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혜순으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김혜순으로 살다가 다시 김혜순이 아닌 곳으로 가게 되지요!
특집을 기획하며 ①특별한 계기에 쓴 시 ②극지에서 고독에 떨며 피흘리며 쓴 「사람의 가을」과 「응」 ③운명적인 만남 ④저주받은 걸작은 끝내 쓰지 못한 걸작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나의 플래시 속으로 걸어온 시인*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소설에서의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하여
①새로운 개성과 공감의 가능성을 열다 ②제27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내 문학의 공간
나의 글쓰기는 일기 쓰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잠들기 전이면 일기를 썼다. 선생님 께 검사를 맡아야 하는 숙제로서의 일기가 아닌 온전히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한 일기는 그때부터였다. 중 학교 입학선물로 만년필을 받은 것이 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노란 스탠드 불빛 아 래서 만년필로 일기를 쓸 때면 마치 비밀스런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오랫동안 써 오던 일기를 띄엄띄엄 쓰다 말다를 반복하게 된 것은 십여 년 전부터다. 일기뿐 아니라 친구 들에게 보내던 엽서도, 편지도 그즈음부터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색연필과 물감으로 그리고 잡지를 오 려서 만들었던 괴상한 벽 장식이나 크리스마스 카드도 이제는 만들지 않는다. 왜일까 생각해 보면 나뿐 아 니라 친구들에게도 더 중요한 많은 일들이 생겼고 함께 나누던 것들을 나누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가 모르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한동안은 잊고 지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난 어느 날 내가 속 이 텅 빈 가벼운 인형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기 때 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내밀하게 소통하는 글쓰기 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올 초부터 일기를 썼다. 그런데 이 작은 일도 쉽게 습관이 들지 않았다.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만) SNS를 할 때 작은 창에 몇 줄 적는 일은 쉬웠는데 매일 꾸준히 노트에 써내려 가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일기장 속에는 내가 갔던 곳, 머물렀던 곳, 가지 못하는 곳, 가고 싶은 곳과 내가 꿈에서 본 곳, 누군가 로부터 들었던 곳, 막연히 상상하는 곳이 모두 거기 있다. 내가 만났던, 사랑하는, 싫어하는, 열망하는, 알 수 없는 사람들과 무수한 감정들까지. 아주 명확한 미지와 조우하는 시공간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무수한 질문과 답이 되지 않는 말들. 현재진행형의 삶이 있다.
이동순 시인의 시 「아버님의 일기장」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 아들의 이 야기다. 노년의 아버님은 일기장의 팔 할이 넘게 ‘종일 본가(終日 本家)’라고 짧게 적어 두셨다. 어제도 오늘 도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얘기다. 언젠가 내가 늙고 병들어 걷기도 누굴 만나기도 대화하기도 어려 운 시간이 온다면, 주위의 친구들이 병들거나 떠나고 오직 나에게만 말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면 그때 나 는 일기장에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내가 가진 언어로는 기록할 수 없는 막막한 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집 밖으로 나가 더 많은 것을 담고 기록하기로, 다시 마음먹는다. 종일 본가에 익숙한 나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주문이다.
종일 본가 (終日 本家)하지 않기 위해서
글 강성은 ㅣ 시인, 1973년생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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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써 오던 일기를 띄엄띄엄 쓰다 말다를 반복하게 된 것은 십여 년 전부터다. 일기뿐 아니라 친구 들에게 보내던 엽서도, 편지도 그즈음부터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색연필과 물감으로 그리고 잡지를 오 려서 만들었던 괴상한 벽 장식이나 크리스마스 카드도 이제는 만들지 않는다. 왜일까 생각해 보면 나뿐 아 니라 친구들에게도 더 중요한 많은 일들이 생겼고 함께 나누던 것들을 나누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가 모르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한동안은 잊고 지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난 어느 날 내가 속 이 텅 빈 가벼운 인형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기 때 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내밀하게 소통하는 글쓰기 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올 초부터 일기를 썼다. 그런데 이 작은 일도 쉽게 습관이 들지 않았다.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만) SNS를 할 때 작은 창에 몇 줄 적는 일은 쉬웠는데 매일 꾸준히 노트에 써내려 가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일기장 속에는 내가 갔던 곳, 머물렀던 곳, 가지 못하는 곳, 가고 싶은 곳과 내가 꿈에서 본 곳, 누군가 로부터 들었던 곳, 막연히 상상하는 곳이 모두 거기 있다. 내가 만났던, 사랑하는, 싫어하는, 열망하는, 알 수 없는 사람들과 무수한 감정들까지. 아주 명확한 미지와 조우하는 시공간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무수한 질문과 답이 되지 않는 말들. 현재진행형의 삶이 있다.
이동순 시인의 시 「아버님의 일기장」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 아들의 이 야기다. 노년의 아버님은 일기장의 팔 할이 넘게 ‘종일 본가(終日 本家)’라고 짧게 적어 두셨다. 어제도 오늘 도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얘기다. 언젠가 내가 늙고 병들어 걷기도 누굴 만나기도 대화하기도 어려 운 시간이 온다면, 주위의 친구들이 병들거나 떠나고 오직 나에게만 말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면 그때 나 는 일기장에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내가 가진 언어로는 기록할 수 없는 막막한 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집 밖으로 나가 더 많은 것을 담고 기록하기로, 다시 마음먹는다. 종일 본가에 익숙한 나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주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