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숙소의 벽은 얇았다. 문 여닫는 소리는 물론 옆방의 핸드폰 진동까지도 기대고 있던 마른 등으로 섬세하게 전달되곤 했다. 이 곳에서의 벽은 서로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요하게 연결해주고 있었던 것. 나는 사방으로 열린 벽들 때문에 불을 꺼놓고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누군가 함부로 열었다가 닫는 것을 잊어버린 서랍처럼 살짝 앞으로 기운 채 간신히 매달린 심정으로 잠들곤 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을 간다는 것이란 그런 것이다. 원하지 않아도 사방이 활짝 열어젖혀지는 것. 그 커다랗게 열린 각도로 불안과 혼란, 설렘이 쏟아져 들어와 엉켜 묘한 색의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신열에 들뜬 듯 병든 울긋불긋한 그 덩어리들이 여행 기간인 열흘 동안의 핵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 자신에게 완전히 파묻혀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소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낯선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자, 보여 지는 자가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되면 극도로 자기 자신의 바깥에 서려고 한다. 그 노력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떻게 내가 나 자신임을 피할 수 있겠는가. 베르사유 궁전, 에펠탑, 노트르담, 루브르…… 이토록 익숙하게 들어온 이름들이 단지 이름이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실재하는 것들임을 발견했을 때에도 나는 그저 텅 빈 거대한 터널의 가운데 혼자 서 있는 멍한 기분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본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물론 18년 만의 폭설로 하얗게 뒤덮인 런던이나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프랑스의 궁전들과 성당들은 놀랍고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그것은 단지 ‘본 것’에 불과했다. 나의 그 피상적인 놀라움을 과장하고 싶지 않다. 안전한 거리를 두고 ‘구경’하는 자가 어떻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순수한’ 충격을 맛볼 수 있겠는가. 나는 낯선 곳에서 수동적으로 ‘열린 자’이지만,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열어젖힌 자’가 아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머뭇거리는 나를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이토록 비겁한 내가 감동이나 전율과 같은 ‘충격’을 느낄 리 만무하다. 그러니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고 그 체험은 나를 변화시켰다!’ 는 기행문의 구조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저런 구조의 기행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낯선 곳에 자신을 내 던질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뿐이다.
그러니 오히려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들은 사소한 ‘충돌’ 뿐이다. 내가 미처 방어하지 못한 틈새로 새어 들어왔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나와 부딪혀 도로 튕겨져 나갔던 미세한 ‘충돌’. 이를테면 한 시간 반을 꼬박 걸어 도착한 지중해 바닷가의 모래알들이 서로 조금씩 부딪히며 아슬아슬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던 것과 같은. 혹은 폭우 속에서 살이 부러진 우산을 비좁게 나눠 쓰고 우산이 뒤집어 질 때마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깔깔거렸던 일. 내가 여기서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갑작스레 혼자 울음을 터트렸다가 내 울음소리가 나에게 생소해서 겁에 질려 울음을 뚝 그치고 말았던 일. 불교신자와 무신론자가 나란히 성당에 앉아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미사곡에 마음을 맡겼던 일. 비행기 안에서 모니터에 보여주는 비행경로를 보면서, 낮이 오기를 무작정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밤 속을 날아 낮을 향해 직접 갈 수도 있는 거구나, 느꼈던 것. 루브르에서 그 유명한「모나리자」를 보고 ‘나도 실제로 봤다’고 감탄하는 대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이집트 유물 특유의 엄숙함이 완전히 제외된 ‘의외로’ 다정한 이집트 토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일. 그저 그런 사소한 부딪힘만이, 그 부딪힘이 주던 얼얼한 통증만이 열흘의 채에 걸러져 지금 내 일상에 여전히 남아 있을 뿐이다.
어딘가로 또 옮기기 위해 공항에 앉아 있을 때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무의미한 것. 그 단호한 확신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래 가만히 앉아 있었다. 샤르트르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여분의 존재들이라는 것, 돌멩이 하나도 그렇게 놓여있는 것은 정당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을, 그 어떤 비유도 우리의 ‘전부’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오래 응시했다. 우리는 어떤 때는 다정했지만 동시에 냉혹했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지만 뿌리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받아들였다. 어떤 때는 자신을 넘어서서 이해해보려고 하기도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를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기행문이 여행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로 결론을 맺어야한다면 이런 결론이 나로서는 최선이다. 좋은 적도 있었고, 싫은 적도 있었다. 기쁜 적도 있었고, 슬픈 적도 있었다. 아름답기도 했고 추하기도 했다. 당장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이 섞여있음, 단 하나의 결론으로 일목요연하게 모여지지 않는 모든 순간의 전혀 다른 이질적인 감정들. 나는 내 기행문을 이렇게 오래 씻지 않은 더러운 맨몸으로 내놓고 싶다. 내게는 이 미적지근한 결론이 나만의 열흘 중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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