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사업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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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수상자

수상자

상명	부문	중/고	성명	부상
금상	시	고등부	여세실(경기 안양예고 3)	장학금 150만원
			이시형(서울 구암고 3)
		중등부	이가영(서울 중평중 2)
	소설	고등부	강혜린(경기 고양예고 2)
		중등부	정서은(광주 풍암중 2)
은상	시	고등부	백하은(전북 이리남성여고 3)	장학금 70만원
			차유오(경기 심석고 3)
		중등부	김민서(서울 서울사대부중 3)
	소설	고등부	전동은(경남 통영여고 2)
			정수라(전남 해룡고 1)
			이로아(대전 만년고 2)
		중등부	정지우(서울 경원중 2)
동상	시	고등부	권예림(서울 혜원여고 3)	장학금 50만원
			김대연(경기 고양예고 3)
			김명지(경기 권선고 3)
			김유수(충북 양업고 2)
			박수현(경기 안양예고 2)
			정해준(광주 서강고 2)
			조원효(충북 양업고 2)
		중등부	박주현(충남 인지중 3)
			한재범(광주 무진중 3)
	소설	고등부	강지혜(경기 안양예고 3)
			김산(경기 한광고 3)
			김솔희(서울 신목고 3)
			나다현(경기안양예고 3)
			박희영(강원 강원사대부고 3)
			정예지(경기 흥덕고 3)
			조은미(경남 구암고 2)
		중등부	강혜원(서울 가재울중 3)
			장진원(대전 전민중 3)
			조윤서(경기 수내중3)

심사위원

- 시 : 박형준(시인, 동국대 문창과 교수), 이성미(시인), 최서림(시인, 서울과기대 문창과 교수)

- 소설 : 김태용(소설가,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방현석(소설가, 중앙대 문창과 교수), 윤고은(소설가), 함정임(소설가, 동아대 문창과 교수)

심사평

• 시
• 소설

절실함과 독창성으로 설득해내는 시적 감동

백일장 시 부문 시제는 <멈추다>로 정했다. 중등부는 시제에 맞춰 자유롭게 시를 쓰면 됐고, 고등부는 시 안에 부사 ‘벌써’를 반드시 넣도록 조건을 달았다. 투고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중·고등부 시 예심에서 고등부 시 부문 예심을 통과한 학생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반면 본심인 백일장은 짧은 시간 안에 시를 써야 하므로 그만큼 완성도를 높이기는 힘들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주어진 시간 안에서 독창적인 생각과 시적 사유를 끌어내는 시제에 대한 집중력과 감각의 참신함을 보여주는 순발력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다시 말하면 시제인 동사 ‘멈추다’라는 시·공간적 개념과 부사인 ‘벌써’라는 시간적 개념, 이 두 가지를 엮어서 어떻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로 표현하는가에 심사의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심사 기준을 토대로 하여 예심과 마찬가지로 심사위원 각자가 점수를 주고 그것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응모작과 백일장 선정 작품 간에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는 수상에서 제외하기로 하였으나,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고등학생은 고등학생다운 문제의식과 진지성, 치열성을 보여주는 작품에다 비중을 실었다. 백일장 결과 고등부 금상은 여세실과 이시형 학생에게 돌아갔다. 이시형의 시는 월, 화는 시간이 흘렀고 수요일은 외딴섬에서 깨어났다는 발상이 백일장의 시제와 연관성을 지니면서, 신체적 장애를 넘어서서 ‘시’라는 내면적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으로 보여준다. 일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정상적인 사람들만 있는 섬의 구석에서 시간이 멈추는 과정을 슬픔과 고통이 멈추는 것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 육체적 한계를 극복해 마침내 ‘시’라는 ‘퍼런 싹’에 도달하는 시적 운동성이 돋보인다. 표현이 다소 거칠기는 했지만 시어의 운용이 개성적이고 진실하게 다가왔다. 여세실의 시는 “시 위로 기차가 달려온다”는 첫 행부터가 매력적이고 읽는 이의 눈을 확 잡아끄는 흡인력이 있었다. 시상이 오는 것을 레일로 형상화하여 기차가 멈추고 달려오고 하는 과정을 시가 어떻게 오고 가는가로 되묻는 시적 사유의 전개나 그것을 자기 경험과 밀접한 착상으로 바꾸어내는 삶에 대한 감각이 진솔하고 솔직하게 다가왔다. 두 학생의 작품은 모두 시제를 시 쓰기나 삶과 연관지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독자적 사유의 힘과 에너지로 변환해내는 집중력이 돋보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뚜렷했고 힘이 있었으며, 그만큼 절실함과 진지함으로 읽는 이를 설득해내는 감동이 있었다. 또한 주어진 백일장 시제인 동사 ‘멈추다’와 시의 본문에 조건으로 제시한 부사 ‘벌써’를 다양하게 엮어내는 능력이 우수했다.


중학생은 중학생다운 꿈을 보여주는 시, 또한 그 학생만이 쓸 수 있는 개성적인 작품을 찾으려고 애를 많이 썼다. 정형화되고 전개가 예상되는 시보다 참신하고 개성적인 시, 다시 말해 전형적인 백일장 형식의 시보다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독창적인 틀을 만들어가는 시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중등부 시 역시 ‘멈추다’라는 시제에 집중해서 생각하고 쓴 시들이 우수했다. 중등부 금상은 이가영의 시가 받았다. 이가영의 시는 ‘멈추다’를 다양하게 변주해내면서 그것을 중학생다운 현실인식과 고민으로 형상화해는 독창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유롭게 뛰던 심장이 나무로 멈추는 과정을 통해 학원이나 자기 삶과의 연관성을 찾는 중학생다운 고민에 시적 반짝임이 있었고 진지함이 묻어났다. 특히 ‘멈추다’라는 동사가 갖는 속성에 주목해 움직이거나 멈추는 사물의 특징을 자기만의 창의적인 이미지와 시적 운동성으로 만들어내는 집중력과 독특함이 장점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시제를 어떤 방식으로 정할 것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지니면서도, 그것이 타인과의 교집합을 형성하는 보편적 울림에 도달하는 개성과 울림을 아울러 지닌 작품과 만나고 싶었다. 지금 당장 완성도가 있는 작품보다 미래로 열려 있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작품에다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2박 3일간의 문학캠프에서 그런 작품들과 만나고 중·고등학생들과 ‘시’라는 등대를 함께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심사위원들에게도 좋은 추억이고 큰 행운이 되었다. 수상 여부를 떠나 이번 문학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시를 통해 들려준 자신의 말들은 앞으로 더욱 빛나는 삶과 시의 열매로 자라나 어른들의 무딘 가슴을 깨우쳐주리라고 믿는다.

예심과 본심, 두 차례 심사를 하며 느낀 것은 참가자 모두가 열심히 쓴다는 것이었다. 마치 엄청난 스피드를 요구하는 운동경기를 앞둔 선수들처럼 말이다. 2박 3일의 문학캠프는 여름의 절정에서야 시작되지만, 이미 한 계절 전부터 공들여 쓴 작품을 보내야 한다. 예심 통과에 대한 기대를 품어도 될까 아닐까 고민하고 기다렸던 시간을 가늠해보면 꽤 긴 여정을 필요로 하는 캠프다. 그 기다림을 거쳐 계성원에 모인 청소년들의 표정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반반 섞여 있었다. 그 속에 엄청난 중압감이, 이미 한두 계절 전부터 계속 뛰어온 것 같은 어떤 피로감이 보이기도 했다. 문학캠프 한 중간에 위치한 백일장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아이처럼 자유로워지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한편으로는 잔뜩 긴장해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문학은 기록 갱신이 필요한 경기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여야 하니 말이다. 평소에 익숙하던 울타리를 벗어나 낯선 문우들과 함께 하는 시간, 그 자체가 십 대의 일상에 나름 쇼킹한 이벤트 아닌가.

모든 백일장의 시제는 혹여나 준비물처럼 따라왔을지 모르는, 완결된 이야기들을 무력화시키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그 결과 ‘14(중등부)’와 ‘17(고등부)’이 등장했다. 별다른 조건 없이 그저 14와 17이 전부였고, 제목 역시 14와 17로 고정했다. 저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난해하다면 난해한 활자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필 나이도 그 즈음인 청소년들이 무엇을 어떻게 써낼지 궁금하고 설레기도 했다.

제목이 14이거나 17인 작품들, 무수히 많은 14와 17이 심사위원 앞에 모였다. 예상처럼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나이에 대한 것이었다. 열네 살, 또는 열일곱 살을 통과한, 또는 막 통과하고 있는 화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화자 자신의 목소리이기도 했고, 열일곱 살의 경우에는 그 시기에 나를 낳았던 어머니를 내가 그 나이가 되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다는 식의 줄거리가 꽤 자주 보였다.

그런가하면 14나 17이라는 수 자체에 집중해 보다 독특한 해석을 담아낸 글도 더러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독특한 설정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잘 구현해내는지의 문제다. 14를 단지 열네 살 인물로만 풀어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작가의 독특한 개성이 전혀 매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면 그것이 새롭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같은 이유로 17을 기하학적이란 느낌이 들 만큼 새롭게 해석해보려 했으나 그것이 소설 안에서 특별히 기능하지 못하거나 용두사미 격이 되고 만다면 소용이 없다.

제한된 시간 동안 소재를 얼마나 참신하게 해석하고 14 또는 17이라는 조건을 배제하고 보면 꽤 멋진 작품도 있었다. 문장도 자연스럽고 전개도 매력적인, 그런 작품들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작품들이 정작 우리의 14와 17을 잊고 있다는 데 있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가, 주어진 조건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거쳐 상대적으로 주어진 소재를 순발력 있게 창의적으로 소화한 작품들을 추려냈다. 결과적으로 고등부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17을 어떤 수로도 나눠질 수 없는 소수로 해석했던 강혜린의 작품이었다. 시원하고 저돌적인 문장력까지 갖추고 있어 가독성도 좋고, 문장 안에 숨어있는 요철 같은 개성을 읽는 맛이 있었다. 예심 응모작으로 제출했던 강혜린의 「배스(Bass)」 역시 탄탄한 이야기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끈 바 있었는데, 그의 소설 속 한 문장을 통해 표현하자면 ‘묵직한 것들이 시야에 매달리는 느낌과 동시에 물 속으로 뿌연 것들이 희끗희끗 치고 지나가는’ 느낌의 소설이라고 할까.

중등부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14를 나이로 해석하고 있었는데, 재미있는 점은 제출된 원고지 위에 14란 숫자가 굉장히 자주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14의 출현빈도수가 14를 장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 텐데 ‘시제를 내가 잊지 않고 있어, 기억하고 있어’라는 귀여운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의 글쓰기에서는 어떤 단어의 출현빈도수가 그 단어를 소설 전반에 의미 있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금상으로 결정된 정서은의 작품에서는 14가 단순히 어떤 나이를 넘어 하나의 세계로 잘 구축했다는 평을 받았다. 예심 응모작 「선물」 역시 진지한 문학적 접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제한된 시간, 제한된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글을 보여주었던 청소년문학캠프 참가자들 모두를 응원한다. 백일장은 이제 끝났지만 어쩌면 길을 걷다가 14와 17로 풀어낼 만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불쑥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건 타이밍이 늦은 게 아니라 더 자유로운 조건의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제 공간과 시간의 제한 없이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