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균형과 조화의 삶을 찾아서 - 행복한 의사를 위한 인문학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세 번째｜글과 리듬
글 얀 헨릭 디륵스(Jan Henrik Dirks) ㅣ 번역가. 가천대학교
유럽어문학과 조교수. 1975년생
독역서 『바셀린 붓다』(정영문 작) 등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권유하곤 한다. 글을 큰소리로 읽어봐! 이야기라면 목소리로 공연할 수 있어야 하고 시라면 낭송으로 물론 노래로도 들려줄 수 있어! 기회만 있으면 다양한 텍스트, 노래, 희곡 등을 열심히 외워서 - 혼자나 다른 사람 앞에서 - 공연해 봐! 말들을 외우면서 몸에 들어오게 하고 공연하면서 다시 나가게 할 때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 적당한 흐름과 리듬에 대한 감각을 찾아 봐!
나는 몇 년 동안 한국문학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가르쳐 왔다. 내 과제는 학생들과 함께 한국문학작품 본문의 의미를 해명하며 학생들이 작성한 번역물을 수정하고 오류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같이 개선방법을 모색하는 데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럴 때는 가끔 다음과 같은 일도 있다. 번역대상작품의 원작 내용도 훌륭하고 학생이 작품의 본문을 완벽하게 이해하여 매우 깔끔하게 번역했고, 번역문에 오역도없고, 단어의 선택도 적당하고, 문법도 올바르고, 맞춤법 등과 같은 형식적인 부분도 결점이 없는데, 왠지 내가 마음에 드는 글은 아니다. 글에 무엇인가 이상하거나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고 말할까? 이것은 좁은 의미의 번역 작업과 상관없는, 보다 근본적인, 더 기초적인 어떤 것. 글이 살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어떤 것.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어떤 것. 바로 리듬감이다.
언어적인 리듬이란 여기서 어떤 의미로 이해하면 되는가? 리듬은 우선 모든 언어에서 말을 할 때 음성적인 수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음절을 길거나 짧게 발음하는지, 목소리를 올리거나 내리는지, 음절을 강하거나 약하게, 크거나 작게 발음하는지에 따라 리듬이 생기게 된다. 리듬의 구체적인 양상은 물론 언어별, 방언별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형태론적·구문론적 수준에서는 단어와 구의 분할과 반복이 리듬을 나타나게 한다. 그리고 물론 의미론적인 수준에서는 각각 생각의 중요도 나 ‘무게’(무겁거나 가볍게), 생각들의 속도(빠르게 또는 느리게, 점점 빠르게, 또는 점점 느리게), 그리고 생각들의 방향(앞으로 또는 뒤로, 직선 또는 우회)도 마찬가지로 - 음악의 구절법과 비슷하게 - 글의 리듬에 큰영향을 미친다.
리듬이 없는 글은 리듬이 없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성공한 글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공한 음악 작품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좋은 리듬감이 꼭 필요하다. 단어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문장의 구조가 어색하게 짜여 있을 때, 중심 포인트를 놓칠 때, 숨을 쉴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 필요한 핵심적인 단어들이 불편하게 어떤 구석에 끼여 있을 때, 중간 휴지가 부적당한 데에 나타나거나 글이 잠깐 멈추어야 하는 데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계속될 때, 문장들이 띄엄띄엄 이어지거나 생각의 아첼레란도나 리타르단도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할 때, 이럴 때는 독서가 글자 그대로 신체적으로 괴로운 일이 될 수 있다. 어떤 피아니스트가 모든 음을 치는데도 계속해서 박자를 놓쳐 버리는 것처럼. 소설 한 편(또는 소나타 한 곡)의 전부에 리듬감이 없는 것이 언어적인 실수 몇 군데(또는 틀린 음 몇 개)보다 훨씬 불쾌한 일이다.
리듬감을 얻는 수단은 바로 우리 몸이다. 옛날에 모든 이야기는 말하자면 몸을 통해서만, 신체화된 형식으로만 존재했다. 모든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했다. 즉, 큰 목소리로 읊거나 노래로 부르거나 연극으로 공연했다. 그 이유는 이야기가 글로 존재하지 않아서, 잊어버리지 않고 아예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야기를 외워서 공연하고 공연하면서 외우고 기억하는 필요가 꼭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글을 인간의 신체로부터 분리시키면 안 되고 글을 목소리와 몸짓으로 - 낭송, 노래 또는 연극의 형식으로 - 살려 줄 필요가 있다는 이의식은 문자를 발명한 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져왔다(예를 들면, 한국의 판소리나 프랑스의 샹송 드 제스트(chanson de geste) 등이 바로 노래의 형식으로 공연된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글을 이렇게 온 몸으로 구현할 필요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눈은 책의 페이지나 컴퓨터의 화면을 스캔하고 뇌는 그 문자들을 해독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인터넷 문화도 지각되는 모든 정보를 조그마한 파편으로 분산시켜 버리므로 글의 유기적 문맥에 대한 의식, 그 자연스러운 리듬과 흐름에 대한 느낌, 그 맥박과 호흡에 대한 감각은 잃어버리고 만다.
글을 다시 일종의 유기체로 인식하며 글의 리듬과 흐름에 대한 감각을 살리려면 신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권유하곤 한다. 글을 큰소리로 읽어 봐! 이야기라면 목소리로공연할 수 있어야 하고 시라면 낭송으로 물론 노래로도 들려줄 수 있어! 기회만 있으면 다양한 텍스트, 노래,희곡 등을 열심히 외워서 - 혼자나 다른 사람 앞에서 - 공연해 봐! 말들을 외우면서 몸에 들어오게 하고 공연하면서 다시 나가게 할 때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 적당한 흐름과 리듬에 대한 감각을 찾아 봐!
물론 문학에서도 음악에서도 어떤 유기체의 삶에서도 리듬은 모두가 아니다. 그러나 리듬 없이는 이 모든것들은 존재할 수 없다. 호흡과 맥박의 리듬은 우리가 매 순간에 느끼는,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이다.
그 만큼 글을 쓸 때도 언어적 리듬을 무시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