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강하나_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4학년. 제12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1. 나는 여태까지 나를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이제는 ‘없었다’라고 해야 옳겠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내게 묻곤 했다. ‘나가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들으면 늘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진심을 가득 담아 대답하곤 했다.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왜 가? 우리나라에도 좋은 관광지가 넘치고 넘치는데?’
사실 나는 해외에 대해 환상도 없었고 가보고 싶다는 열망도 없었다. 오히려 불안감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전공과목 성적은 모두 A이면서 영어 성적은 C를 받아, 친구들 사이에서 별칭으로 ‘흥선대원군’이라 불리던 나였다. 양이의 말을 배운다는 것은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일이다……. 술자리에서 염불처럼 외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한국어가 안 통하는 곳은 환상보다는 불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속이 울렁거려 죽을 뻔 했다. 촌스럽게 비행기 멀미를 다 한다고 스스로를 비웃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건 불안감이 만들어낸 몸의 변화였을 것이다. 이륙하고 얼마동안은 잠도 못 자고 기내식도 못 먹고 계속 입을 막은 채로 있었다. 혹시라도 토할까봐. 출발하기 전 먹은 수면유도제가 위력을 발휘하기 전까지 말이다. 정신은 참으로 위대하다. 내 튼튼한 위장에까지 마수를 뻗치다니. 경유하기 위해 잠시 들른 암스테르담 공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티는 못 냈지만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었고 온 몸이 무겁기만 했다. 나는 설렘보단 불안으로, 환상보단 공포로 바르셀로나에 발을 내딛었다. 바르셀로나의 아침. 한국의 겨울보다 따뜻하고 한국의 아침보다 청명한 바르셀로나. 나는 여전히 속이 메스꺼웠다.
그 이후로 10박 11일을 어떻게 견뎠냐고? 나는 누구보다도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고 잘 돌아다니고 잘 웃고 잘 잤다.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아, 나는 흥선대원군이 아니라 마르코 폴로였는데. 그걸 이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다니. 분하다.
2. 사람의 힘은 물론 웅장하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가 만들어낸 엄청난 건축물들을 봤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까사밀라, 까사바뜨요, 구엘 공원……. 기둥 하나하나, 천장 조각 하나하나에 곡선들이 선을 이루고 있었고, 색이 다른 타일들을 이어 붙인 모자이크 기법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연신 감탄만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본 첫 소감은 ‘헐’이었다. 말 그대로 헐.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에 하나하나 다르게 세워진 조각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절로 의문이 들었다. ‘아니 그래서, 이걸 일일이 다 조각한 거야?’ 안으로 들어가 기둥들을 만져보고 또 천장 높이 새겨진 모자이크들을 보니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아니 그래서, 이걸 일일이 다 설계한 거야?’ 까사 밀라와 까사 바뜨요를 보고 나서는 그랬다. ‘가우디는 아마 사람이 아니었나봐요…….’
그라나다에 도착해선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했다.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궁전. 그곳을 점령한 이자벨 여왕. 미로처럼 설계되어있는 입구와 잔잔하게 흐르는 이슬람의 분수. 열두 마리의 사자가 지키고 있는 분수대. 그토록 넓은 곳에 하나하나 조각을 새기고 깎아내고 붙여냈을 생각을 하니 경외감만 들었다. 어렸을 적 레고 블럭 하나 제대로 조립해본 적도 없는 나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사람이 어디까지 조각하고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인간이 신을 닮았다면 가장 닮은 점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리라. 가우디의 건축물과 알람브라 궁전은 나에게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사람의 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창조성의 힘. 기둥 하나하나, 돌 하나하나, 타일 하나하나. 사람들은 그 모든 것에 그림을 새길 수 있고 생각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조각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에 상징을 담아놓을 수 있다.
또 하나, 사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또 있다. 바로 세비야에서 관람했던 플라멩코였다. 음을 내는 악기는 오직 기타 하나. 한 사람이 기타를 치면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서 박수를 친다. 그러면 플라멩코 댄서는 그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다. 순간을 여러 개로 쪼갠 엄청난 박자감각. 그들의 온몸은 춤이면서 악기고 온몸이 박자면서 음표다. 그들에게 무대는 숨이면서 삶이지 않을까? 사람의 몸이, 사람의 목소리가, 사람의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진동이 그토록이나 웅장하고 화려할 수 있다니. 나는 정말이지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감기가 싹 다 낫는 기적을 경험했지 뭐야!
3. 하지만 자연의 힘은 더욱더 위대하다.
스페인의 하늘은 우리가 부르는 관념적인 ‘하늘색’의 하늘이었다. 누가 하늘색 수채화 물감을 마구 풀어놓은 것처럼. 그리고 스페인의 마을들은 그 하늘과 대칭적인 각도에서, 색채대비를 이룬 채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까사 바뜨요에서, 구엘 공원에서 내려다 본 스페인의 마을은 하늘색의 신을 떠받들고 있는 흰색의 신전처럼 보였다. 문득 포카리스웨트의 캔이 생각나기도 했다.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 스페인의 동네는 대부분 파란 하늘 밑에 흰색 집들을 자랑했다.
특히 론다는 내 인생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으로 남으리라. 깎아지른 듯 한 절벽, 그 절벽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하늘, 절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포의 부서지는 물줄기…….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순응하는 듯 얌전하게 지어진 작은 집들…….
버스와 기차 안에서 보았던 절벽과 바위들, 나무의 풍경들도 한 폭의 병풍처럼 곱게 접어 내 마음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내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병풍을 펼쳐볼 테다. 아마도 수백 년,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을 살았을 그 나무와 바위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4. 여행은 사람을 얻기 위해 하는 것.
마드리드에서 무려 한림원에 들어가게 됐다. 스페인 왕실 국립 아카데미를!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원본을 간직하고 있는 그 곳에! 사실 나는 당일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떨리다가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가 다시 떨리다가 또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가 하는 극심의 혼란 상태를 겪었다. 한림원에 발을 내딛는 순간 어땠냐고? 제일 신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녔다. 아. 역시나 나의 운명은 마르코 폴로였던 것인가.
그리고 그 곳에서 스페인의 대작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를 만났다. 약 한 시간여의 인터뷰 시간.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엄청난 패션 센스를 자랑하고, 선뜻 먼저 악수와 농담을 건네는 매너를 몸에 지니고 있던 그. 작품은 자신의 한 시간을 닫는 역할을 한다며, 소설을 쓰며 구원을 받은 기분이었다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정확히 무엇을 얻었을까? 그걸 형언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아마 나도 그처럼 예순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닫을 때쯤이 되어서야 그 때의 기분을 글로 써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소설의 힘’을 다시 긍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 미래의 모든 것을 다시 얻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렇지만 역시나 이번 문학 기행에서 가장 뜻 깊은 일은 아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토록이나 유쾌하고, 다정하고, 짓궂으면서도 호방한 사람들을. 그 어떤 누구보다 말이 많고 잘 걸으며 잘 웃는 사람들을.
여행에 같이 참여하지 못해 아쉽기만 한 빛나 언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어딘가를 같이 가고 싶다. (어쩐지 유흥을 권하는 나쁜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비 맞으며 길을 찾던 장근명 대리님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패러디한 것 맞다.) 비행기에선 세상에 다시 없을 차도녀 같았는데 막상 친해지니 세상에 다시 없을 따전녀(따뜻한 전주 여자의 줄임말이다.)였던 이현지 선생님. 자기를 포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나의 편견을 깨준, 모든 일에 유쾌하면서도 동화 얘기엔 진지한 현정 언니. 나는 언니의 그 솔직함과 과감함이 너무도 부럽다. 또 호기심이 많고 생각도 많은, 그래서 누구보다 좋은 감독이 될 것 같은 지수 오빠. 오빠의 모든 장난, 사실 나는 다 알고 있지만 속아준 거야. 그리고 이번 여행의 히어로, 모두의 입에서 ‘귀여워!’ 소리가 떠나지 않게 만들어준 응규. 앞에 앉은 친구의 반응을 보려 일부러 놀리곤 했던 초등학교 시절로 나를 돌아가게 해줬어!
나는 사람들을 얻었고, 그 사람들은 대산문화재단이라는 든든한 낙하산이며 등단 동기라는 안전한 비상구다. 그리하여 나는 깨달았다. 10박 11일이라는 짧은 여정, 그러나 얻는 것과 시간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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