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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대산대학문학상 해외문학기행 기행문
작성자 남윤수
날짜 12.03.12 조회 8176

글/남윤수_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2학년. 제7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1982년생

생전 처음 가는 여행이라 혹시나 필요할까 싶어 가방에 이것저것 넣다보니 가방 크기는 어느새 내 몸 만큼이나 커졌다. 결국 대용량 캐리어를 장만해서 공항까지 끌고 갔는데 무슨 리어카를 끌고 가는 기분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일행 중 나보다 큰 가방을 끌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행 한 번 갔다 오지 못한 내 처지를 광고 하는 것 같아 조금 민망했지만,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민망함은 가볍게 떨쳐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라고 말하는 게 이 글의 취지와 맞지 않을까 싶다.


출국심사를 통과하고 일본행 비행기에 들어서는 순간 코 속으로 어떤 냄새가 흘러들어왔는데 그걸 채취라고 해야 할지 일본에서만 풍기는 고유의 냄새라고 할지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웠다. 이륙 전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아 승무원에게 한국말로 화장실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승무원은 못 알아들었는지 일본말로 내 질문을 연이어 다시 물었고 일본 말을 할 줄 모르는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때마침 입구에서 승객을 안내하던 승무원이 내 말을 알아듣고는 toilet, 라고 내 앞 승무원에게 살짝 언질을 주었다. 여승무원은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꾸벅 인사를 하고 승무원을 지나치는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한층 진해진 입구에서 맡았던 그 냄새를 승무원에게서 맡을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나를 스쳐간 일본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달았다. 개개인마다 냄새는 다르겠지만 그 개별적인 냄새의 끝자락에 그런 냄새가 실려 있었다. 아, 이게 일본의 냄새구나.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렸다. 미처 우산을 챙겨오지 못한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을 샀다. 우산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우산이었다. 일본은 기술력이 뛰어나 우산도 이렇게 작게 만드는 구나 싶어 놀라움과 호기심에 구입했는데 펴보고 나서 어린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불받으려면 다시 점원과 대면해야 할 텐데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난 일본어를 못한다. 그러니까 여간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들고 다니기로 했다. 우산을 쓰고 도쿄대학을 향해 십 분 즈음 걸었을까. 나와 같은 우산을 든 외국인이 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지나치면서 잠깐 동안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는데 아마 그도 나와 같은 착각을 하고 우산을 산 게 아닌가 생각 됐다. 혼자 킥킥대며 웃었다. 그도 웃었을까.

도쿄, 긴자, 시부야, 신주꾸를 돌아다니면서 끼니때마다 들린 일본 음식점은 한국음식점과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좀 달랐다. 한국 음식점을 들어가면 코 속을 찌르듯이 들어오는 고유의 매콤하고 짠 양념장 냄새와는 달리 일본의 음식점에서는 밋밋하고도 비릿한 냄새가 보편적이었다.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 섬나라의 생활방식과 맵고 짠 음식을 즐기는 한국의 생활방식이 고스란히 냄새에 담겨져 대비되고 있었다.


일본 냄새는 영국 공항까지 따라 오지 못했다. 냄새는 아마 일본을 떠나오면서부터 서서히 사라졌을 것이다.

영국공항은 차분한 일본 공항과는 시끌벅적했다. 영국사람 뿐만 아니라 흑인, 중국인, 일본인을 비롯한 다양한 유럽국가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냄새가 뒤섞이면서 하나의 냄새가 완성 되었을지 아니면 제 각각의 냄새를 고수하며 나름 서식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시차적응을 실패해 내내 밀려오는 졸음과의 사투하고 있는 나에게는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덕분에 버킹검 궁전과 대영 박물관, 뮤지컬 레미제라블, 영국의 거리 역시 졸음 속에 잠겨 가끔 언저리만이 수면 위로 떠오를 뿐이었다.


시차적응이 된 건 프랑스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공항은 한적했고 규모가 작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벽의 칠이 벗겨져 있었는데 마치 고속터미널을 빠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공항 입구에는 택시 몇 대가 서 있었다. 택시의 생김새와, 밖으로 나와 가격을 흥정하는 택시 기사들의 모습이 우리나라를 연상케 했다. 무엇보다도 저 먼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거기에 실려 오는 냄새는 한국의 냄새와 많이 닮아있었다. 나는 그 냄새에 실린 채 버스에 타 숙소까지 오면서 간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프로방스에서 번역가 김혜경씨를 만나 저녁 만찬을 나누고 그 다음날 프로방스 대학 학생들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위치를 잘못 정해 테이블 모서리에 앉는 바람에 학생들과 두루 친해지지 못했지만 가까이에 앉아 있었던 필립 씨를 통해 내가 여태 느끼지 못했던 한국의 냄새를 새삼 알게 되었다. 필립 씨는 나이가 마흔이었고 현지에서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그는 한국으로 유학 와서 6년 동안 부산에 살았다고 했다. 그 당시 절에 거주했던 그는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과 화창한 날씨에 내리쬐는 햇빛 냄새가 그립다고 말했다. 그 냄새는 아마도 프랑스인 필립 씨가 맡은 한국의 냄새였을 것이다. 그 말에 나도 문득 현지에 있을 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만끽했던 그 냄새가 그리워졌다. 오랫동안 낯선 냄새들 속에 둘러싸여 지층 깊숙이 묻혀버린 내 냄새를 찾고 싶었던 걸까. 그는 한국에서 진돗개 한 마리를 데려와 키우고 있다며 좀 있다 부인을 불러 개를 데려왔다. 나는 진돗개를 품에 안고 코를 묻었다. 뜨겁고 뭉클한 산 것의 냄새와 햇빛냄새가 몸으로 전해져 왔다. 나의 냄새였다. 나는 잠시 그렇게 있었다.


다음 날 방문한 프로방스 대학과 학생들, 그리고 그 다음날 떠난 파리, 베르사유 궁전, 에펠탑, 개선문, 상제리제 거리, 루브르. 이들은 나의 냄새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마 그 세상에서 나는 하나의 이방인이었고 설명할 수 없는 낯선 냄새였을 것이다. 그 사실이 그들에게 있어서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 알 수 없지만 서로에게 다만 경험 될 뿐일 것이다. 그 경험은 찰나지만 오랫동안 기억 될 것이다. 나는 내가 경험한 만큼의 세상냄새를 묻혀 돌아왔다. 냄새는 바람과 시간 속에 흩날려 사라져 버리겠지. 서서히 내 곁을 떠나가기 시작하는 냄새에게 안녕을 말한다.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대산문화재단에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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