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심사대상은 210명의 시집 원고였다. 이름을
모르는 채 작품만을 보아야 하는 심사의 장점은 아마도 이름으로 인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50편이 넘는 한
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응모자들이 저마다 일정한 문학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문학은 그저 그런 작품을 만들어낼 줄 아는 평범한
능력 이상의 어떤 새로움을 요구하는 법이다.
심사과정에서 시의 지나친 산문화 경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사유의 겹을 이루지
못하는 단순한 사고들, 무절제한 감정의 토로, 상식과도 같은 당연한 진술,
설익은 잠언들은 시에 있어서 너무나 구태의연한 것들로 지적되었다. 신인은,
그리고 시인이라면, 그런 구태의연함을 등지고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과 작품세계를
창조할 용기와 열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심사의 척도에 여러 잣대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움’이 중요한
척도였음을 밝혀야겠다. 이 심사는 등단 심사와는 다르다. 무난함이 아니라 비록
불온하고 위험하고 낯설어 보일지라도 전위적인 개성화의 길을 가려는 언어예술가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경주의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외 49편, 김일영의
「젖이 큰 할머니」 외 49편, 전정순의 「고무장갑」 외 54편이었다.
김경주의 시는 젊고 패기가 있다. 거침없는 언어들이 시적 효과 속에서 기운생동한다.
자유로운 의식이 자유로운 표현을 창조해내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이 있다.
김일영의 시는 맛깔스럽다. 아주 섬세한 언어요리사를 만난 느낌이다. 의미보다는
음미 쪽에 시의 무게가 가있다. 내공이 만만치 않고 작품을 만드는 데 무엇보다도
공을 들인 흔적들이 역력하다.
전정순은 새로운 문법을 모색한다. 주제는 단절 혹은 고독에 관한 것이다. 일상을
소재로 하는 그의 시는 건조하고 낯설고 그로테스크하다. 그러나 그의 산문시들이
기존 산문시와 크게 다른 무엇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총 응모작은 78작품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한 달 반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 모든 작품을 검토했다. 욕심 같아서는 전체 응모작의 1/3을 차지고
하고 있는 장편소설에서도 창작기금을 수혜할 수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바랐지만,
응모된 장편소설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낮아 1차 논의를 위해 골라낸 9편 속에도
단 한 편의 장편소설이 끼지 못했다.
그런 대신 중단편 응모작들의 수준은 어느 문예작품 공모보다 높아 1차 논의를
위해 9편의 작품을 골라내는 일에서만도 작품 간에 많은 저울질을 거쳐야 했다.
그것은 ‘대산창작기금’이 일반 문예지의 신인상 공모들과는 달리 이미 그런 신인상과
신춘문예를 통과한 기성 신인작가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공모하기 때문이다.
서로 성향이 다른 70여 명 작가들의 작품을 돌려 읽기 전 우리는 심사의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지원 신청 작품들의 작품성을 최우선으로 하되 수준이 비슷한
경우 신진작가 위주로 작가의 장래성을 감안하기로 했다. 그러나 심사에 임하기
전에 정한 이 원칙은 최종 심사에서는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
응모작 대부분 기성 신인작가들의 작품이라 1차 심사에서 9인의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일단 한 번 작품을 압축한 다음엔 저마다 7~8편의 중단편을
응모한 터라 그 작가 작품의 평균수준과 작품간의 편차가 그대로 드러나던 것이었다.
주최 측에서도 공정한 심사를 위해 작품에 명기된 작가에 관한 모든 인적사항을
지워 심사위원에게 보냈고, 심사위원들 역시 ‘신진작가 위주로 작가의 장래성’을
고려할 사이 없이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편 읽는 동안 드러나는 우열만으로도
다른 감안 사항 없이 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코끼리」 외 7편과 「달려라 아비」 외 7편, 「하얀 인큐베이터」
외 6편을 최종적으로 대산창작기금 지원 작품으로 뽑았다.
「코끼리」 외 7편은 작품 수준이 일단 높고 고르다. 또 작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매우 따뜻하고 건강해 작품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인생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고 또 자기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8편의 작품 모두 이토록 고른 수준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모든 심사위원이
1번으로 이 작품을 지목했을 만큼 이미 탄탄하게 자기 세계를 확보하고 있는
작가처럼 보였다.
「달려라, 아비」 외 7편은 함께 묶은 작품들 모두 매우 참신하다. 70명이
넘는 신인작가들 작품 속에서도 그 참신함이 돋보일 만큼 다양한 소재로 현대인들의
익명성과 군중성을 작품마다 매우 상징적인 장치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작품마다에 보여주는 상상력도 발랄하며, 문장 역시 속도감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다.
「하얀 인큐베이터」 외 6편 역시 작품을 한 번 잡으면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차분하게 읽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힘겨움 속에서도 따뜻함을 읽지 않는다. 함께 묶어 응모한 「역전
다방」 같은 경우 이미 여러 기성작가들이 다룬 이야기이고, 자칫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단단하고도 단아한 문체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시켜내는
솜씨도 대단했다.
이렇게 전체 응모작 가운데 3편을 골라내는 일은 최종심사 때 금방 의견이 모아졌다.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이 떨어뜨려야 하는 다른 신인작가들의 작품인데,
응모작 7~8편이 아니라 그 가운데 1~2편만의 승부라면 심사 결과는 또 달라졌을지
모른다. 응모작품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난 시절의 습작품까지 끼워 넣어
양을 맞추어야 했던 신인작가들도 많을 것이다. 한두 편 빛나는 작품을 가지기는
했어도 그런 작가들의 경우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흔히 기성작가들도 대략 중단편 7~8편을 묶어내는 창작집 가운데 2-3편의
작품만 좋아도 성공한 창작집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 비추어본다 하더라도 이번에
뽑은 세 작가의 작품들은 이미 그 선을 넘어 있다. 앞으로 더 크고 탄탄하게
자기 세계를 이루어가는 큰 작가가 되길 바란다.
응모작품은 총 12명 41편에 불과했으나, 작품 수준은 전년도에 비해 훨씬향상되었고, 작가 개개인의 역량 또한 진일보 발전된 인상을 받았다.
정통 사실주의 희곡으로부터 뮤지컬과 악극, 마당극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이골고루 응모되었으며, 희극적 구조를 갖춘 코미디 풍의 작품들이 강세를 보인반면 비극의 구조를 갖춘 작품은 매우 희귀한 현상을 보였다. 또한 역사극 및 사회극도 몇 편 눈에 띄지 않았다. 표현 형식은 폭넓게 다양해졌지만, 다루고있는 소재의 폭이 좁아져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 등단 10년 가까운 작가들로 무대에 작품을 올린 경험이 있어, 글 쓰는기량은 만만치 않았다. 무대 기술 또한 뛰어났다. 그러나 작품에서 풍겨 나와야할 문학적 향기를 느낄 수 없음이 못내 섭섭함으로 남는다. 화려한 빛깔과 자태를
뽐내며 피어났지만 음미해 볼 향기가 없는 꽃을 대하는 심정이랄까. 다시 말해 기능은 뛰어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나 주제가 빈약한 작품이 많았다. 적어도젊은 작가라면 자기만의 독특한 시선 그리고 독특한 세계를 추구하는 진지함이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두 사람의 심사위원에 의해 최종 3편의 작품이 거론되었다.
『봄날은 간다』는 실험성의 소중함을 말해주는 작품으로, 시적 상상력 또한 풍부하지만,
그 시적 상상력이 행위를 수반하지 못하는 언어의 나열로 끝나는 아쉬움을 남긴다.
『처녀섬』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극작법의 자유스러움이 돋보이며, 서민적 애환을
코미디화 하는데 탁월한 기량을 보이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지가
모호하거나, 흔들린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화려한 말재주와 무대상의
재미에 탐닉해 큰 주제를 놓치는 결함을 보여 안타깝다.
『4악장』은 잔잔한 필치에 실험정신이 눈에 띄는 작품으로,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 돋보인다. 장중한 비극미학으로 승화하지는 못했지만, 값싼 웃음을 경계하는
작가의 절제력 또한 높이 평가된다.
위의 3작품 중 심사위원 합의에 의해 『4악장』을 선정한다.
평론집 한 권 분량이 되는 응모작들이 총 13편이었다. 두 심사위원이 각각
읽고 1~2편씩 추천하여 최종적으로 당선자를 확정하였다.
전체적으로 시평론이 많다. 사회적, 문단적으로 시의 영역이 축소되거나 시의
힘이 약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시비평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둘째, 젊은 시인과 작가들에 대한 비평이 압도적이다.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인과
작가들이 비평가들과 같은 세대, 혹은 또래인 것은 예전에도 그러했지만, 그래도
이번의 경우 정도가 심한 것 같다. 이는 문학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셋째, 사변적이고 현학적인 글이 많다. 논리적 정당성과 투명성과 설득력을 갖지
못한 사변과 현학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또한 그러한 사변과 현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반성도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젊은 평론가들의 패기는
흔히 현학의 패션을 걸치고 나오긴 하나, 그 현학이 너무 엉뚱하고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넷째, 시대적인 의미를 너무 성급하고, 너무 과장되게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시대마다 문학이 그렇게 전면적인 개혁을 하면서 변하는 것이 아닌데, 평론가들은
시대적 의미를 과장하고픈 유혹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응모작들은 대체로 위에 지적한 네 가지 문제점들을 지닌다. 물론 수준의 높낮이는
다른 문제이다. 응모작들 가운데서 최종적으로 검토된 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시학』『투시와 반영의 글쓰기』『작품, 진영, 문학운동』『비평극장』 등 4권이었다.
여기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시학』은 시 해석이 억지스럽다는 점에서, 또
『작품, 진영, 문학운동』은 외국문학에 대한 논의가 여러 편이고 비평의 범주가
편향적이라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었다.
『투시와 반영의 글쓰기』는 비교적 안정된 시 해석과 문장을 보여준다. 현학적이지도
않고 이념지향적이지도 않고 문단의 분위기에도 휩쓸리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시를
해석하는 태도가 돋보인다. 그러나 너무 상식적인 해석에 머물고 있다. 힘과
통찰과 끼가 모자란다.
이에 비해서 『비평극장』은 소설비평인데, 작품에 대한 이해와 통찰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문장력에서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최근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거의 섭렵할 뿐만 아니라 비교적 신뢰할 만한 이해와 의미부여의 수준도 보여준다는
강점을 지닌다. 다만 아직도 현학의 유혹이나 문학사 또는 문단을 사변적 논리로
재단하려는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비평극장』은
신뢰할 만한 젊은 비평가임을 확인할 수 있는, 앞으로 그 활동이 기대되는 필자의
비평이다. 『비평극장』을 당선작으로 하는데 심사위원들은 일심(一心)이었다.
올해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응모작인 61편의 동화와 동시집 중 지원 대상작을
선정하는 일은, 빨리 끝났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뛰어난 작품을 고른 것이
아니라 결함이 덜한 것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시 분야는 시적 감동, 시적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참신하지 못했고,
기존 작품들을 답습하는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화는 새로운 소재 발굴에
힘쓴 작품들이 비교적 여럿 눈에 띄었지만, 문장과 구성과 인물 형상화 등의
요소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선정된 동시집 『내 이름을 불러 봐』는 비교적 진정성 있는
모티프와 간결한 시어 구사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흔한
자연 풍경 속에서 남다른 시간과 공간 감각을 끌어낸 응시가 돋보인다. 「오늘은」「그네」「바다」「자전거를
타다가」「자리」 등의 시들이 그렇다. 이 씨앗을 잘 키워서 꽃피우기를 바란다.
동화 분야에서는 몇 편의 작품이 거론되었지만, 결국 『은골무』로 결정되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시골 친척 할머니 집에 맡겨진 여자 아이가 환상 여행을 통해
조선 시대로 가고, 할머니의 조상인 여자 아이를 만나서 자기 상황을 돌아보며
성숙해간다는 이 판타지는 안정되고 깔끔한 문장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다. 아흔아홉
칸 기와집의 구조나 그 안의 풍경이 눈앞에 떠오를 듯 꼼꼼하게 그려지고, 은둔자
같은 할머니의 단아한 삶도 풍성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그 풍성함과 꼼꼼함에
비해 판타지로서의 팽팽한 긴장감은 약하다.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 사이의 연관성은
희미하고, 현실의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환상 세계의 자극도 미미하다. 섣부른
판타지 대신 조선 시대의 풍속도를 세밀하게 그리는 방향으로 나갔더라면 오히려
더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을 듯하다.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글쓰기
전략을 세우기를 권하며, 두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