나 쉽게 무대화하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 형식을 얻어가는 과정에서인지 일상성을 달콤하게 가공해 대학로 소극장연극과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남는다.
하지만 비주류 인생에 대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속에서 ‘리셋’의 세계관, ‘로그아웃’의 환상적인 탈주 욕망 등을 좀 더 도발적으로
포착해낸다면 우리 희곡에서 희귀한 지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선자들은 이 작가의 개성을 높이 사기로 했다. 다만 작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안으로 다지고, 이제는 사회와 인간에 대해 폭 너른 통찰의 힘을 갖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의 장르문학에 대한 새로운 성찰
제19회 대산창작기금 평론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2편이었고 이 가운데 최종 논의 대상에 남은 작품은 4편이었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이 작품들을 돌려가며 읽고 충분한 토의 끝에 「다른 세계로부터 배우기 : 한국의 SF, 묵시록, 유토피아」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장르의 특성상 다른 부문에 비해 응모작은 적은 편이나, 각기의 작품들은 모두 저마다의 시각과 분석 능력 그리고 중심이
되는 의미와 이를 표현하는 문장력이 숙달되어 있었다.
당선작은 SF 문학장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최근 장르문학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또한 OSMU(One
Source Multi Use) 방식의 상업적 접근으로 이를 이용하려는 발 빠른 움직임들 속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비평은 이와 같은 움직임과는 거리를 두고 본격 문학의 이정표 안에서만 제한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 비평가가 보여주는 SF문학에 대한 수준 있는 성찰은 반가운 마음까지 든다.
이와 같은 비평을 통해 본격문학과 장르문학 간의 해묵은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궁극적으로는 ‘문학’의 본질, 즉 모든 제한을 거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올바른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비평가가 보여주는 SF문학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당위적 복원 내지는 호사가적 취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격문학을
대상으로 그랬던 것처럼 올바른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신뢰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대상으로 하는 실제 작품들이 비평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누구나 납득할 만한 문학적인 성과를 양과 질의 측면 모두에서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그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선구적 과정이 비평의 책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이 비평가가
내세우듯 ‘문학적 규약에서 자유로운 장르문학’이야말로 대중과 같이 호흡하는 현장에서 먼저 그 값어치가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당선작이 몇몇 한정된 작가들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거나, 기존의 작가들을 다룰 때도 아이디어의 차원에서 그 가능성만을 언급한다는
점, 때로는 사유의 근간을 지나치게 외국 작가의 작품에 두는 점은 향후의 과제이다.
결심에 남은「헤르메스의 문장들」은 무엇보다도 문학적 글쓰기를 수행하는 자로서의 강한 자의식과, 문학작품들이 현실과 맞닿는 방식이나
정도 그리고 그 문제성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았다. 따라서 최근의 우리 시단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미래파’ 논쟁이나
‘정치성’에 대한 논의 앞에서, 미적 자율성이라는 시의 육체와 현실 정치라는 시의 정신 모두를 아우르는 비평적 판단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성실한 비평적 판단력이 아직 완전한 자신의 목소리가 되지 못하고 종종 다른 사람의 그것에 보다 많이 기대고 있는
점이나,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이 다소 협소한 범위를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미흡하다고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무위의 공동체」는 우리 문학을 보는 시각이 광범위하고 튼튼한 이론적 바탕에서 출발하고 있어 큰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비평적 관심을 일정한 방향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분산한 형국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문장들의 우정」은 문장력도 돋보이고 작품의
분석도 그 나름의 방법론을 갖고 있었지만, 시론적 비평에 경도되어 있는 측면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다소 허약해 보이는 단점이 보였다.
당선자에게는 큰 축하를, 그리고 아쉽게 낙선한 분들에게는 더욱 발전하는 앞날에의 기대와 함께 따뜻한 위로를 보낸다.
올해의 대산창작기금 아동문학부문 응모작은 동시와 동화, 그 두 장르를 합쳐 모두 85편이었다. 그 중 동시 응모 수는 동화보다
조금 더 많았으나 작품 수준은 동화에 비해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동화의 경우, 안일한 소설적 장치로 작가의 의도를 쉽게 노출시킨
작품이 많았으나 어느 정도 일정한 수준을 갖추었고 작가마다 독특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면 동시는 대체로 앞선 시인들이
보여준 시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작품 수준도 고르지 못한 편이었다. 심사위원은 2차 논의 대상 작품으로 동시 6편,
동화 6편을 선정하여 윤독한 뒤, 최종적으로 동시 4편과 동화 4편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여 동시와 동화, 각 1편씩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동시 부문에서는 「한자랑 시랑」, 「콜라 부처님」외, 「할머니」외, 「목욕탕에서」외 등 4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그 중 「한자랑
시랑」은 언어를 다루는 재치는 있으나 동시를 교육적 목적으로 접근하면서 한자를 말놀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콜라 부처님」외와
「할머니」외는 발상의 기발함을 보여주었으나 전체적으로 시적 형상화가 미흡하고 작품 수준이 고르지 못하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그에
비해 「목욕탕에서」외는 발상의 신선함이나 동심을 부각시키는 데 다소 미흡했으나 대체로 작품 수준이 고르고 무난하여 기본이 튼실하다는
믿음을 준 점에서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동화 부문에서는 「울란바토르에 뜬 무지개」, 「나무도령」, 「멍 지우기」 등 3편의 장편과 단편 「그린맨의 찢어진 슈퍼타이즈」외를
최종심에 넣고 논의되었다. 「울란바토르에 뜬 무지개」는 한 다문화 가정의 불화와 화해 과정을 또다른 시각으로 보여준 점이 새로웠으나
중반 이후 화해적 분위기로 이끌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생경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나무도령」은 판타지 동화로 ‘나무도령’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의 문제성을 접목시킨 점이 돋보였으나 사건 전개상 수긍할 만한 개연성이 부족하고, 특히 문장력에서
결함을 보여 아쉬움이 컸다. 단편 「그린맨의 찢어진 슈퍼타이즈」외는 문장력이 탄탄하고 단편을 빚어내는 기법 면에서 새로움이 엿보였으나
작품의 수준차가 크다는 점이 우려되었다. 그런 반면, 가정 폭력의 문제성을 제시한 장편아동소설 「멍 지우기」는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한 자세로 아빠에 대한 배신감을 아들에게 표출하는 엄마의 폭력을 섬뜩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렸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으나 탄탄한
문장력과 뛰어난 구성력, 그리고 치밀한 심리 묘사 등이 단연 돋보여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두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도약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좋은 작품을 보내준 모든 응모자에게도 진심으로 건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