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혜순으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김혜순으로 살다가 다시 김혜순이 아닌 곳으로 가게 되지요!
특집을 기획하며 ①특별한 계기에 쓴 시 ②극지에서 고독에 떨며 피흘리며 쓴 「사람의 가을」과 「응」 ③운명적인 만남 ④저주받은 걸작은 끝내 쓰지 못한 걸작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나의 플래시 속으로 걸어온 시인*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소설에서의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하여
①새로운 개성과 공감의 가능성을 열다 ②제27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번역서 리뷰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관계망 속으로 들어간다. 첫 울음과 함께 인 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과 함께 살아가게 되어있다. 이로 인해 생각이 깨이고, 주어진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꾸며나갈지 고민하면서 삶을 만들어 간다. 스페인 20세기 사상가이자 수필가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 『키호테 의 성찰』(1914)에서 이러한 인간의 존재를 “나는 나와 내 환경”이라고 정의했다. 삶이란 나와 환경으로 형성되기에 그중 하나를 잃으면 삶 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내가 내 환경을 구하지 못하면 나는 내 자신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이 “구하다”라 는 말에는 ‘난관을 피하다’, ‘장애를 이기다’, ‘위험에서 안전하게 되다’ 등의 의미가 들어 있다. 서양은 동양에 비해 주체와 객체가 좀 더 명 확하게 구분되어 있기에, 객체와 주체 사이에 바람직한 거리가 있다. 주체는 그러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체를 관찰하고 분석하기 때문에 관계가 얽힌 실타래 마냥 복잡하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부부와 가족 문제에서 편견과 집착과 이기심이 관계의 동인이 되면 영원히 해결할 길 없는 주제로 격상하곤 한다. 고민하고 탐구해 야 할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로, 관계가 존재를 구속하는 거대한 족쇄 가 되기도 하고, 삶을 불안하게 하여 휘청거리게 하기도 하고, 더 나 아가 와장창 무너지게 할 수도 있는 요인이 된다.
현길언(1940~) 작가의 『나의 집을 떠나며』(2009년 7월 초판 1쇄, 2010년 11월 2쇄, 문학과지성사) 가 바로 이 같은 가족 관계에 대한 탐색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 게 만들지만, 이기심과 집착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최선이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제주도에서 태어 나 국문학을 전공하였고, 소설가로 데뷔하였고 대학교수로 정년퇴임한 기독교 신자로 여겨진다. 작 가 역시 자신의 환경을 바탕에 깔고 “가족에 대한 본질적인 탐색”을 시도한다. 우리나라 전통 가족 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 이야기가 대산문화재단 기금 지원으로 스 페인 베르붐 출판사에서 2019년에 출간되었다.
역자가 번역본 표지에 담은 글이 스페인 베르붐 출판사 홈페이지 <한국문학 시리즈> 코너에 소개 글로 올라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에서 가족 관계를 주제로 다룬 작품 모음집. 관계하고 결속 되며 연약하여 부서지기도 하는 관계. 특히 한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 가족의 유대를 깨트릴 수 있 다.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둔 사고와 기독교 관에 입각한 사고 사이의 긴장. 한국은 현대화되고 세 계화되었으나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존재한다. 장손의 무게,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한 남아 선 호 사상. 여성은 어머니나 아내나 며느리로서의 존재.”
같은 홈페이지에 한국은 극동에서 세 번째 문화 보국이라는 설명과 함께 지금까지 출판사에서 출 간된 작품들을 진열해 놓고 있다. ‘기타’ 란에 포함되었던 우리나라 작품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번역 지원금의 무게감이 실감 난다. 본 번역서에 대한 평은 아직 없다. 책을 구입한 사람만이 평을 하게 되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판매량은 아직 미미하다.
번역은 원문을 충실하게 옮긴 편이다. 주제 전달에 있어 결점이 없다. 난해한 부분이 가끔 생략 된 경우는 있으나 의미를 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원작에서 보이는 모호한 부분이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다. “할아버지 이제 다시 젊어지실 거예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제 할 아버지도 새봄으로 돌아오신 거예요. 아마 고등학교 학생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원작 258쪽) 를 이렇게 옮겼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다시 젊어지실 거예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와요. 할 아버지한테는 변하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봄으로 돌아갈 거예요. 다시 고등학생이 될 수 있어요(번역서 210쪽). 가끔 오역도 있다. “오랜만에 부자는 평소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원작 260쪽)가 “훨씬 시간이 지나 부자는 같이 나누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번역서 212쪽)로 되어 있다. “오랜만에”에는 “어떤 일이 있은 때로부터 긴 시 간이 흐른 뒤”라는 의미가 있다. 앞선 대화가 있은 뒤 한참 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로 이해해 야 한다. 그러니까 출발어의 부정확한 이해에서 비롯된 오역이다. 물론 마음고생, 앉은뱅이책상, 눈 칫밥, 층층시하, 저승사자와 같은 문화가 낳은, 풀어서 옮길 수밖에 없는 어휘는 물론이고 제주도 방언 같은 맛깔스러운 말까지 말맛을 살려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작 34쪽 “곤혹스 럽게 하다”는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란 뜻으로, “Quedarse perplejo”, 또는 “no saber qué hacer” 또는 “Se vió apurada sin saber qué hacer”가 합당해 보인다. “부끄럽게 생각 하다 avergonzar”가 아니다. “처지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역시 “ser escéptico”로 “문제로 삼다”의 “cuestionar”와 의미가 다르다. “선 잠 sueño ligero”은 깊이 들지 못한 흡족하지 않은 잠으로 “낮잠 siesta”이 아니다.
늘 그렇듯이 문화적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지가 번역의 난제이다. 번역서 151쪽 “허리에서 흘러내 리는 책보자기를 왼손으로 부여잡고(sujetaba con la mano izquierda el bulto de libro que se le resbalaba de la cintura)”가 스페인어권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역문 중심의 번역이라 면 스페인어권 문화 내용으로 바꿔야 할 것이고 원문 중심 번역이라면 각주라도 두어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문학 번역이 단지 주제의 전달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까지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 이 있다면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한국어-스페인어 학습사전도 참고할 만하다. 번역의 마지막 부 분이다. “노인은 노르스럼 한 명주로 된 바지와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차례로 입었다… 자세를 바로 해서 대님을 매고 일어나서 두루마기를 입었다.” 이 문장에서 “대님을 매다”가 “조끼의 끝을 묶었다” 로, “두루마기”가 “외투”로 되어있다. “두루마기”와 “대님”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고, 이어 쉼표를 두고 다음 쉼표 사이에 그에 대한 설명을 두면 독자의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작품 이해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지러지는 남도창”이 “남쪽의 날선 멜로디”로 번역되는 일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daenim: Ligas que sirven para amarrar firmemente el dobladillo del pantalón del traje típico coreano(hanbok) para varones después de habérselo puesto.”
번역자는 번역에 임하며 자신에게 늘 물어봐야 할 것이다. 출발어의 언어 이해력은 충분한지, 그 로 인해 언어적 구속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독자의 문학적 감수성을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을 구사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출발어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있는지를.
출발어 중심의 번역과 도착어 중심의 번역 사이에서
스페인어역 현길언 소설 『나의 집을 떠나며』
글 안영옥 ㅣ 번역가,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 1958년생
역서 『돈키호테 I, II 』 『엘시드의 노래』 『좋은 사랑의 이야기』 『라셀레스티나』 『죽음 저 너머의 사랑』,
저서 『돈키호테를 읽다』 『돈키호테의 말』 『왜 스페인은 끌리는가』 『스페인 시의 이해』 『중세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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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길언(1940~) 작가의 『나의 집을 떠나며』(2009년 7월 초판 1쇄, 2010년 11월 2쇄, 문학과지성사) 가 바로 이 같은 가족 관계에 대한 탐색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 게 만들지만, 이기심과 집착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최선이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제주도에서 태어 나 국문학을 전공하였고, 소설가로 데뷔하였고 대학교수로 정년퇴임한 기독교 신자로 여겨진다. 작 가 역시 자신의 환경을 바탕에 깔고 “가족에 대한 본질적인 탐색”을 시도한다. 우리나라 전통 가족 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 이야기가 대산문화재단 기금 지원으로 스 페인 베르붐 출판사에서 2019년에 출간되었다.
역자가 번역본 표지에 담은 글이 스페인 베르붐 출판사 홈페이지 <한국문학 시리즈> 코너에 소개 글로 올라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에서 가족 관계를 주제로 다룬 작품 모음집. 관계하고 결속 되며 연약하여 부서지기도 하는 관계. 특히 한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 가족의 유대를 깨트릴 수 있 다.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둔 사고와 기독교 관에 입각한 사고 사이의 긴장. 한국은 현대화되고 세 계화되었으나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존재한다. 장손의 무게,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한 남아 선 호 사상. 여성은 어머니나 아내나 며느리로서의 존재.”
같은 홈페이지에 한국은 극동에서 세 번째 문화 보국이라는 설명과 함께 지금까지 출판사에서 출 간된 작품들을 진열해 놓고 있다. ‘기타’ 란에 포함되었던 우리나라 작품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번역 지원금의 무게감이 실감 난다. 본 번역서에 대한 평은 아직 없다. 책을 구입한 사람만이 평을 하게 되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판매량은 아직 미미하다.
번역은 원문을 충실하게 옮긴 편이다. 주제 전달에 있어 결점이 없다. 난해한 부분이 가끔 생략 된 경우는 있으나 의미를 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원작에서 보이는 모호한 부분이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다. “할아버지 이제 다시 젊어지실 거예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제 할 아버지도 새봄으로 돌아오신 거예요. 아마 고등학교 학생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원작 258쪽) 를 이렇게 옮겼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다시 젊어지실 거예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와요. 할 아버지한테는 변하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봄으로 돌아갈 거예요. 다시 고등학생이 될 수 있어요(번역서 210쪽). 가끔 오역도 있다. “오랜만에 부자는 평소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원작 260쪽)가 “훨씬 시간이 지나 부자는 같이 나누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번역서 212쪽)로 되어 있다. “오랜만에”에는 “어떤 일이 있은 때로부터 긴 시 간이 흐른 뒤”라는 의미가 있다. 앞선 대화가 있은 뒤 한참 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로 이해해 야 한다. 그러니까 출발어의 부정확한 이해에서 비롯된 오역이다. 물론 마음고생, 앉은뱅이책상, 눈 칫밥, 층층시하, 저승사자와 같은 문화가 낳은, 풀어서 옮길 수밖에 없는 어휘는 물론이고 제주도 방언 같은 맛깔스러운 말까지 말맛을 살려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작 34쪽 “곤혹스 럽게 하다”는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란 뜻으로, “Quedarse perplejo”, 또는 “no saber qué hacer” 또는 “Se vió apurada sin saber qué hacer”가 합당해 보인다. “부끄럽게 생각 하다 avergonzar”가 아니다. “처지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역시 “ser escéptico”로 “문제로 삼다”의 “cuestionar”와 의미가 다르다. “선 잠 sueño ligero”은 깊이 들지 못한 흡족하지 않은 잠으로 “낮잠 siesta”이 아니다.
늘 그렇듯이 문화적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지가 번역의 난제이다. 번역서 151쪽 “허리에서 흘러내 리는 책보자기를 왼손으로 부여잡고(sujetaba con la mano izquierda el bulto de libro que se le resbalaba de la cintura)”가 스페인어권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역문 중심의 번역이라 면 스페인어권 문화 내용으로 바꿔야 할 것이고 원문 중심 번역이라면 각주라도 두어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문학 번역이 단지 주제의 전달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까지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 이 있다면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한국어-스페인어 학습사전도 참고할 만하다. 번역의 마지막 부 분이다. “노인은 노르스럼 한 명주로 된 바지와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차례로 입었다… 자세를 바로 해서 대님을 매고 일어나서 두루마기를 입었다.” 이 문장에서 “대님을 매다”가 “조끼의 끝을 묶었다” 로, “두루마기”가 “외투”로 되어있다. “두루마기”와 “대님”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고, 이어 쉼표를 두고 다음 쉼표 사이에 그에 대한 설명을 두면 독자의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작품 이해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지러지는 남도창”이 “남쪽의 날선 멜로디”로 번역되는 일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daenim: Ligas que sirven para amarrar firmemente el dobladillo del pantalón del traje típico coreano(hanbok) para varones después de habérselo puesto.”
번역자는 번역에 임하며 자신에게 늘 물어봐야 할 것이다. 출발어의 언어 이해력은 충분한지, 그 로 인해 언어적 구속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독자의 문학적 감수성을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을 구사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출발어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있는지를.
※ 스페인어역 『Dejando mi casa atrás y otros cuentos 나의 집을 떠나며』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진진주·세바스티안 파로디의 번역으로 2019년 스페인 베르붐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