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목소리를 발견했는가
시인의 이름이 씌어진 첫 표지 대신 번호가 매겨져 있는 표지가 붙어 있는 시묶음 185개를 읽었다. 심사위원들은 시집을 낼 만큼의 분량의 시를 가진 시인들이
이토록 많은 데 우선 놀랐다. 그러나 시를 다 읽고난 다음에는 실망감이 컸다.대부분의 시들이 다 비슷비슷했다. 일상의 아기자기한 사건들 속에서 소박한 깨달음, 아무 맛도 멋도 느낄 수 없는 상식적인 주장, 끝없는 자기 복제, 기왕의 시인들에 대한 모방, 진정성이 폐기된 환상의 배치, 감상에 기댄 언어유희가 너무 많았다. 생경하다 할지라도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요리 감각을 가진 시,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한 시, 자기 나름의 고민을 토로한 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한 시,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 집중한 시인의 진지한 태도가 드러나는 시들이 드물었다. 더구나 시집 한 권 분량이 모이자 작품 수준이 고르지 않다거나 앞뒤의 수준
차가 심하다거나 한두 편 봤을 때 재기발랄해 보이던 것이 반복적 표현들 속에서 생기를 잃어버리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양선주의 시, “자물쇠” 외 49편은 언어에 대한 염결성을 지니고 있었다.시는 언어로 씌어지는 것이지만 언어로부터 도망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 시인만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언어에 대한 긴장감, 장식하지 않으려는 의지, 감정에 대한 절제의 극치가 눈에 띄었으며 단순성으로 획득한 큰 적막이 시를 읽는 사람을 사로잡았다. 풍경을 정물화처럼 그리는 솜씨와 그것의 암시성은 진폭이 매우 컸다.
김언의 시, “입에 담긴 사람들”외 50편은 생경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시적인 태도, 스타일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일부러 시에서 초점을 흩트려 동일성의 텍스트인 시를 해체하려 한다든지, 언어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든지, 또는 자신이 접한 다른 예술적 텍스트를 해체해 본다든지 하는 태도와 아울러 ‘인간’의 현현을 확장해 보는 시인의 강렬한 의지가 내비쳤다. 그것은 일종의 시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할 수도 있었다.
올해 대산창작기금 소설 부문에는 장편 22편과 단편집 55편을 포함하여 모두 77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작품들을 읽으면서 장편과 단편을 한 자리에 놓고 심사하는 게 온당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자주 일었다. 생의 큰 틀을 포획하여 힘있게 서사를 이끌어가는 장편소설과, 생의 한 지점을 포착하여 섬세한 문체의 힘으로 표현해내는 단편소설은 그것이 추구하는 미학의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편은 단편 미학의 기준으로, 장편은 장편 미학의 기준으로 각각 심사의 틀을 바꾸어가며 읽기는 했으나, 작품을 읽다보면 서사의 큰 틀을 파악하기 전에 문체 미학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측면이 있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세 명의 심사위원이 두 편씩 뽑아 최종심에 올린 여섯 작품이 모두 단편집이었음을 밝혀둔다.
응모 작품들은 눈에 띄는 경향이나 흐름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저마다 다채롭고 개성있는 문학 세계를 선보였다. 그나마 한 가지 특기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서서 환상을 이야기하거나, 판타지적 세계를 천착해 들어가면서 리얼리티의 한 모서리를 파헤치거나. 그러고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우리 소설은 그 두 가지 요소의 교집합이거나 합집합 영역의 어느 지점에 속하는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뽑은 두 편은 ‘자이언트 시대’와 ‘손님들’이다.
‘자이언트 시대’ 외 6편을 응모한 작품은 ‘네모반듯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문장이든, 구성이든 흐트러진 곳이 보이지 않는다. 생의 후미지고 소외된 구석을 찾아내어 그것을 끈덕지게 주시한 다음, 그 비애롭고 황폐한 측면을 특별한 빛으로 비추어내는 작가의 태도가 미덕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작가의 손에서 기이한 웃음거리로, 그로테스크한 이물감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파격과 흐트러짐의 미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는 점이다.
‘손님들’ 외 7편을 응모한 작품은 뚜렷한 주제의식이 우선 돋보였다. 말하려고
하는 것을 향해 직선으로, 곧바로 달려 나가는 글쓰기 기법이 특별한 개성을 확보하고 있다. 표현의 섬세한 지점과 투박한 지점이 서로 맞물리면서 삶의 거친 숨결이 잘 살아난다. 다만 지나치게 잦은 장면 전환은 작가적 사유의 힘이 부족한 측면을 커버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다.
올해에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꽤 눈에 띈다. 언제 이만한 젊은 작가들이 ‘암약하고’ 있었단 말인가, 새삼 놀라며 어느 작가를 밀 것인가 흐믓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두 심사위원이 최종적인 논의에 올린 작가는 <원혜이야기>(외 2편), <섬 혹은 여라고 부르는 것들>(외 1편), <표현의 자유>(외 4편),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외 2편), <녹차 정원>(외 1편) 등의 다섯 작가였다.
<불가사의 숍>과 <아으 디롱디리>도 주목받은 작품이나 응모작들의 수준의 편차로 제외되었다.
<원혜이야기>는 대사와 이야기가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결말에서 글쓰기와 사고의 역부족이 느껴진다. 응모한 세 작품이 결국 똑같은 작품 아닌가. 이걸 ‘천착’이나 ‘일관성’이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표현의 자유>는 깊이 있고 독창적인 주제, 호흡이 긴 대사로 ‘입센적’인 토론극을 창조해냈다. 다섯 작품 모두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제기한 주제에 비해 결말이 상식적으로 빠진다거나 부스러지는 듯한 영화적인 구성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녹차정원>은 언어가 만연하면서도 지루하며 간혹 설명적이다. 그런데도 미묘한 정서를 창출하고 있고 무대적 상상력도 좋다. 함께 응모한 <아빠, 간판맨 되다> 역시 유사한 모티브를 가지고 쓴 작품인데 두 작품 간 질적 차이가 너무 심한 듯 하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고민스럽게 한 작품은 <…영동교…>와 <섬 혹은……>이다. 이 두 작가는 각각 뚜렷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있음과 없음, 이름과 실체에 대한 인식론적 주제를 매우 가볍고 재미있게 엮어 나갔다. 그러나 주제의 사이즈에 비하면 이야기가 장황하고 결말 또한 편치가 약하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 또한 그러하다. 후자는 유현하고 애틋한, 또는 허무한 정서를 창출하고 있다. 구성감각도 세련되었으나 결말이 상식적이고, 맺는 방식이 너무 기교적이다. 이 기교가 오히려 공연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적산가옥-오레스테스의 참회>에서도 유사한 장단점이 보인다. 매우 치밀하고 섬세한 작품이나 그리스적 치정이 화학변화를 거치지 않고 한국적 치정으로 전이돼 거칠고 생경한 느낌을 준다.
결국은 <…영동교…>의 발상의 힘이냐 <섬 혹은……>의 섬세함과 기교냐인데……후자의 매혹이 더 깊지 않은가 싶다.
‘대산창작기금’은 여타 희곡상에 응모하여 수상한 작품이나 공공기관의 지원금을 수혜한 작품은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위에 거론된 작가들 중에도 이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응모한 작가들이 있었음을 밝혀둔다.
응모작 19편 중 마지막까지 지원 대상 후보로 남은 2편은 우열을 가리는게 불가능한, 저마다의 장점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뛰어난 평론집이었다. 2편을 모두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규칙 상 불가능하였으므로 우리는두 가지 서로 다른 장점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어디에나 있는 동시에 없는 것>은 텍스트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읽어내며 그 읽기로부터 의미 있는 맥락을 형성하는 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부족도 과잉도 없이, 절제되었으면서도 내적으로 풍성한 문장 역시 빈틈없이 조직되어 읽는 맛이 대단하다. <균열과 봉합의 비평을 넘어>는 전체적으로 감각과 의식에 대한 규명으로부터 중층적인 역사의 지평에 이르기까지 명징한 논리로 꿰뚫고 있다. 사유의 폭이 매우 넓고, 하나하나의 서술이 뚜렷한 근거 위에서 전개된다. 두 평론집의 이러한 두 가지 장점은 근자의 비평계에 널리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나름대로 극복해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 더욱 귀중해 보인다. 결국 우리는 단점 쪽을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나 있는 동시에 없는 것>은 자신의 스타일을 일관되게 구사하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신인다운 패기의 부족을 뜻할 수도 있으며 특히 글의 결론부에 충실성의 상대적 부족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균열과 봉합의 비평을 넘어>는 논리의 짜임이나 용어의 선택에 거친 점이 있고 경우에 따라 글과 글 사이의 일관성이 흔들리기도 한다는, 요컨대 안정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우리는 이 지원이 신진 평론가를 위한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완성도보다 신진다운 패기를 중시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균열과 봉합의 비평을 넘어>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응모작 중 절반 정도는 비평이라기보다는 논문이라고 해야 할 모습을 하고 있었고,그 중 몇몇 경우는 논문으로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비평과 논문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근자의 경향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원리적으로 볼 때 비평과 논문은 서로 다르다. 설사 혼성이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다름에 대한 자기 나름의 충분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종심사의 대상이 된 작품은 동시 부문의 <지금은 공사 중>,<선물 외> 등이었고, 동화 부문의 <경복궁을 지켜라>,
<비밀의 문>, <구쟁기닥살>, <꼰끌라베>
등이었다.
<지금은 공사 중>과 <선물 외>는 다른 많은 동시 응모자들이
유행처럼 빠져든 자연 소재에서 탈피해 소재가 다양한 점이 높게 평가되었다.
작품들이 쉽고 간결하며 억지스러운 데가 없었고,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을 그려주어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것이라는 말이 오갔다. 그런데 <지금은 공사 중>의
경우에 너무 교훈적인데다가, 행과 연은 나뉘어져 있지만 산문처럼 서술 위주로
되었다는 점이 걸렸다. 이에 비해 <선물 외>는 이미지가 분명하면서도
반복법의 활용에 따른 음악성이 더 살아 있고, 사물을 다른 눈으로 보면서 의미를
발견하는 등 시어의 긴장감도 느껴졌다. 그래서 <선물 외>가 동시
부문에서는 가장 뛰어난 성취라는 합의에 도달했다.
동화 부문은 판타지가 강세였다. 작품 내용을 보면 오랜 취재와 공력이 들어간
것들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씩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경복궁을 지켜라>는 주인공이 사건을 겪으면서 판타지 세계의 법칙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개 인물이 일일이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된 점이
흠이었다. <비밀의 문>은 마고신화를 모태로 해서 태초의 우주창조로까지
상상력이 확대된 작품인데 일반 판타지소설로 도전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을
만큼 어린이가 이해하기에는 관념적인 성격의 문장들이 많았다. 제주에 딸린 외딴
섬마을을 무대로 한 <구쟁기닥살>은 사실적인 이야기로서 가장 무난하게
잘 읽히는 작품이었는데 그 무난함이 새로운 해석과 도전을 기대하는 심사위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이것들에 비해 <꼰끌라베>는 판타지의 전개가 논리적으로 가장 탄탄했으며,
흥미롭고 긴장감 넘치는 모험 이야기면서 의미의 발견과 성장의 테마도 잘 부각되어
있었다. 기억상실과 자폐증을 앓는 동생의 병을 낫게 하고자 인간이 잃어버린
기억을 저장해 두었다는 판타지 세계에 뛰어 들어간 주인공이 동생을 위해(危害)한
오래전 자기기억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면서 겪는 혼란과 아픔은 전율할 만한
감동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작품의 현실적인 배경까지도 외국으로 되어 있고 등장인물
또한 외국인 이름을 쓰고 있어서 한국어로 씌어졌다는 사실 말고는 한국작가가
창조한 한국문학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대 중반의 신인작가가
쓴 것치고는 앞으로의 활동에 큰 기대를 주는 성과이고,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좀 더 전진적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어, 약간의 수정을 제안해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꼰끌라베>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기쁘게 합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